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도선 분할 점령
1945년 8~9월
- 언제
- 1945년 8~9월
- 어디서
- 한반도
- 어느 나라
- 미국·소련
- 무슨 사건
- 38도선 분할 점령
연도가 특정된 연대
이야기로 읽는 역사 — 석탄이 내려오지 않았다
1945년 8월 일본이 항복하자, 한반도에 있던 일본군의 항복을 누가 받을 것인지가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 답을 적은 문서가 일반명령 제1호입니다. 미국 문서에 그 조항이 그대로 인용되어 있습니다. 만주와 북위 38도 이북의 한국과 가라후토에 있는 일본군 지휘관과 모든 부대는 소련 극동군 총사령관에게 항복한다. 일본 본토와 북위 38도 이남의 한국과 필리핀에 있는 부대는 미 태평양 육군 총사령관에게 항복한다.
한 문장 안에 한국이 두 번 나오고, 그 사이에 숫자 하나가 들어 있습니다. 이 선은 나라를 나누려고 그은 것이 아니라 항복을 누가 받을지 정하려고 그은 것이었습니다.
8월 24일 삼부조정위원회가 합동참모본부에 보낸 비망록은, 다른 연합국이 이의를 내지 않으면 한국의 초기 점령은 일반명령 제1호 1조 b항과 e항의 규정에 따라 미군과 소련군만으로 한다고 적습니다. 이 결정에 한국 사람은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9월 9일 미군 사령관이 한국 사람들에게 낸 포고문도 남아 있습니다. 항복문서의 조건에 따라 오늘 북위 38도 이남의 한국 영토를 점령한다는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한 달 뒤 서울에 있던 미국 정치고문이 국무장관에게 보낸 편지가 그 선이 무엇을 했는지 보여 줍니다. 그는 38도선의 임의적인 분할이 만든 어려움을 적습니다. 가장 급한 것은 석탄이었습니다. 석탄이 나는 곳은 북쪽이었습니다. 그래서 규슈에서 나는 석탄을 한 달에 칠만 톤씩 부산으로 실어 오기로 했습니다. 바로 위에서 오던 것을 바다 건너에서 들여온 것입니다.
석탄이 오지 않으면 38도선 남쪽의 철도가 곧 멈출 것이라고 적은 전보도 있습니다. 같은 전보에 이런 말이 이어집니다. 나라를 반으로 갈라 둔 채로 두면 치명적일 것이다, 어느 쪽도 상대와 주고받지 않고는 스스로 설 수 없다, 그런데 지금 오가는 것이라고는 38도선 북쪽에서 남쪽으로 오는 피난민뿐이고 그 반대는 없다.
임시로 그은 선이라고 했지만, 그 선 하나에 그해 겨울에 땔 것과 사람들이 오갈 길이 걸려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기 임시로 그은 선이 오래 남으면 무엇이 어려워질까요?
더 자세히 — 그 선을 그은 쪽이 남긴 말
색이 다른 대목은 자료에 적힌 문장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이 선이 어떻게 그어졌는지는 미국 문서로 따라갈 수 있습니다. 선을 그은 쪽의 기록이라는 점을 먼저 밝혀 둡니다.
선을 정한 문서는 일반명령 제1호입니다. 연합군 최고사령관이 낸 것이고, 그 원문이 보고서 부록에 실려 있습니다. 만주, 북위 38도 이북의 한국 및 카라후토 안에 있는 일본군 선임 지휘관과 모든 육군·해군·공군 및 보조 부대는 극동 소련군 총사령관에게 항복한다.
이 명령은 누가 어디서 항복을 받을지를 정한 것입니다. 나라를 나누겠다고 적은 문서가 아닙니다. 그런데 항복을 받는 경계가 그대로 점령의 경계가 되었습니다. 8월 24일 삼부조정위원회 비망록은 이렇게 적습니다. 한국의 초기 점령은 일반명령 제1호의 규정에 따라 미군과 소련군만으로 수행된다.
선이 그어진 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한 달 뒤의 보고서가 보여 줍니다. 서울에 있던 미국 정치고문이 국무장관에게 보낸 것입니다.
그가 쓴 표현이 눈에 띕니다. 특별히 38도선의 임의적인 분할이 대소관계에서 야기한 어려움들. 그 선을 그은 쪽 사람이 스스로 임의적이라고 적은 것입니다.
