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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삼국KOR0018

광개토대왕의 정복 활동

391~413년

언제
391~413년
어디서
만주·한반도
어느 나라
고구려
누가
광개토대왕
무슨 사건
광개토대왕의 정복 활동

연도가 특정된 연대

그때 자리에 있던 임금

  • 고구려 고국양왕 (18 · 384년~391년)
  • 고구려 광개토왕 (19 · 391년~412년)
  • 백제 진사왕 (16 · 385년~392년)
  • 신라 내물 마립간 (17 · 356년~4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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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로 읽는 역사 — 사고팔지 못하게 하라

자체 이중 확인 · 사람 검수 전
언제 391~413년어디서 만주·한반도누가 광개토대왕

광개토대왕은 391년부터 413년까지 고구려를 다스렸다고 연표는 적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이듬해, 아들 장수왕이 아버지의 일을 적은 큰 비석을 세웠습니다. 지금도 중국 지린성에 남아 있고 높이가 육 미터가 넘습니다.

비석은 나라의 시작부터 적습니다. 시조 추모왕은 북부여에서 왔고 하늘 임금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강의 신의 딸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다음이 광개토대왕입니다. 열여덟에 임금이 되었고 왕호를 영락태왕이라 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정복 기사는 해마다 적혀 있습니다. 396년에는 몸소 수군을 이끌고 백제를 쳤습니다. 비문은 왕이 아리수를 건너 성을 압박했고, 백제 왕이 궁지에 몰려 남녀 천 명과 가는 베 천 필을 바치고 무릎을 꿇어 이제부터 영원히 신하가 되겠다고 맹세했다고 적습니다. 그렇게 쉰여덟 성과 칠백 촌을 얻고 백제 왕의 아우와 대신 열 사람을 데리고 돌아왔다고요.

400년 기사는 신라에 관한 것입니다. 그 한 해 전, 신라가 사신을 보내 왜인이 나라 안에 가득하여 성을 무너뜨리고 있으니 왕의 명을 받고자 한다고 알렸습니다. 이듬해 왕은 보병과 기병 오만을 보내 신라를 구원하게 했습니다. 관군이 이르자 왜적이 물러났고, 그 뒤를 급히 쫓아 임나가라까지 갔다고 적혀 있습니다.

무릇 공격하여 깨뜨린 성이 예순네 개, 촌이 천사백 개라고 셈까지 해 두었습니다. 그런데 이 비석의 마지막은 정복 이야기가 아닙니다. 무덤을 지킬 사람들의 명단입니다. 어느 곳에서 몇 집을 데려왔는지를 하나하나 적고, 모두 삼백서른 집이라고 합계를 냅니다.

까닭도 적혀 있습니다. 선왕들의 능묘에는 비석을 세우지 않아서 무덤 지킬 집들이 어긋나고 섞이게 되었기에, 비를 세우고 그 집들을 새겨 어긋나지 않게 하라고 명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왕의 명령이 한 줄로 이어집니다. 수묘인을 이제부터 다시 서로 팔아넘기지 못하며, 비록 부유한 자가 있을지라도 또한 함부로 사들이지 못한다. 이를 어기면 판 자는 형벌을 받고, 산 자는 자신이 무덤을 지키게 하라. 무덤을 지키던 사람들이 사고팔리고 있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 비문에는 백여 년째 논쟁 중인 대목도 있습니다. 신묘년에 왜가 바다를 건너왔다는 부분인데, 글자가 닳아 어떤 글자인지, 문장의 주어가 누구인지를 두고 나라마다 다르게 읽어 왔습니다. 기록이 있다고 해서 뜻이 하나로 정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게다가 이 비석은 아들이 아버지를 기리며 세운 것입니다.

생각해 보기 땅을 넓히는 일에는 싸움 말고 또 무엇이 필요할까요?

더 자세히 — 비를 세운 까닭이 비에 적혀 있다

색이 다른 대목은 자료에 적힌 문장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이 비는 왕이 죽은 뒤 아들이 세운 것입니다. 그런데 왜 세웠는지가 비문 안에 적혀 있습니다.

조상의 왕들 이래 능묘에 석비를 세우지 않았기 때문에 수묘인 연호들이 어긋나고 섞이게 되었다.

무덤을 지키는 사람들이 누구인지가 뒤죽박죽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왕이 명을 내렸습니다. 묘 위에 비를 세우고 그 연호를 새겨서 어긋나 섞이지 않게 하라.

이 비의 상당 부분이 그 명단입니다. 어느 고을에서 몇 집이 왔는지를 하나하나 적고, 마지막에 합계를 냅니다. 국연이 삼십 가이고 간연이 삼백 가로 도합 삼백삼십 가이다.

공적을 기리는 비인 줄만 알기 쉬운데, 실은 명부를 돌에 새긴 것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명부 뒤에 왕의 명령이 붙어 있습니다.

수묘인을 이제부터 다시 서로 팔아넘기지 못하며, 비록 부유한 자가 있을지라도 또한 함부로 사들이지 못할 것이다.

어기면 어떻게 되는지도 적혀 있습니다. 이 법령을 위반하는 자가 있으면 판 자는 형벌을 받을 것이고, 산 자는 자신이 수묘하도록 하라.

사고판 사람에게 벌을 주는 대신, 산 사람이 직접 그 일을 하게 한 것입니다.

역주는 이 조항이 무엇을 말해 주는지 짚습니다. 이런 금지를 굳이 돌에 새겼다는 것은, 그때 수묘인이 실제로 매매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금지된 것을 보면 있던 일을 알 수 있습니다.

