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도 막부의 대외 통제 완성
Completion of Edo maritime restrictions · 1639년
- 언제
- 1639년
- 어디서
- 에도
- 어느 나라
- 도쿠가와 막부
- 무슨 사건
- 에도 막부의 대외 통제 완성
연도가 특정된 연대
그때 자리에 있던 임금
- 미얀마 타룬သာလွန်မင်း (미얀마(버마) 국왕 10대 · 1629~1648)재위 연대에 이견이 있습니다
- 오스만 제국 무라트 4세 (오스만 제국 술탄 17대 · 1623~1640)
- 이란(페르시아) 사피 1세 (사파비 왕조 6대 · 1629~1642)
- 인도 샤 자한 (무굴 제국 황제 5대 · 1628~1658)
- 일본 도쿠가와 이에미쓰 (에도(도쿠가와) 막부 쇼군 3대 · 1623~1651) / 메이쇼 천황 (천황(天皇) 109대 · 1629~1643)
- 캄보디아 우테이ឧទ័យរាជាទី១ (캄보디아 국왕 76대 · 1627~1642) / 앙 통 리아치아អង្គទងរាជា (캄보디아 국왕 78대 · 1630~1640)재위 연대에 이견이 있습니다
- 태국 프라사트 통สมเด็จพระเจ้าปราสาททอง (태국(시암) 국왕 16대 · 1630~1655)재위 연대에 이견이 있습니다
같은 지역의 여러 나라를 함께 보였습니다. 이 사건이 일어난 곳의 임금만이 아닙니다. 나라별 왕조 연표 보기
이야기로 읽는 역사 — 돌아오면 죽인다
에도 막부는 기독교가 퍼지는 것을 경계했습니다. 신자들이 막부보다 다른 권위를 따를까 걱정했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는 무역이었습니다. 지방의 유력자가 외국과 직접 거래해 부와 무기를 얻는 것을 막고 싶었습니다.
규슈에서 큰 봉기가 일어난 뒤 조치가 단단해졌습니다. 포르투갈 사람들이 그 봉기를 부추겼다는 이유가 붙었습니다. 그래서 나온 명령의 문장이 지금도 전합니다.
다만 읽기 전에 알아 둘 것이 있습니다. 여기 옮기는 글은 일본이 남긴 원문이 아닙니다. 뒷날 나가사키에 머물던 유럽 사람이 옮겨 적은 것을 19세기의 책이 다시 옮긴 것입니다. 번역의 번역인 셈입니다.
첫 조항은 이렇습니다. 일본의 어떤 배도, 일본에서 난 어떤 사람도 나라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이를 어기는 자는 죽이고 배와 사람과 실린 짐은 다음 명이 있을 때까지 붙들어 둔다.
그다음이 더 무겁습니다. 밖에서 돌아온 일본 사람은 모두 죽인다. 그리고 신부를 찾아내 알린 사람에게는 은으로 상을 준다고 했습니다.
포르투갈 사람은 어머니와 유모까지, 그들에게 딸린 모든 것과 함께 마카오로 쫓아낸다고 했습니다. 밖에서 편지를 들여오는 사람, 쫓겨났다가 돌아오는 사람은 온 집안과 함께 죽인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위해 말해 주는 이도 죽인다고 덧붙였습니다.
1639년에 온 포르투갈 배들은 짐을 내리지도 못한 채 이 명령서 사본을 받아 돌아갔습니다. 무역을 잃게 된 마카오는 조금이라도 고쳐 달라고 사절을 보냈습니다. 돌아온 답은 사절 예순한 명을 붙잡아 죽인 것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문이 완전히 닫힌 것은 아닙니다. 그전부터 나가사키 앞바다에 작은 인공 섬을 만들어 외국 상인을 그 안에만 머물게 하는 방식이 쓰이고 있었습니다. 닫은 것이 아니라 아주 좁은 구멍 하나만 남기고 막부가 그 구멍을 쥔 것입니다. 그 구멍을 차지한 것은 네덜란드였습니다. 1609년에 온 그들에게 이에야스는 자기 신하처럼 지켜 주겠다는 글을 써 주었습니다. 그런데 뒷날 일본은 그들을 한곳에 모아 두는 편이 안전하다고 판단합니다. 급한 일이 생겼을 때 쉽게 손안에 둘 수 있는 자리여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좁은 구멍으로 들어온 것은 물건만이 아니었습니다. 뒷날 하야시 시헤이는 그곳 사람들과 어울린 뒤 책을 지어, 큰 배 짓는 것을 막아 놓고서는 바다를 지킬 수 없다고 썼습니다. 그는 감옥에 갇혔고 책의 판목은 부서졌습니다.
