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사유 조약
Treaty of Versailles · 1919년
- 언제
- 1919년
- 어디서
- 파리
- 어느 나라
- 여러 나라
- 무슨 사건
- 베르사유 조약
연도가 특정된 연대
그때 자리에 있던 임금
- 에스파냐 알폰소 13세 (에스파냐 국왕 · 부르봉 왕조 이후 11대 · 1886~1931)
- 영국 조지 5세 (윈저(그 앞은 작센코부르크고타) 왕가 2대 · 1910~1936)
같은 지역의 여러 나라를 함께 보였습니다. 이 사건이 일어난 곳의 임금만이 아닙니다. 나라별 왕조 연표 보기
이야기로 읽는 역사 — 끝내면서 다음을 남기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19년 파리에서 조약이 맺어졌습니다. 회의를 이끈 것은 영국, 프랑스, 미국, 이탈리아였습니다. 사람들은 이들을 빅 4라고 불렀습니다. 진 나라들은 회의에 부르지 않았습니다.
이긴 나라들 사이에서도 생각이 달랐습니다. 미국 대통령은 보복하지 않는 평화를 말했습니다. 프랑스는 자기 땅이 싸움터가 되었으니 독일이 다시 일어서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가장 많이 이야기되는 것은 제231조입니다. 독일과 그 동맹국의 침략으로 강요된 전쟁 때문에 생긴 모든 손해와 피해에 대한 책임을 독일이 받아들인다는 조문입니다.
그런데 배상금 액수는 조약에 적혀 있지 않습니다. 제232조는 독일의 힘으로 피해를 다 갚을 수 없다는 것을 이긴 나라들도 인정한다고 적었습니다. 제233조는 액수를 배상위원회가 정해 1921년 5월 1일까지 알리도록 했습니다. 흔히 말하는 금 마르크 1,320억은 그 위원회가 뒤에 정한 액수입니다.
군대에 관한 조항은 촘촘했습니다. 독일 육군은 장교를 포함해 십만 명을 넘을 수 없고, 국경을 지키고 안을 다스리는 일에만 쓰도록 했습니다. 군용 비행기와 해군 비행기는 아예 둘 수 없습니다. 라인강 둘레에는 요새를 두거나 군대를 모을 수 없습니다.
땅도 바뀌었습니다. 1871년에 독일로 넘어갔던 알자스와 로렌은 휴전일로 거슬러 올라가 프랑스에 돌아갔습니다. 독일은 오스트리아의 독립을 존중하기로 했고, 그 독립은 국제연맹 이사회가 동의하지 않으면 바꿀 수 없다고 적었습니다.
이십 년 뒤 다시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이 조약이 다음 전쟁을 불렀다는 설명이 오래 이어졌습니다. 다만 한 줄로 잇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그 사이에는 대공황도 있었고 여러 나라의 선택도 있었습니다. 전쟁을 끝내는 방식이 다음 시대를 만든다는 점은 남습니다.
생각해 보기 진 쪽에 책임을 무겁게 물으면 어떤 결과가 생길 수 있을까요?
더 자세히 — 조약에 없는 숫자
색이 다른 대목은 자료에 적힌 문장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이 조약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것이 제231조입니다. 흔히 「전쟁 책임 조항」이라 부릅니다. 그런데 조문을 그대로 읽으면 흔한 요약과 조금 다릅니다.
연합국 및 협력국 정부는, 독일과 그 동맹국의 침략으로 그들에게 강요된 전쟁의 결과로 연합국 및 협력국 정부와 그 국민이 입은 모든 손실과 피해를 일으킨 데 대한 독일과 그 동맹국의 책임을 확인하며, 독일은 이를 받아들인다.
여기서 갈라 볼 것이 있습니다. 조문은 「전쟁을 일으킨 죄」라고 쓰지 않았습니다. 「손실과 피해를 일으킨 책임」이라고 썼습니다. 그런데 그 전쟁을 부를 때는 독일과 그 동맹국의 침략으로 강요된 전쟁이라고 했습니다.
한 문장 안에 두 가지가 함께 들어 있는 셈이고, 뒷날 해석이 갈린 자리가 바로 여기입니다.
배상금은 흔히 「금 마르크 천삼백이십억」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 숫자는 조약에 없습니다.
제233조가 정한 것은 액수가 아니라 절차입니다. 그 금액은 배상위원회라 부를 연합국 간 위원회가 결정하며, 그 결정은 1921년 5월 1일까지 독일 정부에 통보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조약을 맺을 때는 얼마인지 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앞의 제232조에는 이긴 나라들이 스스로 인정한 문장이 있습니다. 연합국 및 협력국 정부는 독일의 자원이 그러한 모든 손실과 피해를 온전히 배상하기에 충분하지 않음을 인정한다.
다 갚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 갚으라고 적은 것입니다.
군대에 관한 조항은 수를 명시합니다. 1920년 3월 말까지 정해진 사단을 두되, 그 뒤로는 장교를 포함해 십만 명을 넘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 군대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도 정했습니다. 육군은 오로지 영토 안의 질서 유지와 국경 통제에만 쓰인다.
