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의 말라카 점령
Portuguese conquest of Malacca · 1511년
- 언제
- 1511년
- 어디서
- 말라카
- 어느 나라
- 포르투갈·말라카
- 누가
- 아폰수 드 알부케르크
- 무슨 사건
- 포르투갈의 말라카 점령
연도가 특정된 연대
그때 자리에 있던 임금
- 몽골·투르크 초원 제국 다얀 칸 (북원 대칸 11대 · 1480~1517)
- 미얀마 밍지뇨 (미얀마(버마) 국왕 3대 · 1510~1530)
- 오스만 제국 바예지드 2세 (오스만 제국 술탄 8대 · 1481~1512)
- 이란(페르시아) 이스마일 1세 (사파비 왕조 1대 · 1501~1524)
- 이슬람권 칸수흐 알가우리Qansuh al-Ghawri (맘루크 왕조(부르지) 25대 · 1501~1517) / 알무타와킬 3세al-Mutawakkil III (1st reign) (아바스 왕조(카이로) 20대 · 1508~1516)재위 연대에 이견이 있습니다
- 인도 시칸다르 칸 로디سکندر لودی (델리 술탄국 20대 · 1489~1517)재위 연대에 이견이 있습니다
- 일본 아시카가 요시타네 (무로마치(아시카가) 막부 쇼군 10대 · 1490~1493, 1508~1522) / 고카시와바라 천황 (천황(天皇) 104대 · 1500~1526)
- 캄보디아 담카트 소콘토르ឝ្រីឝៅគន្ធបទ (캄보디아 국왕 63대 · 1504~1512) / 스다치 코르느ស្រីជេដ្ឋា (캄보디아 국왕 64대 · 1504~1512)재위 연대에 이견이 있습니다
- 태국 라마티보디 2세สมเด็จพระรามาธิบดีที่ 2 (태국(시암) 국왕 12대 · 1491~1529)재위 연대에 이견이 있습니다
같은 지역의 여러 나라를 함께 보였습니다. 이 사건이 일어난 곳의 임금만이 아닙니다. 나라별 왕조 연표 보기
이야기로 읽는 역사 — 배는 몇 척이었나
1511년 7월 초, 포르투갈의 아폰수 드 알부케르크가 함대를 이끌고 말라카 앞바다에 닿았습니다.
그런데 배가 몇 척이었고 사람이 몇이었는지는 기록마다 다릅니다. 그 무렵 말라카에 있던 토메 피르스는 배 열다섯 척에 싸울 사람이 천육백 명쯤이라고 적었습니다. 다른 연대기들은 열일곱 척, 열여덟 척, 열아홉 척이라고 적었습니다.
알부케르크 본인은 이 년 뒤 편지에 이렇게 썼습니다. 우리는 모두 백인 칠백 명과 말라바르 사람 삼백 명이었다고요. 같은 일을 두고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끼리도 수가 이렇게 갈립니다. 옛 기록의 수를 읽을 때 조심해야 하는 까닭입니다. 말라카 쪽 기록도 남아 있습니다. 『말레이 연대기』는 알부케르크가 배 마흔세 척을 이끌고 왔다고 적습니다. 그 앞의 다른 공격을 적은 대목은 이렇습니다. 대포 소리를 처음 들은 사람들이 천둥 같은 이 소리가 무엇이냐고 물었고, 둥글고 날카롭지도 않은데 사람을 죽이는 이 무기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했다는 것입니다.
말라카 쪽 병력에 대해서도 피르스는 십만 명이라고 적으면서 "그렇게들 말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성책이 여러 겹이었고 바다에는 배들이 늘어서 있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있었는데 왜 도시가 무너졌을까요. 피르스가 붙인 설명이 흥미롭습니다. 그 사람들이 왕을 받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여러 나라 사람이 섞여 사는 교역 도시에서는 한 핏줄로만 살아온 곳처럼 왕을 사랑하기 어렵다고 그는 적었습니다.
