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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한민국KOR0236

김대중 납치 사건

1973년 8월

언제
1973년 8월
어디서
도쿄·서울
어느 나라
대한민국·일본
누가
김대중, 김동운
어느 기관
중앙정보부
무슨 사건
김대중 납치 사건

연도가 특정된 연대

이야기로 읽는 역사 — 지문은 남고 사람은 없었다

자체 이중 확인 · 사람 검수 전
언제 1973년 8월어디서 도쿄누가 김대중, 김동운

1973년 8월 8일, 야당 지도자 김대중이 도쿄 시내의 한 호텔에서 끌려갔습니다. 그 뒤 몇 달 동안 이 일은 일본 국회에서 다루어졌습니다. 회의록이 남아 있어 무엇이 확인되고 무엇이 막혔는지 알 수 있습니다.

9월 25일 참의원 본회의에서 국가공안위원장이 수사를 이렇게 정리합니다. 현장에 남은 물건과 목격자 조사로 한국 대사관 김동운 일등서기관을 찾아냈고, 김대중이 밀어 넣어진 2210호실의 투숙객과 데려간 차량과 배를 쫓고 있다고요. 다만 확증은 아직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한국 쪽이 국제 관례를 들어 그 서기관의 출두 요구를 거절했다고 덧붙입니다.

차 한 대를 가려내는 데 여러 달이 걸렸습니다. 지하 주차장에서 나간 번호 2077은 도쿄에만 백예순 대가 넘고 전국에는 천이백 대가 넘었습니다. 하나씩 지워 마지막 한 대가 남았는데, 그 차는 9월 5일 일본을 떠난 요코하마 영사관 부영사의 것이었습니다.

지문도 나왔습니다. 그 지문을 들이대자 김동운이 혐의를 인정하는 데까지 갔다고 국회에서 이야기됩니다. 그런데 한국 쪽이 보낸 수사 자료에는 그 서기관에게 가담한 혐의가 없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같은 사람을 두고 두 나라의 서류가 달랐습니다.

11월에 두 나라는 이 일을 외교적으로 매듭짓습니다. 의원들은 납득하지 않았습니다. 무엇에 대한 유감인지 밝히지 않은 채 끝냈다는 것입니다. 한 의원은 그래서는 일본 국민도 모르고 한국 국민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가장 근본적인 물음은 남았습니다. 12월에 외무대신은 이렇게 답합니다. 한국 쪽은 공권력이 관련된 일이 아니라는 입장이고, 일본 쪽도 주권 침해에 해당한다고 할 확실한 증거까지는 갖지 못했다. 그러고는 이렇게 덧붙입니다. 정부는 주권이 침해되었다고 단정할 수도 없지만, 침해되지 않았다고 단정하지도 않는 자리에 서 있다.

김대중은 8월 13일 서울의 집에 나타났습니다. 한 의원의 말에 따르면 그는 그날 한밤중에 곧바로 서울에 있던 일본 대사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폐를 끼쳤다고 생각해서였다고 합니다. 배 위에서 무엇이 그를 살렸는지는 이 회의록에 적혀 있지 않습니다.

생각해 보기 한 나라의 기관이 다른 나라 안에서 벌인 일은 어떻게 다뤄야 할까요?

더 자세히 — 있다고도 없다고도 하지 않는다

색이 다른 대목은 자료에 적힌 문장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이 사건의 수사가 어디까지 갔는지는 일본 국회에서 오간 답변에 남아 있습니다. 수사기관이 국회에서 설명한 말이라 무엇을 찾았고 무엇을 못 찾았는지가 함께 적혀 있습니다.

먼저 현장에서 나온 것들입니다. 경찰은 남겨진 물건을 판 가게를 확인했고, 그날 한 시 반쯤 엘리베이터 안에서 범인 일당을 보았다는 목격자 두 명이 신고했다고 했습니다.

차를 찾는 일은 번호 뒷 네 자리만 가지고 시작했습니다. 그 네 자리에 해당하는 차가 도쿄에만 백육십한 대, 전국으로 하면 천이백열아홉 대였습니다.

그 많은 차를 하나씩 지워 나갔습니다. 그리고 국회에서 이렇게 보고합니다. 오랜 수사 끝에 이 번호는 거의 다 지워졌고, 이 차 한 대만 남았다.

남은 차가 누구 것이었는지도 적혀 있습니다. 이 차는 9월 5일자로 일본을 떠난 요코하마 영사관 부영사 소유의 차였습니다.

사람을 특정한 대목도 있습니다. 자치대신 겸 국가공안위원장은 현장 유류품 수사와 목격자 수사로부터 한국대사관 일등서기관을 지목하는 데 성공했다고 답했습니다.

증거도 나왔습니다. 법무대신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단 하나뿐인 호텔 이천이백십호실, 감금되었던 그 방 안에서 선명한 김동운 군의 지문이 나왔다.

그런데 그다음이 이 사건의 실제 모습입니다. 같은 법무대신의 발언입니다.

피해자가 없다, 가해자가 없다, 목격자가 없다, 참고인이 없다. 그들은 전부 본국으로 돌아갔다.

수사할 대상이 나라 밖으로 나가 버린 것입니다. 한국 쪽은 국제 관례를 들어 그 서기관의 출두 요구를 거절했습니다.

