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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로마W0108

밀라노 칙령

Edict of Milan · 313년

언제
313년
어디서
로마 제국
어느 나라
로마 제국
누가
콘스탄티누스 1세, 리키니우스
무슨 사건
밀라노 칙령

연도가 특정된 연대

그때 자리에 있던 임금

  • 로마 콘스탄티누스 1세 (테트라키아와 콘스탄티누스 체제 4대 · 307~337) / 리키니우스 (테트라키아와 콘스탄티누스 체제 9대 · 308~324) / 막시미누스 다이아 (테트라키아와 콘스탄티누스 체제 8대 · 309~313)

같은 지역의 여러 나라를 함께 보였습니다. 이 사건이 일어난 곳의 임금만이 아닙니다. 나라별 왕조 연표 보기

이야기로 읽는 역사 — 믿는 것을 벌하지 않기로 하다

자체 이중 확인 · 사람 검수 전
언제 313년어디서 로마 제국누가 콘스탄티누스 1세(Constantinus I)

313년, 두 황제 콘스탄티누스와 리키니우스가 밀라노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정한 것을 리키니우스가 그해 6월에 문서로 냈습니다.

그 문서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기독교인이든 다른 누구든, 저마다 가장 좋다고 여기는 방식으로 믿을 자유를 가지는 것이 옳다고 보았다.

그리고 덧붙였습니다. 기독교인에게 준 이 허락은 넉넉하고 조건이 없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저마다의 종교를 드러내 놓고 자유롭게 지킬 자유를 준다.

재산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때까지 나라나 다른 사람이 사들였던 기독교인들의 모임 장소를, 값을 받지 말고 돌려주라고 했습니다. 모임 전체가 가지고 있던 다른 장소들도 함께 돌려주게 했습니다.

산 사람들이 손해를 보게 되지는 않았습니다. 값을 물어 달라고 지방 재판관에게 신청할 수 있게 했습니다. 문서를 낸 뒤 리키니우스는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했습니다. 기독교인들에게 무너진 건물을 다시 세우라고 권했다고 합니다.

이 조치를 흔히 밀라노 칙령이라고 부릅니다. 다만 남아 있는 글은 두 황제가 밀라노에서 합의한 것을 리키니우스가 지방장관 앞으로 낸 편지 형식입니다.

이 문서를 전한 락탄티우스는 마지막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교회가 무너진 때부터 되세워질 때까지 십 년 하고 넉 달쯤이 걸렸다.

생각해 보기 나라가 종교를 인정하면 그 종교에는 어떤 변화가 생길까요?

더 자세히 — 기독교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색이 다른 대목은 자료에 적힌 문장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이 문서가 어떤 형식이었는지부터 봅니다. 흔히 「칙령」이라 부르는데, 락탄티우스가 전하는 것은 그것이 어떻게 공포되었는가입니다.

한 황제가 니코메디아에 들어간 뒤 교회의 회복을 위한 다음 칙령을 그 속주의 장관 앞으로 공포하도록 명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지방장관에게 보내 그곳에 붙이게 한 문서입니다. 온 제국에 한꺼번에 선포된 하나의 법이라기보다, 각 지역으로 내려간 지시의 형태였습니다.

본문의 시작은 두 사람이 만난 일을 적습니다. 우리 콘스탄티누스와 리키니우스 두 황제가 밀라노에서 회견하였을 때.

그리고 무엇을 정했는지가 이어집니다. 기독교인들과 그 밖의 모든 사람이 각자에게 가장 좋아 보이는 종교의 방식을 따를 자유를 갖는 것이 마땅하다.

여기서 「그 밖의 모든 사람」이 눈에 띕니다. 이 문서는 그것을 한 번 더 못 박습니다.

우리가 기독교인들에게 종교 문제에서 부여한 관용은 충분하고 조건이 없으며, 동시에 그들 각자의 종교를 공개적이고 자유롭게 행할 권리가 기독교인들에게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에게도 부여됨을 인식하라.

한 종교를 허용한 문서가 아니라, 각자 고르게 한 문서입니다. 그 차이가 조문 안에 두 번 적혀 있습니다.

재산에 관한 조항도 있습니다. 빼앗겼던 곳을 돌려주라는 것인데, 그 방식이 흥미롭습니다.

