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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삼국KOR0035

백강 전투

663년

언제
663년
어디서
백강
어느 나라
백제 부흥군·왜·신라·당
누가
부여풍, 복신
무슨 사건
백강 전투

연도가 특정된 연대

그때 자리에 있던 임금

  • 고구려 보장왕 (28 · 642년~668년)
  • 신라 문무왕 (30 · 661년~68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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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로 읽는 역사 — 전염병이 돌았지만 거절하기 어려웠다

자체 이중 확인 · 사람 검수 전
언제 663년어디서 백강누가 부여풍, 복신

660년에 백제가 무너졌지만 사람들이 그대로 따르지는 않았습니다. 승려 도침과 옛 장수 복신이 군사를 모았고, 왜에 머물던 왕자 부여풍을 불러들여 임금으로 세웠습니다. 그 뒤의 일은 세 나라의 기록에 남아 있습니다. 신라 쪽 편지, 일본 쪽 사서, 그리고 당 쪽 열전입니다. 나란히 놓아 봅니다.

당 쪽 기록은 안쪽이 먼저 갈라졌다고 적습니다. 복신이 도침을 죽이고 그 군사를 아울렀고, 얼마 뒤에는 부여풍이 복신을 습격해 죽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고구려와 왜에 사신을 보내 군사를 청했습니다. 왜의 배가 온 것은 그다음입니다.

같은 책에는 당의 장수가 그 일을 미리 내다본 말도 실려 있습니다. 복신은 사납고 잔학이 지나치며 부여풍은 의심이 많으니, 겉으로 합해도 속으로 갈라져 함께 있으면 반드시 서로 해칠 것이다. 그러니 굳게 지키며 변화를 살피다가 때를 타면 된다.

신라 쪽 글은 그 싸움이 있고 여덟 해 뒤 문무왕이 당의 장수에게 보낸 답장입니다. 웅진에서 밤낮으로 군사를 청했는데, 그때 신라에는 전염병이 크게 돌아 군사와 말을 징발할 형편이 아니었지만 어렵게 청하는 것을 뿌리치기 어려워 군사를 일으켰다고 적었습니다.

일본 쪽 사서는 배 위의 일을 적습니다. 장수들이 백제왕과 함께 날씨를 살피지 않고, 우리가 앞다투어 싸우면 저들이 스스로 물러날 것이라 했습니다. 그렇게 어지러운 대오로 나아가자 당의 배들이 좌우에서 에워쌌고, 잠깐 사이에 계속 패하여 물에 빠져 죽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세 기록은 배의 수를 서로 다르게 적습니다. 신라 쪽 편지는 왜의 배 천 척이 백강에 대어 있었다고 하고, 일본 쪽은 당의 전선 백칠십 척이 늘어섰다고 하며, 당 쪽은 백강 어귀에서 왜의 배 사백 척을 불태웠다고 적습니다. 무엇을 센 수인지가 저마다 다릅니다. 어느 하나를 골라 쓰지 않습니다.

두 달 뒤 주류성이 항복한 날, 사람들이 서로 한 말이 일본 쪽 사서에 남아 있습니다. 백제의 이름이 오늘에 끊어지게 되었다. 조상의 무덤이 있는 곳에 어떻게 다시 갈 수 있겠는가. 다만 아직 모르는 것이 많습니다. 주류성이 어디였는지도 백강이 어디였는지도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생각해 보기 이웃 나라의 전쟁에 군대를 보내는 나라는 무엇을 얻으려 했을까요?

더 자세히 — 배의 수가 서로 다르다

색이 다른 대목은 자료에 적힌 문장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같은 싸움을 세 나라가 각각 적었습니다. 세 기록을 나란히 놓으면 무엇이 맞고 무엇이 어긋나는지가 보입니다.

먼저 일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중국 쪽 열전에 있습니다. 승려 도침과 옛 장수 복신이 무리를 이끌고 다시 일어나 옛 왕자 부여풍을 왕으로 세웠다고 적혀 있습니다.

그런데 그다음이 안쪽의 일입니다. 얼마 뒤 복신이 도침을 죽이고 그 군사를 아울렀다고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얼마 안 되어 부여풍이 복신을 습격해 죽였다고 적혀 있습니다.

