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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제강점KOR0232

원산총파업

1929년 1~4월

언제
1929년 1~4월
어디서
원산
어느 나라
일본
어느 기관
원산노동연합회
무슨 사건
원산총파업

연도가 특정된 연대

이야기로 읽는 역사 — 천장까지 뜯어 찾았지만

자체 이중 확인 · 사람 검수 전
언제 1929년 1~4월어디서 원산

원산은 큰 항구였습니다. 배가 드나들고 물건이 오갔으며 일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 넉 달을 신문 기사 제목만으로 따라가 볼 수 있습니다. 본문은 남아 있지 않고 제목뿐인데도 흐름이 그대로 보입니다.

시작은 문평이라는 곳의 석유 공장이었습니다. 1929년 1월 15일자 제목은 이렇습니다. 회사 쪽이 약속을 지키지 않은 데 분개해 문평 석유 직공들이 14일 오전 열 시부터 파업을 시작했고, 술을 끊어 파업 자금을 댔다고요.

이틀 뒤 제목에는 헌병과 경관 아홉 명이 회사를 지키고 있다고 적혀 있습니다. 1월 24일자 제목이 판을 바꿉니다. 22일 집행위원회 결의로 연합회원 이천 명이 전날 아침부터 총파업을 단행했다는 것입니다. 이틀 뒤 제목은 이 일을 조선에서 처음 있는 큰 규모의 노동쟁의라고 부릅니다.

파업이 아니라 도시가 멈추기 시작합니다. 1월 27일자 제목은 어음 교환이 전혀 없고 파산자까지 나올 형세라 은행들이 비상경계에 들어갔다고 적습니다. 1월 30일에는 인쇄공과 제차공까지 동정 파업에 들어갔습니다.

2월 6일자에는 총독부의 여러 국이 이 문제로 밀의를 열었고, 파업한 지 이십여 일 동안 연인원 이만 삼천 명, 손해가 만 팔천 원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다음 제목들은 방향이 바뀝니다. 집행위원 네 명이 결국 수감되었고, 사복과 정복 경찰 서른여 명이 노동연합회관과 간부들의 집을 뒤졌으며, 천장까지 뜯어 가며 찾았습니다. 압수한 장부에서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제목만 남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1월 26일 원산노동연합회가 낸 성명서는 글 전체가 전해집니다. 이번 노동 정지는 한 회사가 계약을 무시하고 부두노동조합 한 구역의 일을 멈추게 한 데서 비롯되었고 다른 단체들이 동정을 표한 것이라고 적습니다. 그러니 동맹파업을 한 것이 결코 아니며 정치적, 경제적, 민족적 의미는 조금도 없다고도 적습니다. 파업하는 쪽이 스스로 그렇게 적었습니다. 그리고 상업회의소가 회원과 그 가족 만여 명을 시민이 아닌 것처럼 대한다고 덧붙였습니다.

버티는 쪽의 제목도 있습니다. 2월 14일자에는 새로 도착한 쌀 오백 가마니를 앞세워 오백 명이 시위행렬을 했고, 문평에서도 시위가 있었으며, 그 줄에 여자도 참가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이 제목들을 차례로 읽으면 넉 달 동안 무엇이 오갔는지가 남습니다.

생각해 보기 오래 버틴 파업이 끝났을 때 남는 것은 무엇일까요?

더 자세히 — 그들이 스스로 적은 말

색이 다른 대목은 자료에 적힌 문장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이 사건은 신문 제목으로 좇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목만 이어 붙이면 밖에서 본 모습이 됩니다. 안에서 자기들이 무엇이라 했는지가 한 군데 남아 있습니다. 1929년 1월 26일에 낸 성명서입니다.

먼저 그들은 이 일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밝힙니다. 이번 노동 정지는 국제통운주식회사 원산지점이 계약을 무시하고 부두노동조합 제1구에 대하여 노동을 정지시킨 것에 기인하며, 각 단체가 그에 동정을 표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다음 문장이 뜻밖입니다. 그러므로 동맹파업을 행한 것은 결코 아니다.

