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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W0025

아샨티와 다호메이 왕국

Asante and Dahomey kingdoms · 17~19세기

언제
17~19세기
어디서
서아프리카
어느 나라
아샨티·다호메이
무슨 사건
아샨티와 다호메이 왕국

대략의 연대 — 정확한 해를 특정하기 어려워 대략의 시기로 표시합니다.

그때 자리에 있던 임금

  • 모로코 모로크코의 알라시드الرشيد بن الشريف (모로코 술탄 20대 · 1666~1672)재위 연대에 이견이 있습니다
  • 에티오피아 요하네스 1세ቀዳማዊ ዓፄ ዮሐንስ (에티오피아 황제 37대 · 1667~1682)재위 연대에 이견이 있습니다

같은 지역의 여러 나라를 함께 보였습니다. 이 사건이 일어난 곳의 임금만이 아닙니다. 나라별 왕조 연표 보기

이야기로 읽는 역사 — 교역에 참여한 쪽의 책임

자체 이중 확인 · 사람 검수 전
언제 17~19세기어디서 서아프리카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서아프리카에는 강한 왕국들이 있었습니다. 아샨티와 다호메이가 그 가운데 잘 알려진 곳입니다.

이 시기 대서양을 건너 팔려 간 사람의 수는 계속 늘었습니다. 1600년부터 1650년까지는 한 해 평균 만 명쯤이었습니다. 그 세기 후반에는 한 해 이만 오천 명, 1700년부터는 한 해 오만 명이 넘었습니다.

왜 늘었을까요. 아메리카의 큰 농장 때문입니다. 설탕과 담배와 목화를 기르는 농장에 사람을 아주 많이 쓰려 했습니다. 사겠다는 쪽이 그만큼 커진 것입니다.

이 대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오랫동안 이렇게 설명해 왔습니다. 유럽이 총을 쥐고 있었기 때문에 아프리카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이 거래에 끌려들었다고요. 최근 연구는 그 설명이 약하다고 봅니다. 아프리카 통치자들은 끌려간 쪽이라기보다, 밖에서 들어온 이 기회를 자기 나라를 키우는 데 썼습니다.

그렇게 볼 만한 사정이 있었습니다. 이 지역은 사람이 드문드문 살아서, 땅보다 사람을 거느리는 것이 힘이었습니다. 그리고 바깥의 침략보다 안에서 갈라지는 것이 더 큰 위험이었습니다.

그래서 붙잡은 사람을 팔아 얻은 것으로 군대를 키우고 부하들을 붙들어 두었습니다. 다호메이가 그렇게 커진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그 대신 이런 나라들끼리 사람을 두고 다투게 되었고, 그 다툼은 몹시 파괴적이었습니다.

책임을 한쪽에만 두면 정확하지 않습니다. 사겠다는 수요를 만든 쪽과, 그 수요를 자기 힘으로 바꾼 쪽이 함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커진 나라들도 끝에는 유럽 제국주의에 정복되었습니다.

생각해 보기 한 사건의 책임이 여러 쪽에 있을 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더 자세히 — 옛 설명과 새 설명

색이 다른 대목은 자료에 적힌 문장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무엇이 얼마나 늘었는지부터 봅니다. 논문이 든 수는 이렇습니다.

1600년부터 1650년까지 대서양을 건너 실려 간 사람의 연평균 수는 만 명 안팎에서 오르내렸다. 그러다 그 세기 후반에는 한 해 이만 오천 명으로 올랐고, 1700년부터는 한 해 오만 명이 넘었다.

오십 년 사이에 다섯 배가 되었습니다.

왜 늘었는지도 한 문장에 있습니다. 이 엄청난 증가는 신대륙에서 플랜테이션 경제가 성장한 것을 반영했다. 그리고 플랜테이션 작물, 특히 설탕과 담배와 목화는 방대한 노예 노동력을 필요로 했다.

사겠다는 쪽이 커진 것이 먼저였습니다.

여기서부터가 이 논문이 다시 쓰는 대목입니다. 오랫동안 쓰여 온 설명이 있었습니다. 논문은 그 설명에 이름을 붙여 인용합니다.

이것은 「총-노예 순환」이라는 앞선 역사 해석을 무너뜨린다. 그 해석에 따르면 아프리카인들은 유럽인이 화기 공급을 통제했기 때문에 유럽인의 뜻에 따라 노예무역과 동족 간 전쟁으로 떠밀렸다는 것이다.

총을 쥔 쪽이 있었고 그 때문에 끌려들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설명은 책임의 자리를 분명히 해 주지만, 이 논문은 그것이 약하다고 봅니다.

대신 무엇을 보아야 하는지가 앞부분에 적혀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아프리카의 통치자들은 독특한 어려움에 맞닥뜨렸다. 인구 밀도가 낮아 영토보다 사람을 통제하는 일이 우선이었고, 바깥의 정복보다 안에서 무너지는 것이 더 큰 위협인 경우가 많았다.

이 조건에서 노예 수요가 커지자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논문은 이렇게 적습니다. 노예 수요의 엄청난 확대는 아프리카 통치자들에게 「밖에서 안으로」의 국가 건설을 위해 외부 자원을 쓸 기회를 늘려 주었다.