한국 쪽이 보낸 수사 자료의 요지도 국회에 보고되었습니다. 8월 8일 오후 한 시부터 9일 자정까지 일본에서 출항해 외국을 거치지 않고 국내 열여섯 개 항에 직접 들어온 배 일흔 척을 조사했고, 그 가운데 쉰아홉 척은 혐의점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9월 9일 김동운을 수사한 결과 범행에 가담한 혐의가 없다고 했습니다.

한쪽에서는 그 방에서 그의 지문이 나왔다고 하고, 다른 쪽에서는 혐의가 없다고 합니다.

같은 법무대신은 국회에서 이 사건의 성격을 한마디로 말하기도 했습니다. 한국이라는 국가가 일본의 주권을 침범한 것이다. 그리고 다른 자리에서는 수사와 외교상의 결착은 관계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몇 달 뒤 외무대신의 답변은 다릅니다. 주권을 침해했는가라는 가장 근본적인 물음에 대해 그는 상대편이 공권력이 관여한 문제가 아니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전한 뒤,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쪽도 배후 관계를 전부 밝혀 확실한 증거가 있으니 주권 침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는 데까지는 가 있지 않다.

그리고 정부의 자리를 이렇게 정리합니다. 정부는 주권 침해가 있었다고 단정할 수도 없지만, 없었다고도 단정하지 않는 입장에 서 있다.

같은 날 그는 한 가지를 더 분명히 합니다. 김대중 사건이 해결되었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지 않다.

한 의원이 다른 자리에서 한 말이 이 상태를 요약합니다. 일본 국민도 알 수 없고, 한국 국민도 알 수 없다.

확인하지 못한 것 백스물아홉 시간이라는 말, 배 위에서 있었던 일, 1998년 이후 한국 쪽 조사의 결과는 이 회의록에 없습니다. 8월 13일 귀가는 의원의 발언으로만 나오고 정부의 확인이 아닙니다.

일본 국회 회의록(국립국회도서관 국회회의록 검색시스템) 1973년 9~12월의 김대중 사건 관련 답변 — 9월 19일 중의원 결산위, 9월 25일 참의원 본회의, 11월 8일·16일 위원회, 12월 18일 참의원 외무위

한눈에 보기

무슨 일이 있었나

일본 도쿄에서 야당 지도자 김대중이 납치되어 129시간 뒤 서울 자택 부근에서 풀려났다. 한국 정보기관원의 관련 증거가 확인되며 한일 외교 문제로 비화했다.

왜 중요할까

권위주의 체제의 초국경적 정치 탄압, 국가기관의 책임, 주권 침해 문제를 다룰 수 있다.

핵심 키워드

  • 김대중 납치 사건

같은 시기, 다른 나라에서는

1973년 8월 언저리

연대가 겹치는 사건입니다. 같은 때에 일어났다는 뜻이지, 서로 원인과 결과라는 뜻은 아닙니다. 누르면 그 사건의 상세페이지로 갑니다.

그때 다른 나라의 임금

1973년 8월

같은 해에 다른 나라에서 자리에 있던 사람입니다. 나라마다 한 사람씩만 실었습니다. 왕조가 여럿 겹치던 나라는 왕조 연표에 나머지가 있습니다.

  • 이란(페르시아)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1941~1979
  • 일본 쇼와 천황(히로히토)1926~1989
  • 태국 푸미폰 아둔야뎃1946~2016
  • 영국 엘리자베스 2세1952~2022
  • 베냉 왕국 아켄주아 2세1933~1978
  • 아샨티 왕국 오포쿠 와레 2세1970~1999
  • 에티오피아 하일레 셀라시에 1세1930~1974
  • 통가 타우파하우 투포우 4세1965~2006

확인 문제

이 문제는 이 사건의 기록에 적힌 값으로 만든 것입니다. 답을 고르면 바로 알려 줍니다.

  1. 1.「김대중 납치 사건」은 언제 일어난 일일까요?

  2. 2.「김대중 납치 사건」이 일어난 곳은 어디일까요?

  3. 3.「김대중 납치 사건」에 나오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4. 4.「김대중 납치 사건」은 「소련 해체」보다 나중에 일어난 일이다.

  5. 5.「김대중 납치 사건」과 관련된 나라(정치체)는 어디일까요?

참고자료

이 사건이 속한 시기와 주제를 다루는 자료입니다. 본문의 개별 문장을 어디에서 확인했는지는 아직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료가 둘이어도 교차 검증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앞의 글자는 자료 등급으로, A는 당대 사료와 공식 문서, B는 학술 연구와 국가기관 해설, C는 백과사전과 개론 교재를 뜻합니다.

  • B신편 한국사 52책 · 국사편찬위원회 · 1993~2002 · public web service링크
  • A한국사데이터베이스 · 국사편찬위원회 · current · public web service링크
  • C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한국학중앙연구원 · current · public web service링크
  • A일본 국회 회의록 1973년 8~12월 — 김대중 납치 사건에 관한 정부 답변과 질의 · 국립국회도서관 국회회의록검색시스템 (kokkai.ndl.go.jp) · 1973 · 공공링크
  • A일본 국회 회의록 — 김대중 사건 관련 답변 (1973년 9~12월) · 国立国会図書館 国会会議録検索システム · 1973 · 공개링크

이 항목은 한국사 학술자료기반 핵심연표에서 정리된 연표를 옮긴 것입니다. 위 참고자료와는 역할이 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