그런 장소를 사들인 모든 사람은 돈을 요구하거나 값을 청구하지 말고 그것을 기독교인들에게 돌려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뒤에 다른 조항이 붙습니다. 그 사람들이 손해를 그대로 떠안게 두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우리의 은전으로부터 그에 상당하는 것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그 지역의 판관에게 신청할 수 있도록 언제나 유보한다.

돌려주는 일은 먼저 하고, 그 값은 나라에 청구하게 한 것입니다. 되돌리면서 새로 억울한 사람을 만들지 않으려는 조항입니다.

돌려줄 것의 범위도 넓혔습니다. 예배에 쓰던 장소만이 아니라 개인이 아니라 그들 단체 전체에, 곧 그들의 교회에 속하던 다른 장소들까지 같은 규정 안에 넣었습니다.

문서를 낸 뒤에 무엇을 했는지도 적혀 있습니다. 리키니우스는 이 법령을 낸 뒤 연설을 했고, 그 연설에서 기독교인들에게 자기들의 종교 건물을 다시 세우라고 권했다.

문서를 붙이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사람들 앞에서 다시 지으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 장의 끝에는 기간이 하나 적혀 있습니다.

교회가 무너진 때로부터 회복될 때까지 십 년 하고 넉 달쯤의 시간이 있었다.

셈해 둔 사람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 십 년 넉 달을 지나온 사람이 그것을 적었습니다.

다만 이 기록을 전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고 읽어야 합니다. 그는 기독교 쪽 저술가이고, 이 책의 제목 자체가 박해한 사람들이 어떻게 죽었는지에 관한 것입니다.

확인하지 못한 것 박해의 배경과 규모, 다른 저술가가 전하는 판본과의 차이, 그리고 국교가 된 시점은 이 자료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락탄티우스 『박해자들의 죽음에 관하여』 제48장(Ante-Nicene Fathers 제7권, Fletcher 영역), en.wikisource — 지은이는 기독교 쪽 저술가입니다

한눈에 보기

무슨 일이 있었나

기독교를 포함한 종교 신앙의 자유를 인정하는 방향의 정책이 시행되었다.

왜 중요할까

로마 국가와 기독교의 관계가 크게 바뀌는 과정의 중요한 사건이다.

핵심 키워드

  • 기독교
  • 관용

같은 시기, 다른 나라에서는

313년 언저리

연대가 겹치는 사건입니다. 같은 때에 일어났다는 뜻이지, 서로 원인과 결과라는 뜻은 아닙니다. 누르면 그 사건의 상세페이지로 갑니다.

그때 다른 나라의 임금

313년

같은 해에 다른 나라에서 자리에 있던 사람입니다. 나라마다 한 사람씩만 실었습니다. 왕조가 여럿 겹치던 나라는 왕조 연표에 나머지가 있습니다.

  • 이란(페르시아) 샤푸르 2세310~379
  • 인도 가토카챠굽타280~319
  • 일본 닌토쿠 천황313~399
  • 중국 민제313~316
  • 한국 미천왕300년~331년

확인 문제

이 문제는 이 사건의 기록에 적힌 값으로 만든 것입니다. 답을 고르면 바로 알려 줍니다.

  1. 1.「밀라노 칙령」은 언제 일어난 일일까요?

  2. 2.「밀라노 칙령」이 일어난 곳은 어디일까요?

  3. 3.「밀라노 칙령」은 「아크바르의 통치」보다 나중에 일어난 일이다.

  4. 4.「밀라노 칙령」에 나오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5. 5.「밀라노 칙령」과 관련된 나라(정치체)는 어디일까요?

참고자료

이 사건이 속한 시기와 주제를 다루는 자료입니다. 본문의 개별 문장을 어디에서 확인했는지는 아직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료가 둘이어도 교차 검증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앞의 글자는 자료 등급으로, A는 당대 사료와 공식 문서, B는 학술 연구와 국가기관 해설, C는 백과사전과 개론 교재를 뜻합니다.

  • CWorld History, Volume 1: to 1500 · OpenStax / Rice University · 2023 · CC BY-NC-SA 4.0링크
  • B락탄티우스 『박해자들의 죽음에 관하여』 제48장 — 이른바 「밀라노 칙령」의 문면 · Ante-Nicene Fathers 제7권 (William Fletcher 역) / 영어 위키문헌 전사 · 315 · public domain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