왕의 생애도 비문에 있습니다. 열여덟에 왕위에 올랐으니 왕호를 영락태왕이라 하였다고 했고, 서른아홉에 돌아가셨다고 적혀 있습니다.

다스리던 때의 모습은 이렇게 적었습니다. 나라가 부유하였고 백성이 은성하였으며, 오곡이 풍성히 익었다.

싸움의 기록도 있습니다. 396년에는 왕이 몸소 수군을 거느리고 나섰고, 성 이름이 오십여 개 열거된 뒤에 상대편 왕이 항복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그 항복의 문면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남녀 포로 천 명과 고운 베 천 필을 바치고, 왕 앞에 무릎 꿇어 스스로 맹세하기를, 이제부터 영원히 노객이 되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결과를 셉니다. 이에 오십팔 성과 칠백 촌을 얻었다.

400년의 일은 다른 나라의 요청에서 시작됩니다. 그 나라가 사신을 보내 왕에게 아뢰기를, 왜인이 그 국경에 가득하여 성과 못을 무너뜨리고 노객을 백성으로 삼고 있으니, 왕께 돌아와 명을 청한다고 했습니다.

이듬해에 보병과 기병 오만을 보내 신라를 구원하게 했고, 그 결과가 짧게 적혀 있습니다. 관군이 막 이르자 왜적이 물러났다.

비문 전체의 총계도 있습니다. 무릇 공격하여 깨트린 성이 예순네 개, 촌이 천사백 개였다.

이 비를 세운 뜻은 마지막에 한 줄로 적혀 있습니다. 이에 비를 세우고 훈적을 새기어 후세에 보인다.

그런데 이 비에서 가장 유명한 대목은 정작 읽는 방법이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신묘년에 관한 몇 글자입니다. 역주는 이렇게 적습니다. 19세기 후반 이후 한국과 중국과 일본의 학계에서 다양한 해석과 견해가 제기되었고, 그 과정에 각국의 민족주의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쟁점인가 하면 두 가지입니다. 어느 대목의 주체를 누구로 볼 것인가, 그리고 글자를 무엇으로 읽을 것인가입니다.

돌에 새겨진 글자인데도 읽는 법이 갈립니다. 천육백 년 전의 비석 하나를 두고 세 나라가 서로 다르게 읽어 온 셈입니다.

확인하지 못한 것 요동을 확보했다는 것은 이 비문으로 뒷받침하기 어렵습니다. 그쪽 지명은 정복이 아니라 순행과 사냥의 경로로 적혀 있습니다. 「아리수」를 어느 강으로 볼지도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광개토왕릉비」 국역문(이정빈 역주),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한국 고대 금석문 · 같은 비문의 한문 전문, zh.wikisource

한눈에 보기

무슨 일이 있었나

고구려가 요동과 한반도 북부·중부에서 영향력을 크게 확대했다.

왜 중요할까

군사력·외교·교통로 확보가 세력 확대에 결합되었다.

핵심 키워드

  • 광개토대왕
  • 영토 확장

같은 시기, 다른 나라에서는

391~413년 언저리

연대가 겹치는 사건입니다. 같은 때에 일어났다는 뜻이지, 서로 원인과 결과라는 뜻은 아닙니다. 누르면 그 사건의 상세페이지로 갑니다.

그때 다른 나라의 임금

391~413년

같은 해에 다른 나라에서 자리에 있던 사람입니다. 나라마다 한 사람씩만 실었습니다. 왕조가 여럿 겹치던 나라는 왕조 연표에 나머지가 있습니다.

  • 이란(페르시아) 바흐람 4세388~399
  • 인도 찬드라굽타 2세 비크라마디트야380~415
  • 일본 닌토쿠 천황313~399
  • 중국 효무제372~396
  • 로마 발렌티니아누스 2세375~392
  • 비잔티움 제국 테오도시우스 1세379~395
  • 아일랜드 니얼 노이기얼러흐376~405

확인 문제

이 문제는 이 사건의 기록에 적힌 값으로 만든 것입니다. 답을 고르면 바로 알려 줍니다.

  1. 1.「광개토대왕의 정복 활동」은 언제 일어난 일일까요?

  2. 2.「광개토대왕의 정복 활동」이 일어난 곳은 어디일까요?

  3. 3.「광개토대왕의 정복 활동」에 나오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4. 4.「광개토대왕의 정복 활동」은 「미노스 문명」보다 먼저 일어난 일이다.

  5. 5.「광개토대왕의 정복 활동」과 관련된 나라(정치체)는 어디일까요?

참고자료

이 사건이 속한 시기와 주제를 다루는 자료입니다. 본문의 개별 문장을 어디에서 확인했는지는 아직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료가 둘이어도 교차 검증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앞의 글자는 자료 등급으로, A는 당대 사료와 공식 문서, B는 학술 연구와 국가기관 해설, C는 백과사전과 개론 교재를 뜻합니다.

  • B신편 한국사 52책 · 국사편찬위원회 · 1993~2002 · public web service링크
  • A한국사데이터베이스 · 국사편찬위원회 · current · public web service링크
  • C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한국학중앙연구원 · current · public web service링크
  • A「광개토왕릉비(廣開土王陵碑)」 국역문 — 장수왕 3년(414) 건립, 이정빈 역주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한국 고대 금석문 · 414년 건립 · 공공누리링크
  • A「광개토왕릉비」 국역문 — 수묘인 연호 조항과 매매 금지 교령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금석문·문자자료 · 414년 건립 · 열람링크
  • A「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비」 비문 전문 · 中文維基文庫 (zh.wikisource.org) · 414 · Public Domain링크

이 항목은 한국사 학술자료기반 핵심연표에서 정리된 연표를 옮긴 것입니다. 위 참고자료와는 역할이 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