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술변법
Hundred Days' Reform · 1898년 6~9월
- 언제
- 1898년 6~9월
- 어디서
- 베이징
- 어느 나라
- 청
- 누가
- 광서제, 강유위, 양계초, 서태후, 옹동화
- 무슨 사건
- 무술변법
연도가 특정된 연대
그때 자리에 있던 임금
- 중국 광서제 (청(淸) 11대 · 1875~1908)
같은 지역의 여러 나라를 함께 보였습니다. 이 사건이 일어난 곳의 임금만이 아닙니다. 나라별 왕조 연표 보기
이야기로 읽는 역사 — 백 일 만에 멈춘 개혁
1898년 봄, 청은 잇달아 땅을 내주었습니다. 자오저우만을 독일에, 뤼순과 다롄과 랴오둥반도를 러시아에 조차해 준 해였습니다.
그해 여름, 광서제가 조서를 내렸습니다. 이름이 「정국시」, 나라의 방침을 정한다는 뜻입니다. 성현의 학문을 뿌리로 삼되 서양 학문 가운데 지금 형편에 절실한 것을 힘써 익혀 세상 변화에 대처할 인재를 길러라.
그 뒤 넉 달 동안 조서가 쏟아졌습니다. 각 성에 상무국을 두고, 육군을 서양식으로 훈련하고, 과거에서 글을 짓던 방식을 시사를 논하는 방식으로 바꾸고, 각 성의 서원을 중국 학문과 서양 학문을 함께 가르치는 학교로 바꾸었습니다.
사람도 새로 썼습니다. 공부의 주사이던 강유위를 총리아문의 장경으로 삼았고, 거인이던 양계초에게 육품 벼슬을 주어 번역국을 맡겼습니다. 둘 다 높은 자리에 있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새 정치를 밀던 서치정은 변방이 위태로우니 군대를 길러야 한다며 원세개에게 군사를 맡기라고 천거했고, 황제가 그대로 따랐습니다.
여름이 끝날 무렵 광서제가 변법의 뜻을 천하에 알리는 조서를 냅니다. 산골짜기에서 지팡이를 짚은 백성 가운데 새 정치를 들어 보지 못한 이가 있으니 짐은 실로 탄식한다.
그러고 며칠 뒤 모든 것이 뒤집힙니다. 사관의 기록은 짧은 문장을 날짜별로 늘어놓습니다. 황태후가 다시 편전에서 발을 드리우고 정사를 보았다. 강유위의 벼슬을 빼앗고 옥에 가두라 했으나 그는 달아나 면했다. 이레 뒤 양심수·양예·임욱·유광제·담사동·강광인이 모두 참형에 처해졌습니다.
벌은 그들에게만 가지 않았습니다. 사서는 「죄가 천거한 사람에게까지 미쳤다」고 적습니다. 담사동을 천거한 진보잠은 벼슬을 잃고 아들까지 파직되었으며, 강유위와 담사동을 천거한 이단분은 신장으로 유배되었습니다. 원세개를 천거했던 서치정에게는 영원한 감금이 내려졌습니다.
담사동은 달아나지 않았습니다. 양계초는 잡히기 전날 일본 사람들이 거듭 망명을 권했으나 그가 이렇게 답했다고 적었습니다. 나라마다 변법은 피를 흘려야 이루어졌는데 중국에는 변법으로 피 흘린 이가 있었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다, 그러니 나부터 시작하자. 다만 이 기록은 함께 일한 벗이 남긴 것이라, 그 자리에 있던 사람의 말을 그대로 옮긴 것인지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백여 일이 그렇게 끝났습니다.
생각해 보기 개혁을 빠르게 밀어붙이면 어떤 위험이 있을까요?
더 자세히 — 죄가 천거한 사람에게까지
색이 다른 대목은 자료에 적힌 문장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이 개혁이 왜 그해에 시작되었는지는 본기의 한 줄에 있습니다. 이해 봄, 자오저우만을 독일에 조차하고 뤼순커우와 다롄만과 랴오둥반도를 러시아에 조차했다.
땅이 잘려 나간 뒤에 개혁의 조서가 나옵니다.
황제가 무엇을 하려 했는지는 그 자신의 문장에 있습니다. 짐이 밤낮으로 부지런히 온갖 제도를 고치려는 것이 어찌 새롭고 기이한 것을 숭상하려 함이겠는가.
