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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W0533

황소의 난

Huang Chao Rebellion · 875~884년

언제
875~884년
어디서
화중·화남
어느 나라
누가
황소(黃巢), 왕선지(王仙芝), 희종
무슨 사건
황소의 난

연도가 특정된 연대

그때 자리에 있던 임금

  • 중국 희종 (당(唐) 20대 · 873~888)

같은 지역의 여러 나라를 함께 보였습니다. 이 사건이 일어난 곳의 임금만이 아닙니다. 나라별 왕조 연표 보기

이야기로 읽는 역사 — 소금 장수가 도읍에 들어오다

자체 이중 확인 · 사람 검수 전
언제 875~884년어디서 화중·화남누가 황소(黃巢)

당나라 말, 황소는 조주 원구 사람이었습니다. 『신당서』는 그의 집안이 대대로 소금을 팔아 재산이 넉넉했다고 적었습니다. 그는 검과 활을 잘 다루었고 갈 곳 없는 사람들을 거두었습니다.

함통 말년부터 해마다 흉년이 들었습니다. 875년 왕선지가 먼저 일어나 격문을 돌렸습니다. 관리들이 탐욕스럽고 세금이 무겁고 상벌이 공평하지 않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사서는 한 줄을 덧붙입니다. 재상들은 이를 부끄럽게 여겼고, 희종은 알지 못했다.

관군 쪽 기록이 더 놀랍습니다. 한 지휘관은 큰 도적이 죽었다고 거짓 보고를 하고 군사를 돌려보냈습니다. 사흘 뒤 고을들이 도적은 그대로 있다고 아뢰었습니다.

가장 무거운 대목은 이것입니다. 두 지휘관이 몰래 의논했습니다. 옛날 방훈의 난이 끝나자 그를 친 장수가 도리어 죄를 얻었다. 우리가 공을 세운들 화를 면하겠는가. 차라리 도적을 남겨 두는 편이 낫다. 그래서 도적의 뒤를 멀찍이 따라가며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880년 겨울 황소의 군사가 동관에 이르렀습니다. 도읍에서 급히 병사를 모았는데, 호위병은 다 부잣집 자제라 싸울 줄을 몰랐고 뽑힌다는 말에 집에서 울었으며 몰래 돈을 내어 저잣거리 사람을 사서 대신 세웠다고 사서는 적습니다. 관 왼쪽에는 사람이 다니지 못하게 막아 둔 큰 골짜기가 있었습니다. 지키던 쪽은 그리로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을 잊고 있었습니다.

황소가 도읍에 들어왔습니다. 사서는 그가 가난한 사람을 보면 금과 비단을 던져 주었다고 적습니다. 그런데 며칠 지나지 않아 크게 노략질이 시작되었다고 같은 책이 이어 적습니다.

그는 대제라는 나라를 세우고 금통이라는 연호를 정했습니다. 즉위할 때 입을 곤룡포를 구하지 못해 비단에 그려 만들었고, 갖출 악기가 없어 큰 북 수백 개를 두드렸다고 합니다.

884년 여름, 쫓기던 그의 무리는 천 명뿐이었습니다. 낭호곡에서 그는 조카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나라의 간신을 치고 조정을 씻어 내려 했는데, 일이 이루어진 뒤에 물러나지 않은 것 또한 잘못이었다. 내 머리를 천자께 바치면 부귀를 얻을 것이니 남에게 그 이로움을 주지 말라. 조카는 차마 하지 못했고, 그는 스스로 목을 찔렀습니다. 『신당서』의 맺음말은 이렇습니다. 황소가 죽은 뒤 주온이 끝내 제위를 빼앗았는데 대개 다 황소의 무리였다.

생각해 보기 나라가 특정 물건을 독점해 팔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더 자세히 — 일부러 이기지 않은 사람들

색이 다른 대목은 자료에 적힌 문장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이 열전은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부터 적습니다. 황소는 조주 원구 사람이다. 대대로 소금을 팔아 재산이 넉넉했다. 그리고 달아난 사람들을 거두어 기르기를 좋아했다고 했습니다.

