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을 나누려 한 형제
포에니 전쟁에서 이긴 뒤 로마는 넓은 땅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그 땅에서 이득을 본 사람은 정해져 있었습니다.
오래 전쟁에 나갔던 농민들은 돌아와 보니 자기 땅을 지킬 수 없었습니다. 빚을 지고 땅을 팔았고, 그 땅은 큰 재산을 가진 사람들이 사들여 노예를 부려 경작했습니다.
로마군은 자기 땅을 가진 시민으로 채우는 것이 원칙이었습니다. 그러니 농민이 땅을 잃는 일은 군대의 바탕도 흔들었습니다.
기원전 133년, 티베리우스 그라쿠스가 호민관이 되어 법을 내놓았습니다. 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공유지의 크기를 제한하고 남는 땅을 나누어 주자는 것이었습니다.
법은 통과되었지만 반발이 컸습니다. 그해 여름, 티베리우스는 지지자들과 함께 몰려온 무리에게 맞아 죽었습니다.
십 년 뒤 동생 가이우스가 다시 나섰습니다. 그는 형보다 넓은 개혁을 시도했습니다. 곡물을 싸게 공급하고 재판 제도를 손보고, 이탈리아의 다른 도시 사람들에게도 시민권을 주자고 했습니다.
기원전 121년, 가이우스도 같은 결말을 맞았습니다. 원로원이 비상 결의를 내린 뒤 그는 죽었고, 지지자 수천 명이 함께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 일 뒤로 로마 정치에서 무력이 수단이 되었습니다. 개혁이 옳았는지와 별개로, 반대를 무력으로 없앤 선례가 남은 것입니다. 그 뒤 백 년 동안 로마는 여러 차례 내전을 겪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