그리고 아예 갖지 못하게 한 것도 있습니다. 독일의 군대는 어떤 육군 항공대나 해군 항공대도 포함해서는 안 된다.
땅에 관한 조항 가운데 하나는 라인강 일대입니다. 왼쪽 기슭과 오른쪽 기슭 오십 킬로미터 안에 요새를 두거나 군대를 유지하거나 모으는 것을 금지했습니다. 자기 나라 안인데 군대를 둘 수 없는 지역이 생긴 것입니다.
알자스·로렌에 관한 조문은 날짜를 특이하게 잡았습니다. 1871년에 넘어간 땅이 1918년 11월 11일 휴전일부로 프랑스 주권에 회복된다고 했습니다. 조약이 발효되는 날이 아니라 총성이 멎은 날로 소급한 것입니다.
제80조에는 다른 나라에 관한 조항이 있습니다. 독일은 오스트리아의 독립을 인정하고 엄격히 존중한다고 하고, 그 독립은 국제연맹 이사회의 동의가 없는 한 양도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두 나라가 합치는 것을 미리 막아 둔 조항입니다.
회의를 이끈 것은 네 나라였습니다. 영국·프랑스·미국·이탈리아를 「빅 4」라 불렀고, 이들이 진행을 주도했습니다. 그리고 진 나라들, 곧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와 튀르키예와 불가리아는 회의에서 배제되었습니다.
자기 나라에 관한 조문이 만들어지는 자리에 그 나라 사람이 없었습니다.
확인하지 못한 것 독일 안에서 이 조약을 강요된 것이라 부른 일과 그 뒤의 정치적 파장은 조약 원문 밖입니다.
베르사유 조약 원문, Avalon Project(Yale Law School) — 제42·43조, 제51조, 제80조, 제160조, 제198조, 제231~233조 · 미 국무부 역사관실 「The Paris Peace Conference and the Treaty of Versialles」
한눈에 보기
무슨 일이 있었나
제1차 세계대전을 끝내며 독일에 전쟁 책임과 배상금을 지웠다.
왜 중요할까
불만이 쌓여 다음 전쟁의 배경이 되었다는 평가가 오래 이어졌다.
핵심 키워드
- 베르사유 조약
- 배상
같은 시기, 다른 나라에서는
1919년 언저리연대가 겹치는 사건입니다. 같은 때에 일어났다는 뜻이지, 서로 원인과 결과라는 뜻은 아닙니다. 누르면 그 사건의 상세페이지로 갑니다.
그때 다른 나라의 임금
1919년같은 해에 다른 나라에서 자리에 있던 사람입니다. 나라마다 한 사람씩만 실었습니다. 왕조가 여럿 겹치던 나라는 왕조 연표에 나머지가 있습니다.
- 몽골·투르크 초원 제국 복드 칸1911~1924
- 오스만 제국 메흐메트 6세1918~1922
- 이란(페르시아) 아흐마드 샤1909~1924
- 이슬람권 아흐마드 푸아드 1세1917~1936
- 인도네시아 하멩쿠부워노 7세1877~1921
- 일본 다이쇼 천황1912~1926
- 태국 와치라웃1910~1925
- 모로코 모로크코의 유세프1912~1927
- 베냉 왕국 에웨카 2세1914~1933
- 아샨티 왕국 프렘페흐 1세1888~1931
- 에티오피아 자우디투1916~1930
- 통가 살로테 투포우 3세1918~1965
확인 문제
이 문제는 이 사건의 기록에 적힌 값으로 만든 것입니다. 답을 고르면 바로 알려 줍니다.
1.「베르사유 조약」은 「제헌국회 선거」보다 먼저 일어난 일이다.
2.「베르사유 조약」은 언제 일어난 일일까요?
3.「베르사유 조약」이 일어난 곳은 어디일까요?
4.「베르사유 조약」과 관련된 나라(정치체)는 어디일까요?
5.「베르사유 조약」은 어느 지역의 역사일까요?
참고자료
이 사건이 속한 시기와 주제를 다루는 자료입니다. 본문의 개별 문장을 어디에서 확인했는지는 아직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료가 둘이어도 교차 검증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앞의 글자는 자료 등급으로, A는 당대 사료와 공식 문서, B는 학술 연구와 국가기관 해설, C는 백과사전과 개론 교재를 뜻합니다.
- CWorld History, Volume 2: from 1400 · OpenStax / Rice University · 2022 · CC BY-NC-SA 4.0링크
- CWorld History Since 1500: An Open and Free Textbook · East Tennessee State University · 2022 · CC BY 4.0; images separate링크
- AMilestones 1914-1920: The Paris Peace Conference and the Treaty of Versailles · Office of the Historian, U.S. Department of State · public domain (US Gov)링크
- ATreaty of Peace with Germany (Treaty of Versailles), 1919 — Part III, Part V, Part VIII · Avalon Project, Yale Law School · 1919 · Avalon Project 공개 텍스트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