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둥 회의
Bandung Conference · 1955년
- 언제
- 1955년
- 어디서
- 반둥
- 어느 나라
- 아시아·아프리카 여러 나라
- 무슨 사건
- 반둥 회의
연도가 특정된 연대
이야기로 읽는 역사 — 어느 편도 들지 않겠다
1950년대 세계는 크게 둘로 갈라져 있었습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쪽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쪽이었습니다. 그 무렵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는 막 독립한 나라들이 늘고 있었습니다.
1955년 4월, 인도네시아 반둥에 스물아홉 나라의 대표가 모였습니다. 회의를 연 수카르노는 연설에서 그 수를 그대로 말했습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스물아홉 나라가 이 회의에 왔다고요. 회의는 4월 24일에 공동성명을 냈습니다. 거기에 열 가지 원칙이 적혀 있습니다.
몇 가지만 옮기면 이렇습니다. 모든 나라의 주권과 영토를 존중한다. 모든 인종이 평등하고, 크든 작든 모든 나라가 평등하다. 남의 나라 안의 일에 끼어들지 않는다. 다툼은 평화로운 방법으로 푼다.
어느 편도 들지 않겠다는 뜻은 여섯째에 들어 있습니다. 큰 나라들의 이익에 쓰이는 집단 방위 약속은 이용하지 않는다. 그리고 어떤 나라도 다른 나라에 압력을 넣지 않는다.
식민 지배에 대해서도 따로 적었습니다. 온갖 모습의 식민주의는 빨리 끝내야 할 나쁜 것이다. 아직 남의 지배를 받는 사람들에게 자유와 독립을 되도록 빨리 주어야 한다.
그렇다고 스물아홉 나라의 생각이 하나였던 것은 아닙니다. 회의에서는 공산주의가 퍼지는 것에 대한 걱정이 나왔고, 몇몇 나라가 맺은 방위 조약을 두고도 말이 오갔습니다.
중국 대표 저우언라이는 이렇게 답했다고 기록에 남아 있습니다. 여러분은 소련만 말하고 중국은 말하지 않았지만 중국에도 공산당이 있으니 우리도 그 말에 걸린다고 느낀다. 그러니 중국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따를 수 있는 원칙을 세우자.
생각해 보기 큰 나라들이 둘로 갈라져 있을 때 작은 나라들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요?
더 자세히 — 큰 나라의 이익을 위해서는
색이 다른 대목은 자료에 적힌 문장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스물아홉 나라가 모였습니다. 개회 연설에 그 수가 적혀 있습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스물아홉 나라가 이 회의에 왔습니다.
이 자리에서 정한 열 가지 원칙 가운데 몇 조항은 문면을 그대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느 편도 들지 않겠다」는 말이 실제로 어떤 문장이었는지가 거기 있습니다.
앞쪽은 익숙한 것들입니다. 모든 나라의 주권과 영토 보전을 존중할 것, 크든 작든 모든 인종과 모든 나라가 평등함을 인정할 것, 그리고 다른 나라의 내정에 개입하거나 간섭하는 것을 삼갈 것입니다.
그런데 여섯째 원칙은 두 갈래로 나뉘어 있고, 그 문장이 이 회의의 성격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어느 큰 나라의 특정한 이익에 봉사하기 위해 집단 방위의 약정을 이용하는 것을 삼갈 것.
동맹을 맺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그 동맹이 큰 나라의 이익에 쓰이는 것을 삼가라고 적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집니다. 어느 나라든 다른 나라들에 압력을 가하는 것을 삼갈 것.
식민지 문제에 대해서는 따로 선언을 냈습니다. 첫 문장이 이렇습니다. 모든 형태의 식민주의는 신속히 종식되어야 할 악임을 선언하며.
그리고 왜 그런지를 적습니다. 민족들을 이민족의 예속과 지배와 착취 아래 두는 것은 기본적 인권의 부정에 해당한다.
마지막은 요구입니다. 관계 열강에게 그러한 민족들에게 자유와 독립을 부여할 것을 촉구하며.
이렇게만 보면 스물아홉 나라의 뜻이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같은 문서집에는 회의 안에서 오간 다툼도 실려 있습니다.
