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동기 문화 확산
기원전 약 2000~1500년 이후
- 언제
- 기원전 약 2000~1500년 이후
- 어디서
- 한반도·만주
- 어느 나라
- 여러 정치집단
- 무슨 사건
- 청동기 문화 확산
대략의 연대 — 정확한 해를 특정하기 어려워 대략의 시기로 표시합니다.
이야기로 읽는 역사 — 말 속에 남은 벼농사의 나이
기원전 2000년에서 1500년쯤부터 한반도와 만주에 청동기를 쓰는 문화가 퍼졌습니다. 연표는 이 시기에 비파형동검 같은 청동 물건이 나타나고, 고인돌이 만들어지고, 마을이 낮은 언덕으로 옮겨 가고, 가진 것의 차이가 생겼다고 적습니다. 그 고인돌은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전남 화순의 두 골짜기에는 오백구십여 기가 있고, 전북 고창의 야산 기슭에는 사백사십여 기가 이 킬로미터 가까이 늘어서 있습니다. 화순 산 중턱에는 길이 칠 미터, 무게 이백 톤쯤 되는 덮개돌이 있고, 둘레 바위에는 덮개돌을 떼어 낸 자국이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기를 알아내는 방법에는 뜻밖의 것도 있습니다. 2021년에 나온 한 연구는 세 가지를 나란히 놓고 보았습니다. 동북아시아 유적 이백쉰다섯 곳의 자료, 옛사람들의 유전 정보, 그리고 말입니다.
작물부터 보면 이렇습니다. 조와 기장 같은 잡곡 농사는 오천오백 년 전 무렵 한반도로 퍼졌습니다. 그보다 한참 뒤, 지금의 랴오둥과 산둥 쪽에서 짓던 작물 묶음에 벼와 밀이 더해집니다. 이 작물들이 한반도로 건너온 것은 청동기 이른 시기, 지금부터 삼천삼백 년에서 이천팔백 년 전 사이였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다시 일본으로 갔습니다.
여기서 말이 등장합니다. 연구자들은 여러 언어의 옛 형태를 견주어, 어떤 낱말이 언제부터 있었는지를 살폈습니다. 신석기에 갈라져 나온 오래된 말들에는 잡곡에 관한 낱말이 있습니다. 씨를 뿌리고 기르고 밭을 다루는 말도 있습니다. 그런데 벼에 관한 낱말은 없습니다.
벼와 밀과 보리에 관한 낱말은 청동기에 갈라진 갈래들에서야 나타납니다. 소와 양과 말, 비단에 관한 낱말도 함께요. 게다가 이 낱말들은 물려받은 말이 아니라 이웃에게서 빌려 온 말이었습니다.
말이 그 시기를 기억하고 있는 셈입니다. 새로운 것이 들어오면 그것을 부를 이름도 함께 들어옵니다. 지금 우리가 쓰는 말에도 그런 낱말이 아주 많습니다.
다만 이 연구가 함께 내놓은 큰 주장, 곧 여러 언어의 뿌리를 초기 농사꾼들의 이동에서 찾는 설명에는 반론이 이어졌습니다. 여기서는 그 부분이 아니라 작물이 언제 어디서 왔는지와 낱말의 층에 관한 대목만 가져왔습니다.
생각해 보기 큰 무덤을 만들려면 무엇이 필요했을까요?
더 자세히 — 낱말의 층과 이백 톤의 돌
색이 다른 대목은 자료에 적힌 문장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이 시기에 무엇이 들어왔는지는 두 가지 방법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땅에서 나온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말에 남은 것입니다.
한 연구는 동북아시아의 신석기·청동기 유적 이백오십다섯 곳을 모아 놓고, 작물이 언제 어디로 옮겨 갔는지를 정리했습니다.
기장 농사가 오천오백 년 전 무렵 한반도로 퍼졌다고 적혀 있습니다. 그 뒤에 쌀과 밀이 더해졌습니다. 이 작물들은 청동기 전기, 곧 삼천삼백에서 이천팔백 년 전 사이에 한반도로 전해졌고, 거기서 삼천 년 전 이후에 일본으로 갔다고 했습니다.
여기까지는 물건과 씨앗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같은 연구가 말에 남은 층을 함께 봅니다.
신석기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낱말층에는 기장은 있지만 쌀이나 다른 작물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다 청동기 시기의 갈래들에서 새 낱말들이 나타납니다. 쌀과 밀과 보리 농사에 관한 말, 젖 짜는 일, 소와 양과 말 같은 가축, 그리고 비단 같은 직물에 관한 말입니다.
그리고 그 낱말들의 성격을 이렇게 적었습니다. 이 말들은 빌려 온 것이다.
물건이 들어올 때 그것을 부르는 말도 함께 들어왔다는 뜻입니다. 어느 말이 자기 것이고 어느 말이 빌려 온 것인지를 갈라 보면, 무엇이 이곳에서 오래 있었고 무엇이 나중에 왔는지가 보입니다.
가축에 대해서도 한 줄 있습니다. 개와 돼지를 빼면, 청동기 이전 동북아시아에서 동물을 길들였다는 증거는 거의 없다.
땅 위에 남은 것으로는 고인돌이 있습니다. 그 크기가 이 시기에 무엇이 가능했는지를 말해 줍니다.
