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의 문을 연 사람
로마군은 원래 자기 땅을 가진 시민으로 채웠습니다. 무기를 스스로 마련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농민들이 땅을 잃으면서 군대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줄었습니다. 그라쿠스 형제가 땅을 나누려 했던 것도 이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마리우스는 다른 방법을 썼습니다. 땅이 없는 시민도 군대에 받아들이고 무기를 나라가 대는 것이었습니다.
병사가 모자라는 문제는 풀렸습니다. 그런데 새 문제가 생겼습니다. 땅이 없는 병사는 복무를 마친 뒤 돌아갈 곳이 없었습니다. 그들에게 땅을 마련해 줄 사람은 나라가 아니라 자기를 이끈 장군이었습니다.
그래서 병사들은 나라보다 장군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뒤에 술라와 카이사르가 군대를 이끌고 로마로 들어올 수 있었던 바탕이 여기에 있습니다.
마리우스 자신도 그 흐름 안에 있었습니다. 기원전 88년 그는 옛 부하였던 술라와 지휘권을 두고 충돌했고, 술라가 군대를 이끌고 로마로 들어오면서 밀려났습니다.
몇 해 뒤 그는 돌아와 반대편 사람들을 죽이고 일곱 번째 집정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취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습니다.
한 사람이 문제를 풀면서 다른 문제를 만드는 일이 있습니다. 로마 공화정이 무너지는 과정에서 이 대목이 자주 인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