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사르 암살
Assassination of Julius Caesar · 기원전 44년
- 언제
- 기원전 44년
- 어디서
- 로마
- 어느 나라
- 로마
- 누가
- 율리우스 카이사르(Julius Caesar)
- 무슨 사건
- 카이사르 암살
연도가 특정된 연대
그때 자리에 있던 임금
- 그리스·헬레니즘 클레오파트라 7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이집트) 20대 · 기원전 51~30) / 프톨레마이오스 14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이집트) 21대 · 기원전 47~44) / 카이사리온(프톨레마이오스 15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이집트) 22대 · 기원전 44~30)
같은 지역의 여러 나라를 함께 보였습니다. 이 사건이 일어난 곳의 임금만이 아닙니다. 나라별 왕조 연표 보기
이야기로 읽는 역사 — 왕이 되려 한다는 의심
기원전 1세기 로마는 이름은 공화정이었지만 실제로는 힘센 장군들이 겨루는 상태였습니다. 그 다툼에서 이긴 사람이 카이사르입니다.
그는 갈리아 원정에서 이름을 얻고, 내전에서 이겨 로마의 실권을 쥐었습니다. 그리고 종신 독재관이 되었습니다. 원래 독재관은 위기 때 여섯 달만 맡는 자리였습니다. 그것을 평생 맡게 된 것입니다.
로마 사람들에게 왕이라는 말은 특별한 뜻이었습니다. 사백육십여 년 전에 왕을 몰아내고 공화정을 세운 나라였기 때문입니다. 카이사르가 왕이 되려 한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기원전 44년 3월, 원로원 의원 여럿이 그를 둘러싸고 칼로 찔렀습니다. 스물세 군데를 찔렸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공화정을 지켰다고 여겼습니다.
그가 마지막에 무슨 말을 했는지는 그때부터 이야기가 갈렸습니다. 로마의 전기 작가 수에토니우스는 두 가지를 나란히 적어 두었습니다. 아무 말 없이 신음만 냈다는 이야기가 있고, 브루투스를 보고 "너도냐, 얘야"라고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는 것입니다.
수에토니우스 자신도 어느 쪽이 맞는지 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 일이 있고 백 년도 더 지난 뒤에 글을 썼습니다. 결과는 그들이 바란 것과 반대였습니다. 그의 죽음 뒤 또다시 내전이 이어졌고, 그 끝에 세워진 것은 공화정이 아니라 황제가 다스리는 체제였습니다.
생각해 보기 사람들이 왕이라는 말 자체를 꺼린 까닭은 무엇일까요?
한눈에 보기
무슨 일이 있었나
종신 독재관이 된 카이사르가 원로원 의원들에게 살해되었다.
왜 중요할까
공화정의 관행과 개인 권력 집중이 충돌한 장면이다.
핵심 키워드
- 카이사르
- 로마 공화정
같은 시기, 다른 나라에서는
기원전 44년 언저리연대가 겹치는 사건입니다. 같은 때에 일어났다는 뜻이지, 서로 원인과 결과라는 뜻은 아닙니다. 누르면 그 사건의 상세페이지로 갑니다.
그때 다른 나라의 임금
기원전 44년같은 해에 다른 나라에서 자리에 있던 사람입니다. 나라마다 한 사람씩만 실었습니다. 왕조가 여럿 겹치던 나라는 왕조 연표에 나머지가 있습니다.
- 이란(페르시아) 오로데스 2세약 기원전 57~38
- 일본 스진 천황기원전 97~30
- 중국 원제기원전 48~33
- 한국 혁거세 거서간기원전 57년~4년
- 이집트 클레오파트라 7세기원전 51~30
플루타르코스가 전한 사람
확인 문제
이 문제는 이 사건의 기록에 적힌 값으로 만든 것입니다. 답을 고르면 바로 알려 줍니다.
1.「카이사르 암살」은 언제 일어난 일일까요?
2.「카이사르 암살」이 일어난 곳은 어디일까요?
3.「카이사르 암살」에 나오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4.「카이사르 암살」은 「노르테 치코 문명 성장」보다 먼저 일어난 일이다.
5.「카이사르 암살」과 관련된 나라(정치체)는 어디일까요?
참고자료
이 사건이 속한 시기와 주제를 다루는 자료입니다. 본문의 개별 문장을 어디에서 확인했는지는 아직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료가 둘이어도 교차 검증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앞의 글자는 자료 등급으로, A는 당대 사료와 공식 문서, B는 학술 연구와 국가기관 해설, C는 백과사전과 개론 교재를 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