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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제외 아시아W0669

술레이만 1세 시기

Reign of Suleiman the Magnificent · 1520~1566년

언제
1520~1566년
어디서
이스탄불
어느 나라
오스만
누가
술레이만 1세, 오지에 기슬랭 드 부스베크
무슨 사건
술레이만 1세 시기

연도가 특정된 연대

그때 자리에 있던 임금

  • 미얀마 밍지뇨 (미얀마(버마) 국왕 3대 · 1510~1530)
  • 오스만 제국 셀림 1세 (오스만 제국 술탄 9대 · 1512~1520) / 쉴레이만 1세 (오스만 제국 술탄 10대 · 1520~1566)
  • 이란(페르시아) 이스마일 1세 (사파비 왕조 1대 · 1501~1524)
  • 인도 이브라힘 칸 로디ابراهیم خان لودی (델리 술탄국 21대 · 1517~1526)재위 연대에 이견이 있습니다
  • 일본 아시카가 요시타네 (무로마치(아시카가) 막부 쇼군 10대 · 1490~1493, 1508~1522) / 고카시와바라 천황 (천황(天皇) 104대 · 1500~1526)
  • 캄보디아 찬 리아치아ចន្ទរាជា (캄보디아 국왕 65대 · 1516~1566)재위 연대에 이견이 있습니다
  • 태국 라마티보디 2세สมเด็จพระรามาธิบดีที่ 2 (태국(시암) 국왕 12대 · 1491~1529)재위 연대에 이견이 있습니다

같은 지역의 여러 나라를 함께 보였습니다. 이 사건이 일어난 곳의 임금만이 아닙니다. 나라별 왕조 연표 보기

이야기로 읽는 역사 — 태생을 묻지 않는 자리

자체 이중 확인 · 사람 검수 전
언제 1520~1566년어디서 이스탄불누가 술레이만 1세(Suleiman I)

1520년 술레이만 1세가 오스만의 술탄이 되었습니다. 사십육 년 동안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 무렵 오스만은 헝가리를 두고 합스부르크 쪽과 다투고 있었습니다. 화의를 맺으러 대사 한 사람이 이스탄불에 왔습니다. 오지에 부스베크입니다. 그는 여러 해 머물며 본 것을 편지로 적어 보냈습니다.

그는 술탄 앞의 큰 모임을 보고 놀랐습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모였는데 외치는 소리도, 웅성거림도, 밀치는 일도 없었습니다. 저마다 자기 자리를 알아서 찾아갔습니다.

한쪽에는 예니체리라는 병사들이 길게 줄지어 있었습니다. 어찌나 움직이지 않는지 사람인지 조각상인지 한참 알 수 없었다고 그는 적었습니다. 인사하라는 귀띔을 받고 고개를 숙이자 모든 머리가 한꺼번에 답례로 숙여졌습니다.

가장 놀란 것은 다른 것이었습니다. "그 큰 모임 안에 자기 용기와 공로가 아닌 것으로 자리를 얻은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튀르크에게는 태생에 따르는 구별이 없고, 사람에 대한 예우는 그가 맡은 일로 정해진다고.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들은 대개 양치기나 소치기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자랑으로 여겼다고 합니다. 태어나면서 받은 것에 빚진 것이 없다는 뜻이었습니다.

이유까지 적어 두었습니다. 그들은 뛰어난 자질이 아버지에게서 아들로 이어진다고 믿지 않았습니다. 하늘이 주는 것이고 좋은 배움과 애씀으로 길러지는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게으르거나 부정직한 사람은 사다리 맨 아래에 남았습니다.

