부마민주항쟁
1979년 10월
- 언제
- 1979년 10월
- 어디서
- 부산·마산
- 어느 나라
- 대한민국
- 누가
- 학생·시민
- 무슨 사건
- 부마민주항쟁
연도가 특정된 연대
이야기로 읽는 역사 — 기간을 정하고, 나중에 넓히다
1979년 가을, 부산과 마산에서 유신체제에 반대하는 시위가 일어났습니다. 이 일을 이름으로 못 박아 적은 법은 2013년에 만들어졌습니다. 「부마민주항쟁 관련자의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입니다. 사건이 있고 서른네 해 뒤입니다.
이 법 제2조는 부마민주항쟁을 이렇게 정합니다. "1979년 10월 16일부터 10월 20일까지 부산·마산 및 창원 등 경남일원에서 유신체제에 대항하여 발생한 민주화운동."
날짜와 장소와 무엇에 맞선 것인지가 한 문장에 들어 있습니다. 기간은 닷새입니다. 국가가 그 일을 부르는 이름과 테두리를 이렇게 정한 것입니다.
제1조는 법의 목적을 "부마민주항쟁의 진상을 규명하고"로 시작합니다. 서른네 해가 지난 뒤에도 밝혀야 할 것이 남아 있다는 뜻입니다. 그 일을 할 위원회는 국무총리 소속으로 두었습니다. 유족의 범위를 정한 조항에는 행방불명된 사람의 경우가 따로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2020년에 이 정의가 한 번 바뀝니다. "10월 20일까지" 뒤에 "를 전후하여"가 붙었습니다. 다섯 글자가 붙으면서 앞뒤로 며칠이 더 들어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국가가 한 번 그은 선을 다시 그은 것입니다.
이 법에는 시위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붙잡혀 갔는지는 적혀 있지 않습니다. 그 앞뒤의 일은 다른 기록에 남아 있습니다. 국회 회의록입니다.
시위가 일어나기 열이틀 전인 10월 4일, 국회는 야당 신민당 총재였던 김영삼 의원을 제명했습니다. 회의록을 보면 오후 네 시 팔 분에 회의를 비공개로 돌렸고, 십일 분 뒤 다시 공개하면서 제명으로 가결되었다고 선포합니다. 이어 열흘 동안 쉬기로 하고 회의를 마쳤습니다. 국회가 다시 열리기로 한 날이 10월 16일이었습니다.
한 달 뒤 국회에서 야당 대표는 그 제명을 「불법 날치기」라고 불렀고, 정부가 계엄령과 위수령으로 대응했다고 말했습니다. 한쪽이 한 말이지만 그 말도 기록으로 남았습니다.
생각해 보기 국가가 어떤 일의 기간과 장소를 정해 적는 일은 왜 중요할까요?
더 자세히 — 날짜가 맞물린다
색이 다른 대목은 자료에 적힌 문장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이 항쟁을 법이 어떻게 정의했는지에는 한 번의 수정이 있습니다. 그 수정이 무엇을 뜻하는지 먼저 봅니다.
2013년에 만든 법은 대상을 이렇게 적었습니다. 1979년 10월 16일부터 10월 20일까지 부산·마산 및 창원 등 경남 일원에서 유신체제에 대항하여 발생한 민주화운동.
닷새로 못 박은 것입니다. 2018년 개정본까지도 이 문구가 그대로였습니다.
그런데 2020년 6월 개정본부터 표현이 바뀝니다. 10월 20일까지를 전후하여가 되었습니다.
날짜를 정확히 자르면 그 하루 뒤에 일을 당한 사람은 대상에서 빠집니다. 「전후하여」라는 네 글자가 그 경계를 넓혔습니다.
그러면 그 닷새 전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국회 회의록에 남아 있습니다.
1979년 10월 4일 본회의입니다. 의사일정 제1항이 한 의원의 징계에 관한 건이고, 제목 옆에 일부비공개라고 적혀 있습니다.
회의 진행이 시각으로 남아 있습니다. 오전 열 시에 열기로 되어 있었는데 실제 개의는 오후 한 시 십팔 분입니다. 그리고 곧 장내 소란이라는 기록이 붙습니다.
한 시 십구 분에 법제사법위원회 회부를 가결하고, 오후 네 시 칠 분에 회의를 다시 엽니다. 그러고 나서 국회법 조항에 따라 이 회의를 비공개로 하겠다고 선포합니다.
비공개는 네 시 팔 분에 시작해 네 시 십구 분에 끝났습니다. 십일 분입니다.
다시 공개하며 결과를 선포합니다. 국회의원 김영삼 징계에 관한 건은 제명으로 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
이어서 한 가지를 더 의결합니다. 10월 6일부터 15일까지 열흘간 본회의를 휴회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네 시 이십일 분에 산회합니다.