그때의 형편도 한 줄로 적혀 있습니다. 함통 말년에 해마다 흉년이 들어 하남에서 도적이 일어났다.

일어난 쪽이 내건 이유는 격문에 있습니다. 세 가지입니다. 관리가 탐욕스럽고, 세금이 무겁고, 상벌이 공평하지 않다.

그런데 그 격문을 받은 조정이 어떠했는지가 그다음 문장입니다.

재상들은 그것을 부끄럽게 여겼고, 희종은 알지 못했다.

부끄러워서 말하지 않았고, 그래서 임금은 몰랐습니다.

조정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보여 주는 대목도 있습니다. 한 지휘관이 큰 우두머리가 죽었다고 거짓으로 아뢰었습니다. 그런데 사흘 뒤 주와 현에서 도적이 여전히 있다고 아뢰었습니다. 그러자 군사들이 모두 분해하며 난을 생각하게 되었다고 적혀 있습니다.

거짓 보고가 상대를 도운 셈입니다.

싸움터의 수법도 남아 있습니다. 관군이 급히 뒤쫓으면 재물과 베를 길에 흘려 두었고, 군사들이 다투어 그것을 주우니 대체로 머뭇거리며 나아가지 못했다.

물건을 흘려 추격을 늦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열전에서 가장 무거운 대목은 싸우는 쪽이 아니라 진압하는 쪽에 있습니다. 지휘관들이 나눈 밀담입니다.

한 사람이 이렇게 말합니다. 예전에 방훈이 무너지자 강승훈이 곧 죄를 얻었으니… 도적을 남겨 두는 편이 낫다.

앞서 반란을 진압한 장수가 그 뒤에 벌을 받았으니, 이겨 버리면 자기도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는가 하면 이렇습니다. 도적을 하루 거리쯤 뒤에서 따라가며 군사를 온전히 둔 채 눈치만 보았다.

이길 수 있는데 이기지 않은 것입니다. 난이 왜 그렇게 오래갔는지가 이 한 대목에 있습니다.

관문이 뚫리는 장면도 자세합니다. 도성을 지키던 병사들은 장안의 부유한 집안 사람들로, 대대로 두 군에 이름을 올려 녹을 받고 사치한 옷과 좋은 말로 권세가들에게 뽐내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다음 문장이 서늘합니다. 애초에 싸울 줄을 몰라, 선발한다는 말을 듣자 모두 집에서 울었다. 그래서 몰래 돈을 내어 장터와 병자를 돌보는 곳의 사람들을 사서 대신 대열에 세웠는데, 그들은 무기를 들지도 못해 보는 사람들이 소름이 돋았다고 했습니다.

관문이 뚫린 까닭도 적혀 있습니다. 그 옆에 사람의 통행을 금하던 골짜기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키던 자가 관문에 진을 치면서 그 골짜기로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을 잊었습니다. 상대가 그 골짜기로 들어왔고, 이튿날 관문을 양쪽에서 협공하니 관군이 무너졌습니다.

들어온 뒤의 일도 두 단계로 적혀 있습니다. 처음에는 가난한 사람들을 보면 금과 비단을 던져 주었습니다. 한 사람은 이렇게 알렸습니다. 황왕은 당나라 집안처럼 너희를 아끼지 않는 이가 아니니, 각자 편안히 있고 두려워하지 말라.

그런데 그다음 문장이 이어집니다. 겨우 며칠 만에 크게 노략질하여, 사람들을 묶고 때려 재물을 찾아냈다.

새로 세운 나라의 모습도 적혀 있습니다. 곤룡포와 면류관을 구하지 못해 비단에 그려서 만들었고, 쇠와 돌로 된 악기가 없어 큰 북 수백 개를 쳤으며, 긴 칼과 큰 칼을 늘어세워 호위로 삼았다.