이어서 이렇게 적습니다. 아무런 요구가 없을 뿐 아니라 정치적·경제적 또는 민족적 의미는 조금도 없는 것이다.

싸움을 크게 부르는 대신 작게 부른 것입니다. 그때 파업을 「정치」나 「민족」의 일로 규정하면 어떤 일이 뒤따랐는지를 생각하면, 이 문장이 왜 이렇게 쓰였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그들은 이어서 적습니다. 재향군인회와 소방대가 출동하여 온 시내를 놀라게 했다는 것, 그리고 원산상업회의소가 우리 연합회 회원과 그 가족 만여 명을 시민이 아닌 것처럼 보는 행동을 감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요구한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보상도 처벌도 아니었습니다. 일반 대중의 공평한 비판을 구하기 위하여 입회 연설회를 열게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양쪽 말을 다 하게 해 달라는 요구입니다.

같은 자료집의 앞쪽에는 상대편의 결의도 있습니다. 1월 17일에 원산상업회의소가 긴급회의를 열어 앞으로 강경책을 사용하여 원산노동연합회를 타도하기로 결의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그 뒤의 일은 신문 제목이 날짜별로 보여 줍니다.

시작은 문평의 석유공장이었습니다. 1929년 1월 15일 제목에 회사 측의 무신에 분개하여 파업에 들어갔다고 적혀 있고, 그 옆에 이런 말이 붙어 있습니다. 금주로 파업 자금 제공. 술을 끊어 파업 자금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1월 17일에는 헌병과 경관 아홉 명이 회사를 지켰습니다. 1월 23일에는 운송노조원 사백오십 명이 동정 파업을 했습니다.

그리고 총파업입니다. 1월 24일 제목에 연합회원 이천 명 어제 아침부터 총파업 단행, 22일 집행위원회 결의로라고 적혀 있습니다. 22일에 결의하고 23일 아침부터 멈춘 것입니다.

이틀 뒤 제목은 이 일을 조선 초유의 대규모 노동쟁의라 불렀습니다.

도시가 어떻게 되었는지도 제목에 남아 있습니다. 1월 27일에는 증권 수형 교환 전무, 파산자까지 속출 형세, 각 은행 비상경계로 상계 대타격이라 했습니다. 항구가 멈추자 돈이 돌지 않았습니다.

2월 6일 제목에는 총독부 각 국이 밀의를 열었고 당분간은 비간섭 방침이라 적혀 있습니다. 같은 날 다른 제목은 손해를 셉니다.

2월 11일에는 경관 서른 명이 노동연합회를 수색했습니다. 이튿날 제목이 그 장면을 전합니다. 천장까지 파괴 압색, 러시아 글임에 의심 두어. 장부의 글자가 러시아 글자로 보인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런데 나흘 뒤 제목은 이렇습니다. 압수한 쟁의단의 장부에서 도무소득.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2월 14일에는 새로 들어온 양미를 선두로 파업단 시위행렬이 있었고, 제목 끝에 여자도 참가라고 적혀 있습니다. 이튿날에는 여공까지 지구전을 말했다는 제목이 나옵니다.

3월 25일 제목에는 두 가지가 나란히 있습니다. 쟁의단 질서 정연, 그리고 경계비 삼만 원 거액입니다.

끝은 3월 27일 제목에 있습니다. 무조건 취업 요구에 파업단 육백여 명 복업. 이튿날 제목은 두 번째 조정안에 대해 내용이 실로 모욕적이라며 파업단이 크게 분개했다고 전합니다.

4월 8일 제목은 이렇습니다. 간부는 물론 급사까지도 검거, 새로 뽑은 간부 두 명만 남아.

싸움이 어떻게 끝났는지를 한마디로 규정하는 대신, 그날그날의 제목을 순서대로 두는 편이 정직합니다. 그 안에 술을 끊어 모은 돈과, 천장까지 뜯긴 사무실과, 아무것도 나오지 않은 장부가 다 들어 있습니다.

확인하지 못한 것 신문 색인 자료군은 제목만 주고 기사 본문이 없습니다. 국내외에서 모인 동정금의 총액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 모집했다는 사실만 있고 액수가 없습니다.

