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코르 와트 건립
Construction of Angkor Wat · 12세기 초
- 언제
- 12세기 초
- 어디서
- 앙코르
- 어느 나라
- 크메르
- 누가
- 수리야바르만 2세
- 무슨 사건
- 앙코르 와트 건립
대략의 연대 — 정확한 해를 특정하기 어려워 대략의 시기로 표시합니다.
그때 자리에 있던 임금
- 이슬람권 알무스타즈히르 (아바스 왕조(바그다드) 28대 · 1094~1118) / 마수드 3세Mas'ud III (가즈나 왕조 14대 · 1099~1114) / 알아미르 (파티마 왕조 10대 · 1101~1130) / 기야트 알딘 무하마드 1세Ghiyath al-Din Muhammad I (대셀주크 7대 · 1105~1118) / 마릭 샤흐Malik Shah (룸 셀주크 3대 · 1107~1116)재위 연대에 이견이 있습니다
- 일본 도바 천황 (천황(天皇) 74대 · 1107~1123)
- 캄보디아 느리파틴드라바르만ន្ឫបតេន្ទ្រវម៌្មទី២ (캄보디아 국왕 35대 · 1080~1113) / 수르야바르만 2세 (캄보디아 국왕 37대 · 1113~1150)재위 연대에 이견이 있습니다
같은 지역의 여러 나라를 함께 보였습니다. 이 사건이 일어난 곳의 임금만이 아닙니다. 나라별 왕조 연표 보기
이야기로 읽는 역사 — 하룻밤에 지었다는 이야기
연표는 이렇게 적습니다. 12세기 초 무렵 크메르의 왕 수리야바르만 2세가 앙코르 와트를 짓기 시작했고, 처음에는 비슈누 신에게 바친 힌두교 사원이었으며, 뒤에 불교 사원으로 쓰였다고요. 서쪽을 향해 지은 까닭을 두고는 지금도 설명이 갈립니다.
그런데 그 사원을 짓던 때의 이야기는 남아 있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남은 가장 생생한 기록은 그로부터 백오십 년쯤 지난 뒤의 것입니다. 1296년, 원나라 사절단을 따라온 주달관이라는 사람이 이곳에 와서 한 해 남짓 머물다 돌아가 본 것을 적었습니다.
그가 본 도성은 이랬습니다. 둘레가 이십 리쯤이고 문이 다섯인데 문마다 두 겹입니다. 해자를 건너는 다리 양옆에는 장군 모습을 한 돌 신상이 쉰네 개씩 늘어서서, 머리가 아홉 달린 뱀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으려는 자세를 하고 있었습니다. 성문 위에는 사방을 바라보는 큰 돌 부처 머리가 다섯 있었습니다.
성벽에 대해 그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돌을 쌓아 올려 높이가 두 길쯤 되는데, 돌이 아주 촘촘하고 단단해서 잡초조차 나지 않는다고요.
도성 한가운데에는 금빛 탑이 하나 있고 그 곁에 돌탑이 스무 개 남짓, 북쪽에는 그보다 더 높은 구리 탑이 있었습니다. 그는 뱃사람들이 예부터 이 나라를 부유한 진랍이라 부른 까닭이 아마 이것이겠다고 적었습니다.
가장 눈길이 가는 대목은 남문 밖에 있는 석탑 이야기입니다. 그는 이렇게 씁니다. 민간에서는 노반이 하룻밤 사이에 지었다고 전한다. 노반은 중국에서 전설로 전해지는 목수의 이름입니다. 지어진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인데도 사람들은 이미 그것을 누가 어떻게 지었는지 모른 채 이야기로 설명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백육십 해 뒤에 온 사람도 같은 곤란을 겪었습니다. 1860년에 이곳을 찾은 프랑스 사람은 기둥에 새긴 글자가 읽히지 않는다고 적고, 누가 지었느냐고 물으면 네 가지 답 가운데 하나가 돌아온다고 했습니다. 천사들의 왕이 지었다, 거인들이 지었다, 문둥병을 앓은 왕이 지었다, 아니면 저절로 생겼다.
