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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남북국KOR0040

발해 건국

698년

언제
698년
어디서
동모산 일대
어느 나라
발해
누가
대조영(Dae Joyeong)
무슨 사건
발해 건국

연도가 특정된 연대

그때 자리에 있던 임금

  • 신라 효소왕 (32 · 692년~702년)
  • 발해 고왕 (1 · 698년~7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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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로 읽는 역사 — 이때부터 발해라고만 불렀다

자체 이중 확인 · 사람 검수 전
언제 698년어디서 동모산 일대누가 대조영

668년에 고구려가 무너진 뒤 그 사람들은 여러 곳으로 흩어졌습니다. 그중 한 무리가 삼십 년쯤 지나 나라를 세웁니다. 이 나라가 발해입니다. 그런데 언제 어떤 이름으로 시작했는지는 기록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더 이른 중국 쪽 책은 이렇게 적습니다. 대조영은 본디 고구려의 별종이고, 고구려가 망하자 가족을 이끌고 영주로 옮겨 살았다.

696년 그곳에서 거란이 반란을 일으키자 조영은 말갈의 걸사비우와 함께 각각 사람들을 이끌고 동쪽으로 달아났습니다. 당이 장수를 보내 걸사비우를 먼저 깨뜨리고 천문령을 넘어 조영을 쫓았는데, 조영이 고구려와 말갈의 무리를 합쳐 맞서니 당의 군대가 크게 졌고 그 장수는 몸만 빠져 돌아갔습니다.

그래서 조영은 무리를 이끌고 동쪽으로 가 옛 계루의 땅을 지키며 동모산에 자리 잡고 성을 쌓아 살았습니다. 그리고 성력 연간에 스스로 진국왕이라 했습니다. 성력은 698년에서 700년 사이입니다. 이 책은 698년이라고 못 박지 않고, 나라 이름도 발해가 아니라 진국이라고 적습니다.

발해라는 이름이 붙는 것은 그보다 뒤입니다. 713년 당이 사람을 보내 그를 발해군왕으로 삼았습니다. 뒤에 나온 다른 중국 책은 이때부터 말갈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오로지 발해라고만 불렀다고 적었습니다. 이름은 저절로 바뀌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을 계기로 바뀝니다.

같은 책은 그 나라를 이렇게 적습니다. 호적에 오른 집이 십여 만이고 싸울 수 있는 군사가 몇 만이며, 풍속은 고구려나 거란과 같고 글자와 기록이 꽤 있다.

이웃 나라가 발해를 어떻게 보았는지는 일본 쪽 기록에 남아 있습니다. 727년 발해가 처음 사신을 보냈을 때 일본의 사서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발해군이란 옛날의 고려국이다. 그 첫 사신단의 길은 험했습니다. 스물네 사람이 떠났는데 북쪽 바닷가에 닿아 여덟 사람만 겨우 살아남았습니다.

이듬해 봄 일본이 보낸 답서도 남아 있습니다. 옛 땅을 회복하고 옛날의 우호를 다시 닦으니 기쁘다고 했고, 거친 파도가 가로막고 있어도 끊임없이 왕래하자고 했습니다. 편지는 이렇게 끝납니다. 점차 날이 뜨거워집니다. 평안하기를 바랍니다.

생각해 보기 나라가 사라진 뒤 그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요?

더 자세히 — 처음 쓴 이름은 발해가 아니었다

색이 다른 대목은 자료에 적힌 문장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이 나라가 언제 세워졌는지를 우리는 698년으로 적습니다. 그런데 가장 이른 중국 쪽 사서는 그렇게 못 박지 않습니다.

성력 연간에 스스로 진국왕이라 일컬었다고만 적혀 있습니다. 성력은 698년부터 700년까지의 연호입니다. 어느 해라고 적힌 것이 아니라 몇 해 사이라고 적힌 셈입니다.

그리고 나라 이름도 「발해」가 아닙니다. 진국입니다.

그러면 발해라는 이름은 언제 나왔을까요. 같은 사서의 뒷부분에 있습니다.

선천 2년에 낭장 최흔을 보내 대조영을 좌효위원외대장군, 발해군왕으로 책봉하게 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713년입니다. 이때 그가 다스리던 곳을 홀한주로 삼고 그 도독을 겸하게 했습니다.

바깥에서 붙여 준 이름이 뒤에 그 나라의 이름이 된 것입니다. 다른 사서가 이때부터 말갈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오로지 발해라고만 불렀다고 적은 그 시점이 바로 여기입니다.

세워지기까지의 과정도 적혀 있습니다. 시작은 다른 사람의 반란입니다. 만세통천 연간에 거란의 이진충이 반란을 일으켰고, 그 틈에 대조영과 걸사비우가 각각 무리를 이끌고 동쪽으로 달아나 험한 곳에 의지해 스스로를 지켰습니다.

토벌군이 옵니다. 먼저 걸사비우를 깨뜨려 목을 베고, 천문령을 넘어 대조영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다음 문장이 결정적입니다. 대조영이 고구려와 말갈의 무리를 합쳐 맞서니 관군이 크게 패했고, 이해고는 몸만 빠져나와 돌아갔다.

두 무리를 합쳤다는 대목이 이 나라의 성격을 말해 줍니다.

그 뒤에 자리를 잡습니다. 무리를 이끌고 동쪽으로 가서 계루의 옛 땅을 지키고, 동모산에 의지해 성을 쌓고 거기 살았다고 했습니다.