이유도 적었습니다. 여러 나라가 둘러싸고 서로 핍박하니, 남의 장점을 취하지 않으면 내가 가진 것을 온전히 지킬 수 없다.
그런데 그다음 문장이 이 개혁의 처지를 그대로 보여 줍니다. 짐의 마음 씀이 지극히 괴로운데도 백성은 아직 알지 못한다. 왜 모르는가 하면 못난 관리들과 옛것을 지키려는 사대부들이 짐의 뜻을 널리 알리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입니다. 산골짜기에서 지팡이를 짚는 백성 가운데 새 정치를 듣지 못한 이가 있으니, 짐은 참으로 탄식하고 한스럽게 여긴다.
무엇을 했는지는 조목으로 남아 있습니다. 각 성에 상무국을 세우게 했고, 과거의 시험 방식을 다음 회부터 책론으로 바꾸게 했으며, 경사대학당을 세우게 했습니다. 서원을 학교로 고치되 성의 서원은 고등학교, 군의 서원은 중등학교, 주와 현의 서원은 소학교로 삼게 했습니다.
발명에 관한 것도 있습니다. 만든 기계에 증서를 주어 햇수를 한정해 전매로 팔게 한다고 했습니다.
사람도 바꿉니다. 공부주사 강유위를 불러 보고 총리아문의 장경으로 삼았고, 거인 양계초에게 육품의 직함을 주어 역서국을 맡겼습니다. 낮은 자리에 있던 사람들을 끌어 올린 것입니다. 그리고 같은 무렵에 옹동화가 물러납니다.
백일이 지난 팔월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같은 본기에 날짜 순서로 적혀 있습니다.
먼저 황태후가 편전에서 다시 발을 드리우고 훈정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조서가 나옵니다. 강유위가 당을 지어 사욕을 꾀하고 어지러운 말로 정치를 어지럽혔다는 것입니다. 그의 직을 빼앗고 아우와 함께 옥에 가두었는데, 강유위는 달아나 벗어났다고 적혀 있습니다.
이튿날 강유위와 양계초를 붙잡으라는 조서가 나옵니다. 사흘 뒤에는 여러 사람이 강유위의 당이라는 이유로 잡혀 들어갑니다.
그다음 줄이 서늘합니다. 황상이 병을 칭하고 천하에 의원을 구했다. 그리고 같은 날 영록을 서울로 부르게 했습니다.
그 뒤에 되돌리는 조서들이 이어집니다. 없앴던 관청들을 다시 두고, 관리와 백성이 함부로 봉장을 올리는 것을 금하고, 시무관보를 폐하고, 각 성의 사당과 묘를 학당으로 고치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여섯 사람이 참형에 처해집니다. 같은 날 영록이 군기대신이 되었습니다.
이 사건의 성격을 가장 잘 보여 주는 것은 그 뒤에 이어지는 조치입니다. 열전에 넉 자로 적혀 있습니다. 죄가 천거한 사람에게까지 미쳤다.
무슨 뜻인가 하면 이렇습니다. 진보잠은 양예와 유광제와 담사동과 임욱을 새 정치에 쓰라고 아뢴 사람인데, 네 사람이 죽자 진보잠도 관직에서 쫓겨나고 그 아들까지 파직되었습니다. 이단분은 강유위와 담사동을 크게 쓸 만하다고 은밀히 천거한 사람인데, 스스로 자기를 검거하는 상소를 올렸고 직을 빼앗긴 채 신장으로 유배되었습니다.
여기에 한 가지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원세개에게 군사를 맡기라고 힘써 천거한 사람이 바로 변법을 밀던 서치정이었습니다. 새 정치를 하려던 쪽이 스스로 그를 그 자리에 앉힌 것입니다. 서치정 자신은 뒤에 영원한 감금이 정해집니다.
여섯 사람 가운데 담사동에 관해서는 다른 기록이 있습니다. 함께 일하다 일본으로 달아난 벗이 남긴 글입니다.
그 글에 따르면 일본에서 온 사람들이 여러 차례 그에게 동쪽으로 가자고 간곡히 권했습니다. 그가 듣지 않자 거듭 강권했는데, 그가 이렇게 말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각국의 변법은 피를 흘리지 않고 이루어진 것이 없다. 지금 중국에서는 변법 때문에 피를 흘렸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으니, 이것이 이 나라가 흥하지 못하는 까닭이다. 그런 일이 있어야 한다면 사동에게서 시작하기를 청한다.
