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화의 항해
Voyages of Zheng He · 1405~1433년
- 언제
- 1405~1433년
- 어디서
- 인도양·동아프리카
- 어느 나라
- 명
- 누가
- 정화(Zheng He)
- 무슨 사건
- 정화의 항해
연도가 특정된 연대
그때 자리에 있던 임금
- 중국 영락제 (명(明) 3대 · 1402~1424)재위 연대에 이견이 있습니다
같은 지역의 여러 나라를 함께 보였습니다. 이 사건이 일어난 곳의 임금만이 아닙니다. 나라별 왕조 연표 보기
이야기로 읽는 역사 — 기린을 싣고 돌아오다
1405년부터 1433년까지 명의 함대가 일곱 차례 먼바다로 나갔습니다. 이 함대를 이끈 사람이 정화입니다.
규모가 엄청났습니다. 첫 항해에는 배 317척과 2만 8천 명 가까운 사람이 나섰다고 전합니다. 배를 세는 방식에 따라 이보다 적게 적은 자료도 있습니다. 가장 큰 배인 보선의 크기에 대해서도 학자들 사이에 논쟁이 있습니다.
이들은 동남아시아와 인도를 지나 페르시아만과 홍해, 아프리카 동해안까지 갔습니다. 주된 목적은 명의 위세를 알리고 여러 나라와 관계를 맺는 일이었습니다. 다만 무력을 쓰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해적을 진압했고 스리랑카에서는 전투를 벌였습니다.
돌아올 때는 각지의 진귀한 물건을 실어 왔습니다. 아프리카에서 기린을 데려온 적도 있습니다. 궁정에서는 이를 상서로운 짐승으로 여겨 크게 반겼습니다.
그런데 이 항해는 갑자기 중단되었습니다. 비용이 많이 들고 실익이 적다는 판단이 있었고, 북쪽 국경 방어에 힘을 써야 한다는 사정도 있었습니다. 이후 명은 바다로 나가는 일을 크게 제한합니다.
1477년에는 한 관리가 정화의 항해 기록을 문서고에서 몰수했습니다. 부풀려 지어낸 것이라는 이유였습니다. 그래서 이 항해를 알려 주는 자료가 많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생각해 보기 할 수 있는 일을 그만두기로 하는 결정은 어떻게 내려질까요?
한눈에 보기
무슨 일이 있었나
대규모 함대가 일곱 차례에 걸쳐 인도양과 아프리카 동해안까지 항해했다.
왜 중요할까
국가 주도 원양 항해가 시작되고 중단된 배경을 함께 본다.
핵심 키워드
- 정화
- 보선 함대
- 인도양
같은 시기, 다른 나라에서는
1405~1433년 언저리연대가 겹치는 사건입니다. 같은 때에 일어났다는 뜻이지, 서로 원인과 결과라는 뜻은 아닙니다. 누르면 그 사건의 상세페이지로 갑니다.
그때 다른 나라의 임금
1405~1433년같은 해에 다른 나라에서 자리에 있던 사람입니다. 나라마다 한 사람씩만 실었습니다. 왕조가 여럿 겹치던 나라는 왕조 연표에 나머지가 있습니다.
- 몽골·투르크 초원 제국 울루그 테무르 칸1402~1408
- 이슬람권 티무르1370~1405
- 인도 느시르아드딘 마흐무드 카흐 투그루크1394~1413
- 일본 고코마쓰 천황1392~1412
- 캄보디아 스레이 소리요봉1401~1417
- 한국 태종1400년~1418년
- 러시아 바실리 1세1389~1425
- 비잔티움 제국 마누일 2세 팔레올로고스1391~1425
- 영국 로버트 3세1390~1406
- 포르투갈 주앙 1세1385~1433
- 프랑스 샤를 6세1380~1422
- 에티오피아 다위트 1세1382~1413
- 아스테카 우이칠리우이틀1396~1417
- 잉카 비라코차 잉카1400~1438
확인 문제
이 문제는 이 사건의 기록에 적힌 값으로 만든 것입니다. 답을 고르면 바로 알려 줍니다.
1.「정화의 항해」는 「힉스 입자 발견 발표」보다 먼저 일어난 일이다.
2.「정화의 항해」는 언제 일어난 일일까요?
3.「정화의 항해」가 일어난 곳은 어디일까요?
4.「정화의 항해」에 나오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5.「정화의 항해」와 관련된 나라(정치체)는 어디일까요?
참고자료
이 사건이 속한 시기와 주제를 다루는 자료입니다. 본문의 개별 문장을 어디에서 확인했는지는 아직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료가 둘이어도 교차 검증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앞의 글자는 자료 등급으로, A는 당대 사료와 공식 문서, B는 학술 연구와 국가기관 해설, C는 백과사전과 개론 교재를 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