랄리벨라 암굴 교회
Rock-hewn churches of Lalibela · 12~13세기
- 언제
- 12~13세기
- 어디서
- 랄리벨라
- 어느 나라
- 자그웨
- 무슨 사건
- 랄리벨라 암굴 교회
대략의 연대 — 정확한 해를 특정하기 어려워 대략의 시기로 표시합니다.
그때 자리에 있던 임금
- 에티오피아 게브레 메스켈 라리베라ገብረ መስቀል ላሊበላ (에티오피아 황제 3대 · 1172~1212)재위 연대에 이견이 있습니다
같은 지역의 여러 나라를 함께 보였습니다. 이 사건이 일어난 곳의 임금만이 아닙니다. 나라별 왕조 연표 보기
이야기로 읽는 역사 — 예루살렘에서 온 돌이 아니었다
건물은 보통 아래에서 위로 쌓습니다. 에티오피아 랄리벨라의 교회들은 반대입니다. 통바위를 위에서부터 파 내려가, 먼저 둘레를 네모지게 판 다음 가운데 남은 덩어리를 깎아 교회로 만들었습니다.
오늘 유네스코의 등재 설명은 이 교회들을 열한 채로 셉니다. 12세기 무렵 랄리벨라 왕이 지은 것으로 돌리되 확정된 연대는 아니고, 왜 지었는지도 함께 적습니다. 무슬림의 정복으로 성지로 가는 순례가 막히자 새 예루살렘을 세우려 했다는 것입니다.
같은 설명은 배치도 적어 둡니다. 교회들은 요르단이라 이름 붙인 개울을 사이에 두고 북쪽 무리와 남쪽 무리로 나뉘고, 성 게오르기우스의 집만 따로 떨어져 참호로 이어져 있습니다. 문과 창과 기둥과 바닥과 지붕을 모두 바위에서 깎아 냈고, 물을 빼는 도랑과 참호와 의례용 통로가 함께 짜여 있습니다.
이 교회들을 보고 글로 남긴 이른 사람이 있습니다. 1520년대에 포르투갈 사절단을 따라온 사제 알바르스입니다. 그는 이곳에 두 번 갔다고 적었습니다.
그가 본 것을 이렇게 적었습니다. 이만한 것들이, 그것도 이만큼 많이 있는 곳을 세상에서 찾을 수 없을 것 같다고요. 그런데 그는 아홉 교회의 이름을 하나하나 적었습니다. 오늘 세는 열한 채와 다릅니다. 어느 쪽이 맞는지 이 두 자료만으로는 정해지지 않으므로 둘 다 적어 둡니다.
골고다라는 교회는 치수까지 적어 두었습니다. 길이 백스무 뼘, 너비 일흔두 뼘. 천장이 다섯 개의 받침에 얹혀 있는데 주사위의 다섯 눈처럼 놓였고, 지붕은 바닥처럼 평평하다고 했습니다.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따로 있습니다. 그곳 성직자들이 그에게 이 교회를 지은 돌은 예루살렘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했습니다. 알바르스는 그 말을 그대로 적지 않고 산 위로 올라갔습니다. 꼭대기에서 오래된 채석장을 찾았습니다. 크게 파낸 자리와 돌조각들, 옛 쐐기 자국이 있었습니다. 그는 돌을 조금 떼어 살펴본 뒤 이렇게 적었습니다. 이것은 교회의 돌과 같은 돌이다. 돌은 여기서 가져온 것이고, 그들이 말한 대로 예루살렘에서 온 것이 아니다.
들은 말과 직접 확인한 것을 나누어 적은 것입니다. 오백 년 전 사람이 한 일이 오늘 역사를 다루는 방법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는 이름에 얽힌 이야기도 들은 대로 적은 뒤 이렇게 맺습니다. 더 쓰면 사람들이 믿지 않을 것 같아 그만 쓴다. 다만 여기 쓴 것이 모두 사실임을 하느님께 맹세한다.
