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수대첩
612년
- 언제
- 612년
- 어디서
- 살수
- 어느 나라
- 고구려·수
- 누가
- 을지문덕
- 무슨 사건
- 살수대첩
연도가 특정된 연대
그때 자리에 있던 임금
- 고구려 영양왕 (26대 · 590년~618년)
- 백제 무왕 (30대 · 600년~641년)
- 신라 진평왕 (26대 · 579년~632년)
이야기로 읽는 역사 — 물러가는 군대를 기다린 강
612년, 수의 대군이 고구려로 밀려왔습니다. 요동의 성들이 버티자 수는 따로 부대를 갈라 평양으로 곧장 내려보냈습니다. 기록에는 이 별동대가 30만 5천 명이었다고 적혀 있습니다. 이 부대를 맡은 고구려 쪽 지휘관이 을지문덕입니다.
을지문덕은 곧바로 맞붙지 않았습니다. 먼저 항복하는 척하며 적진에 들어가 사정을 살폈습니다. 그러고는 일부러 지면서 물러났습니다. 수군은 이긴다고 여기며 평양성 30리 앞까지 따라 내려왔습니다.
그러는 사이 수군은 평양 가까이까지 왔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본진과 멀어졌고, 식량도 바닥나고 있었습니다. 병사들은 지쳤습니다. 결국 수군은 물러나기로 했습니다. 왔던 길을 되짚어 북쪽으로 올라갔습니다.
고구려군이 기다린 곳이 살수입니다. 지금의 청천강으로 봅니다. 강을 건너는 동안은 대열이 흩어지고 몸을 지키기 어렵습니다. 그때 고구려군이 들이쳤습니다.
수군은 크게 무너졌습니다. 『삼국사기』에는 요동성까지 돌아간 사람이 2,700명뿐이었다고 적혀 있습니다. 다만 옛 기록의 병력 수는 부풀려 적히는 일이 많아 그대로 믿기는 어렵습니다.
이 싸움이 알려 주는 것이 있습니다. 전쟁의 승패는 군대의 크기만으로 정해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어디서 언제 부딪치느냐가 그만큼 중요했습니다.
생각해 보기 일부러 지는 척하는 것이 어떻게 작전이 될 수 있을까요?
한눈에 보기
무슨 일이 있었나
고구려군이 철수하는 수군을 살수에서 크게 격파했다.
왜 중요할까
전략·기동·보급 차단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핵심 키워드
- 살수 대첩
같은 시기, 다른 나라에서는
612년 언저리연대가 겹치는 사건입니다. 같은 때에 일어났다는 뜻이지, 서로 원인과 결과라는 뜻은 아닙니다. 누르면 그 사건의 상세페이지로 갑니다.
그때 다른 나라의 임금
612년같은 해에 다른 나라에서 자리에 있던 사람입니다. 나라마다 한 사람씩만 실었습니다. 왕조가 여럿 겹치던 나라는 왕조 연표에 나머지가 있습니다.
- 몽골·투르크 초원 제국 바얀 2세602~617
- 이란(페르시아) 호스로 2세590, 591~628
- 일본 스이코 천황593~628
- 중국 양제(양광)604~618
- 캄보디아 이사나바르만 1세611~635
- 비잔티움 제국 헤라클리우스610~641
- 아일랜드 에드 우아리드나치604~612
- 영국 애설버트 1세560~616
- 프랑스 클로타르 2세584~629
확인 문제
이 문제는 이 사건의 기록에 적힌 값으로 만든 것입니다. 답을 고르면 바로 알려 줍니다.
1.「살수대첩」은 언제 일어난 일일까요?
2.「살수대첩」이 일어난 곳은 어디일까요?
3.「살수대첩」에 나오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4.「살수대첩」과 관련된 나라(정치체)는 어디일까요?
5.「살수대첩」은 「정화의 항해」보다 먼저 일어난 일이다.
참고자료
이 사건이 속한 시기와 주제를 다루는 자료입니다. 본문의 개별 문장을 어디에서 확인했는지는 아직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료가 둘이어도 교차 검증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앞의 글자는 자료 등급으로, A는 당대 사료와 공식 문서, B는 학술 연구와 국가기관 해설, C는 백과사전과 개론 교재를 뜻합니다.
- B신편 한국사 52책 · 국사편찬위원회 · 1993~2002 · public web service링크
- A한국사데이터베이스 · 국사편찬위원회 · current · public web service링크
- C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한국학중앙연구원 · current · public web service링크
- B「살수대첩 612」 ·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 public information링크
이 항목은 한국사 학술자료기반 핵심연표에서 정리된 연표를 옮긴 것입니다. 위 참고자료와는 역할이 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