그리고 끝내 떠나지 않았으므로 화를 당했다고 적었습니다.
다만 이 글은 그 자리에 함께 있던 사람이 아니라 벗이 남긴 것이고, 논조가 뚜렷합니다. 그 말이 그대로 나온 것인지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확인하지 못한 것 원세개가 실제로 밀고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양계초의 글조차 밀고를 단정하지 않고 날짜만 잇대어 적습니다. 8월 3일 밤 두 사람만 있었다는 자리의 대화도 제3자가 옮긴 것이라 쓰지 않았습니다.
『청사고』 권24 「덕종본기 2」와 권464 열전 251, zh.wikisource · 양계초, 「담사동전」(『무술정변기』 권6), zh.wikisource — 뒤의 글은 함께 일하다 망명한 사람이 쓴 것이라 신뢰도 B
한눈에 보기
무슨 일이 있었나
광서제와 개혁파가 교육·행정·군사·경제 개혁을 추진했으나 서태후 중심의 보수 세력이 정변으로 중단시켰다.
왜 중요할까
청말 개혁의 선택지와 제국 체제 내부의 권력 제약을 이해할 수 있다.
핵심 키워드
- 무술변법
- 청나라
같은 시기, 다른 나라에서는
1898년 6~9월 언저리연대가 겹치는 사건입니다. 같은 때에 일어났다는 뜻이지, 서로 원인과 결과라는 뜻은 아닙니다. 누르면 그 사건의 상세페이지로 갑니다.
그때 다른 나라의 임금
1898년 6~9월같은 해에 다른 나라에서 자리에 있던 사람입니다. 나라마다 한 사람씩만 실었습니다. 왕조가 여럿 겹치던 나라는 왕조 연표에 나머지가 있습니다.
- 오스만 제국 압뒬하미트 2세1876~1909
- 이란(페르시아) 모자파르 앗딘 샤1896~1907
- 이슬람권 아바스 2세 힐미1892~1914
- 인도네시아 하멩쿠부워노 7세1877~1921
- 일본 메이지 천황1867~1912
- 태국 쭐랄롱꼰1868~1910
- 한국 고종1897년~1907년
- 러시아 니콜라이 2세1894~1917
- 에스파냐 알폰소 13세1886~1931
- 영국 빅토리아1837~1901
- 오스트리아 프란츠 요제프 1세1848~1916
- 포르투갈 카를루스 1세1889~1908
- 모로코 모로크코의 아브데라지즈1894~1908
- 아샨티 왕국 프렘페흐 1세1888~1931
- 에티오피아 메넬리크 2세1889~1913
- 통가 조지 투포우 2세1893~1918
확인 문제
이 문제는 이 사건의 기록에 적힌 값으로 만든 것입니다. 답을 고르면 바로 알려 줍니다.
1.「무술변법」은 언제 일어난 일일까요?
2.「무술변법」이 일어난 곳은 어디일까요?
3.「무술변법」에 나오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4.「무술변법」과 관련된 나라(정치체)는 어디일까요?
5.「무술변법」은 「신석기 문화 전개」보다 먼저 일어난 일이다.
참고자료
이 사건이 속한 시기와 주제를 다루는 자료입니다. 본문의 개별 문장을 어디에서 확인했는지는 아직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료가 둘이어도 교차 검증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앞의 글자는 자료 등급으로, A는 당대 사료와 공식 문서, B는 학술 연구와 국가기관 해설, C는 백과사전과 개론 교재를 뜻합니다.
- CWorld History, Volume 2: from 1400 · OpenStax / Rice University · 2022 · CC BY-NC-SA 4.0링크
- CWorld History Since 1500: An Open and Free Textbook · East Tennessee State University · 2022 · CC BY 4.0; images separate링크
- B『清史稿』 卷24 德宗本紀二 (光緒 22~24년) · 中文維基文庫(zh.wikisource) 전사 · 1928(초고) · public domain (원전)링크
- B『청사고』 권24 「덕종본기 2」 — 1898년 무술변법과 정변 · 中文維基文庫 (zh.wikisource.org) · 1928 · Public Domain링크
- A『청사고』 권464 열전 251 — 무술변법 참여자들의 열전 · zh.wikisource.org (『清史稿』 1928) · 1928 · 공개링크
- B梁啟超 「譚嗣同傳」(『戊戌政變記』 권6 순난열사전) · zh.wikisource.org · 1899 · 공개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