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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W0371

유럽 대학과 인쇄술의 결합

Universities and printing in Europe · 1440~1450년대

언제
1440~1450년대
어디서
마인츠·볼로냐
누가
디에무디스
어느 기관
볼로냐 대학, 파리 대학
무슨 사건
유럽 대학과 인쇄술의 결합

대략의 연대 — 정확한 해를 특정하기 어려워 대략의 시기로 표시합니다.

그때 자리에 있던 임금

  • 비잔티움 제국 요안니스 8세 팔레올로고스 (비잔티움 · 팔레올로고스 왕조 9대 · 1425~1448)
  • 영국 헨리 6세 (랭커스터 왕가 3대 · 1422~1461, 1470~1471) / 제임스 2세 (스코틀랜드 군주 40대 · 1437~1460)
  • 포르투갈 아폰수 5세 (포르투갈 국왕 12대 · 1438~1481)
  • 프랑스 샤를 7세 (발루아 왕조 · 프랑스 왕국 5대 · 1422~1461)

같은 지역의 여러 나라를 함께 보였습니다. 이 사건이 일어난 곳의 임금만이 아닙니다. 나라별 왕조 연표 보기

이야기로 읽는 역사 — 같은 책을 여러 곳에서 읽다

자체 이중 확인 · 사람 검수 전
언제 1440~1450년대어디서 마인츠

유럽에는 인쇄술이 나오기 전부터 대학이 있었습니다. 볼로냐와 파리의 대학은 12세기 무렵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때까지 책은 손으로 베꼈습니다. 그래서 책이 얼마나 귀했는지 숫자로 보면 놀랍습니다.

9세기 루카 대성당의 도서관에 있던 책은 열아홉 권이었습니다. 1212년 노바라 대성당이 자랑할 수 있었던 것은 보에티우스와 프리스키아누스, 유스티니아누스 법전, 교회법전, 이시도루스의 어원 사전, 그리고 성서와 신심서 몇 권이었습니다. 한 연구자는 이 빈약한 목록이 그 시절에는 큰 재산으로 통했다고 적었습니다.

교황도 제후도, 이름난 수도원도 오늘날의 웬만한 농가보다 책이 적었다는 말도 있습니다.

책 한 권은 그 자체로 미술품이었습니다. 좋은 양피지에 그림을 넣고, 첫 글자를 화려하게 꾸미고, 여백을 장식했습니다. 필경사는 글씨를 완벽하게 만드는 데 공을 들였습니다.

이름을 남기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어느 수도원의 필경사 디에무디스는 자기가 만든 모든 책에 이름도, 언제 끝냈는지도 적지 않았습니다. 뒷사람들은 겸손해서 그랬으리라고 짐작했습니다.

이렇게 만든 책은 베낄 때마다 조금씩 달라집니다. 한 글자를 잘못 옮기고 그것을 다시 베끼면 오류가 쌓입니다. 그러면 학자들이 같은 대목을 두고 이야기하기가 어렵습니다.

1440년대에서 1450년대 무렵 인쇄술이 실용화되면서 이 문제가 달라졌습니다. 같은 판에서 찍은 책은 모두 같습니다. 몇 쪽 몇 번째 줄이라고 하면 다른 도시의 사람도 같은 곳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쇄가 시작된 뒤에도 책의 겉모습은 한동안 필사본 그대로였습니다. 접지 표시도, 쪽 번호도, 다음 장 첫 낱말을 미리 적어 두는 표시도 없었습니다. 그런 것들은 하나씩 뒤에 붙습니다. 다음 장 첫 낱말을 미리 적는 표시는 1469년 무렵 베네치아에서, 잎마다 번호를 매기는 일은 1471년 쾰른에서, 접지 표시는 1472년 쾰른에서 처음 나타납니다. 캑스턴은 1480년에야 접지 표시를 썼습니다.

생각해 보기 여러 사람이 똑같은 책을 갖고 있으면 무엇이 가능해질까요?

더 자세히 — 찾아 읽는 장치가 붙기까지

색이 다른 대목은 자료에 적힌 문장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책이 귀했다는 말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장서 수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한 자료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교황과 군주와 심지어 큰 종교 기관들도 오늘날 많은 농부보다 훨씬 적은 책을 가지고 있었다.

구체적인 예도 듭니다. 9세기 루카의 한 대성당 도서관에는 열아홉 권밖에 없었습니다.

1212년 노바라 대성당의 목록도 적혀 있습니다. 보에티우스, 프리스키아누스, 유스티니아누스 법전, 교령집, 이시도루스의 어원론, 그리고 성경과 몇 권의 신심 서적입니다.

그러고 나서 한 문장이 붙습니다. 이 빈약한 재고가 큰 부로 통했다.

열 권 남짓이 큰 재산이었습니다.

왜 그랬는지는 만드는 방식에 있습니다. 한 권 한 권이 손으로 베낀 것이었고, 필경사는 자기 글씨를 완벽하게 만들려고 공을 들였습니다.

그 자료에는 한 필경사에 대한 짧은 언급이 있습니다. 디에무디스라는 여성입니다. 그가 베낀 책들에 대해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모든 책에서 그는 자기 이름과 마친 때를 적지 않았다. 그리고 괄호 안에 이런 말이 붙어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이 겸손에서 나온 것이기를 바란다.

이름을 적지 않았으므로 우리는 그가 왜 적지 않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자료를 옮긴 사람도 그것을 알 수 없어서 「바란다」고 썼습니다.

