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을 건넌 날
기원전 1세기 로마는 겉으로는 공화정이었습니다. 해마다 관리를 뽑고 원로원이 논의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큰 군대를 가진 몇 사람이 정치를 좌우하고 있었습니다.
카이사르는 그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기원전 58년부터 여덟 해 동안 이어진 갈리아 원정으로 그는 명성과 재산, 그리고 자기를 따르는 군대를 얻었습니다.
로마에는 규칙이 있었습니다. 장군은 군대를 이끌고 이탈리아 안으로 들어올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경계에 루비콘이라는 작은 강이 있었습니다.
기원전 49년, 카이사르는 군대를 데리고 그 강을 건넜습니다. 되돌릴 수 없는 선택을 했다는 뜻으로 지금도 이 장면이 인용됩니다.
내전이 벌어졌고 이듬해 파르살루스에서 폼페이우스를 꺾으면서 승부가 기울었습니다.
그는 여러 개혁을 했습니다. 기원전 46년에는 해의 길이에 맞춘 새 달력을 시행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쓰는 달력의 바탕이 여기서 나왔습니다. 빚 문제를 손보고 속주 사람들에게 시민권을 넓히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종신 독재관이 되었습니다. 임기가 끝나지 않는 자리였습니다. 왕이 되려 한다는 말이 돌았습니다.
기원전 44년 3월 15일, 그는 원로원 회의장에서 살해되었습니다. 죽인 이들은 공화정을 되살리려 했지만 결과는 반대였습니다. 다시 내전이 일어났고, 그 끝에서 카이사르의 양자가 첫 황제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