나라의 크기도 적혀 있습니다. 호수가 십여 만이고 싸울 수 있는 군사가 수만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한 줄이 붙습니다. 풍속은 고구려 및 거란과 같고, 문자와 기록이 꽤 있었다.

기록이 꽤 있었다고 적혀 있는데, 그 기록이 지금 우리에게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이 나라가 자기를 어떻게 소개했는지는 뜻밖에도 일본 쪽 기록에서 볼 수 있습니다.

첫 사신이 온 일을 적으면서 일본 쪽은 이렇게 썼습니다. 발해군이란 옛날의 고려국이다.

그리고 그 사신단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적혀 있습니다. 스물네 사람이 왔는데 하이의 경계에 도착하여 열여섯 사람이 모두 살해되고, 여덟 사람만 겨우 죽음을 면하여 온 것입니다.

스물넷 가운데 여덟이 도착했습니다.

일본이 보낸 답서도 남아 있습니다. 거기에 발해가 보낸 글의 요지가 되풀이되어 있습니다.

옛 땅을 회복하고 옛날의 우호를 다시 닦으니 짐이 기쁘게 여깁니다.

발해가 스스로 무엇이라 했는지를 우리는 이 되풀이를 통해서만 압니다. 원문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같은 답서에는 바다에 대한 말도 있습니다. 비록 거친 파도가 가로막고 있다 하여도 끊임없이 왕래하여야 할 것입니다.

사신 열여섯 명이 오는 길에 죽은 뒤에 오간 문장입니다.

답서 끝은 이렇습니다. 점차 날이 뜨거워집니다. 평안하기를 바랍니다.

한편 이 나라의 뒷날에 대해 중국 쪽 사서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이때에 이르러 마침내 해동성국이 되었으니, 땅에 오경과 십오부와 육십이주가 있었다.

그런데 그 사서의 마지막 문장이 이 이야기의 끝을 말해 줍니다.

그 뒤로 조공이 이어졌는지 끊겼는지는 사가들이 전하지 못했으므로, 배반했는지 따랐는지도 상고할 수 없다.

기록이 끊긴 자리를 기록이 끊겼다고 적어 둔 것입니다.

확인하지 못한 것 발해가 스스로 남긴 기록은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금석문이나 묘지명이 필요합니다. 698년이라는 연도의 다른 근거도 아직입니다.

『구당서』 권199하 「발해말갈」과 『신당서』 권219 「발해」, zh.wikisource · 『속일본기』의 발해 사신 기사,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일본육국사 한국관계기사」

한눈에 보기

무슨 일이 있었나

고구려 유민과 말갈 세력을 바탕으로 발해가 건국되었다.

왜 중요할까

한반도 밖 만주를 포함한 남북국시대 관점이 중요하다.

핵심 키워드

  • 발해

같은 시기, 다른 나라에서는

698년 언저리

연대가 겹치는 사건입니다. 같은 때에 일어났다는 뜻이지, 서로 원인과 결과라는 뜻은 아닙니다. 누르면 그 사건의 상세페이지로 갑니다.

그때 다른 나라의 임금

698년

같은 해에 다른 나라에서 자리에 있던 사람입니다. 나라마다 한 사람씩만 실었습니다. 왕조가 여럿 겹치던 나라는 왕조 연표에 나머지가 있습니다.

  • 몽골·투르크 초원 제국 카파간 카간691~716
  • 이슬람권 아브드 알말리크685~705
  • 일본 몬무 천황697~707
  • 중국 측천무후690~705
  • 캄보디아 자야데브681~713
  • 비잔티움 제국 레온티우스695~698
  • 아일랜드 로잉세치 마크 에우소696~704
  • 영국 애설레드 1세675~704
  • 프랑스 힐데베르트 4세695~711

확인 문제

이 문제는 이 사건의 기록에 적힌 값으로 만든 것입니다. 답을 고르면 바로 알려 줍니다.

  1. 1.「발해 건국」은 언제 일어난 일일까요?

  2. 2.「발해 건국」이 일어난 곳은 어디일까요?

  3. 3.「발해 건국」에 나오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4. 4.「발해 건국」은 「날란다의 학문 중심」보다 나중에 일어난 일이다.

  5. 5.「발해 건국」과 관련된 나라(정치체)는 어디일까요?

참고자료

이 사건이 속한 시기와 주제를 다루는 자료입니다. 본문의 개별 문장을 어디에서 확인했는지는 아직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료가 둘이어도 교차 검증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앞의 글자는 자료 등급으로, A는 당대 사료와 공식 문서, B는 학술 연구와 국가기관 해설, C는 백과사전과 개론 교재를 뜻합니다.

  • B신편 한국사 52책 · 국사편찬위원회 · 1993~2002 · public web service링크
  • A한국사데이터베이스 · 국사편찬위원회 · current · public web service링크
  • C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한국학중앙연구원 · current · public web service링크
  • A『신당서』 권219 열전144 북적 「발해(渤海)」 · zh.wikisource 전사 · 11세기 편찬 · public domain링크
  • A『일본서기』·『속일본기』의 한국 관계 기사 — 백촌강 전투(663)와 발해 첫 사신(727~728)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일본육국사 한국관계기사」(ancient/jm) · 720·797년 편찬 · 열람링크
  • A『구당서』 권84 유인궤전 · 권199下 발해말갈전 · 中文維基文庫 (zh.wikisource.org) · 945 · Public Domain링크

이 항목은 한국사 학술자료기반 핵심연표에서 정리된 연표를 옮긴 것입니다. 위 참고자료와는 역할이 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