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의 장성 연결
Qin unification of the northern walls · 기원전 214년
- 언제
- 기원전 214년
- 어디서
- 북방 국경
- 어느 나라
- 진
- 누가
- 진 시황제, 몽염
- 무슨 사건
- 진의 장성 연결
연도가 특정된 연대
그때 자리에 있던 임금
- 중국 시황제 (진(秦) 1대 · 기원전 221~210)
같은 지역의 여러 나라를 함께 보였습니다. 이 사건이 일어난 곳의 임금만이 아닙니다. 나라별 왕조 연표 보기
이야기로 읽는 역사 — 흩어진 성벽을 잇다
전국시대에는 여러 나라가 북쪽에 성벽을 쌓았습니다. 초원에서 오는 기마 세력을 막기 위해서였습니다. 진이 중국을 통일하자 그 성벽들은 나라 안의 담이 되어 쓸모가 없어졌습니다. 대신 북쪽 국경에 있던 것들을 이어 하나로 만들기로 했습니다.
기원전 214년, 장군 몽염이 이 일을 맡았습니다. 성벽은 왜 필요했을까요. 초원의 기마 부대는 빠르게 왔다가 빠르게 사라집니다. 군대를 아무리 두어도 어디로 올지 알 수 없습니다.
담이 있으면 말이 넘지 못합니다. 넘으려면 문이 있는 곳으로 와야 하고, 그러면 어디를 지켜야 할지 알 수 있습니다.
문제는 비용이었습니다. 옛 중국 역사책인 「사기」에는 몽염이 30만 명을 이끌고 북쪽으로 갔다고 적혀 있습니다. 성벽은 임조에서 요동까지 만여 리에 이르렀습니다. 군사들은 십여 년 동안 집을 떠나 국경에 머물렀습니다. 돌아오지 못한 사람도 많았습니다. 진이 오래가지 못한 까닭 가운데 하나로 이 부담을 꼽습니다.
다만 「사기」는 이 일이 있고 백 년쯤 뒤에 쓰인 책입니다. 30만이나 만여 리 같은 수는 정확한 통계라기보다 대략의 규모로 봅니다.
한 가지 덧붙일 것이 있습니다. 오늘날 사진으로 보는 벽돌 장성은 이때 것이 아닙니다. 천오백 년쯤 뒤 명이 다시 쌓은 것이고 위치도 다릅니다.
생각해 보기 긴 담을 쌓는 일과 군대를 두는 일 가운데 어느 쪽이 나을까요?
한눈에 보기
무슨 일이 있었나
진이 전국시대 여러 나라가 쌓아 둔 북방 성벽을 이어 하나로 연결했다.
왜 중요할까
오늘날 남은 명대 장성과는 위치와 재료가 다르다는 점이 자주 혼동된다.
핵심 키워드
- 만리장성
- 진나라
같은 시기, 다른 나라에서는
기원전 214년 언저리연대가 겹치는 사건입니다. 같은 때에 일어났다는 뜻이지, 서로 원인과 결과라는 뜻은 아닙니다. 누르면 그 사건의 상세페이지로 갑니다.
그때 다른 나라의 임금
기원전 214년같은 해에 다른 나라에서 자리에 있던 사람입니다. 나라마다 한 사람씩만 실었습니다. 왕조가 여럿 겹치던 나라는 왕조 연표에 나머지가 있습니다.
- 이란(페르시아) 아르사케스 2세약 기원전 217~191
- 인도 살리수카기원전 215~202
- 일본 고레이 천황기원전 289~214
- 그리스·헬레니즘 아탈로스 1세 소테르기원전 241~197
-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4세 필로파토르기원전 222~205
확인 문제
이 문제는 이 사건의 기록에 적힌 값으로 만든 것입니다. 답을 고르면 바로 알려 줍니다.
1.「진의 장성 연결」은 언제 일어난 일일까요?
2.「진의 장성 연결」이 일어난 곳은 어디일까요?
3.「진의 장성 연결」은 「청년 서약」보다 먼저 일어난 일이다.
4.「진의 장성 연결」에 나오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5.「진의 장성 연결」과 관련된 나라(정치체)는 어디일까요?
참고자료
이 사건이 속한 시기와 주제를 다루는 자료입니다. 본문의 개별 문장을 어디에서 확인했는지는 아직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료가 둘이어도 교차 검증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앞의 글자는 자료 등급으로, A는 당대 사료와 공식 문서, B는 학술 연구와 국가기관 해설, C는 백과사전과 개론 교재를 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