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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제강점KOR0216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1923년 9월

언제
1923년 9월
어디서
도쿄·요코하마 일대
어느 나라
일본
무슨 사건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연도가 특정된 연대

이야기로 읽는 역사 — 오려서 본국으로 보낸 신문 기사

자체 이중 확인 · 사람 검수 전
언제 1923년 9월어디서 도쿄

1923년 9월 1일, 일본 간토 지역에 큰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그 혼란 속에서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넣었다는 사실 아닌 말이 퍼졌고, 여러 날에 걸쳐 조선인들이 살해되었습니다. 백 년 뒤 이 일이 일본 국회에서 다루어졌습니다. 2023년 5월 23일 참의원 내각위원회의 회의록이 남아 있습니다.

한 의원이 일본 정부의 중앙방재회의가 펴낸 보고서를 읽습니다. 죽거나 다친 사람은 조선인이 가장 많았지만 중국인과 일본인도 적지 않게 당했다. 가해의 형태는 관헌에 의한 것부터, 관헌이 보호하고 있던 사람을 민간인이 죽인 것까지 여러 가지였다. 희생자의 정확한 수는 잡히지 않지만 지진으로 죽은 사람 수의 백분의 일에서 몇 퍼센트에 해당한다.

정부 쪽 참고인이 답합니다. 그 보고서는 중앙방재회의의 전문조사회가 2009년 3월에 정리한 것이고, 지적하신 내용이 그 제2편에 적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요. 같은 참고인은 뜬소문이 퍼진 배경도 보고서에서 옮깁니다. 그때 군대와 경찰과 신문이 그 말을 옮기는 데 한몫해서 혼란을 키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같은 회의에서 다른 답도 나옵니다. 이 일을 묻는 질문서가 그때까지 여덟 번 나왔는데 답은 늘 같았습니다. 조사한 바로는 정부 안에 사실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기록이 보이지 않아 답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날 대신도 같은 말을 되풀이했습니다.

정부가 만든 보고서에는 적혀 있고, 정부의 답변에는 기록이 없다고 되어 있습니다. 어느 한쪽을 고르지 않고 둘 다 적어 둡니다. 희생자 수도 마찬가지입니다. 의원은 교과서마다 이백삼십 명쯤부터 육천 명이 넘는 수까지 서로 다른 조사값이 실려 있다고 했습니다.

이 일이 그때 바깥에 어떻게 알려졌는지는 다른 기록이 보여 줍니다. 미국에서 한인들이 내던 『신한민보』에는 그해 11월 「일본인의 무도」 같은 제목이 이어졌고, 임시정부 자료에는 외무총장 조소앙이 9월 10일에 낸 항의문이 남아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2025년 12월에 이 일을 다루는 법이 만들어졌습니다. 「간토 대지진 조선인 희생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입니다. 그 법은 사건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1923년 일본의 간토 지역에서 일어난 대지진 당시 일본의 군인·관헌 및 민간인에 의하여 조선인들이 희생당한 사건. 한쪽에서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고 답하는 사이에, 다른 쪽에서는 그 주체를 법조문에 적은 것입니다.

생각해 보기 재난 뒤에 근거 없는 말이 빠르게 퍼지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더 자세히 — 일본 정부의 보고서가 적은 것

색이 다른 대목은 자료에 적힌 문장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이 일을 다룰 때 가장 단단한 자료는 일본 정부가 스스로 만든 보고서입니다. 2009년 3월에 중앙방재회의 산하 전문조사회가 낸 관동대지진 보고서이고, 그 본문이 2023년 국회 회의록에 그대로 인용되어 있습니다.

보고서는 피해의 범위부터 적습니다. 살상의 대상은 조선인이 가장 많았으나, 중국인과 내지인도 적지 않게 피해를 입었다.

가해의 형태도 적습니다. 이 문장이 이 사건의 성격을 압축합니다. 가해의 형태는 관헌에 의한 것부터, 관헌이 보호하고 있던 피해자를 민간인이 살해한 것까지 다양했다.

민간의 자경단만이 아니었다는 것을 정부 보고서가 적어 둔 것입니다.

희생자 수에 대해서는 이렇게 적습니다. 희생자의 정확한 수는 파악할 수 없으나, 지진으로 인한 사망자 수의 1에서 몇 퍼센트에 해당한다. 정확한 수를 모른다고 밝히면서 규모의 범위는 적어 둔 것입니다.

유언비어가 왜 퍼졌는지도 짚습니다. 보고서는 세 가지를 듭니다. 당시의 군대와 경찰과 신문 등이 유언의 전달에 기여하여 혼란을 증폭시킨 것, 화재로 인한 폭발이나 우물물이 흐려진 것을 폭탄 투척이나 독을 넣은 테러 행위로 오인한 것, 그리고 군대와 경찰이 무기를 쓰거나 보호를 이유로 사람을 연행한 일이 오히려 유언을 뒷받침하는 것처럼 오인된 것입니다.

막아야 할 쪽이 퍼뜨리는 데 한몫했다는 것을, 그 나라의 공식 보고서가 적고 있습니다.