왜에 군사를 청한 것은 그 뒤입니다. 또 사신을 고구려와 왜국에 보내 군사를 청하여 관군에 맞섰다고 이어집니다. 순서가 분명합니다. 안에서 서로 죽인 다음에 밖에 도움을 청했습니다.

이 열전에는 상대편 장수가 그것을 미리 내다본 말도 실려 있습니다. 복신은 흉포하고 잔학함이 지나치며 부여풍은 의심이 많으니, 겉으로는 합하였으나 안으로는 갈라져 있다. 서로 노려보며 함께 있으니 형세가 반드시 서로 해칠 것이다. 그러니 굳게 지키며 변화를 살피다가 틈을 타 취해야지 움직여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예측과 그 실현이 같은 사료 안에 이어져 있습니다.

싸움터로 가는 길도 적혀 있습니다. 유인궤가 두상과 부여륭을 따로 이끌고 수군과 군량선으로 웅진강에서 백강으로 가서, 육군과 만나 함께 주류성으로 향했다고 했습니다. 백강이 어디인지는 여기서도 확정되지 않지만, 웅진강에서 배로 갈 수 있고 육군과 만나는 길목이라는 것까지는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강에 배가 몇 척 있었을까요. 세 기록이 다릅니다.

신라 왕이 당의 장수에게 보낸 편지는 왜의 배 천 척이 백강에 정박해 있고 백제의 정예기병이 언덕 위에서 배를 지키고 있었다고 적었습니다.

『일본서기』는 상대편 배를 셉니다. 당의 군장이 전선 백칠십 척을 거느리고 백촌강에 늘어섰다고 했습니다.

『구당서』는 불태운 배를 셉니다. 유인궤가 백강 어귀에서 왜병을 만나 네 번 싸워 이기고 그 배 사백 척을 불태우니, 연기와 불꽃이 하늘에 넘치고 바닷물이 모두 붉어졌다고 적었습니다.

천 척과 백칠십 척과 사백 척은 서로 맞지 않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센 수인지가 각각 다릅니다. 정박한 배, 늘어선 배, 불탄 배입니다. 어느 하나를 골라 「진짜 수」라고 하기보다 셋을 나란히 두는 편이 정직합니다.

싸움이 어떻게 무너졌는지는 『일본서기』가 자기 쪽 일로 적어 놓았습니다. 장수들이 날씨를 살피지 않고 서로 말하기를, 우리가 앞다투어 싸우면 저들이 스스로 물러날 것이라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지러운 대오를 이끌고 굳게 진친 당의 군대를 쳤습니다.

결과는 이렇습니다. 당이 바로 좌우에서 배를 협공하여 에워싸고 싸우니 잠깐 사이에 관군이 계속 패하여, 물에 빠져 죽는 사람이 많고 배의 앞뒤를 돌릴 수 없었다.

자기 나라 군대를 「어지러운 대오」라 적고, 배를 돌릴 수조차 없었다고 적은 기록입니다.

신라 쪽 편지에는 그 뒤가 있습니다. 신라의 용맹한 기병이 중국 군사의 선봉이 되어 먼저 언덕의 군영을 깨뜨리자 주류성에서는 간담이 서늘해져 마침내 곧바로 항복하였습니다.

다만 이 편지는 신라 왕이 당의 장수에게 자기 처지를 설명하려고 쓴 글입니다. 같은 편지에 이런 대목도 있습니다. 웅진의 중국 군사 천 명이 적의 무리를 치러 갔다가 깨뜨림을 당하여 한 사람도 돌아오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신라에는 전염병이 돌아 군사와 말을 징발할 수 없었음에도 요청을 어기기 어려워 군사를 일으켰다고 했습니다. 무엇을 강조하려는 글인지가 보입니다.

성이 무너진 뒤 사람들이 한 말이 『일본서기』에 남아 있습니다.

주류가 항복하였으니 일이 어찌할 수가 없게 되었다. 백제의 이름이 오늘에 끊어지게 되었다. 조상의 무덤이 있는 곳에 어떻게 다시 갈 수 있겠는가.

