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지 유신
Meiji Restoration · 1868년
- 언제
- 1868년
- 어디서
- 일본
- 어느 나라
- 일본
- 누가
- 메이지 천황 등
- 무슨 사건
- 메이지 유신
연도가 특정된 연대
그때 자리에 있던 임금
- 미얀마 민둔왕 (미얀마(버마) 국왕 27대 · 1853~1878)
- 오스만 제국 압뒬라지즈 (오스만 제국 술탄 32대 · 1861~1876)
- 이란(페르시아) 나세르 앗딘 샤 (카자르 왕조 4대 · 1848~1896)
- 이슬람권 이스마일Isma'il (무함마드 알리 왕조(이집트) 5대 · 1863~1879)재위 연대에 이견이 있습니다
- 일본 도쿠가와 요시노부 (에도(도쿠가와) 막부 쇼군 15대 · 1866~1868) / 메이지 천황 (천황(天皇) 122대 · 1867~1912)
- 태국 몽꿋 (태국(시암) 국왕 29대 · 1851~1868) / 쭐랄롱꼰 (태국(시암) 국왕 30대 · 1868~1910)
같은 지역의 여러 나라를 함께 보였습니다. 이 사건이 일어난 곳의 임금만이 아닙니다. 나라별 왕조 연표 보기
이야기로 읽는 역사 — 문서로 먼저 적어 둔 나라
1868년 봄, 일본에 새 정부가 섰습니다. 이 정부가 처음 내놓은 문서는 법이 아니라 맹세였습니다. 다섯 조항으로 된 짧은 글입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널리 회의를 열어 모든 일을 여럿의 의논으로 정한다. 위와 아래가 마음을 하나로 하여 나라 살림을 힘써 편다. 관리와 무사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저마다 뜻을 이루어 마음이 지치지 않게 한다. 오래된 나쁜 관습을 깨고 천지의 바른 길에 따른다. 지식을 세계에서 구하여 나라의 터를 크게 일으킨다.
마지막 조항이 그다음 이십 년을 설명합니다. 배우러 나가는 나라가 되겠다는 뜻입니다. 다만 이것은 하겠다는 말이고, 무엇을 어떻게 바꿀지는 뒤에 나온 문서들에 적혀 있습니다.
1871년의 조서는 지방 제도를 바꾸었습니다. 이유를 이렇게 적었습니다. 안으로 백성을 지키고 밖으로 세계의 여러 나라와 마주 서려면 이름과 실제가 맞아야 하고 명령이 한 곳에서 나와야 한다고요. 수백 년 이어 온 곳들 가운데 이름만 있고 실속은 없는 데가 있다고도 적었습니다. 그래서 번을 없애고 현을 두었습니다.
이듬해에는 병역을 정했습니다. 스무 살이 된 사내는 신분을 가리지 않고 모두 병적에 올리기로 했습니다. 이 문서는 그 뜻을 스스로 밝힙니다. 이제 무사는 예전의 무사가 아니고 백성은 예전의 백성이 아니며 다 같이 나라의 백성이라고요. 대대로 녹을 받아 살던 무사는 녹이 줄었고 칼을 풀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습니다.
같은 문서에 눈에 띄는 말이 하나 있습니다. 서양 사람들은 이것을 피의 세금이라 부르는데, 제 피로 나라에 갚는다는 뜻이라고 적어 두었습니다. 나라가 사람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 스스로 그렇게 설명한 것입니다.
또 같은 해에 학교 제도를 정했습니다. 목표가 한 문장으로 적혀 있습니다. 마을에 배우지 않는 집이 없고 집에 배우지 않는 사람이 없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동안은 학문이 무사 위쪽의 일로 여겨져 농사꾼과 장인과 장사꾼, 그리고 여자는 아예 셈에 넣지 않았다고 이 문서가 스스로 인정합니다. 어린아이는 남녀 구분 없이 소학교에 보내야 하고, 보내지 않으면 부모의 잘못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단서가 붙어 있습니다. 학비까지 관청에 기대던 버릇을 고쳐 스스로 힘써 배우라는 것입니다. 새 제도의 짐이 어디로 갔는지가 이 한 줄에 남아 있습니다. 이 문서들은 하겠다는 선언이고, 실제로 어떻게 되었는지는 문서 밖에서 따로 살펴야 합니다. 한 예가 1877년입니다. 칼을 내려놓게 된 무사 사만 명쯤이 남쪽에서 군사를 일으켰습니다. 군대의 자리를 다시 자기들 것으로 되돌리겠다는 것이 내건 뜻이었습니다. 여덟 달 만에 진압되었고 양쪽에서 삼만 명이 넘게 죽거나 다쳤습니다. 징병으로 모은 군대가 무사를 상대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이 그때 답을 얻었습니다.
