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적십자위원회 창설
Founding of the International Committee of the Red Cross · 1863년
- 언제
- 1863년
- 어디서
- 제네바
- 어느 나라
- 스위스
- 누가
- 앙리 뒤낭
- 어느 기관
- 국제적십자위원회
- 무슨 사건
- 국제적십자위원회 창설
연도가 특정된 연대
그때 자리에 있던 임금
- 러시아 알렉산드르 2세 (러시아 황제 12대 · 1855~1881)
- 에스파냐 이사벨 2세 (에스파냐 국왕 · 부르봉 왕조 이후 8대 · 1833~1868)
- 영국 빅토리아 (하노버 왕가 6대 · 1837~1901)
- 오스트리아 프란츠 요제프 1세 (오스트리아 황제 3대 · 1848~1916)
- 포르투갈 루이스 1세 (포르투갈 국왕 33대 · 1861~1889)
- 프랑스 나폴레옹 3세 (혁명 뒤 6대 · 1852~1870)
같은 지역의 여러 나라를 함께 보였습니다. 이 사건이 일어난 곳의 임금만이 아닙니다. 나라별 왕조 연표 보기
이야기로 읽는 역사 — 전쟁에도 규칙을 두다
1859년 6월, 이탈리아 북부 솔페리노에서 큰 전투가 있었습니다. 스위스 사람 앙리 뒤낭이 일 때문에 그 근처를 지나다가 전투가 끝난 들판을 보았습니다.
다친 사람을 나를 사람도, 돌볼 사람도 턱없이 모자랐습니다. 뒤낭은 가까운 마을 카스틸리오네에서 마을 여자들과 함께 그들을 돌보았습니다. 자기가 나라를 가리지 않자 여자들도 그렇게 했다고 그는 적었습니다. 그 여자들이 되풀이한 말이 「투티 프라텔리」, 모두가 형제라는 뜻이었습니다.
뒤낭은 그때 본 것을 책으로 냈습니다. 그 책 끝에 두 가지를 제안합니다. 하나는 미리 훈련받고 군 지휘관에게 공식으로 인정받은 자원 간호 인력을 나라마다 미리 두자는 것입니다. 오늘 살릴 수 있는 사람도 내일이면 살리지 못한다고 그는 적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전쟁이 나기 전에 여러 나라가 모여 하나의 원칙을 정해 두자는 것입니다. 싸움이 시작되면 서로 자기 이익만 보게 되어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 단체들은 전염병이나 홍수, 큰불 같은 때에도 쓸모가 있으리라고도 적었습니다.
1864년 8월 22일, 제네바에서 열두 나라의 대표가 짧은 조약에 서명했습니다. 조항은 열 개뿐입니다.
제1조는 야전병원과 이동 진료소를 중립으로 인정하고, 그 안에 아프거나 다친 사람이 있는 한 지키고 존중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제2조는 의사와 간호하는 사람, 다친 이를 나르는 사람, 종군 사제도 같은 보호를 받는다고 했습니다.
제5조는 다친 사람을 돕는 그 고장 사람은 존중받고 자유롭게 남는다고 했습니다. 제6조는 한 문장입니다. 다치거나 병든 병사는 어느 나라 사람이든 받아들여 돌본다. 제7조는 표시를 정했습니다. 흰 바탕에 붉은 십자입니다.
전쟁을 없애는 문서가 아닙니다. 전쟁 안에서도 건드리지 않기로 한 것을 정한 문서입니다. 한 사람이 책 끝에 적어 둔 제안이 몇 해 만에 조약의 조문이 된 것입니다.
생각해 보기 전쟁을 막을 수 없다면 무엇이라도 정해 두는 편이 나을까요?
더 자세히 — 열 개 조항이 정한 것
색이 다른 대목은 자료에 적힌 문장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이 협약은 짧습니다. 열 개 조항뿐이고 열두 나라가 서명했습니다. 그 열 개가 무엇을 정했는지 보면 이 문서가 무엇을 하려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전문은 목표를 이렇게 적습니다. 전쟁의 해악을 그들에게 달린 만큼 누그러뜨리고, 쓸모없는 가혹함을 없애며, 전장에서 부상당한 병사의 운명을 개선하려는 바람.
전쟁을 없애겠다고 하지 않습니다. 전쟁이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그 안에서 무엇을 줄일지를 적은 문서입니다.
제1조는 자리를 정합니다. 구급차와 군 병원은 중립으로 인정된다. 다만 조건이 붙습니다. 그 안에 병자나 부상자가 있는 한입니다.
제6조는 이 협약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문장입니다. 부상하거나 병든 병사는 어느 나라에 속하든 돌봄을 받는다. 적인지 아군인지를 묻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협약에서 눈여겨볼 것은 제5조입니다. 군인이 아니라 그 지역에 사는 보통 사람에 관한 조항입니다.