여기서 날짜를 맞춰 봅니다. 제명은 10월 4일이고, 시위가 시작된 것은 10월 16일입니다. 그리고 열흘 휴회가 끝나 국회가 다시 열리기로 한 날이 바로 10월 16일입니다.
두 날짜가 맞물립니다.
다만 이 회의록이 말해 주는 것은 절차뿐입니다. 어디서 열렸는지, 야당 의원들이 그 자리에 있었는지는 이 문서로 확인되지 않습니다.
그 뒤의 일은 한 달쯤 뒤 국회에서 야당 대표가 한 연설에 나옵니다. 그는 불법 날치기로 제명 결의를 하기에 이르러 국민의 분노를 일으켰고, 그 분노가 마침내 부산 마산 시위 사태로 발전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정부가 계엄령과 위수령으로 대응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한쪽의 주장입니다. 야당 대표가 국회에서 한 연설이라는 점을 알고 읽어야 합니다. 그래도 그 말이 회의록에 남았다는 것 자체가 기록입니다.
법이 이 일을 다루는 방식도 봅니다. 제1조는 목적을 부마민주항쟁의 진상을 규명하고로 시작합니다. 무엇이 있었는지를 아직 밝혀야 한다는 뜻이 법 제목 다음 줄에 적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4조로 국무총리 소속의 위원회를 두었습니다. 마흔 해쯤 지난 뒤였습니다.
확인하지 못한 것 부산의 계엄 선포일과 마산·창원의 위수령 발동일을 관보나 정부 기록으로 확정하지 못했습니다. 시위가 시작된 경과, 붙잡혀 간 사람의 수, 위원회의 진상조사 결과보고서도 아직입니다.
「부마민주항쟁 관련자의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 제정본(2013)·개정본(2020)·현행본, 법제처 국가법령정보 · 국회 회의록 제103회 제2차 본회의(1979-10-04)와 제7차 본회의(1979-11-16), 국회회의록시스템
한눈에 보기
무슨 일이 있었나
유신체제에 반대하는 시위가 부산·마산에서 확산되었다.
왜 중요할까
권위주의 체제에 대한 시민 저항이 확대되었다.
핵심 키워드
- 부마민주항쟁
같은 시기, 다른 나라에서는
1979년 10월 언저리연대가 겹치는 사건입니다. 같은 때에 일어났다는 뜻이지, 서로 원인과 결과라는 뜻은 아닙니다. 누르면 그 사건의 상세페이지로 갑니다.
그때 다른 나라의 임금
1979년 10월같은 해에 다른 나라에서 자리에 있던 사람입니다. 나라마다 한 사람씩만 실었습니다. 왕조가 여럿 겹치던 나라는 왕조 연표에 나머지가 있습니다.
- 이란(페르시아)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1941~1979
- 일본 쇼와 천황(히로히토)1926~1989
- 태국 푸미폰 아둔야뎃1946~2016
- 에스파냐 후안 카를로스 1세1975~2014
- 영국 엘리자베스 2세1952~2022
- 베냉 왕국 에레디아우와1979~2016
- 아샨티 왕국 오포쿠 와레 2세1970~1999
- 통가 타우파하우 투포우 4세1965~2006
확인 문제
이 문제는 이 사건의 기록에 적힌 값으로 만든 것입니다. 답을 고르면 바로 알려 줍니다.
1.「부마민주항쟁」은 언제 일어난 일일까요?
2.「부마민주항쟁」이 일어난 곳은 어디일까요?
3.「부마민주항쟁」에 나오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4.「부마민주항쟁」과 관련된 나라(정치체)는 어디일까요?
5.「부마민주항쟁」은 「일본국 헌법 시행」보다 먼저 일어난 일이다.
참고자료
이 사건이 속한 시기와 주제를 다루는 자료입니다. 본문의 개별 문장을 어디에서 확인했는지는 아직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료가 둘이어도 교차 검증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앞의 글자는 자료 등급으로, A는 당대 사료와 공식 문서, B는 학술 연구와 국가기관 해설, C는 백과사전과 개론 교재를 뜻합니다.
- A한국사데이터베이스 · 국사편찬위원회 · current · public web service링크
- C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한국학중앙연구원 · current · public web service링크
- A「부마민주항쟁 관련자의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 2013년 제정본(법률 제11851호)과 2020년 개정본(법률 제17373호) ·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 2013·2020 · 공공 (저작권법 제7조)링크
- A제103회 국회 제2차 본회의 회의록 (1979년 10월 4일) · 대한민국국회사무처 / 국회회의록시스템 · 1979 · 공공누리링크
- B제103회 국회 제7차 본회의 회의록 (1979년 11월 16일) — 신민당 대표연설 · 대한민국국회사무처 / 국회회의록시스템 · 1979 · 공공누리링크
이 항목은 한국사 학술자료기반 핵심연표에서 정리된 연표를 옮긴 것입니다. 위 참고자료와는 역할이 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