화순의 두 골짜기에는 바둑판식 고인돌 오백아흔여섯 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곳이 특별한 까닭은 수가 아닙니다.
주변의 암벽에 고인돌의 덮개돌을 떼어 냈던 흔적이 남아 있어, 고인돌을 만들었던 과정을 알 수 있게 해 준다고 적혀 있습니다.
무덤만 남은 것이 아니라 그 돌을 어디서 떼어 왔는지가 함께 남은 것입니다.
같은 곳에 이런 돌도 있습니다. 길이 칠 미터, 높이 사 미터, 무게 약 이백여 톤이나 되는 커다란 덮개돌입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것 가운데 가장 큽니다.
이 수는 그 자체가 요점입니다. 이백 톤짜리 돌을 떼어 내고 옮기고 올리려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얼마나 오래 매달려야 했을지, 그리고 그 사람들을 모을 수 있는 누군가가 있었다는 것까지 이 무게가 말해 줍니다.
고창에는 약 일 점 팔 킬로미터에 이르는 야산 기슭에 사백사십여 기가 무리를 지어 있습니다. 이곳에는 바둑판 모양의 남방식, 탁자 모양의 북방식, 천장돌만 있는 개석식 등 여러 형식이 함께 있습니다.
강화의 것은 탁자식인데, 덮개돌이 길이 육 점 오 미터, 너비 오 점 이 미터, 두께 일 점 이 미터의 화강암입니다.
그런데 이 유적 설명에는 정직한 한 줄이 붙어 있습니다. 이 고인돌에 대한 발굴조사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가장 널리 알려진 고인돌 가운데 하나가 아직 발굴되지 않았다는 것을, 그 설명문이 스스로 밝혀 두었습니다.
확인하지 못한 것 청동의 성분과 비파형동검은 이 자료들에 나오지 않습니다. 마을이 낮은 언덕으로 옮겨 간 일도 아직입니다. 위 논문에 대한 반론들도 따로 읽지 못했습니다.
Martine Robbeets 외, 「Triangulation supports agricultural spread of the Transeurasian languages」, *Nature* 599(2021), CC BY — 이 논문의 어족 기원 주장은 발표 뒤 반론이 이어진 논쟁적 주장이라 작물 전달 시기와 낱말의 층위만 가져다 썼습니다 ·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정보 OpenAPI의 「화순 효산리와 대신리 지석묘군」·「고창 죽림리 지석묘군」·「강화 부근리 지석묘」
한눈에 보기
무슨 일이 있었나
농경 생산과 청동기 사용이 확대되고 사회적 분화가 진전되었다.
왜 중요할까
경제적 잉여와 권력 집중이 초기 국가 형성의 조건이 되었다.
핵심 키워드
- 청동기 시대
- 고인돌
같은 시기, 다른 나라에서는
기원전 약 2000~1500년 이후 언저리연대가 겹치는 사건입니다. 같은 때에 일어났다는 뜻이지, 서로 원인과 결과라는 뜻은 아닙니다. 누르면 그 사건의 상세페이지로 갑니다.
그때 다른 나라의 임금
기원전 약 2000~1500년 이후같은 해에 다른 나라에서 자리에 있던 사람입니다. 나라마다 한 사람씩만 실었습니다. 왕조가 여럿 겹치던 나라는 왕조 연표에 나머지가 있습니다.
- 메소포타미아 이시비에르라기원전 2017~1985
- 이집트 멘투호테프 2세 콘트약 기원전 2030~2000
확인 문제
이 문제는 이 사건의 기록에 적힌 값으로 만든 것입니다. 답을 고르면 바로 알려 줍니다.
1.「청동기 문화 확산」은 언제 일어난 일일까요?
2.「청동기 문화 확산」이 일어난 곳은 어디일까요?
3.「청동기 문화 확산」과 관련된 나라(정치체)는 어디일까요?
4.「청동기 문화 확산」은 「북위 효문제의 낙양 천도」보다 먼저 일어난 일이다.
5.「청동기 문화 확산」은 어느 지역의 역사일까요?
참고자료
이 사건이 속한 시기와 주제를 다루는 자료입니다. 본문의 개별 문장을 어디에서 확인했는지는 아직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료가 둘이어도 교차 검증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앞의 글자는 자료 등급으로, A는 당대 사료와 공식 문서, B는 학술 연구와 국가기관 해설, C는 백과사전과 개론 교재를 뜻합니다.
- B신편 한국사 52책 · 국사편찬위원회 · 1993~2002 · public web service링크
- A한국사데이터베이스 · 국사편찬위원회 · current · public web service링크
- C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한국학중앙연구원 · current · public web service링크
- BMartine Robbeets 외, 「Triangulation supports agricultural spread of the Transeurasian languages」, Nature 599 (2021), 616~621쪽 · Max Planck Institute for the Science of Human History 외 / Nature · 2021 · CC BY링크
- C화순 효산리와 대신리 지석묘군·고창 죽림리 지석묘군·강화 부근리 지석묘 — 국가유산 정보 · 국가유산청 · 공개링크
이 항목은 한국사 학술자료기반 핵심연표에서 정리된 연표를 옮긴 것입니다. 위 참고자료와는 역할이 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