『일제침략하 한국36년사』 제9권에 실린 원산노동연합회 성명서(1929-01-26, 출전 『동아일보』 1929-01-30)와 같은 자료집의 앞뒤 항목,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 『동아일보』·『중외일보』 1927~1929년 기사 제목(같은 DB의 신문 색인)

한눈에 보기

무슨 일이 있었나

일본인 감독의 조선인 노동자 폭행 문제에서 시작된 파업이 원산 지역 노동조합의 총파업으로 확대되었다. 장기화 속에 자본과 식민 당국의 압박으로 끝났다.

왜 중요할까

식민지 산업화, 노동조합, 민족 문제와 계급 문제의 결합을 분석할 수 있다.

핵심 키워드

  • 원산 총파업
  • 노동

같은 시기, 다른 나라에서는

1929년 1~4월 언저리

연대가 겹치는 사건입니다. 같은 때에 일어났다는 뜻이지, 서로 원인과 결과라는 뜻은 아닙니다. 누르면 그 사건의 상세페이지로 갑니다.

그때 다른 나라의 임금

1929년 1~4월

같은 해에 다른 나라에서 자리에 있던 사람입니다. 나라마다 한 사람씩만 실었습니다. 왕조가 여럿 겹치던 나라는 왕조 연표에 나머지가 있습니다.

  • 이란(페르시아) 레자 샤 팔라비1925~1941
  • 이슬람권 아흐마드 푸아드 1세1917~1936
  • 인도네시아 하멩쿠부워노 8세1921~1939
  • 일본 쇼와 천황(히로히토)1926~1989
  • 캄보디아 시소와스 모니봉1927~1941
  • 태국 프라차티뽁1925~1935
  • 에스파냐 알폰소 13세1886~1931
  • 영국 조지 5세1910~1936
  • 모로코 무함마드 5세1927~1953
  • 베냉 왕국 에웨카 2세1914~1933
  • 아샨티 왕국 프렘페흐 1세1888~1931
  • 에티오피아 자우디투1916~1930
  • 통가 살로테 투포우 3세1918~1965

확인 문제

이 문제는 이 사건의 기록에 적힌 값으로 만든 것입니다. 답을 고르면 바로 알려 줍니다.

  1. 1.「원산총파업」은 언제 일어난 일일까요?

  2. 2.「원산총파업」이 일어난 곳은 어디일까요?

  3. 3.「원산총파업」과 관련된 나라(정치체)는 어디일까요?

  4. 4.「원산총파업」은 「뉴질랜드 여성 참정권 획득」보다 나중에 일어난 일이다.

  5. 5.「원산총파업」은 어느 지역의 역사일까요?

참고자료

이 사건이 속한 시기와 주제를 다루는 자료입니다. 본문의 개별 문장을 어디에서 확인했는지는 아직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료가 둘이어도 교차 검증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앞의 글자는 자료 등급으로, A는 당대 사료와 공식 문서, B는 학술 연구와 국가기관 해설, C는 백과사전과 개론 교재를 뜻합니다.

  • B신편 한국사 52책 · 국사편찬위원회 · 1993~2002 · public web service링크
  • A한국사데이터베이스 · 국사편찬위원회 · current · public web service링크
  • C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한국학중앙연구원 · current · public web service링크
  • B『중외일보』 1927~1929년 원산 노동쟁의 관련 기사 제목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수록 112건 중)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중외일보 `npjo`) · 1927~1929년 · 공공누리링크
  • A『동아일보』 1929년 1~2월 기사 제목 — 원산총파업의 시작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자료군 modern/npda) · 1929 · 열람링크
  • B원산노동연합회 성명서(1929년 1월 26일) 전문과 원산총파업 일지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일제침략하 한국36년사』 제9권, 출전은 『동아일보』 · 1929 · 국사편찬위원회 제공링크

이 항목은 한국사 학술자료기반 핵심연표에서 정리된 연표를 옮긴 것입니다. 위 참고자료와는 역할이 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