부상자를 도우러 오는 그 나라의 주민은 존중받으며 자유롭게 남는다. 그리고 이렇게 이어집니다. 집에 들여 돌본 부상자는 그 집에 대한 보호로 여겨진다.
다친 사람을 집에 들이면 그 집이 보호를 받는다는 뜻입니다. 실제 혜택도 적어 두었습니다. 그런 집은 군대의 숙영과 전쟁 분담금의 일부를 면제받습니다.
돕는 일이 위험을 부르지 않도록, 오히려 지켜 주는 쪽으로 규칙을 짠 것입니다.
제7조가 표시를 정합니다. 흰 바탕에 붉은 십자.
이 모든 것의 출발점에 한 사람이 본 장면이 있습니다. 뒤낭이 솔페리노 전투 뒤 카스틸리오네에서 겪은 일입니다. 그는 다친 사람을 국적을 가리지 않고 돌보았는데, 그것을 본 마을 여인들이 어떻게 했는지 적어 두었습니다.
카스틸리오네의 여인들은 내가 국적을 가리지 않는 것을 보고 내 본을 따랐다. 그들에게는 모두가 똑같이 낯선 사람이었는데도 그랬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되뇌던 말이 남았습니다. 투티 프라텔리. 모두 형제라는 뜻입니다.
확인하지 못한 것 국제적십자위원회 자체가 어떤 과정으로 세워졌는지는 이 두 자료 밖의 일입니다.
「제1차 제네바 협약」(1864-08-22) 전문, en.wikisource · Henri Dunant, *The Origin of the Red Cross: "Un souvenir de Solferino"*(1911년 영역), archive.org 전문
한눈에 보기
무슨 일이 있었나
전쟁터의 부상자를 편을 가리지 않고 돌보자는 취지로 기구가 만들어졌다.
왜 중요할까
이듬해 제네바 협약으로 이어져 전쟁에도 규칙이 있다는 원칙이 자리 잡았다.
핵심 키워드
- 적십자
- 국제인도법
같은 시기, 다른 나라에서는
1863년 언저리연대가 겹치는 사건입니다. 같은 때에 일어났다는 뜻이지, 서로 원인과 결과라는 뜻은 아닙니다. 누르면 그 사건의 상세페이지로 갑니다.
그때 다른 나라의 임금
1863년같은 해에 다른 나라에서 자리에 있던 사람입니다. 나라마다 한 사람씩만 실었습니다. 왕조가 여럿 겹치던 나라는 왕조 연표에 나머지가 있습니다.
- 미얀마 민둔왕1853~1878
- 오스만 제국 압뒬라지즈1861~1876
- 이란(페르시아) 나세르 앗딘 샤1848~1896
- 이슬람권 사이드1854~1863
- 인도네시아 하멩쿠부워노 6세1855~1877
- 일본 고메이 천황1846~1867
- 중국 동치제1861~1875
- 태국 몽꿋1851~1868
- 한국 철종1849년~1863년
- 모로코 모로크코의 무하마드 4세1859~1873
- 에티오피아 Tewodros II1855~1868
- 브라질 제국 페드루 2세1831~1889
- 통가 라우피리토아1827~1865
확인 문제
이 문제는 이 사건의 기록에 적힌 값으로 만든 것입니다. 답을 고르면 바로 알려 줍니다.
1.「국제적십자위원회 창설」은 「송가이 제국의 전성기」보다 먼저 일어난 일이다.
2.「국제적십자위원회 창설」은 언제 일어난 일일까요?
3.「국제적십자위원회 창설」이 일어난 곳은 어디일까요?
4.「국제적십자위원회 창설」에 나오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5.「국제적십자위원회 창설」과 관련된 나라(정치체)는 어디일까요?
참고자료
이 사건이 속한 시기와 주제를 다루는 자료입니다. 본문의 개별 문장을 어디에서 확인했는지는 아직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료가 둘이어도 교차 검증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앞의 글자는 자료 등급으로, A는 당대 사료와 공식 문서, B는 학술 연구와 국가기관 해설, C는 백과사전과 개론 교재를 뜻합니다.
- CWorld History, Volume 2: from 1400 · OpenStax / Rice University · 2022 · CC BY-NC-SA 4.0링크
- CWorld History Since 1500: An Open and Free Textbook · East Tennessee State University · 2022 · CC BY 4.0; images separate링크
- A「전지(戰地) 군대 부상자의 상태 개선에 관한 협약」(제1차 제네바 협약, 1864년 8월 22일) · en.wikisource 전사 (미국 정부 공식 영역, 22 Stat. 940) · 1864 · public domain링크
- CThe Origin of the Red Cross: "Un souvenir de Solferino" (1911년 영역본) · Henri Dunant; tr. Mrs. David H. Wright, John C. Winston Co., Philadelphia · 1911 · 공개(퍼블릭 도메인)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