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마바라·아마쿠사 봉기
Shimabara Rebellion · 1637~1638년
- 언제
- 1637~1638년
- 어디서
- 규슈
- 어느 나라
- 도쿠가와 막부
- 누가
- 아마쿠사 시로
- 어느 기관
- 도쿠가와 막부군
- 무슨 사건
- 시마바라·아마쿠사 봉기
연도가 특정된 연대
그때 자리에 있던 임금
- 미얀마 타룬သာလွန်မင်း (미얀마(버마) 국왕 10대 · 1629~1648)재위 연대에 이견이 있습니다
- 오스만 제국 무라트 4세 (오스만 제국 술탄 17대 · 1623~1640)
- 이란(페르시아) 사피 1세 (사파비 왕조 6대 · 1629~1642)
- 인도 샤 자한 (무굴 제국 황제 5대 · 1628~1658)
- 일본 도쿠가와 이에미쓰 (에도(도쿠가와) 막부 쇼군 3대 · 1623~1651) / 메이쇼 천황 (천황(天皇) 109대 · 1629~1643)
- 캄보디아 우테이ឧទ័យរាជាទី១ (캄보디아 국왕 76대 · 1627~1642) / 앙 통 리아치아អង្គទងរាជា (캄보디아 국왕 78대 · 1630~1640)재위 연대에 이견이 있습니다
- 태국 프라사트 통สมเด็จพระเจ้าปราสาททอง (태국(시암) 국왕 16대 · 1630~1655)재위 연대에 이견이 있습니다
같은 지역의 여러 나라를 함께 보였습니다. 이 사건이 일어난 곳의 임금만이 아닙니다. 나라별 왕조 연표 보기
이야기로 읽는 역사 — 누가 적었느냐에 따라
규슈의 시마바라와 아마쿠사 지역에서 1637년 겨울 사람들이 들고일어났습니다. 넉 달 남짓 뒤에 그들이 지키던 성이 무너졌습니다. 이 일을 적은 오래된 서양 책이 있습니다. 19세기 중반에 나온 것으로, 그전 유럽 사람들이 남긴 기록을 모아 정리한 책입니다.
그 책은 이렇게 적습니다. 아리마 지방 사람들은 영주와 귀족을 빼고는 모두 여전히 가톨릭 신자였는데, 다른 희망이 없다고 보고 드러내 놓고 들고일어났다고요.
앞장선 사람은 그 지역 옛 왕들의 후손이었다고 적혀 있습니다. 모인 사람은 삼만 칠천 명이라고 하는데, 책 자신이 "그렇게들 말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세어 본 수가 아니라 전해 들은 수라는 뜻입니다.
이들은 시마바라의 성채를 차지하고 버텼습니다. 포위되었고, 성이 떨어졌을 때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은 한 사람도 남지 않았다고 적혀 있습니다. 성 안에서 화살에 매어 밖으로 쏘아 보낸 편지도 전합니다. 살려 달라는 글이 아니라 이유를 적은 글이었습니다. 우리가 이 성에 든 것을 땅과 집을 차지하려는 것으로 여기겠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다만 기독교가 하나의 종파로 용인되지 않기 때문이라고요.
여기서 눈여겨볼 것이 있습니다. 이 책이 봉기의 이유를 말하는 방식입니다. 믿음 하나로 설명합니다. 세금이 무거웠다거나 흉년이 들었다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습니다.
다른 책을 펼치면 달라집니다. 1915년에 나온 일본사 통사는, 사치스러운 영주에게 바칠 돈을 대느라 견딜 수 없을 만큼 세금을 물지 않았더라면 이곳 사람들도 다른 곳 신자들처럼 잠자코 견뎠을지 모른다고 적습니다. 그러면서 곧바로 덧붙입니다. 일본 쪽 기록들은 세금 문제를 훨씬 뒤로 밀어 두고, 박해를 피해 떠돌던 무사 다섯 사람이 부추긴 일로만 적는다고요.
그러니 기록을 읽을 때는 무엇이 적혀 있는지만이 아니라, 그것을 적은 사람이 무엇을 중요하게 여겼는지도 함께 보아야 합니다. 이 봉기 뒤 막부는 대외 통제를 더 세게 조입니다.
