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노사의 굴욕
Walk to Canossa · 1077년 1월
- 언제
- 1077년 1월
- 어디서
- 카노사
- 어느 나라
- 신성로마제국·교황청
- 누가
- 하인리히 4세, 그레고리우스 7세, 토스카나의 마틸데
- 무슨 사건
- 카노사의 굴욕
연도가 특정된 연대
그때 자리에 있던 임금
- 비잔티움 제국 미하일 7세 두카스 (비잔티움 · 중기 21대 · 1071~1078)
- 영국 말 콜룸 막 돈카다 (스코틀랜드 군주 21대 · 1058~1093) / 윌리엄 1세 (노르만 왕가 2대 · 1066~1087) / 트라하이아르느 아프 카라독Trahaearn ap Caradog (그위네드(웨일스) 왕 33대 · 1075~1081)재위 연대에 이견이 있습니다
- 프랑스 필리프 1세 (카페 왕조 · 프랑스 왕국 4대 · 1060~1108)
같은 지역의 여러 나라를 함께 보였습니다. 이 사건이 일어난 곳의 임금만이 아닙니다. 나라별 왕조 연표 보기
이야기로 읽는 역사 — 눈밭에서 사흘을 기다리다
11세기, 교회와 왕 사이에 다툼이 있었습니다. 주교와 수도원장을 누가 세울 것인가를 두고서였습니다.
교황 쪽이 내린 결정문에 그 다툼이 무엇이었는지 그대로 적혀 있습니다. 성직자는 누구도 황제나 왕이나 그 밖의 어떤 속인의 손에서, 남자든 여자든, 주교좌나 수도원이나 교회를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어기면 파문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왕도 가만있지 않았습니다. 1076년 1월 24일 하인리히 4세가 보낸 편지는 첫 줄부터 이렇습니다. 찬탈이 아니라 하느님의 거룩한 임명으로 왕이 된 하인리히가, 지금은 교황이 아니라 거짓 수도사인 힐데브란트에게. 그는 이렇게 따집니다. 마치 우리가 왕국을 그대에게서 받은 것처럼 구는구나, 마치 왕국과 제국이 하느님이 아니라 그대의 손에 있는 것처럼. 편지는 이 말로 끝납니다. 내려오라, 내려오라.
교황은 왕을 파문했습니다. 교회에서 내쫓았다는 뜻입니다. 그러자 왕을 따르던 제후들이 흔들렸습니다. 1077년 겨울, 왕이 알프스를 넘어 교황이 머물던 카노사 성으로 갔습니다.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교황 자신이 독일 제후들에게 보낸 편지에 적어 두었습니다. 그는 마침내 제 발로, 몇 사람만 데리고, 적의도 대담함도 보이지 않은 채 우리가 머물던 카노사로 왔다. 그리고 왕의 표시를 모두 벗어 두고, 비참하게, 맨발로 모직 옷만 걸친 채, 사흘 동안 성문 앞에 서 있었다.
교황은 그다음에 이런 말도 적었습니다. 그가 눈물로 자비를 구하기를 그치지 않아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가엾게 여겼고, 사람들이 우리 마음이 유난히 굳다고 놀랐으며, 어떤 이들은 이것이 사도의 엄정함이 아니라 폭군 같은 잔인함이라고 소리쳤다고요.
같은 편지 끝에 교황은 이렇게 못을 박습니다. 우리가 왕에게 매인 것은 아무것도 없고, 다만 말로만 그를 도울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을 뿐이라고요. 용서는 했지만 다툼은 끝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세 해 뒤 교황은 그를 다시 파문했고, 이번에는 독일 쪽이 교황을 물러나라고 선언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읽을 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카노사의 장면은 이긴 쪽이 자기 편에게 보낸 편지에 적힌 것입니다. 그래서 그 안에는 자기가 너무 매정해 보였다는 변명까지 함께 들어 있습니다.
생각해 보기 무릎을 꿇는 것이 지는 일이 아닐 수도 있을까요?
더 자세히 — 이긴 쪽이 자기 편에게 쓴 편지
색이 다른 대목은 자료에 적힌 문장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다툼의 처음은 한 가지 금지였습니다. 교회의 결정문은 여러 곳에서 교회에 대한 서임이 세속인의 손으로 행해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며, 성직자는 누구도 황제나 왕이나 그 밖의 어떤 세속인의 손에서 주교구나 수도원이나 교회의 서임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정했습니다. 어기면 합당한 보상이 이루어질 때까지 파문 아래 놓인다고 했습니다.
왕 쪽의 답이 남아 있습니다. 1076년 1월 24일자 편지인데, 첫 줄부터 상대의 이름을 다르게 부릅니다. 찬탈이 아니라 하느님의 거룩한 임명으로 왕이 된 하인리히가, 지금은 교황이 아니라 거짓 수도사인 힐데브란트에게.
가운데 대목이 이 다툼의 축을 보여 줍니다. 마치 우리가 그대에게서 왕국을 받기라도 한 것처럼! 마치 왕국과 제국이 하느님의 손이 아니라 그대의 손에 있기라도 한 것처럼!
맺음은 이렇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왕이 된 나 하인리히는 우리의 모든 주교와 더불어 그대에게 말한다. 내려오라, 내려오라, 영원히 저주받을지어다.
