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구스투스와 로마 제정의 시작
Augustus and the Principate · 기원전 27년
- 언제
- 기원전 27년
- 어디서
- 로마
- 어느 나라
- 로마 제국
- 누가
- 아우구스투스
- 무슨 사건
- 아우구스투스와 로마 제정의 시작
연도가 특정된 연대
그때 자리에 있던 임금
- 로마 아우구스투스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 1대 · 기원전 27~서기 14)
같은 지역의 여러 나라를 함께 보였습니다. 이 사건이 일어난 곳의 임금만이 아닙니다. 나라별 왕조 연표 보기
이야기로 읽는 역사 — 왕이라 부르지 않은 일인자
로마 공화정은 오래 이어졌지만 후기에는 내전이 잦았습니다. 힘 있는 장군들이 군대를 거느리고 다투었습니다.
카이사르가 권력을 잡았을 때 사람들은 그가 왕이 되려 한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그는 원로원에서 살해되었습니다. 그의 뒤를 이은 사람이 옥타비아누스입니다. 그는 앞사람의 최후를 보고 배운 것이 있었습니다.
기원전 27년, 그는 자기가 가진 권한을 원로원과 로마 시민에게 넘기겠다고 했습니다. 원로원은 그에게 아우구스투스라는 칭호를 주었습니다. 존엄한 자라는 뜻입니다.
이 일을 그는 나중에 자기 손으로 정리해 돌에 새기게 했습니다. 그 글이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내전의 불길을 끈 뒤 나라를 자기 손에서 원로원과 로마 시민의 뜻으로 넘겼다고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문장이 이어집니다. 그 뒤로 나는 자리로는 모두보다 앞섰으나, 권한으로 말하면 함께 관직을 맡은 이들보다 더 가진 것이 없었다.
실제로 그는 왕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습니다. 스스로를 제1시민이라고 불렀습니다. 여러 시민 가운데 첫째라는 뜻입니다. 집정관과 원로원, 민회도 그대로 두었습니다. 겉으로 보면 공화정이 이어지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군대와 재정, 중요한 임명권은 그가 쥐고 있었습니다. 이름은 바꾸지 않고 실제만 바꾼 것입니다. 방금 읽은 글도 그가 남기고 싶어 한 자기 모습이라는 점을 함께 생각해야 합니다. 이 체제 아래 로마는 이백 년 가까이 큰 전쟁 없는 시기를 보냅니다.
생각해 보기 겉모습을 그대로 두고 실제만 바꾸는 방법은 왜 효과가 있었을까요?
한눈에 보기
무슨 일이 있었나
옥타비아누스가 아우구스투스 칭호를 받고 새로운 황제정 질서를 확립했다.
왜 중요할까
공화정 제도와 황제 권력이 결합된 로마 제정의 출발점이다.
핵심 키워드
- 로마 제국
- 팍스 로마나
같은 시기, 다른 나라에서는
기원전 27년 언저리연대가 겹치는 사건입니다. 같은 때에 일어났다는 뜻이지, 서로 원인과 결과라는 뜻은 아닙니다. 누르면 그 사건의 상세페이지로 갑니다.
그때 다른 나라의 임금
기원전 27년같은 해에 다른 나라에서 자리에 있던 사람입니다. 나라마다 한 사람씩만 실었습니다. 왕조가 여럿 겹치던 나라는 왕조 연표에 나머지가 있습니다.
- 이란(페르시아) 프라아테스 4세약 기원전 38~2
- 일본 스이닌 천황기원전 28~서기 70
- 중국 성제기원전 33~7
- 한국 동명성왕기원전 37년~기원전 19년
플루타르코스가 전한 사람
확인 문제
이 문제는 이 사건의 기록에 적힌 값으로 만든 것입니다. 답을 고르면 바로 알려 줍니다.
1.「아우구스투스와 로마 제정의 시작」은 언제 일어난 일일까요?
2.「아우구스투스와 로마 제정의 시작」이 일어난 곳은 어디일까요?
3.「아우구스투스와 로마 제정의 시작」에 나오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4.「아우구스투스와 로마 제정의 시작」은 「뢴트겐의 X선 발견」보다 나중에 일어난 일이다.
5.「아우구스투스와 로마 제정의 시작」과 관련된 나라(정치체)는 어디일까요?
참고자료
이 사건이 속한 시기와 주제를 다루는 자료입니다. 본문의 개별 문장을 어디에서 확인했는지는 아직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료가 둘이어도 교차 검증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앞의 글자는 자료 등급으로, A는 당대 사료와 공식 문서, B는 학술 연구와 국가기관 해설, C는 백과사전과 개론 교재를 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