밝혀 둘 것이 있습니다. 부스베크는 오스만과 다투던 쪽의 대사였고, 이 편지를 유럽 사람들에게 읽히려고 썼습니다. 그래서 유럽과 견주는 대목이 많습니다. 이름에 대해서도 적어 둘 것이 있습니다. 유럽에서는 그를 「장엄한 사람」이라 불렀지만, 튀르키예에서는 오직 「카누니」, 곧 법을 세운 사람으로 부릅니다. 그가 법을 세웠다는 말이 무엇을 가리키는지도 정리되어 있습니다. 종교 학자 계층을 셰이흐윌이슬람 아래로 위계를 세워 조직한 일, 민정과 군정을 손본 일, 변경의 봉토를 다루는 제도를 새로 만든 일, 그리고 기독교도 신민의 처지를 낫게 한 일입니다.

생각해 보기 여러 종교를 믿는 사람들을 한 나라 안에서 어떻게 다스릴 수 있을까요?

더 자세히 — 밖에서 온 사람이 부러워한 것

색이 다른 대목은 자료에 적힌 문장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이 기록을 남긴 사람은 오스만과 다투던 나라에서 온 대사입니다. 유럽 독자를 향해 쓴 편지이고, 자기 쪽에 견주어 상대를 칭찬하는 대목이 많습니다. 그 점을 알고 읽어야 합니다.

그는 먼저 큰 무리가 모인 자리의 모습에 놀랍니다. 이 큰 군중 사이에 감도는 침묵과 질서에 나는 크게 놀랐다. 그리고 조금의 소란도 없이 각자 자기 지위에 따라 제자리를 잡았다고 적었습니다.

병사들에 대해서는 더 이상하게 적습니다. 그들이 너무나 꼼짝하지 않고 서 있어서, 사람인지 조각상인지 한동안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그가 인사를 하자 그들 모두의 머리가 같은 순간에 숙여져 답례하는 것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정작 놀란 것은 겉모습이 아닙니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어떻게 그 자리에 왔는가입니다.

그 큰 모임 전체에 자기 용기와 공로 말고 다른 것으로 그 자리에 오른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그러고 나서 이렇게 적습니다. 튀르크인들 사이에서는 출생에 어떤 특별함도 붙지 않는다.

이어지는 문장이 이 편지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대목입니다.

튀르키예에서는 각자가 자기 조상과 자기 인생의 지위를 자기 손에 들고 다닌다.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들 가운데 양치기나 목동의 아들이 있었고, 그는 그들이 오히려 그것을 자랑스러워한다고 적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질이 대물림되지 않는다는 것도 그가 눈여겨본 대목입니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신의 선물이고, 한편으로는 좋은 훈련과 큰 근면과 지치지 않는 열의의 결과라고 했습니다.

반대쪽도 함께 적어 두었습니다. 정직하지 못하거나 게으르거나 부주의한 사람은 사다리의 맨 아래에 남는다.

이 대목들을 읽을 때 한 가지를 함께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을 적은 사람은 태생이 모든 것을 정하던 사회에서 온 사람입니다. 자기 나라에 대고 하는 말이 이 칭찬 안에 섞여 있습니다.

그가 만난 군주는 두 곳에서 다르게 불렸습니다. 한 백과사전이 그 점을 짚어 두었습니다.

튀르키예에서 그는 오직 법을 세운 사람으로 구별되는 반면, 유럽 역사에서 그는 「장엄한 자」 같은 칭호로 알려져 있다는 점이 눈여겨볼 만하다.

한쪽은 그가 만든 법을 이름으로 삼았고, 다른 쪽은 그의 위세를 이름으로 삼았습니다.

무엇을 했기에 법을 세운 사람이라 불렸는지도 적혀 있습니다. 그의 명성은 주로 성직자 계층을 최고 종교권위자로부터 아래로 이어지는 위계 질서로 조직한 것에 있고, 행정을 민간과 군사 양쪽에서 개혁하고 개선했으며, 토지 보유 제도를 새로 정비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한 줄이 붙습니다. 기독교도 신민의 처지를 낫게 한 것도 그의 명성 가운데 작은 것이 아니다.