생각해 보기 한 사건의 원인을 하나로 정하면 무엇을 놓치게 될까요?
더 자세히 — 원인을 어디에 두는가
색이 다른 대목은 자료에 적힌 문장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같은 봉기를 두고 원인을 어디에 두느냐가 기록마다 다릅니다. 그 차이 자체가 이 사건을 읽는 방법이 됩니다.
먼저 19세기 서양 책입니다. 이 책은 원인을 하나로 적습니다. 아리마 왕국의 사람들은 왕과 귀족을 빼고 모두 여전히 가톨릭이었는데, 다른 희망이 보이지 않자 공공연한 반란을 일으켰다는 것입니다.
인원도 적혀 있는데, 그 표현이 조심스럽습니다. 전한다고 하는 바로는 삼만 칠천 명에 이르렀다고 했습니다. 「전한다고 하는 바로는」이라는 말이 붙어 있습니다.
그들은 시마바라의 요새를 차지했고, 포위 끝에 함락되었을 때 그것을 지키던 이들은 한 사람도 남지 않고 죽었다고 적었습니다. 봉기 뒤에는 포르투갈 사람들이 이를 부추겼다는 이유로 추방령이 나왔습니다.
이 책만 읽으면 원인은 믿음 하나입니다.
그런데 반세기 뒤에 나온 다른 책은 다르게 시작합니다. 그럼에도 이 사람들은 다른 곳의 같은 신자들이 그러했듯 잠자코 견뎠을지도 모른다. 사치스러운 영주에게 바칠 자금을 대느라 견딜 수 없을 만큼 세금을 물지 않았더라면.
세금을 원인의 앞에 놓은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문장이 더 중요합니다. 이 책은 자기와 다른 기록이 있다는 것을 그대로 적습니다.
그러나 일본 쪽 연대기 작가들은 조세 문제를 아주 부차적인 자리로 밀어 놓고, 이 반란을 오로지 다섯 사무라이의 선동 탓으로 돌린다. 그 사무라이들은 기독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박해를 피해 떠돌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저자는 이렇게 맺습니다. 어느 쪽 서술이 옳든, 이 봉기가 주변 지역의 기독교인들을 모두 끌어들였고 공식적으로 기독교인의 봉기로 여겨진 것은 분명하다는 것입니다.
한쪽은 믿음만 적고, 다른 쪽은 세금을 앞에 놓고, 또 다른 쪽은 세금을 뒤로 미룹니다. 어느 하나를 고르는 대신 세 기록이 어떻게 갈리는지를 아는 편이 낫습니다.
그러면 봉기한 사람들 자신은 무엇이라고 했을까요. 놀랍게도 그들이 쓴 글이 남아 있습니다.
성에서 포위하는 쪽으로 화살에 매어 보낸 편지가 전해진다고 적혀 있습니다. 그 성격도 함께 적었습니다. 그것은 자비를 구하는 호소가 아니라 이유를 간단히 열거한 것이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우리는 우리 사람들을 위하여 이제 이 성에 의지하였다. 그대들은 우리가 땅과 집을 얻으려는 바람에서 이렇게 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결코 그렇지 않다. 다만 기독교가 하나의 뚜렷한 종파로 용인되지 않기 때문이며, 그것은 그대들이 잘 아는 바다.
무엇을 노린 것이 아니라고 먼저 밝히고, 이유를 한 줄로 적었습니다.
경과와 수치도 남아 있습니다. 1638년 1월 하순에 성을 차지했고 4월 중순에 무너졌습니다. 인원은 어떤 전거에 따르면 싸울 수 있는 남자 이만 명에 여자와 아이 만 삼천 명이고, 다른 전거에 따르면 그 절반을 조금 넘는 정도라고 적혀 있습니다. 여기서도 자료가 갈립니다.
바다 쪽에서는 히라도의 네덜란드 상관장이 배를 빌려주었고, 그 배가 보름 동안 사백 발이 넘게 포를 쏘았습니다.