그 땅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중국 쪽 기록에 적혀 있습니다. 온 지경이 시들고 무너져 쓰러진 주검이 잇달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유인궤가 처음 시킨 일이 뼈를 거두어 묻고 제사를 지내는 것이었고, 이어서 호구를 다시 적고 길을 트고 마을을 정리하고 다리를 놓고 둑을 손보게 했습니다.

확인하지 못한 것 부여풍이 왜에서 돌아온 경위 자체는 어느 기록에도 자세히 없습니다. 백강의 위치도 확정되지 않았고, 주류성의 위치는 역주가 「쉽게 단정해서는 곤란하다」고 적습니다. 패전 뒤 백제 사람들이 왜로 옮겨 간 일도 이 세 기록 밖입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문무왕 11년(671) 「답설인귀서」,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 『일본서기』 덴지 2년(663) 조, 같은 DB의 「일본육국사 한국관계기사」 · 『구당서』 권84 유인궤전, zh.wikisource

한눈에 보기

무슨 일이 있었나

백제 부흥군과 왜 연합군이 나당연합군에 패배했다.

왜 중요할까

한반도 전쟁이 중국·일본까지 연결된 국제전이었음을 보여준다.

핵심 키워드

  • 백강 전투

같은 시기, 다른 나라에서는

663년 언저리

연대가 겹치는 사건입니다. 같은 때에 일어났다는 뜻이지, 서로 원인과 결과라는 뜻은 아닙니다. 누르면 그 사건의 상세페이지로 갑니다.

그때 다른 나라의 임금

663년

같은 해에 다른 나라에서 자리에 있던 사람입니다. 나라마다 한 사람씩만 실었습니다. 왕조가 여럿 겹치던 나라는 왕조 연표에 나머지가 있습니다.

  • 이슬람권 무아위야 1세661~680
  • 일본 덴지 천황661~672
  • 중국 고종649~683
  • 캄보디아 자야바르만 1세657~681
  • 비잔티움 제국 콘스탄스 2세641~668
  • 아일랜드 디아르마이트 마크 에도 스리네658~665
  • 영국 켄왈흐642~672
  • 프랑스 힐데리히 2세662~675

확인 문제

이 문제는 이 사건의 기록에 적힌 값으로 만든 것입니다. 답을 고르면 바로 알려 줍니다.

  1. 1.「백강 전투」는 언제 일어난 일일까요?

  2. 2.「백강 전투」가 일어난 곳은 어디일까요?

  3. 3.「백강 전투」에 나오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4. 4.「백강 전투」는 「인도 대봉기」보다 먼저 일어난 일이다.

  5. 5.「백강 전투」와 관련된 나라(정치체)는 어디일까요?

참고자료

이 사건이 속한 시기와 주제를 다루는 자료입니다. 본문의 개별 문장을 어디에서 확인했는지는 아직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료가 둘이어도 교차 검증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앞의 글자는 자료 등급으로, A는 당대 사료와 공식 문서, B는 학술 연구와 국가기관 해설, C는 백과사전과 개론 교재를 뜻합니다.

  • B신편 한국사 52책 · 국사편찬위원회 · 1993~2002 · public web service링크
  • A한국사데이터베이스 · 국사편찬위원회 · current · public web service링크
  • C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한국학중앙연구원 · current · public web service링크
  • A『삼국사기』 신라본기 문무왕 11년(671) 「답설인귀서」 가운데 백제부흥운동과 백강 싸움 대목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삼국사기』 · 671년 문서 (12세기 편찬) · 공공누리링크
  • A『일본서기』·『속일본기』의 한국 관계 기사 — 백촌강 전투(663)와 발해 첫 사신(727~728)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일본육국사 한국관계기사」(ancient/jm) · 720·797년 편찬 · 열람링크
  • A『구당서』 권84 유인궤전 · 권199下 발해말갈전 · 中文維基文庫 (zh.wikisource.org) · 945 · Public Domain링크

이 항목은 한국사 학술자료기반 핵심연표에서 정리된 연표를 옮긴 것입니다. 위 참고자료와는 역할이 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