생각해 보기 쌓아 올리는 건축과 깎아 내는 건축은 무엇이 다를까요?
더 자세히 — 돌을 깨어 보고 알았다
색이 다른 대목은 자료에 적힌 문장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이곳을 처음 글로 남긴 유럽인은 오백 해 전에 왔습니다. 그는 자기가 본 것을 이렇게 적었습니다. 이와 같은 것이, 그리고 이만큼 많은 것이 세상 어디에도 있을 것 같지 않다.
그가 본 것은 바위를 통째로 파내어 만든 교회들이며, 아주 잘 다듬어져 있었습니다. 그는 아홉 채의 이름을 들고, 그 가운데 으뜸은 랄리벨라라고 적었습니다.
그곳 사람들에게 들은 이야기도 적어 두었습니다. 이 랄리벨라는 바로 이 나라에서 여든 해 동안 왕이었다고 하며, 이 건물들을 만들라고 명한 것이 이 왕이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골고다 교회를 잰 값도 남겼습니다. 길이 백스무 뼘, 너비 일흔두 뼘. 기둥의 배치는 주사위의 오점 같다고 했고, 천장 또는 지붕이 바닥처럼 온통 평평하다고 적었습니다. 솜씨에 대해서는 은세공인도, 밀랍을 다루는 장인도 이보다 더한 일은 할 수 없을 것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이 기록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크기도 솜씨도 아닙니다. 그가 들은 말을 스스로 확인해 본 장면입니다.
참사원들은 나에게 그 돌이 예루살렘에서 왔다고 말했다고 적었습니다. 그는 그 말을 그대로 옮기고 끝내지 않았습니다. 나는 오래된 채석장을 찾아냈고, 거기에는 오래된 쐐기들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적습니다. 나는 그 돌을 몇 조각 깨어 내어 잘 살펴보았고, 그것이 같은 돌이며 그들이 나에게 말한 것처럼 예루살렘에서 온 것이 아님을 알았다.
들은 것과 확인한 것을 갈라 적은 것입니다. 오백 해 전의 여행기에 이미 이런 방식이 있었습니다.
이름에 얽힌 전승도 그는 「그렇게 전한다」는 형태로 남겼습니다. 랄리벨라라는 이 이름은 기적을 뜻한다는 것, 그가 태어났을 때 벌들이 그를 덮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는 왕의 아들이 아니라 왕의 누이의 아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곳으로 순례하는 사람이 많다고 적었습니다.
그는 글을 이렇게 맺습니다. 이 일들을 더 쓰기가 힘에 부쳤다. 그러면서 내가 그 권능 아래 있는 하느님께 맹세하건대, 여기 쓴 모든 것은 진실이다라고 덧붙였습니다.
한 가지 어긋나는 것이 있습니다. 알바르스는 아홉 채의 이름을 들었는데, 유네스코의 등재 설명은 중세의 단일 암체 교회 열한 채가 바위에서 깎여 나왔다고 적습니다. 요르단 강이라 부르는 물길의 북쪽에 다섯, 남쪽에 다섯이 있고, 열한 번째인 베테 기오르기스(성 게오르기우스의 집)는 다른 것들과 떨어져 있으나 도랑들로 이어져 있다고 했습니다.
어느 쪽이 맞다고 고르지 않고 둘 다 적어 둡니다. 세는 방식이 다를 수 있고, 오백 해 사이에 셈이 달라졌을 수도 있습니다.
만드는 방법도 등재 설명에 있습니다. 이 교회들은 전통적인 방식으로 지어진 것이 아니라 단일 암체의 살아 있는 바위에서 깎아 낸 것이며, 그 덩어리를 다시 끌로 파서 문과 창과 기둥과 여러 층의 바닥과 지붕을 만들었습니다. 여기에 배수 도랑과 참호와 의례용 통로의 방대한 체계가 더해졌고, 그 가운데 일부는 은수자의 굴과 지하 묘실로 이어집니다.