그는 그곳 장인들에게 톱이 없어 도끼와 끌로만 나무를 다듬는다고도 적었습니다.
다만 조심할 것이 있습니다. 그가 본 성곽 도시에는 앙코르 와트보다 나중에 만들어진 구역도 섞여 있습니다. 남문 밖의 그 석탑이 오늘 우리가 어느 유적이라 부르는 것인지도 이 책은 말해 주지 않습니다. 기록이 있다는 것과 그 기록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아는 것은 다른 일입니다.
생각해 보기 같은 건물이 다른 종교의 것이 되기도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더 자세히 — 오백육십 해 뒤에도 같은 대답
색이 다른 대목은 자료에 적힌 문장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이곳을 처음 글로 남긴 외국인은 1296년에 왔습니다. 그는 사절단을 따라갔고, 그때가 사원이 세워지고 백오십 년쯤 지난 뒤였습니다.
그가 본 도시의 모습이 적혀 있습니다. 주성의 둘레는 이십 리쯤이고 다섯 개의 문이 있는데, 문마다 두 겹이다.
다리에 대한 서술이 특히 자세합니다. 다리 양쪽에 모두 쉰네 개의 석상이 있는데 석장군의 모습 같다. 그리고 그 석상들이 무엇을 붙잡고 있는가 하면 뱀 모양으로 깎은 것이고, 뱀은 모두 머리가 아홉입니다.
문 위도 적었습니다. 성문 위에 큰 돌부처의 머리가 다섯 있는데, 얼굴이 사방을 향한다.
성벽은 이렇습니다. 성은 모두 돌을 쌓아 만들었고 높이가 두 길쯤이다. 돌이 매우 촘촘하고 견고하여 잡초가 나지 않는다.
돌 사이에 풀이 나지 않는다는 것으로 얼마나 잘 맞춰 쌓았는지를 적은 것입니다.
그는 그 나라를 부르는 말도 남겼습니다. 부귀진랍입니다.
건물을 어떻게 지었는지도 적혀 있습니다. 장인들에게 톱이 없어 도끼와 끌로 깎아 낸다는 것입니다. 판자를 만드는 일도 집을 짓는 일도 그렇게 했습니다.
지붕에 관한 규칙도 있습니다. 오직 가묘와 정침 두 곳만 기와를 쓸 수 있고, 나머지는 풀로 덮을 뿐 기와를 지붕에 올리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무엇으로 지붕을 덮는가가 신분의 표시였습니다.
그런데 이 기록에서 가장 오래 남는 대목은 건물의 크기가 아닙니다. 남문 밖의 석탑에 대해 그가 적은 한 줄입니다.
민간에서는 노반이 하룻밤 사이에 지었다고 전한다.
노반은 중국의 전설적인 장인입니다. 그곳 사람들에게 누가 지었느냐고 물었더니, 하룻밤 사이에 지어졌다는 이야기가 돌아온 것입니다.
그로부터 오백육십 해쯤 뒤에 다른 사람이 같은 곳에 옵니다. 1860년의 일입니다.
그도 같은 것을 물었고, 같은 종류의 대답을 들었습니다. 그가 적은 것은 이렇습니다.
먼저 그가 무엇을 찾으려 했는지입니다. 이 강대한 제국의 왕좌를 차례로 이었을 많은 왕들에 관한 어떤 역사적 기억도 헛되이 찾을 뿐이다.
기둥에 새겨진 글에 대해서도 적었습니다. 몇몇 기둥을 덮고 있는 명문들은 읽을 수 없다.
그리고 그가 사람들에게 물어본 결과가 이어집니다. 누가 이곳을 세웠느냐고 캄보디아 사람들에게 물으면, 여러분은 예외 없이 이 네 가지 대답 가운데 하나를 듣게 된다.
네 가지는 이렇습니다. 천사들의 왕이 한 일이다. 거인들이 한 일이다. 나병에 걸린 왕이 지었다. 그리고 마지막이 이것입니다.
