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의병 확대
1907~1909년
- 언제
- 1907~1909년
- 어디서
- 전국
- 어느 나라
- 의병·일본
- 누가
- 이인영, 허위 등
- 무슨 사건
- 정미의병 확대
연도가 특정된 연대
그때 자리에 있던 임금
- 대한제국 고종 (1대 · 1897년~1907년)
- 대한제국 순종 (2대 · 1907년~1910년)
이야기로 읽는 역사 — 부르는 이름이 서로 달랐다
의병은 나라의 군대가 아닙니다. 위기가 닥쳤을 때 백성이 스스로 무기를 들고 나선 사람들입니다. 1907년 대한제국의 군대가 해산되면서 훈련받은 군인들이 여기 합류했고, 의병의 모습이 달라졌습니다. 전남 화순 쌍산에는 그해 일어난 의병의 자취가 남아 있습니다. 무기를 만들던 터에 쇠를 녹이던 용광로의 벽체와 쇠부스러기가 흩어져 있고, 돌로 쌓은 의병성과 막사 터도 있습니다.
그 무렵의 일이 뜻밖의 곳에 남아 있습니다. 이들을 쫓던 일본군이 위로 올린 보고서입니다. 다만 그 문서는 이들을 의병이라 부르지 않습니다. 폭도, 또는 도적 무리라고 적습니다. 같은 사람을 두고 부르는 이름이 서로 달랐습니다.
1908년 3월 23일, 일본군 제13사단 참모부가 경무국에 보낸 보고서가 있습니다. 며칠 사이의 일이 시각까지 적혀 있습니다. 3월 13일 밤 아홉 시, 춘천의 기병소대가 급한 소식을 받고 출동합니다. 그 소식을 전한 사람은 일진회 회원이었습니다. 조선 사람 가운데 일본 쪽에 서 있던 이도 있었던 것입니다.
그날 밤의 교전에서 눈여겨볼 것은 무기입니다. 보고서는 의병이 쓴 총이 열일곱에서 열여덟 자루쯤이고, 그 가운데 삼분의 일은 화승총이었다고 적었습니다. 화승총은 심지에 불을 붙여 쏘는 오래된 총입니다. 나머지 삼분의 이는 연발총이었습니다.
같은 전투에서 일본군이 입은 피해도 적혀 있습니다. 말 한 마리가 다쳤고 총알 이백열아홉 발을 썼습니다. 이 두 줄을 나란히 놓으면 무엇이 맞부딪쳤는지 보입니다.
이튿날에는 횡성에서 다른 일이 있었습니다. 김치영이라는 사람이 이끄는 백오십 명쯤 되는 무리가 아침을 먹던 중에 습격을 받았습니다. 세 차례 돌격 끝에 무너졌고, 그 자리에 시신 마흔세 구가 남았습니다.
일본군이 거두어 간 물건 목록에 눈길이 가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소총 스물다섯 자루와 칼 세 자루, 그리고 도장 한 개입니다. 도장에는 사령부 우군 소모지장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사람을 모으는 일을 맡은 자리의 도장입니다. 흩어진 무리가 아니라 부대를 갖춘 조직이었다는 뜻입니다.
같은 시기를 조선 쪽에서 적은 기록은 짧습니다. 각지의 의병이 끊이지 않았다며 지도자들의 이름을 지역과 함께 늘어놓고, 이 난리에 일본인에게 불탄 마을과 죽고 다친 사람은 헤아릴 수 없다고 맺었습니다. 한쪽은 시신의 수를 세어 올렸고 다른 쪽은 셀 수 없다고 적었습니다.
생각해 보기 나라의 군대가 아닌 사람들이 무기를 드는 일은 왜 일어날까요?
한눈에 보기
무슨 일이 있었나
군대 해산 뒤 해산 군인들이 의병에 합류해 항쟁이 확대되었다.
왜 중요할까
국가 군대 해체가 민간 무장저항으로 전환되었다.
핵심 키워드
- 의병
같은 시기, 다른 나라에서는
1907~1909년 언저리연대가 겹치는 사건입니다. 같은 때에 일어났다는 뜻이지, 서로 원인과 결과라는 뜻은 아닙니다. 누르면 그 사건의 상세페이지로 갑니다.
그때 다른 나라의 임금
1907~1909년같은 해에 다른 나라에서 자리에 있던 사람입니다. 나라마다 한 사람씩만 실었습니다. 왕조가 여럿 겹치던 나라는 왕조 연표에 나머지가 있습니다.
- 오스만 제국 압뒬하미트 2세1876~1909
- 이란(페르시아) 모자파르 앗딘 샤1896~1907
- 이슬람권 아바스 2세 힐미1892~1914
- 인도네시아 하멩쿠부워노 7세1877~1921
- 일본 메이지 천황1867~1912
- 중국 광서제1875~1908
- 태국 쭐랄롱꼰1868~1910
- 러시아 니콜라이 2세1894~1917
- 에스파냐 알폰소 13세1886~1931
- 영국 에드워드 7세1901~1910
- 오스트리아 프란츠 요제프 1세1848~1916
- 포르투갈 카를루스 1세1889~1908
- 모로코 모로크코의 아브데라지즈1894~1908
- 아샨티 왕국 프렘페흐 1세1888~1931
- 에티오피아 메넬리크 2세1889~1913
- 통가 조지 투포우 2세1893~1918
확인 문제
이 문제는 이 사건의 기록에 적힌 값으로 만든 것입니다. 답을 고르면 바로 알려 줍니다.
1.「정미의병 확대」는 「갈릴레이의 망원경 관측 발표」보다 나중에 일어난 일이다.
2.「정미의병 확대」는 언제 일어난 일일까요?
3.「정미의병 확대」가 일어난 곳은 어디일까요?
4.「정미의병 확대」에 나오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5.「정미의병 확대」와 관련된 나라(정치체)는 어디일까요?
참고자료
이 사건이 속한 시기와 주제를 다루는 자료입니다. 본문의 개별 문장을 어디에서 확인했는지는 아직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료가 둘이어도 교차 검증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앞의 글자는 자료 등급으로, A는 당대 사료와 공식 문서, B는 학술 연구와 국가기관 해설, C는 백과사전과 개론 교재를 뜻합니다.
- B신편 한국사 52책 · 국사편찬위원회 · 1993~2002 · public web service링크
- A한국사데이터베이스 · 국사편찬위원회 · current · public web service링크
- C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한국학중앙연구원 · current · public web service링크
- A「暴徒討伐景況 第四九號」(융희 2년〈1908〉 3월 23일, 제13사단 참모부 → 경무국) — 『한국독립운동사자료』 의병편Ⅱ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한국독립운동사자료, 국역) · 1908 · 국사편찬위원회 제공링크
- B「各地義兵」 — 『한국독립운동사자료』 임정편Ⅳ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한국독립운동사자료) · 대한민국임시정부 계열 기록 · 국사편찬위원회 제공링크
- C화순 쌍산 항일의병 유적 — 국가유산 정보 · 국가유산청 · 1907 · 공개링크
이 항목은 한국사 학술자료기반 핵심연표에서 정리된 연표를 옮긴 것입니다. 위 참고자료와는 역할이 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