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순천 사건
1948년 10월 이후
- 언제
- 1948년 10월 이후
- 어디서
- 여수·순천
- 어느 나라
- 대한민국
- 어느 기관
- 국군 제14연대
- 무슨 사건
- 여수·순천 사건
연도가 특정된 연대
이야기로 읽는 역사 — 명령을 거부한 부대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세워진 지 두 달 남짓 지난 때였습니다. 제주에서는 4·3 사건이 진행 중이었습니다. 정부는 여수에 있던 국군 제14연대에 제주로 가서 진압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10월 19일 밤, 이 부대의 일부가 명령을 거부하고 봉기했습니다. 같은 나라 사람을 치러 갈 수 없다는 것이 이유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들은 여수를 장악했고 이어 순천으로 갔습니다. 정부는 곧 진압군을 보냈고 며칠 만에 두 도시를 되찾았습니다.
그 지역에 계엄이 선포되었습니다. 그런데 계엄이 무엇이고 계엄사령관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정한 법은 그때 아직 없었습니다. 계엄법이 국회를 지나 시행된 것은 이듬해 11월 24일입니다. 사건이 일어난 지 열세 달 뒤입니다.
계엄이 풀린 날짜는 남아 있습니다. 1949년 2월 5일 나온 대통령령은 한 문장뿐입니다. 여수순천지구의 계엄은 단기 4282년 2월 5일로서 이를 해지한다. 넉 달 가까이 이어진 셈입니다.
누가 가담했는지 가려내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끌려갔습니다. 봉기에 참여한 사람, 어쩔 수 없이 협조한 사람, 아무 관계 없는 사람이 제대로 구분되지 않았습니다. 군인과 경찰뿐 아니라 민간인이 아주 많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해 12월 1일에는 국가보안법이 시행되었습니다. 여섯 조밖에 되지 않는 짧은 법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조항이 눈에 띕니다. 남을 모함하려고 거짓으로 고발하거나 직권을 남용해 죄를 지어낸 사람도 같은 벌로 처벌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법을 만든 사람들도 그런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셈입니다.
이 사건은 오랫동안 반란이라는 한 낱말로만 불렸습니다. 그 이름만으로는 목숨을 잃은 민간인이 설명되지 않습니다.
지금은 이 일을 다루는 특별법이 있습니다. 그 법은 사건을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제14연대 일부 군인들이 제주4·3사건 진압 명령을 거부하고 일으킨 사건으로 인하여, 여러 지역에서 발생한 혼란과 무력 충돌 및 이의 진압 과정에서 다수의 민간인이 희생당한 사건. 기간은 1948년 10월 19일부터 지리산 입산 금지가 해제된 1955년 4월 1일까지입니다. 국가가 이 일의 끝을 산에 다시 들어갈 수 있게 된 날로 잡은 것입니다.
생각해 보기 사건의 이름을 무엇으로 부르느냐가 왜 중요할까요?
더 자세히 — 법이 없는 채로 계엄이 있었다
색이 다른 대목은 자료에 적힌 문장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이 사건을 국가가 어떻게 정의했는지는 2021년에 만든 특별법에 있습니다. 조문을 그대로 봅니다.
정부 수립의 초기 단계에 여수에서 주둔하고 있던 국군 제14연대 일부 군인들이 국가의 「제주4·3사건」 진압 명령을 거부하고 일으킨 사건으로 인하여 벌어진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조문에서 눈여겨볼 것은 기간입니다. 1948년 10월 19일부터 지리산 입산 금지가 해제된 1955년 4월 1일까지라고 적었습니다.
끝나는 날을 어떤 사건이 아니라 산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던 조치가 풀린 날로 잡은 것입니다. 여섯 해가 넘습니다.
그 기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조문이 적습니다. 혼란과 무력 충돌 및 이의 진압과정에서 다수의 민간인이 희생당한 사건입니다. 「진압과정에서」라는 말이 법조문에 들어 있습니다.
희생자의 범위도 정해 두었습니다. 사망하거나 행방불명된 사람, 후유장애가 남아 있는 사람, 수형자입니다. 감옥에 갇혔던 사람도 희생자에 넣었습니다.
유족의 범위에는 눈에 띄는 대목이 있습니다. 배우자와 직계존비속이 없고 형제자매도 없으면, 4촌 이내의 방계혈족으로서 희생자의 제사를 치르거나 무덤을 관리하는 사람까지 봅니다. 일흔 해가 지나면 남는 사람이 그런 사람뿐일 수 있습니다.
위원회가 할 일에는 집단학살지와 암매장지 조사, 유골의 발굴과 수습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면 그때로 돌아가 봅니다. 이 사건 두 달 뒤에 국가보안법이 만들어져 시행되었습니다.
제1조는 무엇을 처벌하는지를 정합니다. 결사나 집단을 구성한 자 가운데 수괴와 간부는 무기 또는 3년 이상, 그 사정을 알고 가입한 자는 3년 이하로 했습니다. 제3조는 협의·선동 또는 선전을 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입니다.
그런데 이 법에는 조금 뜻밖의 조항이 하나 있습니다. 제6조입니다.
타인을 모함할 목적으로 허위의 고발·위증 또는 직권을 남용하여 범죄사실을 날조한 자는 해당 내용에 해당한 범죄규정으로 처벌한다.