의식을 갖추려 했지만 갖출 것이 없었다는 뜻입니다.

그 뒤 이 땅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한 줄로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산골짜기에 울타리를 치고 스스로 지키느라 밭을 갈지 못했고, 그래서 쌀값이 뛰고 나무껍질을 부수어 먹었다고 적혀 있습니다.

마지막은 낭호곡이라는 곳입니다. 그는 함께 있던 조카에게 자기 목을 베어 바치면 부귀를 얻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조카는 차마 하지 못했고, 그는 스스로 목을 찔렀습니다.

열전의 맺음말은 그 뒤를 이렇게 적습니다. 황소가 죽은 뒤 진종권이 일어나 어지러움이 천하에 퍼졌고, 주온이 끝내 제위를 빼앗았는데 대체로 다 황소의 무리였다.

그리고 이 기록이 실린 자리를 봅니다. 「역신전」입니다. 무엇을 기록으로 남길지 정한 쪽이 어느 편이었는지가 편명에 적혀 있습니다.

확인하지 못한 것 이 난으로 모두 몇 사람이 죽었는지는 이 열전에 총계가 없습니다.

『신당서』 권225하 「역신전 하·황소」, zh.wikisource

한눈에 보기

무슨 일이 있었나

소금 밀매업자 출신 황소가 이끈 봉기가 장안까지 이르렀다.

왜 중요할까

당이 사실상 통제력을 잃고 오래지 않아 무너졌다.

핵심 키워드

  • 황소의 난
  • 당나라의 멸망

같은 시기, 다른 나라에서는

875~884년 언저리

연대가 겹치는 사건입니다. 같은 때에 일어났다는 뜻이지, 서로 원인과 결과라는 뜻은 아닙니다. 누르면 그 사건의 상세페이지로 갑니다.

그때 다른 나라의 임금

875~884년

같은 해에 다른 나라에서 자리에 있던 사람입니다. 나라마다 한 사람씩만 실었습니다. 왕조가 여럿 겹치던 나라는 왕조 연표에 나머지가 있습니다.

  • 이슬람권 알무타미드870~892
  • 일본 세이와 천황858~876
  • 캄보디아 삼브후푸라의 즈예흐리803~900
  • 한국 경문왕861년~875년
  • 비잔티움 제국 바실리오스 1세867~886
  • 신성로마제국 카를 2세875~877
  • 아일랜드 아드 핀들리어흐862~879
  • 영국 로드리 마우르844~878
  • 프랑스 카를 2세843~877

확인 문제

이 문제는 이 사건의 기록에 적힌 값으로 만든 것입니다. 답을 고르면 바로 알려 줍니다.

  1. 1.「황소의 난」은 「티와나쿠와 와리」보다 먼저 일어난 일이다.

  2. 2.「황소의 난」은 언제 일어난 일일까요?

  3. 3.「황소의 난」이 일어난 곳은 어디일까요?

  4. 4.「황소의 난」에 나오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5. 5.「황소의 난」과 관련된 나라(정치체)는 어디일까요?

참고자료

이 사건이 속한 시기와 주제를 다루는 자료입니다. 본문의 개별 문장을 어디에서 확인했는지는 아직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료가 둘이어도 교차 검증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앞의 글자는 자료 등급으로, A는 당대 사료와 공식 문서, B는 학술 연구와 국가기관 해설, C는 백과사전과 개론 교재를 뜻합니다.

  • CWorld History, Volume 1: to 1500 · OpenStax / Rice University · 2023 · CC BY-NC-SA 4.0링크
  • CWorld History, Volume 2: from 1400 · OpenStax / Rice University · 2022 · CC BY-NC-SA 4.0링크
  • B『新唐書』 卷225下 逆臣傳下 黃巢 · 中文維基文庫(zh.wikisource) 전사 · 11세기(歐陽脩 등) · public domain (원전)링크
  • A『신당서』 권225下 「역신下·황소」 · 中文維基文庫 (zh.wikisource.org) · 1060 · Public Domain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