그때 바깥에서는 어떻게 알려졌는지도 남아 있습니다. 미국에서 나오던 『신한민보』의 기사 제목들입니다. 1923년 9월 13일 「한인 1만 5천명을 가두어」, 11월 8일 「한인은 다 죽였다고 말한다」, 11월 29일 「톰킨스 박사는 국무성에 항의서를 제출 — 일본 진재시 한인 5백여명 학살했다고」.

이 제목들을 읽을 때 밝혀 둘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확인한 것은 기사의 제목뿐이고 본문은 아직 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제목에 적힌 5백여 명은 그때 그 신문이 전한 수치이지, 오늘 확정된 희생자 수가 아닙니다.

수를 모른다는 것과 일이 없었다는 것은 다릅니다. 일본 정부의 보고서가 무엇이 있었는지는 적고, 그 수는 파악할 수 없다고 적은 그대로입니다.

확인하지 못한 것 희생자 수는 지금도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아래에 적은 「5백여 명」은 당시 신문 제목이 전한 수치이지 확정된 수가 아닙니다.

일본 국회 회의록 2023년 5월 23일 참의원 내각위원회(국회회의록 검색 API)에 인용된 중앙방재회의 전문조사회 보고서(2009년 3월) · 『신한민보』 1923년 9월~1924년 1월 기사 제목,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한눈에 보기

무슨 일이 있었나

지진 직후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넣었다는 유언비어가 퍼져 다수의 조선인이 살해되었다.

왜 중요할까

희생자 수는 자료마다 크게 다르며 진상 규명과 공식 인정을 둘러싼 논의가 이어진다.

핵심 키워드

  • 간토대지진
  • 학살

같은 시기, 다른 나라에서는

1923년 9월 언저리

연대가 겹치는 사건입니다. 같은 때에 일어났다는 뜻이지, 서로 원인과 결과라는 뜻은 아닙니다. 누르면 그 사건의 상세페이지로 갑니다.

그때 다른 나라의 임금

1923년 9월

같은 해에 다른 나라에서 자리에 있던 사람입니다. 나라마다 한 사람씩만 실었습니다. 왕조가 여럿 겹치던 나라는 왕조 연표에 나머지가 있습니다.

  • 몽골·투르크 초원 제국 복드 칸1911~1924
  • 이란(페르시아) 아흐마드 샤1909~1924
  • 이슬람권 아흐마드 푸아드 1세1917~1936
  • 인도네시아 하멩쿠부워노 8세1921~1939
  • 일본 다이쇼 천황1912~1926
  • 태국 와치라웃1910~1925
  • 에스파냐 알폰소 13세1886~1931
  • 영국 조지 5세1910~1936
  • 모로코 모로크코의 유세프1912~1927
  • 베냉 왕국 에웨카 2세1914~1933
  • 아샨티 왕국 프렘페흐 1세1888~1931
  • 에티오피아 자우디투1916~1930
  • 통가 살로테 투포우 3세1918~1965

확인 문제

이 문제는 이 사건의 기록에 적힌 값으로 만든 것입니다. 답을 고르면 바로 알려 줍니다.

  1. 1.「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은 「콘스탄티노폴리스 천도」보다 먼저 일어난 일이다.

  2. 2.「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은 언제 일어난 일일까요?

  3. 3.「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이 일어난 곳은 어디일까요?

  4. 4.「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과 관련된 나라(정치체)는 어디일까요?

  5. 5.「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은 어느 지역의 역사일까요?

참고자료

이 사건이 속한 시기와 주제를 다루는 자료입니다. 본문의 개별 문장을 어디에서 확인했는지는 아직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료가 둘이어도 교차 검증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앞의 글자는 자료 등급으로, A는 당대 사료와 공식 문서, B는 학술 연구와 국가기관 해설, C는 백과사전과 개론 교재를 뜻합니다.

  • B신편 한국사 52책 · 국사편찬위원회 · 1993~2002 · public web service링크
  • A한국사데이터베이스 · 국사편찬위원회 · current · public web service링크
  • C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한국학중앙연구원 · current · public web service링크
  • B『신한민보』 1923년 9월~1924년 1월 기사 제목, 대한민국임시정부자료집의 「관동대지진 당시 한인학살에 대한 외무총장 조소앙의 항의문(1923. 9. 10)」, 일본 외무성 기록 「本邦震災時 朝鮮人의 行動에 관한 건」(1924. 1. 15)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신한민보 npsh · 대한민국임시정부자료집 ij · 국외 항일운동 자료: 일본 외무성기록 haf) · 1923~1924년 · 공공누리링크
  • A일본 국회 회의록 — 2023년 5월 23일 참의원 내각위원회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 国立国会図書館 国会会議録検索システム · 2023 · 공개링크
  • A「간토 대지진 조선인 희생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2025) ·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 2025 · 공개링크

이 항목은 한국사 학술자료기반 핵심연표에서 정리된 연표를 옮긴 것입니다. 위 참고자료와는 역할이 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