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위자야의 해상 세력
Srivijaya · 약 7~13세기
- 언제
- 약 7~13세기
- 어디서
- 수마트라·말라카 해협
- 어느 나라
- 스리위자야 왕국
- 무슨 사건
- 스리위자야의 해상 세력
대략의 연대 — 정확한 해를 특정하기 어려워 대략의 시기로 표시합니다.
이야기로 읽는 역사 — 유학하러 들르던 섬
7세기 무렵부터 말라카 해협 일대에 스리위자야라는 세력이 있었습니다. 이 나라는 배가 지나는 길목을 쥐고 있었습니다. 인도양과 남중국해를 오가려면 이 해협을 지나야 했습니다.
그런데 스리위자야가 알려진 것은 교역 때문만이 아닙니다. 671년, 중국 승려 의정이 인도로 공부하러 떠났습니다. 그가 탄 배는 스리위자야 왕의 배였습니다.
의정은 수마트라에 내려 여섯 달을 머물며 산스크리트를 공부했습니다. 그다음 왕이 그를 말라유라는 곳으로 보내 두 달을 더 지냈습니다. 이어 케다로 가서 인도로 갈 바람이 불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교역의 중심이 곧 배움의 중심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팔렘방 여러 곳에서는 7세기에 새긴 돌비석이 마흔 기 넘게 나왔습니다. 680년 무렵 것으로 보이는 비석에는 왕에게 충성하겠다는 긴 맹세와, 배신하는 자를 향한 저주가 함께 새겨져 있습니다.
1025년, 남인도 촐라의 함대가 이곳을 쳤습니다. 인도 탄조르에 남은 비문이 이 일을 적어 두었습니다. 스리위자야의 왕은 인도로 끌려갔고 그 뒤 기록에서 사라집니다.
이 나라가 언제 끝났는지는 학자마다 다르게 봅니다. 1025년에 사실상 끝났다고 보는 연구가 있고, 중심지를 옮겨 그 뒤로도 이어졌다고 보는 연구도 있습니다.
생각해 보기 도시가 사라지고 기록만 남으면 무엇을 알 수 있을까요?
한눈에 보기
무슨 일이 있었나
말라카 해협 일대를 중심으로 스리위자야가 해상 교역과 불교 학문의 거점이 되었다.
왜 중요할까
동남아 해양 국가가 교역로 통제로 성장한 사례다.
핵심 키워드
- 스리위자야
- 해상
- 불교
같은 시기, 다른 나라에서는
약 7~13세기 언저리연대가 겹치는 사건입니다. 같은 때에 일어났다는 뜻이지, 서로 원인과 결과라는 뜻은 아닙니다. 누르면 그 사건의 상세페이지로 갑니다.
그때 다른 나라의 임금
약 7~13세기같은 해에 다른 나라에서 자리에 있던 사람입니다. 나라마다 한 사람씩만 실었습니다. 왕조가 여럿 겹치던 나라는 왕조 연표에 나머지가 있습니다.
- 이란(페르시아) 야즈데게르드 3세633~651
- 이슬람권 우스만 이븐 아판644~656
- 일본 고토쿠 천황645~654
- 중국 고종649~683
- 캄보디아 브하바바르만 2세635~657
- 한국 보장왕642년~668년
- 비잔티움 제국 콘스탄스 2세641~668
- 아일랜드 코나르 켈642~654
- 영국 펜다626~655
- 프랑스 시게베르 3세639~656
확인 문제
이 문제는 이 사건의 기록에 적힌 값으로 만든 것입니다. 답을 고르면 바로 알려 줍니다.
1.「스리위자야의 해상 세력」은 언제 일어난 일일까요?
2.「스리위자야의 해상 세력」이 일어난 곳은 어디일까요?
3.「스리위자야의 해상 세력」과 관련된 나라(정치체)는 어디일까요?
4.「스리위자야의 해상 세력」은 「마야 고전기」보다 나중에 일어난 일이다.
5.「스리위자야의 해상 세력」은 어느 지역의 역사일까요?
참고자료
이 사건이 속한 시기와 주제를 다루는 자료입니다. 본문의 개별 문장을 어디에서 확인했는지는 아직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료가 둘이어도 교차 검증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앞의 글자는 자료 등급으로, A는 당대 사료와 공식 문서, B는 학술 연구와 국가기관 해설, C는 백과사전과 개론 교재를 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