촐라 왕조의 해상 진출
Chola maritime expansion · 9~13세기
- 언제
- 9~13세기
- 어디서
- 남인도
- 어느 나라
- 촐라
- 누가
- 라자라자 1세, 라젠드라 촐라 1세
- 무슨 사건
- 촐라 왕조의 해상 진출
대략의 연대 — 정확한 해를 특정하기 어려워 대략의 시기로 표시합니다.
그때 자리에 있던 임금
- 이슬람권 알무타와킬 (아바스 왕조(바그다드) 10대 · 847~861)
- 일본 닌묘 천황 (천황(天皇) 54대 · 833~850) / 몬토쿠 천황 (천황(天皇) 55대 · 850~858)
- 캄보디아 자야바르만 2세 (캄보디아 국왕 18대 · 802~850) / 삼브후푸라의 즈예흐리ជ្យេស្ថាយ៌ា (캄보디아 국왕 19대 · 803~900)재위 연대에 이견이 있습니다
같은 지역의 여러 나라를 함께 보였습니다. 이 사건이 일어난 곳의 임금만이 아닙니다. 나라별 왕조 연표 보기
이야기로 읽는 역사 — 정복 목록 뒤에 붙은 용건
9세기에서 13세기 무렵, 인도 남쪽 끝에 촐라라는 왕국이 있었습니다. 이 나라의 왕들은 자기가 한 일을 사원 벽에 새겨 두었습니다. 천 년이 지난 지금도 그 문장을 읽을 수 있습니다.
라자라자 왕의 비문은 재위 이십구 년에 그가 칸달루르살라이의 배들을 부수고 여러 지방을 정복했다고 적습니다. 그 목록 안에 오늘날의 스리랑카가 있습니다. 아들 라젠드라의 비문에는 스리랑카 왕에게서 인드라의 목걸이라 불리는 것을 빼앗았다는 대목이 있는데, 그 목걸이가 스리랑카 쪽 기록인 『마하밤사』에도 나옵니다.
바다 건너 원정도 비문에 남았습니다. 탄자부르에 새긴 라젠드라의 비문에는 손에 넣었다는 먼 곳의 이름들이 줄지어 있습니다. 학자들은 낙카바람을 니코바르 제도로, 탁콜람을 말레이반도 서쪽 해안으로 봅니다. 카다람이라 불린 왕이 다스리던 나라가 스리비자야였다고 다른 동판이 적습니다.
이 원정이 특별한 까닭은 방법에 있습니다. 판독한 학자들은 이곳들이 남인도 안의 지명일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군대를 배로 보냈기 때문입니다.
바다 건너에서는 어떻게 보았을까요. 중국의 『송사』에 주련이라는 이름으로 한 편이 있습니다. 1015년 촐라의 왕이 보낸 사절이 광저우에 닿았는데, 본국을 떠나 천백오십 일이 걸렸다고 날수까지 세어 두었습니다. 보낸 까닭도 있습니다. 십 년 동안 바다에 풍파가 없었는데 예부터 그러면 중국에 성인이 있다고 전해 왔기에 보냈다는 것입니다.
같은 책의 다른 대목이 눈에 띕니다. 뒷날 송의 상서성이 주련은 삼불제에 딸린 나라라고 적었습니다. 삼불제는 스리비자야입니다. 비문은 촐라가 그곳을 쳤다고 새겼는데, 두 나라와 다 교역하던 송의 관청은 오히려 촐라를 그 아래로 보았습니다. 한쪽 기록만으로는 그 원정이 무엇을 남겼는지 알 수 없습니다.
탄자부르의 사원 벽에는 정복 이야기만 있지 않습니다. 바친 보물의 목록도 새겨져 있습니다. 목걸이마다 무게와 값을 적고 박힌 보석을 세었으며 저울돌의 이름까지 남겼습니다.
가장 눈여겨볼 것은 다른 비문에 있습니다. 티루말라이라는 바위에 새긴 라젠드라의 긴 정복 목록은 사실 앞머리였습니다. 마지막 세 줄이 진짜 용건인데, 어느 상인의 아내가 언덕 위 자이나교 사원의 등불과 공양을 위해 돈을 바쳤다는 기록입니다. 왕의 정복 이야기가 한 여성의 기부 증서 머리말로 쓰인 것입니다. 무엇이 적혔는지만이 아니라 왜 적혔는지도 보아야 합니다.
생각해 보기 육지가 아니라 바다로 힘을 뻗으면 무엇이 달라질까요?
한눈에 보기
무슨 일이 있었나
남인도의 촐라가 함대를 보내 스리랑카와 동남아시아까지 영향력을 넓혔다.
왜 중요할까
인도양 교역망과 힌두·불교 문화가 동남아시아로 퍼지는 통로가 되었다.
핵심 키워드
- 촐라
- 해상무역
같은 시기, 다른 나라에서는
9~13세기 언저리연대가 겹치는 사건입니다. 같은 때에 일어났다는 뜻이지, 서로 원인과 결과라는 뜻은 아닙니다. 누르면 그 사건의 상세페이지로 갑니다.
그때 다른 나라의 임금
9~13세기같은 해에 다른 나라에서 자리에 있던 사람입니다. 나라마다 한 사람씩만 실었습니다. 왕조가 여럿 겹치던 나라는 왕조 연표에 나머지가 있습니다.
- 중국 선종846~859
- 한국 문성왕839년~857년
- 비잔티움 제국 미하일 3세842~867
- 아일랜드 멜 세치나이르 마크 메레 루아나이드846~862
- 영국 애설울프839~858
- 프랑스 카를 2세843~877
확인 문제
이 문제는 이 사건의 기록에 적힌 값으로 만든 것입니다. 답을 고르면 바로 알려 줍니다.
1.「촐라 왕조의 해상 진출」은 「안사의 난」보다 나중에 일어난 일이다.
2.「촐라 왕조의 해상 진출」은 언제 일어난 일일까요?
3.「촐라 왕조의 해상 진출」이 일어난 곳은 어디일까요?
4.「촐라 왕조의 해상 진출」에 나오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5.「촐라 왕조의 해상 진출」과 관련된 나라(정치체)는 어디일까요?
참고자료
이 사건이 속한 시기와 주제를 다루는 자료입니다. 본문의 개별 문장을 어디에서 확인했는지는 아직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료가 둘이어도 교차 검증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앞의 글자는 자료 등급으로, A는 당대 사료와 공식 문서, B는 학술 연구와 국가기관 해설, C는 백과사전과 개론 교재를 뜻합니다.
- CWorld History, Volume 1: to 1500 · OpenStax / Rice University · 2023 · CC BY-NC-SA 4.0링크
- BUNESCO World Heritage Centre · UNESCO · current · site terms링크
- A『South-Indian Inscriptions』 제2권 — 탄자부르 라자라제스바라(브리하디스와라) 사원의 라자라자·라젠드라 촐라 비문 · 인도 고고조사국(ASI) 간행, E. Hultzsch 편 / archive.org 스캔 텍스트 · 1891~1913 (비문은 11세기) · public domain링크
- B『Epigraphia Indica』 제9권 — 라젠드라 촐라 1세의 티루말라이 바위 비문(제31호)과 탄자부르 비문 제20호에 관한 해설 · 인도 고고조사국(ASI), E. Hultzsch 편 / archive.org 스캔 텍스트 · 1907~1908 (비문은 11세기) · public domain링크
- A『송사』 권489 「외국오·주련(注輦)」 — 촐라의 대송 조공 · 中文維基文庫 (zh.wikisource.org) · 1345 · Public Domain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