없는 죄를 만들어 낸 사람은, 그 만들어 낸 죄와 같은 형으로 처벌한다는 것입니다. 이 법을 만든 쪽도 무고와 날조가 뒤따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 사건에서 가장 이상한 사실이 하나 남아 있습니다. 계엄에 관한 것입니다.
계엄법은 1949년 11월 24일에 제정되고 그날 시행되었습니다. 제11조는 비상계엄의 선포와 동시에 계엄사령관은 계엄지역 내의 모든 행정사무와 사법사무를 관장한다고 했고, 제13조는 계엄사령관이 체포·구금·수색·거주·이전·언론·출판·집회 또는 단체행동에 관하여 특별한 조치를 할 수 있게 했습니다. 제16조는 그 지역에서 열거된 죄를 범한 사람을 군법회의에서 재판한다고 정했습니다.
이 사건은 1948년 10월 19일에 일어났습니다.
곧 계엄이 선포되고 계엄사령관이 재판까지 관장하던 그때, 계엄이 무엇이며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정한 법률 자체가 아직 없었습니다. 법은 사건이 있고 열세 달 뒤에 만들어졌습니다.
그 계엄이 언제 풀렸는지는 대통령령 하나로 남아 있습니다. 본문이 한 문장입니다.
여수순천지구의 계엄은 단기 4282년 2월 5일로서 이를 해지한다.
확인하지 못한 것 1948년 10월의 계엄 선포 문서 자체는 법제처 DB에서 찾지 못했습니다 — 해지 대통령령만 있습니다. 봉기 당일의 경과, 희생자 수, 진압군의 구성도 이 법령들에 없습니다. 위원회의 진상조사보고서로 따로 대조해야 합니다.
「국가보안법」(1948년 법률 제10호), ko.wikisource · 「계엄법」(1949년 법률 제69호)·「여수·순천지구계엄해지에관한건」(1949년 대통령령)·「여수·순천 10·19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법제처 국가법령정보
한눈에 보기
무슨 일이 있었나
제주 4·3 진압 출동 명령을 거부한 국군 제14연대 일부가 봉기해 여수·순천 일대를 장악했다. 정부군의 진압과 이후 처벌 과정에서 군인·경찰뿐 아니라 많은 민간인이 희생되었다.
왜 중요할까
정부 수립 초기 국가 폭력, 군 통제, 반공 체제 형성과 민간인 피해를 복합적으로 살필 수 있다.
핵심 키워드
- 여수·순천 사건
- 국가폭력
같은 시기, 다른 나라에서는
1948년 10월 이후 언저리연대가 겹치는 사건입니다. 같은 때에 일어났다는 뜻이지, 서로 원인과 결과라는 뜻은 아닙니다. 누르면 그 사건의 상세페이지로 갑니다.
그때 다른 나라의 임금
1948년 10월 이후같은 해에 다른 나라에서 자리에 있던 사람입니다. 나라마다 한 사람씩만 실었습니다. 왕조가 여럿 겹치던 나라는 왕조 연표에 나머지가 있습니다.
- 이란(페르시아)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1941~1979
- 이슬람권 파루크1936~1952
- 일본 쇼와 천황(히로히토)1926~1989
- 캄보디아 노로돔 시아누크1941~1955
- 태국 푸미폰 아둔야뎃1946~2016
- 영국 조지 6세1936~1952
- 모로코 무함마드 5세1927~1953
- 베냉 왕국 아켄주아 2세1933~1978
- 아샨티 왕국 프렘페흐 2세1931~1970
- 에티오피아 하일레 셀라시에 1세1930~1974
- 통가 살로테 투포우 3세1918~1965
확인 문제
이 문제는 이 사건의 기록에 적힌 값으로 만든 것입니다. 답을 고르면 바로 알려 줍니다.
1.「여수·순천 사건」은 언제 일어난 일일까요?
2.「여수·순천 사건」이 일어난 곳은 어디일까요?
3.「여수·순천 사건」과 관련된 나라(정치체)는 어디일까요?
4.「여수·순천 사건」은 「아메리카 대륙의 인류 정착」보다 먼저 일어난 일이다.
5.「여수·순천 사건」은 어느 지역의 역사일까요?
참고자료
이 사건이 속한 시기와 주제를 다루는 자료입니다. 본문의 개별 문장을 어디에서 확인했는지는 아직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료가 둘이어도 교차 검증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앞의 글자는 자료 등급으로, A는 당대 사료와 공식 문서, B는 학술 연구와 국가기관 해설, C는 백과사전과 개론 교재를 뜻합니다.
- B신편 한국사 52책 · 국사편찬위원회 · 1993~2002 · public web service링크
- A한국사데이터베이스 · 국사편찬위원회 · current · public web service링크
- C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한국학중앙연구원 · current · public web service링크
- A『국가보안법』 법률 제10호 (1948.12.1 제정·시행) · ko.wikisource 전사 · 1948 · public domain링크
- A「여수ㆍ순천 10ㆍ19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 2021 · 공개링크
- A계엄법 제정본(1949)과 여수·순천지구계엄해지에관한건(1949) ·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 1949 · 공개링크
이 항목은 한국사 학술자료기반 핵심연표에서 정리된 연표를 옮긴 것입니다. 위 참고자료와는 역할이 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