생각해 보기 나라의 문을 좁게 여는 것과 넓게 여는 것은 각각 무엇을 얻고 잃을까요?
더 자세히 — 급할 때 손안에 둘 수 있는 자리
색이 다른 대목은 자료에 적힌 문장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나라를 닫는다는 것이 조문에서 무엇이었는지 봅니다. 금지의 대상과 벌이 하나씩 적혀 있습니다.
먼저 나가는 것입니다. 출국을 금하고 어기면 사형입니다. 그리고 돌아오는 것도 막습니다. 외국에서 돌아오는 모든 일본인은 사형에 처한다.
떠나는 것만이 아니라 돌아오는 것도 죽을 죄가 되었습니다.
편지도 막습니다. 편지를 들여오는 자, 돌아온 자, 그리고 그를 위해 간청한 자까지 사형이라고 했습니다. 벌이 그 사람만이 아니라 그를 봐 달라고 말한 사람에게까지 갑니다.
밀고에는 상이 걸렸습니다. 신부를 신고하면 은 사백에서 오백 슈에트를 준다고 했습니다.
추방 조항의 문면은 이렇습니다. 포르투갈 사람들의 온 족속을, 그들의 어머니와 유모와 그들에게 딸린 무엇이든 함께 마카오로 추방한다.
무사와 병사가 외국인과 거래하는 것도 금했습니다.
이 금지가 말뿐이 아니었다는 것은 1639년의 일로 알 수 있습니다. 포르투갈 배가 짐도 내리지 못한 채 칙령 사본과 함께 돌려보내졌습니다.
이듬해 마카오에서 온 사절 예순한 명은 처형되었습니다. 1640년 여름에 신분이 낮은 열세 사람만 돌려보내졌습니다. 사절을 죽이고 몇 사람만 남겨 소식을 전하게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닫으면서도 한 나라만은 남겼습니다. 네덜란드입니다. 왜 그랬는지가 다른 책에 적혀 있습니다.
처음에는 사이가 좋았습니다. 1609년에 네덜란드인들이 일본에 나타나 훌륭한 환영을 받았고, 이에야스는 그들에게 아무도 그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것이며 자기 가신처럼 유지하고 보호할 것이라는 약속을 글로 주었습니다.
그들은 처음에 스스로 히라도를 골랐습니다. 그러다 교역의 자유를 잃고 나가사키와 오사카 상인 조합과의 거래로 제한되면서 이익이 크게 줄었습니다.
그리고 자리를 옮기게 됩니다. 그 까닭을 적은 문장이 이 이야기의 핵심입니다.
마침내 일본 측은 가장 안전한 방책이 네덜란드인을, 비상시에 쉽게 일본의 통제 아래 둘 수 있는 어떤 위치에 가두어 두는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래서 나가사키가 적당한 곳으로 선택되었고, 거기에 상관이 세워졌습니다.
무역을 위해 남긴 구멍이 아니라, 급할 때 손안에 둘 수 있느냐로 고른 자리였습니다.
그 좁은 구멍으로 무엇이 들어왔는지도 같은 책에 있습니다.
하야시 시헤이라는 사람이 그곳의 네덜란드인들과 어울린 뒤 책을 썼습니다. 외국인들은 대양을 오가는데 일본 사람은 큰 배를 짓는 것이 금지되어 있으니 바다를 지킬 방법이 없다시피 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결과가 적혀 있습니다. 이 용감한 저자는 감옥에 던져졌고 그의 책의 판목은 부서졌다.