알부케르크는 며칠 동안 평화를 청하는 전갈을 보냈습니다. 그 사이에 붙잡혀 있던 포르투갈 사람들을 돌려받았습니다. 그러나 협상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사람들을 이끌고 상륙해 도시를 차지했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배로 돌아갔고 왕을 해치지 못하게 했습니다. 왕이 뜻을 굽히는지 보려던 것입니다. 왕은 굽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상륙해 도시를 차지하고 그대로 눌러앉았습니다. 말라카의 왕은 딸들과 사위들을 데리고 달아났습니다.
피르스는 이 대목에 이어 도시가 다시 상인들로 차오르고 있다고 적었습니다. 무엇을 적고 무엇을 적지 않았는지 함께 보아야 합니다. 이 기록은 그 도시를 빼앗은 쪽 사람이 남긴 것입니다.
생각해 보기 길목 하나를 차지하면 전체를 지배할 수 있을까요?
더 자세히 — 같은 함대를 두고 센 수가 다르다
색이 다른 대목은 자료에 적힌 문장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같은 함대가 왔는데, 그 함대의 크기를 적은 수가 기록마다 다릅니다. 몇 척이었는지를 정하기 전에 그 차이 자체를 보아 두는 편이 낫습니다.
점령한 쪽의 한 기록은 이렇게 적었습니다. 아폰수 드 알부케르크가 1511년 7월 초에 크고 작은 배 열다섯 척을 이끌고 말라카에 도착했으며, 거기에 싸울 사람 천육백 명쯤이 타고 있었다.
그런데 같은 책의 역주가 다른 기록들을 나란히 늘어놓습니다. 알부케르크 본인이 이듬해에 쓴 편지는 열일곱 척, 다른 기록은 열여덟 척, 또 다른 둘은 열아홉 척에 천사백 명이라 적습니다. 어떤 기록은 열여덟 척에 육백 명쯤이라 하고, 또 어떤 기록은 열여덟 척에 팔백 명과 이백 명이라 합니다.
그리고 알부케르크가 1513년에 쓴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백인 칠백 명과 말라바르인 삼백 명.
한 사람이 두 해 사이에 다르게 적었습니다.
그런데 받은 쪽의 기록을 열면 수가 또 달라집니다. 그 연대기는 알부케르크가 본국에서 받은 배와 고아에서 갖춘 배를 하나씩 세고 나서 이렇게 적습니다. 모두 마흔세 척이었으며, 말라카로 나아갔다.
열다섯에서 마흔셋 사이입니다. 오는 쪽이 센 수와 받는 쪽이 센 수가 이만큼 다릅니다. 어느 하나를 진짜라고 고르기보다, 밀려오는 것을 바라보던 쪽에는 그것이 마흔세 척으로 보였다는 사실까지가 기록입니다.
그 연대기에는 다른 기록에서 결코 볼 수 없는 대목이 있습니다. 처음 대포 소리를 들은 사람들의 말입니다.
포르투갈 함대가 포를 쏘기 시작하자 말라카의 모든 사람이 그 소리를 듣고 겁에 질려 말했습니다. 「천둥 같은 이 소리는 무엇인가?」
그리고 포탄이 날아와 사람들을 맞혔습니다. 공포가 점점 커지는 가운데 그들이 한 말이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이렇게 둥근 이 무기의 이름은 무엇인가? 날카롭지도 않은데 사람을 죽인다.」
그 무기를 아는 쪽의 기록에는 결코 남지 않을 문장입니다. 처음 보는 것을 처음 보는 사람의 말로 적어 둔 것입니다.
같은 연대기에는 그 첫 싸움의 결과도 있습니다. 이튿날 상륙한 포르투갈 쪽을 한 지휘관이 아목이라는 방식으로 공격을 시작해 물리쳤고, 그들은 배로 돌아가 떠났습니다.
첫 번째는 막아 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함락은 그 뒤의 일입니다.
점령한 쪽의 기록에는 왜 그 도시가 무너졌는지에 대한 설명도 있습니다. 그 사람은 이렇게 적었습니다. 여러 나라 사람들이 섞여 사는 교역의 땅에서는 사람들이 자기 왕을 사랑할 수 없다.