그리고 끝에 관한 서술도 두 책이 어긋납니다. 앞의 책은 한 사람도 남지 않았다고 적었는데, 뒤의 책은 백다섯 명의 포로를 제외하고 모두 죽었다고 적습니다.
한 사람도 없었는지 백다섯 명이 있었는지는 큰 차이입니다. 어느 쪽이 맞는지 여기서 정할 수 없으므로, 두 기록이 다르다는 것까지를 적어 둡니다.
확인하지 못한 것 흉년에 관한 것과 아마쿠사 시로라는 이름은 두 책 어디에도 나오지 않습니다. 일본 쪽 사료나 최근 연구가 필요합니다.
Richard Hildreth, *Japan as it was and is*(1855), archive.org 스캔 · F. Brinkley, *A History of the Japanese People*(1915), Project Gutenberg 전문. 둘 다 19세기와 20세기 초의 서양 편찬서라 신뢰도 C~B로 두었습니다
한눈에 보기
무슨 일이 있었나
규슈의 농민·낭인·기독교도 등이 과중한 세금, 기근, 영주 통치와 종교 탄압 속에서 봉기했으나 막부군에 진압되었다.
왜 중요할까
에도 막부의 지방 통치, 농민 저항, 기독교 금압과 대외정책을 연결할 수 있다.
핵심 키워드
- 시마바라의 난
- 기독교
- 조세
같은 시기, 다른 나라에서는
1637~1638년 언저리연대가 겹치는 사건입니다. 같은 때에 일어났다는 뜻이지, 서로 원인과 결과라는 뜻은 아닙니다. 누르면 그 사건의 상세페이지로 갑니다.
그때 다른 나라의 임금
1637~1638년같은 해에 다른 나라에서 자리에 있던 사람입니다. 나라마다 한 사람씩만 실었습니다. 왕조가 여럿 겹치던 나라는 왕조 연표에 나머지가 있습니다.
- 인도네시아 마타람의 테 그리아트 술탄1613~1646
- 중국 숭정제1627~1644
- 한국 인조1623년~1649년
- 러시아 미하일 1세 표도로비치1613~1645
- 신성로마제국 페르디난트 2세1619~1637
- 에스파냐 펠리페 4세1621~1665
- 영국 찰스 1세1625~1649
- 포르투갈 펠리페 4세1621~1640
- 프랑스 루이 13세1610~1643
- 모로코 모하메드 에시세이크 에스세기르1636~1655
- 에티오피아 파시라다스1632~1667
확인 문제
이 문제는 이 사건의 기록에 적힌 값으로 만든 것입니다. 답을 고르면 바로 알려 줍니다.
1.「시마바라·아마쿠사 봉기」는 언제 일어난 일일까요?
2.「시마바라·아마쿠사 봉기」가 일어난 곳은 어디일까요?
3.「시마바라·아마쿠사 봉기」에 나오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4.「시마바라·아마쿠사 봉기」는 「부산 정치 파동과 발췌개헌」보다 나중에 일어난 일이다.
5.「시마바라·아마쿠사 봉기」와 관련된 나라(정치체)는 어디일까요?
참고자료
이 사건이 속한 시기와 주제를 다루는 자료입니다. 본문의 개별 문장을 어디에서 확인했는지는 아직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료가 둘이어도 교차 검증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앞의 글자는 자료 등급으로, A는 당대 사료와 공식 문서, B는 학술 연구와 국가기관 해설, C는 백과사전과 개론 교재를 뜻합니다.
- CWorld History, Volume 2: from 1400 · OpenStax / Rice University · 2022 · CC BY-NC-SA 4.0링크
- CWorld History Since 1500: An Open and Free Textbook · East Tennessee State University · 2022 · CC BY 4.0; images separate링크
- CRichard Hildreth, *Japan as it was and is* (1855) — 시마바라 봉기와 1639년 추방령(켐퍼가 옮긴 칙령 전문 인용) · archive.org 스캔 텍스트 · 1855 (사건은 1637~1640) · public domain링크
- CA History of the Japanese People from the Earliest Times to the End of the Meiji Era · Frank Brinkley (with Baron Kikuchi Dairoku) · 1915 · 공개(퍼블릭 도메인)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