그러면 인쇄가 시작되자 책이 곧바로 오늘의 책이 되었을까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초기 인쇄물은 필사본을 그대로 흉내 냈습니다. 한 자료는 그것들이 접지 표시도 없고, 인쇄된 머리글자 지시도 없고, 캐치워드도 없었다고 적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인쇄가 더 발전하면서, 곧 1473년 무렵부터 1480년 사이에 하나씩 차례로 거의 일반적으로 쓰이게 되는 것을 우리는 본다고 했습니다.

찾아 읽기 위한 장치들이 붙은 날짜가 하나씩 적혀 있습니다.

캐치워드는 1469년 무렵 베네치아에서 처음 쓰였습니다. 타키투스 초판에서였습니다. 캐치워드는 다음 장의 첫 낱말을 앞장 아래에 미리 적어 두는 것인데, 장을 순서대로 맞추기 위한 표시입니다.

쪽 번호, 정확히는 장 번호는 1471년 쾰른에서 처음 쓰였습니다. 그 방식이 흥미롭습니다. 쪽이 아니라 낱장마다 번호를 매겼고, 그 숫자를 오른쪽 면 가운데 줄 끝에 두었습니다.

접지 표시는 1472년 이전 인쇄본에는 인쇄되지 않았습니다. 그 전에는 채식사나 제본공이 손으로 써 넣었습니다. 그리고 이 대목에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캑스턴은 1480년까지도 그것을 채택하지 않았다.

인쇄기가 나왔다고 해서 책이 곧바로 편해진 것이 아닙니다. 몇 쪽인지 아는 일, 장이 흐트러지지 않게 하는 일 같은 것이 이십 년에 걸쳐 하나씩 붙었습니다.

책이 흔해지는 일은 기계 하나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확인하지 못한 것 인쇄술이 실용화된 연대는 논쟁이 길어 한쪽으로 적지 않았습니다. 볼로냐·파리 대학의 성립 연대, 그리고 알파벳순 색인이 언제 자리 잡았는지도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Ellwood P. Cubberley, *Readings in the History of Education*(1920)의 발췌 「Scarcity and Cost of Books」, archive.org · 『1911 Encyclopædia Britannica』 「Typography」 항목, en.wikisource — 일반 백과라 보조로만 썼습니다

한눈에 보기

무슨 일이 있었나

이미 자리 잡은 대학들이 인쇄된 책을 쓰기 시작하면서 지식이 도는 속도가 달라졌다.

왜 중요할까

같은 판본을 여러 곳에서 읽게 되어 학문의 비교와 검증이 쉬워졌다.

핵심 키워드

  • 대학
  • 인쇄
  • 학문

같은 시기, 다른 나라에서는

1440~1450년대 언저리

연대가 겹치는 사건입니다. 같은 때에 일어났다는 뜻이지, 서로 원인과 결과라는 뜻은 아닙니다. 누르면 그 사건의 상세페이지로 갑니다.

그때 다른 나라의 임금

1440~1450년대

같은 해에 다른 나라에서 자리에 있던 사람입니다. 나라마다 한 사람씩만 실었습니다. 왕조가 여럿 겹치던 나라는 왕조 연표에 나머지가 있습니다.

  • 오스만 제국 무라트 2세1421~1444
  • 이슬람권 샤루흐1405~1447
  • 인도 무하마드 샤흐1434~1446
  • 일본 고하나조노 천황1428~1464
  • 중국 정통제·천순제1435~1449, 1457~1464
  • 캄보디아 폰히아 야트1421~1467
  • 한국 세종1418년~1450년
  • 베냉 왕국 에우레1440~1473
  • 에티오피아 자라 야코브1434~1468
  • 아스테카 이츠코아틀1427~1440
  • 잉카 파차쿠티1438~1471

확인 문제

이 문제는 이 사건의 기록에 적힌 값으로 만든 것입니다. 답을 고르면 바로 알려 줍니다.

  1. 1.「유럽 대학과 인쇄술의 결합」은 언제 일어난 일일까요?

  2. 2.「유럽 대학과 인쇄술의 결합」이 일어난 곳은 어디일까요?

  3. 3.「유럽 대학과 인쇄술의 결합」에 나오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4. 4.「유럽 대학과 인쇄술의 결합」은 「도쿠가와 막부 성립」보다 먼저 일어난 일이다.

  5. 5.「유럽 대학과 인쇄술의 결합」은 어느 지역의 역사일까요?

참고자료

이 사건이 속한 시기와 주제를 다루는 자료입니다. 본문의 개별 문장을 어디에서 확인했는지는 아직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료가 둘이어도 교차 검증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앞의 글자는 자료 등급으로, A는 당대 사료와 공식 문서, B는 학술 연구와 국가기관 해설, C는 백과사전과 개론 교재를 뜻합니다.

  • CWorld History, Volume 1: to 1500 · OpenStax / Rice University · 2023 · CC BY-NC-SA 4.0링크
  • CWorld History, Volume 2: from 1400 · OpenStax / Rice University · 2022 · CC BY-NC-SA 4.0링크
  • BEllwood P. Cubberley, *Readings in the History of Education* (1920) — 중세의 책과 학교에 관한 사료 모음 · archive.org 스캔 텍스트 · 1920 · public domain링크
  • C1911 Encyclopædia Britannica — Typography · en.wikisource · 1911 · 공개(퍼블릭 도메인)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