이것은 관찰이기도 하고 변명이기도 합니다. 그 도시가 무엇으로 번성했는지를 그대로 뒤집어 적은 셈입니다.
그리고 같은 기록의 끝에는 다른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도시가 다시 상인들로 차오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주인이 바뀌어도 배는 다시 들어왔습니다.
확인하지 못한 것 함락 뒤 그곳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말레이 연대기』가 적는 술탄의 피신 이후는 아직 다 읽지 못했습니다.
토메 피르스 『Suma Oriental』(Hakluyt Society 1944 역주본)의 말라카 대목과 그 역주, archive.org · 『말레이 연대기』(*Sejarah Melayu*), John Leyden 영역(1821), archive.org 전문
한눈에 보기
무슨 일이 있었나
포르투갈이 말라카를 점령해 향신료 무역의 거점을 확보했다.
왜 중요할까
유럽 해양 팽창이 동남아 기존 교역망과 충돌한 대표 사례다.
핵심 키워드
- 포르투갈
- 말라카
- 향신료 무역
같은 시기, 다른 나라에서는
1511년 언저리연대가 겹치는 사건입니다. 같은 때에 일어났다는 뜻이지, 서로 원인과 결과라는 뜻은 아닙니다. 누르면 그 사건의 상세페이지로 갑니다.
그때 다른 나라의 임금
1511년같은 해에 다른 나라에서 자리에 있던 사람입니다. 나라마다 한 사람씩만 실었습니다. 왕조가 여럿 겹치던 나라는 왕조 연표에 나머지가 있습니다.
- 중국 정덕제1505~1521
- 한국 중종1506년~1544년
- 신성로마제국 막시밀리안 1세1508~1519
- 에스파냐 페르난도 2세(아라곤)1479~1516
- 영국 제임스 4세1488~1513
- 포르투갈 마누엘 1세1495~1521
- 프랑스 루이 12세1498~1515
- 모로코 아부 아브드 아라흐 알부르투카리 무하마드 이브느 무하마드1504~1526
- 베냉 왕국 오조루아1483~1514
- 에티오피아 레브나 데엘1508~1540
- 아스테카 몬테수마 2세1502~1520
- 잉카 우아이나 카팍1493~1527
확인 문제
이 문제는 이 사건의 기록에 적힌 값으로 만든 것입니다. 답을 고르면 바로 알려 줍니다.
1.「포르투갈의 말라카 점령」은 언제 일어난 일일까요?
2.「포르투갈의 말라카 점령」이 일어난 곳은 어디일까요?
3.「포르투갈의 말라카 점령」은 「이탈리아·독일의 통일」보다 나중에 일어난 일이다.
4.「포르투갈의 말라카 점령」에 나오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5.「포르투갈의 말라카 점령」과 관련된 나라(정치체)는 어디일까요?
참고자료
이 사건이 속한 시기와 주제를 다루는 자료입니다. 본문의 개별 문장을 어디에서 확인했는지는 아직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료가 둘이어도 교차 검증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앞의 글자는 자료 등급으로, A는 당대 사료와 공식 문서, B는 학술 연구와 국가기관 해설, C는 백과사전과 개론 교재를 뜻합니다.
- CWorld History, Volume 2: from 1400 · OpenStax / Rice University · 2022 · CC BY-NC-SA 4.0링크
- CWorld History Since 1500: An Open and Free Textbook · East Tennessee State University · 2022 · CC BY 4.0; images separate링크
- B토메 피르스, 『Suma Oriental』 — 말라카 편 (1512~1515년 집필, Armando Cortesão 역주, Hakluyt Society 1944) · archive.org 스캔 텍스트 (McGill Library) · 1512~1515 / 1944 영역 · public domain링크
- CMalay Annals (Sejarah Melayu) — John Leyden 영역, Raffles 서문 · tr. John Leyden; London: Longman, Hurst, Rees, Orme, and Brown · 1821 · 공개(퍼블릭 도메인)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