여기까지가 이 자료가 말하는 데입니다. 그 제도가 어떤 모양이었는지는 다른 자료로 따로 보아야 합니다.

확인하지 못한 것 카눈 법전의 내용, 밀레트 제도(이 이름은 백과 항목에 나오지 않습니다), 1529년 빈 포위는 이 자료들 밖입니다.

오지에 기슬랭 드 부스베크 『튀르크 서한집』, Forster & Daniell 영역, *The Life and Letters of Ogier Ghiselin de Busbecq* 제1권(1881), archive.org · 『1911 Encyclopædia Britannica』 「Suleiman I.」 — 일반 백과라 보조로만 썼습니다

한눈에 보기

무슨 일이 있었나

오스만이 유럽 중부까지 세력을 넓히고 법제를 정비했다.

왜 중요할까

여러 종교 공동체를 각자의 법으로 다스리는 방식이 자리 잡았다.

핵심 키워드

  • 술레이만 1세
  • 오스만 제국의 전성기

같은 시기, 다른 나라에서는

1520~1566년 언저리

연대가 겹치는 사건입니다. 같은 때에 일어났다는 뜻이지, 서로 원인과 결과라는 뜻은 아닙니다. 누르면 그 사건의 상세페이지로 갑니다.

그때 다른 나라의 임금

1520~1566년

같은 해에 다른 나라에서 자리에 있던 사람입니다. 나라마다 한 사람씩만 실었습니다. 왕조가 여럿 겹치던 나라는 왕조 연표에 나머지가 있습니다.

  • 중국 정덕제1505~1521
  • 한국 중종1506년~1544년
  • 신성로마제국 카를 5세1519~1556
  • 에스파냐 카를로스 1세1516~1556
  • 영국 헨리 8세1509~1547
  • 포르투갈 마누엘 1세1495~1521
  • 프랑스 프랑수아 1세1515~1547
  • 모로코 아부 아브드 아라흐 알부르투카리 무하마드 이브느 무하마드1504~1526
  • 베냉 왕국 에시기1504~1550
  • 에티오피아 레브나 데엘1508~1540
  • 아스테카 몬테수마 2세1502~1520
  • 잉카 우아이나 카팍1493~1527

확인 문제

이 문제는 이 사건의 기록에 적힌 값으로 만든 것입니다. 답을 고르면 바로 알려 줍니다.

  1. 1.「술레이만 1세 시기」는 언제 일어난 일일까요?

  2. 2.「술레이만 1세 시기」가 일어난 곳은 어디일까요?

  3. 3.「술레이만 1세 시기」는 「플레밍의 페니실린 발견」보다 먼저 일어난 일이다.

  4. 4.「술레이만 1세 시기」에 나오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5. 5.「술레이만 1세 시기」와 관련된 나라(정치체)는 어디일까요?

참고자료

이 사건이 속한 시기와 주제를 다루는 자료입니다. 본문의 개별 문장을 어디에서 확인했는지는 아직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료가 둘이어도 교차 검증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앞의 글자는 자료 등급으로, A는 당대 사료와 공식 문서, B는 학술 연구와 국가기관 해설, C는 백과사전과 개론 교재를 뜻합니다.

  • CWorld History, Volume 2: from 1400 · OpenStax / Rice University · 2022 · CC BY-NC-SA 4.0링크
  • CWorld History Since 1500: An Open and Free Textbook · East Tennessee State University · 2022 · CC BY 4.0; images separate링크
  • B오지에 기슬랭 드 부스베크 『튀르크 서한집』 — Forster & Daniell 영역, *The Life and Letters of Ogier Ghiselin de Busbecq* vol.1 (1881) · archive.org 스캔 텍스트 · 1881(영역) / 1554~1562 서한 · public domain링크
  • C1911 Encyclopædia Britannica — Suleiman I. · en.wikisource · 1911 · 공개(퍼블릭 도메인)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