같은 날 스물여섯 명의 주교가 연서한 편지도 함께 실려 있습니다. 마인츠·트리어·위트레흐트·메츠까지 이름이 다 적혀 있습니다. 처음에는 왕 쪽에 사람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듬해 겨울의 그 장면입니다. 우리가 이 일을 아는 것은 목격자의 일기가 아니라 교황이 독일 제후들에게 보낸 편지 때문입니다.
편지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그는 마침내 스스로, 몇 사람만 데리고, 적대나 대담함의 기색을 조금도 보이지 않은 채, 우리가 머물던 카노사 마을로 왔다. 그리고 그곳에서 왕의 표지를 모두 벗어 놓고, 비참하게, 맨발로 모직 옷을 걸친 채, 사흘 동안 성문 앞에 서 있기를 계속했다.
그런데 편지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한 문장을 더 씁니다. 참으로 모두가 우리 마음의 낯선 완고함에 놀랐으며, 어떤 이들은 우리가 사도적 엄정함의 무게가 아니라 이를테면 폭군의 잔혹함을 부리고 있다고 소리치기까지 했다.
이긴 쪽이 자기 편에게 보낸 편지 안에, 자기가 너무했다는 말이 돌았다는 대목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 말을 자기가 옮겨 적었다는 사실까지가 이 사료입니다.
편지 끝에는 날짜와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브레멘 대주교, 베르첼리와 오스나브뤼크 주교, 클뤼니 수도원장이 함께 있었습니다.
이 일로 다툼이 끝났다고 흔히 정리합니다. 그런데 같은 사료집의 차례만 넘겨 보아도 그렇지 않습니다. 1080년 3월 7일에 두 번째 파문과 폐위 선언이 있고, 넉 달 뒤인 6월 25일 브릭센 공의회에서는 반대쪽이 교황을 물러나라고 선언합니다.
용서받은 지 세 해 만입니다.
확인하지 못한 것 1122년 보름스 협약의 내용은 같은 사료집에 실려 있으나 아직 읽지 못했습니다. 헨더슨이 문서마다 앞에 붙인 해설은 1890년대 편자의 견해라 쓰지 않았습니다.
E. F. Henderson 편, *Select Historical Documents of the Middle Ages*(1896), archive.org 전문 — 「서임권 전쟁 관련 문서(1075~1122)」의 서임 금지령, 하인리히 4세의 답신(1076-01-24), 그레고리우스 7세가 독일 제후들에게 보낸 편지(1077-01-28), 두 번째 파문(1080-03-07)과 브릭센 공의회 결정(1080-06-25)
한눈에 보기
무슨 일이 있었나
파문당한 황제 하인리히 4세가 카노사에서 교황의 사면을 구했다. 서임권 분쟁의 한 장면이다.
왜 중요할까
중세의 교황권과 황제권이 협상과 상징정치로 경쟁한 방식을 보여 준다.
핵심 키워드
- 카노사의 굴욕
- 서임권 투쟁
같은 시기, 다른 나라에서는
1077년 1월 언저리연대가 겹치는 사건입니다. 같은 때에 일어났다는 뜻이지, 서로 원인과 결과라는 뜻은 아닙니다. 누르면 그 사건의 상세페이지로 갑니다.
그때 다른 나라의 임금
1077년 1월같은 해에 다른 나라에서 자리에 있던 사람입니다. 나라마다 한 사람씩만 실었습니다. 왕조가 여럿 겹치던 나라는 왕조 연표에 나머지가 있습니다.
- 미얀마 아나우라흐타1044~1077
- 이슬람권 알무스탄시르1036~1094
- 일본 시라카와 천황1073~1087
- 중국 도종1055~1101
- 캄보디아 하르샤바르만 3세1066~1080
- 한국 문종1046년~1083년
확인 문제
이 문제는 이 사건의 기록에 적힌 값으로 만든 것입니다. 답을 고르면 바로 알려 줍니다.
1.「카노사의 굴욕」은 언제 일어난 일일까요?
2.「카노사의 굴욕」이 일어난 곳은 어디일까요?
3.「카노사의 굴욕」에 나오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4.「카노사의 굴욕」은 「이스라엘 건국과 제1차 중동전쟁」보다 먼저 일어난 일이다.
5.「카노사의 굴욕」과 관련된 나라(정치체)는 어디일까요?
참고자료
이 사건이 속한 시기와 주제를 다루는 자료입니다. 본문의 개별 문장을 어디에서 확인했는지는 아직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료가 둘이어도 교차 검증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앞의 글자는 자료 등급으로, A는 당대 사료와 공식 문서, B는 학술 연구와 국가기관 해설, C는 백과사전과 개론 교재를 뜻합니다.
- CWorld History, Volume 1: to 1500 · OpenStax / Rice University · 2023 · CC BY-NC-SA 4.0링크
- CWorld History, Volume 2: from 1400 · OpenStax / Rice University · 2022 · CC BY-NC-SA 4.0링크
- B그레고리우스 7세가 독일 제후들에게 보낸 편지 — 하인리히 4세의 카노사 참회에 관하여 (1077년 1월 28일) · archive.org 스캔 텍스트 (E. F. Henderson, *Select Historical Documents of the Middle Ages*, 1896, No.11) · 1077 / 1896 영역 · public domain링크
- AHenderson, Select Historical Documents of the Middle Ages — 서임권 투쟁 문서군(Book IV No.II) · archive.org (London: George Bell & Sons) · 1892/1905 · 퍼블릭 도메인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