한 대표가 정치위원회에서 한 발언입니다. 그는 먼저 상대편이 자기를 배려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이른바 공산주의 확산과 공산주의 전복 활동에 관해서는 여기 대표들이 꽤 정중했습니다. 그들은 중국을 언급하지 않고 소련만을 말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는 스스로 그 자리에 자기를 놓습니다. 그러나 중국 또한 공산당을 가진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그 안에 함축적으로 포함되어 있다고 느낍니다.
이름을 빼 준 것에 대해 고맙다고 하는 대신, 그 이야기가 자기를 가리키는 것도 안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가 내놓은 제안은 이렇습니다. 여기서 저는 중국뿐 아니라 여기 있는 우리 모두가 따를 수 있는 어떤 원칙들을 채택할 것을 제의합니다.
누구를 지목하는 대신 모두가 지킬 규칙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이 회의가 열 가지 원칙으로 마무리된 자리에 이런 오고 감이 있었습니다.
같은 발언에는 집단 방위 조약을 둘러싼 논의도 나옵니다. 앞서 본 여섯째 원칙이 왜 그런 문장이 되었는지는 이런 자리에서 나온 것입니다.
생각이 하나여서 원칙이 나온 것이 아니라, 생각이 갈리는 자리에서 서로 지킬 수 있는 문장을 찾아낸 것입니다.
확인하지 못한 것 이 회의가 뒤의 비동맹운동으로 이어진 경위, 이런 자리가 처음이었는지, 참가국의 전체 명단은 이 문서집으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Selected Documents of the Bandung Conference — Texts of Selected Speeches and Final Communiqué of the Asian-African Conference*(Institute of Pacific Relations, 1955), archive.org
한눈에 보기
무슨 일이 있었나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신생국들이 처음으로 함께 모였다.
왜 중요할까
어느 진영에도 서지 않겠다는 흐름의 출발점이 되었다.
핵심 키워드
- 반둥회의
- 비동맹
같은 시기, 다른 나라에서는
1955년 언저리연대가 겹치는 사건입니다. 같은 때에 일어났다는 뜻이지, 서로 원인과 결과라는 뜻은 아닙니다. 누르면 그 사건의 상세페이지로 갑니다.
그때 다른 나라의 임금
1955년같은 해에 다른 나라에서 자리에 있던 사람입니다. 나라마다 한 사람씩만 실었습니다. 왕조가 여럿 겹치던 나라는 왕조 연표에 나머지가 있습니다.
- 이란(페르시아)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1941~1979
- 일본 쇼와 천황(히로히토)1926~1989
- 캄보디아 노로돔 시아누크1941~1955
- 태국 푸미폰 아둔야뎃1946~2016
- 영국 엘리자베스 2세1952~2022
- 모로코 모하메드 벤 아아라파1953~1955
- 베냉 왕국 아켄주아 2세1933~1978
- 아샨티 왕국 프렘페흐 2세1931~1970
- 에티오피아 하일레 셀라시에 1세1930~1974
- 통가 살로테 투포우 3세1918~1965
확인 문제
이 문제는 이 사건의 기록에 적힌 값으로 만든 것입니다. 답을 고르면 바로 알려 줍니다.
1.「반둥 회의」는 「백제 멸망」보다 먼저 일어난 일이다.
2.「반둥 회의」는 언제 일어난 일일까요?
3.「반둥 회의」가 일어난 곳은 어디일까요?
4.「반둥 회의」와 관련된 나라(정치체)는 어디일까요?
5.「반둥 회의」는 어느 지역의 역사일까요?
참고자료
이 사건이 속한 시기와 주제를 다루는 자료입니다. 본문의 개별 문장을 어디에서 확인했는지는 아직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료가 둘이어도 교차 검증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앞의 글자는 자료 등급으로, A는 당대 사료와 공식 문서, B는 학술 연구와 국가기관 해설, C는 백과사전과 개론 교재를 뜻합니다.
- CWorld History, Volume 2: from 1400 · OpenStax / Rice University · 2022 · CC BY-NC-SA 4.0링크
- CWorld History Since 1500: An Open and Free Textbook · East Tennessee State University · 2022 · CC BY 4.0; images separate링크
- ASelected Documents of the Bandung Conference — Texts of Selected Speeches and Final Communiqué of the Asian-African Conference (1955.4) · Institute of Pacific Relations, New York / Internet Archive · 1955 · public domain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