아니면, 저절로 지어졌다.
십삼 세기에 온 사람이 「하룻밤 사이에 지어졌다」는 말을 들었고, 십구 세기에 온 사람이 「저절로 지어졌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오백육십 해가 지나도록 같은 자리에 같은 종류의 대답이 있었습니다.
그 사이에 무엇이 없어졌는지가 이 두 기록으로 보입니다. 건물은 그대로 서 있는데 그것을 세운 사람들의 이름은 남지 않았습니다.
1860년의 관찰자는 부조에 대해서도 적었는데, 그는 그것을 왕과 왕비들을 그린 세속의 장면으로 읽었습니다. 오늘은 그 부조를 다르게 읽습니다. 그가 무엇을 보았는가와 그것이 무엇인가는 다른 문제라, 여기서는 그가 그렇게 읽었다는 데까지만 적어 둡니다.
확인하지 못한 것 이 사원을 세운 왕과 어떤 신을 위한 사원이었는지, 그리고 왜 서쪽을 향하는지는 두 자료 어디에도 없습니다. 12세기 크메르 명문이나 오늘의 연구가 필요합니다.
주달관 『진랍풍토기』, zh.wikisource · Henri Mouhot, *Travels in the Central Parts of Indo-China (Siam), Cambodia, and Laos* 제1권(1864), Project Gutenberg 전문
한눈에 보기
무슨 일이 있었나
힌두 사원으로 지어졌다가 뒤에 불교 사원으로 쓰였다.
왜 중요할까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며 캄보디아 국기에 그려져 있다.
핵심 키워드
- 앙코르 와트
- 힌두 사원
같은 시기, 다른 나라에서는
12세기 초 언저리연대가 겹치는 사건입니다. 같은 때에 일어났다는 뜻이지, 서로 원인과 결과라는 뜻은 아닙니다. 누르면 그 사건의 상세페이지로 갑니다.
그때 다른 나라의 임금
12세기 초같은 해에 다른 나라에서 자리에 있던 사람입니다. 나라마다 한 사람씩만 실었습니다. 왕조가 여럿 겹치던 나라는 왕조 연표에 나머지가 있습니다.
- 중국 휘종1100~1125
- 한국 예종1105년~1122년
- 비잔티움 제국 알렉시오스 1세 콤니노스1081~1118
- 신성로마제국 하인리히 5세1111~1125
- 영국 그리피드 압 키난1081~1137
- 프랑스 루이 6세1108~1137
확인 문제
이 문제는 이 사건의 기록에 적힌 값으로 만든 것입니다. 답을 고르면 바로 알려 줍니다.
1.「앙코르 와트 건립」은 언제 일어난 일일까요?
2.「앙코르 와트 건립」이 일어난 곳은 어디일까요?
3.「앙코르 와트 건립」에 나오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4.「앙코르 와트 건립」과 관련된 나라(정치체)는 어디일까요?
5.「앙코르 와트 건립」은 「위진남북조 분열기」보다 나중에 일어난 일이다.
참고자료
이 사건이 속한 시기와 주제를 다루는 자료입니다. 본문의 개별 문장을 어디에서 확인했는지는 아직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료가 둘이어도 교차 검증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앞의 글자는 자료 등급으로, A는 당대 사료와 공식 문서, B는 학술 연구와 국가기관 해설, C는 백과사전과 개론 교재를 뜻합니다.
- BUNESCO World Heritage Centre · UNESCO · current · site terms링크
- BHeilbrunn Timeline of Art History ·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 current · site terms링크
- A주달관(周達觀), 『진랍풍토기(真臘風土記)』 — 1296~1297년 앙코르에 머문 원 사절단 수행원의 견문록 · zh.wikisource 전사 · 1297년 무렵 · public domain링크
- CTravels in the Central Parts of Indo-China (Siam), Cambodia, and Laos, vol. 1 · Henri Mouhot, John Murray, London · 1864 · 공개(퍼블릭 도메인)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