건립 연대와 까닭은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12세기에 「새 예루살렘」을 지으려 했던 랄리벨라 왕에게 돌려지는데, 이슬람의 정복으로 성지 순례가 막힌 뒤의 일이다.
다만 이 문장 안에도 「돌려진다」는 말이 들어 있습니다. 확정된 연대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확인하지 못한 것 건립 연대의 고고학적 근거는 아직 없습니다. 유네스코 설명도 랄리벨라 왕에게 「돌린다(attributed)」고만 적습니다.
Francisco Álvares, 『Narrative of the Portuguese Embassy to Abyssinia during the years 1520–1527』 제53~54장, Hakluyt Society 영역본(1881), archive.org 전문 · 유네스코 세계유산 「랄리벨라의 암굴 교회군」(등재번호 18) 설명, Wayback Machine 사본
한눈에 보기
무슨 일이 있었나
바위를 위에서 아래로 깎아 내려 교회를 만들었다.
왜 중요할까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며 지금도 예배가 이어진다.
핵심 키워드
- 랄리벨라
- 암굴
같은 시기, 다른 나라에서는
12~13세기 언저리연대가 겹치는 사건입니다. 같은 때에 일어났다는 뜻이지, 서로 원인과 결과라는 뜻은 아닙니다. 누르면 그 사건의 상세페이지로 갑니다.
그때 다른 나라의 임금
12~13세기같은 해에 다른 나라에서 자리에 있던 사람입니다. 나라마다 한 사람씩만 실었습니다. 왕조가 여럿 겹치던 나라는 왕조 연표에 나머지가 있습니다.
- 이슬람권 이즈 알딘 키리치 아르스란 2세1156~1192
- 일본 다카쿠라 천황1168~1180
- 중국 세종1161~1189
- 한국 명종1170년~1197년
- 비잔티움 제국 마누일 1세 콤니노스1143~1180
- 신성로마제국 프리드리히 1세1155~1190
- 영국 헨리 2세1154~1189
- 포르투갈 아폰수 1세1139~1185
- 프랑스 루이 7세1137~1180
확인 문제
이 문제는 이 사건의 기록에 적힌 값으로 만든 것입니다. 답을 고르면 바로 알려 줍니다.
1.「랄리벨라 암굴 교회」는 언제 일어난 일일까요?
2.「랄리벨라 암굴 교회」가 일어난 곳은 어디일까요?
3.「랄리벨라 암굴 교회」는 「구석기 문화 전개」보다 나중에 일어난 일이다.
4.「랄리벨라 암굴 교회」와 관련된 나라(정치체)는 어디일까요?
5.「랄리벨라 암굴 교회」는 어느 지역의 역사일까요?
참고자료
이 사건이 속한 시기와 주제를 다루는 자료입니다. 본문의 개별 문장을 어디에서 확인했는지는 아직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료가 둘이어도 교차 검증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앞의 글자는 자료 등급으로, A는 당대 사료와 공식 문서, B는 학술 연구와 국가기관 해설, C는 백과사전과 개론 교재를 뜻합니다.
- BUNESCO World Heritage Centre · UNESCO · current · site terms링크
- BHeilbrunn Timeline of Art History ·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 current · site terms링크
- A프란시스쿠 알바르스, 『Narrative of the Portuguese Embassy to Abyssinia during the years 1520–1527』 제53장 — 랄리벨라 암굴 교회를 직접 보고 적은 대목 · Hakluyt Society 영역본(1881), archive.org 전문 (narrativeofportu00alvarich) · 1520년대 견문 / 1881년 영역본 · public domain링크
- B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설명 — 랄리벨라의 암굴 교회군(18), 보로부두르 사원군(592), 프람바난 사원군(642) · UNESCO World Heritage Centre (Wayback Machine 경유) · 등재 설명(현행) · 공개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