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족 성장·농민봉기 확대
9세기 후반
- 언제
- 9세기 후반
- 어디서
- 한반도
- 어느 나라
- 후기 신라
- 누가
- 원종, 애노, 영기, 우련, 궁예
- 무슨 사건
- 호족 성장·농민봉기 확대
대략의 연대 — 정확한 해를 특정하기 어려워 대략의 시기로 표시합니다.
그때 자리에 있던 임금
- 신라 문성왕 (46대 · 839년~857년)
- 발해 대이진 (11대 · 830년~857년)
이야기로 읽는 역사 — 스스로 장군이라 일컫다
『삼국사기』는 진성왕 3년, 그러니까 889년의 일을 이렇게 적기 시작합니다. "나라 안의 모든 주군(州郡)에서 공물과 부세를 보내지 않아, 창고가 텅텅 비어 나라 재정이 궁핍해졌다."
세금이 걷히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왕이 사신을 보내 독촉하니 곳곳에서 도적이 벌떼처럼 일어났다"고 이어집니다. 이때 원종과 애노 등이 사벌주에서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사벌주는 지금의 경상북도 상주 지역입니다.
왕은 나마 벼슬의 영기에게 이들을 잡으라고 명했습니다. 그런데 영기는 "적들의 보루를 바라보고 두려워하여 진격하지 못하였다"고 적혀 있습니다.
대신 싸운 사람은 그 고장의 촌주 우련이었습니다. 그는 힘껏 싸우다 죽었습니다. 왕은 영기의 목을 베게 하고, 나이가 열 살 남짓한 우련의 아들에게 아버지를 이어 촌주가 되게 했습니다.
이 기사에 나오는 네 사람은 다른 어디에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같은 책의 세 해 뒤 기사도 한 문장입니다. "완산의 도적 견훤이 주를 차지하고 스스로 후백제라 일컬으니, 무주 동남쪽의 군현들이 항복하여 붙었다." 892년의 일입니다. 도적이라 부른 것은 이 책이 신라 쪽에서 쓰였기 때문입니다. 다시 두 해 뒤 기사도 짧습니다. "겨울 시월, 궁예가 북원에서 하슬라로 들어가니 무리가 육백여 명에 이르렀고, 스스로 장군이라 일컬었다."
임금이 준 벼슬이 아니라 스스로 붙인 이름입니다. 세금을 걷으러 사람을 보내야 할 만큼 중앙이 멀어진 자리에, 스스로 이름을 붙이는 사람들이 들어섰습니다. 연표는 이 무렵을 9세기 후반으로 묶어 두었습니다. 스스로 붙인 이름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900년에 견훤이 완산주에 이르자 그곳 사람들이 나와 맞이했습니다. 인심을 얻은 것을 기뻐한 그는 곁에 있는 이들에게 옛 백제가 무너진 일을 이야기하며, 완산에 도읍을 세워 그 오랜 분함을 씻겠다고 말합니다. 이백 해가 훨씬 넘은 일을 끌어온 것입니다. 그러고는 스스로 후백제왕이라 일컫고 관직을 두어 일을 나누었습니다. 스스로 붙인 이름이 나라의 꼴을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생각해 보기 기록에 한 번만 나오는 사람에 대해 우리는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요?
한눈에 보기
무슨 일이 있었나
중앙 통제 약화와 수취 부담 속에서 지방 호족과 농민 봉기가 확대되었다.
왜 중요할까
재정과 지방 통합이 약해질 때 정치체제가 분권화될 수 있다.
핵심 키워드
- 호족
- 농민봉기
같은 시기, 다른 나라에서는
9세기 후반 언저리연대가 겹치는 사건입니다. 같은 때에 일어났다는 뜻이지, 서로 원인과 결과라는 뜻은 아닙니다. 누르면 그 사건의 상세페이지로 갑니다.
그때 다른 나라의 임금
9세기 후반같은 해에 다른 나라에서 자리에 있던 사람입니다. 나라마다 한 사람씩만 실었습니다. 왕조가 여럿 겹치던 나라는 왕조 연표에 나머지가 있습니다.
- 이슬람권 알무타와킬847~861
- 일본 닌묘 천황833~850
- 중국 선종846~859
- 캄보디아 자야바르만 2세802~850
- 비잔티움 제국 미하일 3세842~867
- 아일랜드 멜 세치나이르 마크 메레 루아나이드846~862
- 영국 애설울프839~858
- 프랑스 카를 2세843~877
확인 문제
이 문제는 이 사건의 기록에 적힌 값으로 만든 것입니다. 답을 고르면 바로 알려 줍니다.
1.「호족 성장·농민봉기 확대」는 언제 일어난 일일까요?
2.「호족 성장·농민봉기 확대」가 일어난 곳은 어디일까요?
3.「호족 성장·농민봉기 확대」에 나오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4.「호족 성장·농민봉기 확대」와 관련된 나라(정치체)는 어디일까요?
5.「호족 성장·농민봉기 확대」는 「노르테 치코 문명 성장」보다 먼저 일어난 일이다.
참고자료
이 사건이 속한 시기와 주제를 다루는 자료입니다. 본문의 개별 문장을 어디에서 확인했는지는 아직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료가 둘이어도 교차 검증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앞의 글자는 자료 등급으로, A는 당대 사료와 공식 문서, B는 학술 연구와 국가기관 해설, C는 백과사전과 개론 교재를 뜻합니다.
- B신편 한국사 52책 · 국사편찬위원회 · 1993~2002 · public web service링크
- A한국사데이터베이스 · 국사편찬위원회 · current · public web service링크
- C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한국학중앙연구원 · current · public web service링크
- A『삼국사기』 신라본기 제11 진성왕 3년(889) — 원종과 애노의 반란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원문·국역·주석) · 1145년 편찬 · 열람링크
- A『삼국사기』 신라본기 진성왕 8년(894) — 궁예가 스스로 장군이라 일컫다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 1145년 편찬 · 열람링크
- A『삼국사기』 신라본기 진성왕 6년(892)·열전 견훤(900) — 견훤의 자칭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 1145 · 공공누리링크
이 항목은 한국사 학술자료기반 핵심연표에서 정리된 연표를 옮긴 것입니다. 위 참고자료와는 역할이 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