어려움이 무엇이었는지도 구체적입니다. 첫째가 생필품 공급, 특히 석탄과 관련된 긴급한 문제였습니다. 석탄이 나는 곳과 그것을 쓰는 곳이 선으로 갈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는지도 적혀 있습니다. 규슈산 석탄을 매달 칠만 톤씩 부산에 선적하도록 일본 정부에 지시하기로 합의했습니다. 한 나라 안에서 오가던 것을, 바다 건너에서 실어 오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 문장이 붙습니다. 미군이 처음 상륙한 지 두 주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본 사령부는 여러 가지 긴급한 문제에 관해 소련 측과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한 형편입니다.
선은 며칠 만에 그어졌는데, 그 선을 사이에 두고 이야기를 시작하는 데에는 두 주가 지나도록 이르지 못했습니다.
확인하지 못한 것 38도선을 제안한 자리와 걸린 시간, 소련이 그것을 받아들인 경위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미국 국무부 외교문서(FRUS) 1945년 제6권 「Korea」 — 삼부조정위원회 비망록(1945-08-24), 일반명령 제1호 원문이 실린 합동참모본부 앞 보고서, 주한 정치고문 베닝호프가 국무장관에게 보낸 보고(1945-09-26).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와 history.state.gov
한눈에 보기
무슨 일이 있었나
미국과 소련이 38도선을 경계로 일본군 무장해제를 담당했다.
왜 중요할까
분단이 국내정치와 냉전 국제질서의 결합 속에서 구조화되기 시작했다.
핵심 키워드
- 38선
같은 시기, 다른 나라에서는
1945년 8~9월 언저리연대가 겹치는 사건입니다. 같은 때에 일어났다는 뜻이지, 서로 원인과 결과라는 뜻은 아닙니다. 누르면 그 사건의 상세페이지로 갑니다.
그때 다른 나라의 임금
1945년 8~9월같은 해에 다른 나라에서 자리에 있던 사람입니다. 나라마다 한 사람씩만 실었습니다. 왕조가 여럿 겹치던 나라는 왕조 연표에 나머지가 있습니다.
- 이란(페르시아)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1941~1979
- 이슬람권 파루크1936~1952
- 일본 쇼와 천황(히로히토)1926~1989
- 캄보디아 노로돔 시아누크1941~1955
- 태국 아난타 마히돈1935~1946
- 영국 조지 6세1936~1952
- 모로코 무함마드 5세1927~1953
- 베냉 왕국 아켄주아 2세1933~1978
- 아샨티 왕국 프렘페흐 2세1931~1970
- 에티오피아 하일레 셀라시에 1세1930~1974
- 통가 살로테 투포우 3세1918~1965
확인 문제
이 문제는 이 사건의 기록에 적힌 값으로 만든 것입니다. 답을 고르면 바로 알려 줍니다.
1.「38도선 분할 점령」은 언제 일어난 일일까요?
2.「38도선 분할 점령」이 일어난 곳은 어디일까요?
3.「38도선 분할 점령」은 「군도 지역의 이슬람 수용」보다 나중에 일어난 일이다.
4.「38도선 분할 점령」과 관련된 나라(정치체)는 어디일까요?
5.「38도선 분할 점령」은 어느 지역의 역사일까요?
참고자료
이 사건이 속한 시기와 주제를 다루는 자료입니다. 본문의 개별 문장을 어디에서 확인했는지는 아직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료가 둘이어도 교차 검증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앞의 글자는 자료 등급으로, A는 당대 사료와 공식 문서, B는 학술 연구와 국가기관 해설, C는 백과사전과 개론 교재를 뜻합니다.
- B신편 한국사 52책 · 국사편찬위원회 · 1993~2002 · public web service링크
- A한국사데이터베이스 · 국사편찬위원회 · current · public web service링크
- C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한국학중앙연구원 · current · public web service링크
- A미국 국무부 외교문서(FRUS) 1945년 제6권 — 38도선과 초기 점령에 관한 문서들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FRUS 자료 (번역·주석 수록) · 1945 · 열람링크
- AFRUS 1945, vol. VI 「Korea」 — 일반명령 제1호 원문과 점령 초기 문서 · U.S. Department of State, Office of the Historian · 1945(간행 1969) · 공개(미국 정부 저작물)링크
이 항목은 한국사 학술자료기반 핵심연표에서 정리된 연표를 옮긴 것입니다. 위 참고자료와는 역할이 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