끌려간 것이 아니라 그 기회를 썼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썼는지도 구체적입니다. 이 통치자들과 통치자가 되려던 이들은 약탈적 폭력에서 나오는 늘어난 수익을 군대와 국가를 세우는 데 썼다. 그 방법이 둘로 나뉩니다. 직접적으로는 노예 병사를 징집하고 총을 사들이는 거래를 통해서였고, 간접적으로는 그 수입과 그 밖의 외국 물품으로 아랫사람들을 붙들어 두는 방식이었다.

군대를 만드는 데도 쓰고, 부하들을 자기 편에 묶어 두는 데도 썼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커진 나라들 사이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가 이어집니다. 포로를 두고 벌어지는 경쟁이 심해지면서 이 약탈적 국가들은 체계적이고 맹렬하게 파괴적인 군사 경쟁으로 끌려들어 갔다.

사람을 얻어 강해지는 방식이었으므로, 강해질수록 서로 사람을 빼앗으려 싸우게 되었습니다.

논문은 서아프리카의 몇 나라를 그 사례로 듭니다. 그리고 그 문장이 이렇게 끝납니다. 유럽 제국주의자들에게 정복될 때까지.

이 이야기의 결말이 그것입니다. 밖에서 온 기회로 커진 나라들이, 결국 그 밖에서 온 힘에 무너졌습니다.

책임을 한쪽에만 두면 정확하지 않다는 말은 이런 뜻입니다. 사겠다는 수요를 만든 쪽이 있었고, 그 수요를 자기 힘으로 바꾼 쪽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두 설명 가운데 어느 쪽이 옛 설명이고 어느 쪽이 최근의 것인지를 알고 읽는 것도 그 정확함의 한 부분입니다.

확인하지 못한 것 아샨티의 금 교역, 다호메이의 여성 부대, 그리고 두 왕국의 시작과 끝 연대는 이 논문이 다루지 않습니다.

J. C. Sharman, 「Something New out of Africa: States Made Slaves, Slaves Made States」, *International Organization* 77(Cambridge UP, 2023, 오픈액세스)

한눈에 보기

무슨 일이 있었나

서아프리카에 강한 왕국들이 서 대서양 교역에 깊이 관여했다.

왜 중요할까

노예무역에 참여한 아프리카 세력의 역할도 함께 보아야 한다.

핵심 키워드

  • 아샨티
  • 다호메이

같은 시기, 다른 나라에서는

17~19세기 언저리

연대가 겹치는 사건입니다. 같은 때에 일어났다는 뜻이지, 서로 원인과 결과라는 뜻은 아닙니다. 누르면 그 사건의 상세페이지로 갑니다.

그때 다른 나라의 임금

17~19세기

같은 해에 다른 나라에서 자리에 있던 사람입니다. 나라마다 한 사람씩만 실었습니다. 왕조가 여럿 겹치던 나라는 왕조 연표에 나머지가 있습니다.

  • 미얀마 프예 민1661~1672
  • 오스만 제국 메흐메트 4세1648~1687
  • 이란(페르시아) 솔레이만 1세1666~1694
  • 인도 아우랑제브1658~1707
  • 일본 도쿠가와 이에쓰나1651~1680
  • 중국 강희제1661~1722
  • 캄보디아 바롬 리아치아 6세1658~1672
  • 태국 나라이1656~1688
  • 한국 현종1659년~1674년
  • 러시아 알렉세이 1세1645~1676
  • 신성로마제국 레오폴트 1세1658~1705
  • 에스파냐 카를로스 2세1665~1700
  • 영국 찰스 2세1660~1685
  • 포르투갈 아폰수 6세1656~1683
  • 프랑스 루이 14세1643~1715

확인 문제

이 문제는 이 사건의 기록에 적힌 값으로 만든 것입니다. 답을 고르면 바로 알려 줍니다.

  1. 1.「아샨티와 다호메이 왕국」은 언제 일어난 일일까요?

  2. 2.「아샨티와 다호메이 왕국」이 일어난 곳은 어디일까요?

  3. 3.「아샨티와 다호메이 왕국」과 관련된 나라(정치체)는 어디일까요?

  4. 4.「아샨티와 다호메이 왕국」은 어느 지역의 역사일까요?

  5. 5.「아샨티와 다호메이 왕국」은 「백강 전투」보다 먼저 일어난 일이다.

참고자료

이 사건이 속한 시기와 주제를 다루는 자료입니다. 본문의 개별 문장을 어디에서 확인했는지는 아직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료가 둘이어도 교차 검증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앞의 글자는 자료 등급으로, A는 당대 사료와 공식 문서, B는 학술 연구와 국가기관 해설, C는 백과사전과 개론 교재를 뜻합니다.

  • CWorld History, Volume 2: from 1400 · OpenStax / Rice University · 2022 · CC BY-NC-SA 4.0링크
  • CWorld History Since 1500: An Open and Free Textbook · East Tennessee State University · 2022 · CC BY 4.0; images separate링크
  • BJ. C. Sharman, "Something New out of Africa: States Made Slaves, Slaves Made States", International Organization 77 · Cambridge University Press (오픈액세스) · 2023 · open access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