생각해 보기 빠르게 강해진 나라가 이웃에게 어떤 존재가 되었을까요?
더 자세히 — 같은 백성이라는 말이 부른 것
색이 다른 대목은 자료에 적힌 문장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번을 없애고 현을 두겠다는 조서에는 그 까닭이 적혀 있습니다. 이름은 있으나 그 실질이 서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름과 실질이 서로 맞게 하여 정령이 하나로 돌아가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무엇을 위해서인지도 이어집니다. 안으로는 억조창생을 편안히 지키고 밖으로는 만국과 마주 서기 위해서라고 적었습니다.
이듬해의 징병 고유는 더 나아갑니다. 범위부터 이렇습니다. 전국 사민의 남자로서 스무 살에 이른 자는 모두 병적에 편입한다.
그리고 신분에 대해 한 문장을 선언합니다. 사는 예전의 사가 아니고 민은 예전의 민이 아니다. 다 같이 황국 일반의 백성이다.
같은 문서에서 세습 무사의 녹을 줄이고 칼을 풀도록 허락했습니다. 서양 사람들이 이것을 혈세라 부른다는 말도 그 안에 적혀 있습니다.
문서는 이렇게 반듯한데, 받는 쪽에서는 어땠을까요.
뒷날의 기록은 이렇게 적습니다. 당연히 이 법은 사무라이들에게 충격이었다. 그런데 무엇이 더 아팠는지를 갈라 놓은 대목이 눈에 띕니다. 수입이 크게 줄어든 것은 아마 그들에게 덜 아팠을 것이다. 칼을 내려놓아야 하고, 무장하여 나라를 대표한다는 전통적 권리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보다는.
그들이 무엇을 기대했는지도 적혀 있습니다. 그들은 육군과 해군에서의 복무가 오직 자기들과 자기 아들들에게만 남겨지리라 여겼는데, 징병법에 따라 백성 가운데 가장 평범한 한 사람도 똑같이 자격을 갖게 되었다.
「다 같이 황국 일반의 백성」이라는 그 한 문장이 어떤 뜻이었는지가 여기서 드러납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올라서는 말이었고, 어떤 사람에게는 잃는 말이었습니다.
몇 해 뒤 그 다툼은 전쟁이 됩니다. 사쓰마에서 일어난 무리는 사만 명쯤이었고 모두 사무라이 계층이었습니다. 내건 목적도 분명했습니다. 군사 계급을 옛 자리로 되돌리고, 육군과 해군의 모든 자리를 그들에게 보장하는 것이었습니다.
싸움은 1877년 정월 말에 시작해 그해 가을에 끝났습니다. 여덟 달 동안 정부는 육만이 넘는 군사를 냈고, 양쪽 사상자는 삼만 명이 넘어 참전한 사람의 삼분의 일에 이르렀습니다. 봉기를 이끈 사람들은 모두 싸움에서 죽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이 전쟁이 실제로 무엇을 판가름했는지를 그 책은 한 물음으로 적어 놓았습니다. 징집병으로 이루어진 군대가, 사무라이와 맞서 싸울 수 없다고 여겨지던 그 군대가, 무사 가운데 정예를 상대로 버틸 수 있는가.
학교에 관한 문서에는 다른 종류의 각오가 적혀 있습니다. 목표는 이렇습니다. 마을에 배우지 않는 집이 없고 집에 배우지 않는 사람이 없게 하기를 기한다.
남녀를 가리지 않고 소학교에 보내지 않으면 부형의 잘못이라고 적었습니다. 다만 그 뒤에 단서가 붙습니다. 학비를 관에 기대지 말라는 것입니다.
모두를 가르치겠다는 문장과, 그 값은 각자 대라는 문장이 한 문서 안에 나란히 있습니다.