그런데 그 뒤에 한 줄이 더 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막부의 수석 노중이 해안을 돌며 포대 자리를 골랐다는 것입니다.
책은 없애고 그 책이 말한 일은 했습니다.
확인하지 못한 것 조선·류큐·아이누와의 통로는 이 두 책으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칙령의 일본어 원문도 아직입니다 — 여기 인용한 것은 번역의 번역이라 『徳川禁令考』 같은 원 법령집이 필요합니다.
Richard Hildreth, *Japan as it was and is*(1855), archive.org 스캔 — 여기 실린 칙령은 다른 사람이 옮긴 것을 다시 옮긴 것입니다 · F. Brinkley, *A History of the Japanese People*(1915), Project Gutenberg 전문
한눈에 보기
무슨 일이 있었나
포르투갈 선박의 내항을 금해 대외 창구가 크게 제한되었다.
왜 중요할까
교류가 완전히 끊긴 것은 아니며 네덜란드·중국·조선·류큐와의 통로는 남았다.
핵심 키워드
- 쇄국
- 데지마
같은 시기, 다른 나라에서는
1639년 언저리연대가 겹치는 사건입니다. 같은 때에 일어났다는 뜻이지, 서로 원인과 결과라는 뜻은 아닙니다. 누르면 그 사건의 상세페이지로 갑니다.
그때 다른 나라의 임금
1639년같은 해에 다른 나라에서 자리에 있던 사람입니다. 나라마다 한 사람씩만 실었습니다. 왕조가 여럿 겹치던 나라는 왕조 연표에 나머지가 있습니다.
- 인도네시아 마타람의 테 그리아트 술탄1613~1646
- 중국 숭정제1627~1644
- 한국 인조1623년~1649년
- 러시아 미하일 1세 표도로비치1613~1645
- 신성로마제국 페르디난트 3세1637~1657
- 에스파냐 펠리페 4세1621~1665
- 영국 찰스 1세1625~1649
- 포르투갈 펠리페 4세1621~1640
- 프랑스 루이 13세1610~1643
- 모로코 모하메드 에시세이크 에스세기르1636~1655
- 에티오피아 파시라다스1632~1667
확인 문제
이 문제는 이 사건의 기록에 적힌 값으로 만든 것입니다. 답을 고르면 바로 알려 줍니다.
1.「에도 막부의 대외 통제 완성」은 언제 일어난 일일까요?
2.「에도 막부의 대외 통제 완성」이 일어난 곳은 어디일까요?
3.「에도 막부의 대외 통제 완성」과 관련된 나라(정치체)는 어디일까요?
4.「에도 막부의 대외 통제 완성」은 어느 지역의 역사일까요?
5.「에도 막부의 대외 통제 완성」은 「황국신민화 정책 강화」보다 나중에 일어난 일이다.
참고자료
이 사건이 속한 시기와 주제를 다루는 자료입니다. 본문의 개별 문장을 어디에서 확인했는지는 아직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료가 둘이어도 교차 검증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앞의 글자는 자료 등급으로, A는 당대 사료와 공식 문서, B는 학술 연구와 국가기관 해설, C는 백과사전과 개론 교재를 뜻합니다.
- CWorld History, Volume 2: from 1400 · OpenStax / Rice University · 2022 · CC BY-NC-SA 4.0링크
- CWorld History Since 1500: An Open and Free Textbook · East Tennessee State University · 2022 · CC BY 4.0; images separate링크
- CRichard Hildreth, *Japan as it was and is* (1855) — 시마바라 봉기와 1639년 추방령(켐퍼가 옮긴 칙령 전문 인용) · archive.org 스캔 텍스트 · 1855 (사건은 1637~1640) · public domain링크
- CA History of the Japanese People from the Earliest Times to the End of the Meiji Era · Frank Brinkley (with Baron Kikuchi Dairoku) · 1915 · 공개(퍼블릭 도메인)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