확인하지 못한 것 1853년 미국 군함의 내항과 불평등조약, 이와쿠라 사절단, 타이완·류큐로의 팽창은 이 자료들 밖입니다. 브링클리의 책은 1915년에 나온 통사라 수와 날짜와 내건 목적만 옮기고 저자의 평가는 쓰지 않았습니다.
ja.wikisource의 『法令全書』 전사 — 「五ヶ條ノ御誓文」(1868)·「廢藩置縣ノ詔書」(1871)·「徵兵令詔書及ヒ徵兵吿諭」(1872)·「学制」被仰出書(1872) · F. Brinkley, 『A History of the Japanese People…』(1915), Project Gutenberg 전문
한눈에 보기
무슨 일이 있었나
막부가 무너지고 새 정부가 군사·교육·행정·산업 제도를 빠르게 개편했다.
왜 중요할까
근대화와 국가역량 강화가 이후 제국주의 팽창과도 연결된 점을 함께 봐야 한다.
핵심 키워드
- 메이지
- 근대화
같은 시기, 다른 나라에서는
1868년 언저리연대가 겹치는 사건입니다. 같은 때에 일어났다는 뜻이지, 서로 원인과 결과라는 뜻은 아닙니다. 누르면 그 사건의 상세페이지로 갑니다.
그때 다른 나라의 임금
1868년같은 해에 다른 나라에서 자리에 있던 사람입니다. 나라마다 한 사람씩만 실었습니다. 왕조가 여럿 겹치던 나라는 왕조 연표에 나머지가 있습니다.
- 인도네시아 하멩쿠부워노 6세1855~1877
- 중국 동치제1861~1875
- 한국 고종1863년~1897년
- 러시아 알렉산드르 2세1855~1881
- 에스파냐 이사벨 2세1833~1868
- 영국 빅토리아1837~1901
- 오스트리아 프란츠 요제프 1세1848~1916
- 포르투갈 루이스 1세1861~1889
- 프랑스 나폴레옹 3세1852~1870
- 모로코 모로크코의 무하마드 4세1859~1873
- 에티오피아 Tewodros II1855~1868
- 브라질 제국 페드루 2세1831~1889
- 통가 조지 투포우 1세1845~1893
확인 문제
이 문제는 이 사건의 기록에 적힌 값으로 만든 것입니다. 답을 고르면 바로 알려 줍니다.
1.「메이지 유신」은 언제 일어난 일일까요?
2.「메이지 유신」이 일어난 곳은 어디일까요?
3.「메이지 유신」에 나오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4.「메이지 유신」과 관련된 나라(정치체)는 어디일까요?
5.「메이지 유신」은 「몽골 1차 침입」보다 나중에 일어난 일이다.
참고자료
이 사건이 속한 시기와 주제를 다루는 자료입니다. 본문의 개별 문장을 어디에서 확인했는지는 아직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료가 둘이어도 교차 검증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앞의 글자는 자료 등급으로, A는 당대 사료와 공식 문서, B는 학술 연구와 국가기관 해설, C는 백과사전과 개론 교재를 뜻합니다.
- CWorld History, Volume 2: from 1400 · OpenStax / Rice University · 2022 · CC BY-NC-SA 4.0링크
- CWorld History Since 1500: An Open and Free Textbook · East Tennessee State University · 2022 · CC BY 4.0; images separate링크
- A「五ヶ條ノ御誓文」(오개조 서문) — 慶應 4년 3월 14일(1868년 4월 6일), 『法令全書』 제156 · ja.wikisource 전사 · 1868 · public domain링크
- A「廢藩置縣ノ詔書」(폐번치현 조서) — 明治 4년 7월 14일(1871년 8월 29일) 太政官, 『法令全書』 제350 · ja.wikisource 전사 · 1871 · public domain링크
- A「徵兵令詔書及ヒ徵兵吿諭」(징병령 조서와 징병 고유) — 明治 5년 11월 28일 太政官布告 제379호 · ja.wikisource 전사 · 1872 · public domain링크
- A「学制」 被仰出書 — 明治 5년 8월 2일(1872년 9월 4일) 太政官布告 제214호 · ja.wikisource 전사 (저본 『法令全書』 明治5年, 內閣官報局) · 1872 · public domain링크
- CA History of the Japanese People from the Earliest Times to the End of the Meiji Era · Frank Brinkley (with Baron Kikuchi Dairoku) · 1915 · 공개(퍼블릭 도메인)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