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바빌로니아 왕국
Neo-Babylonian Empire · 기원전 626~539년
- 언제
- 기원전 626~539년
- 어디서
- 바빌론
- 어느 나라
- 신바빌로니아
- 누가
- 네부카드네자르 2세, 나보니두스, 키루스
- 무슨 사건
- 신바빌로니아 왕국
연도가 특정된 연대
그때 자리에 있던 임금
- 메소포타미아 아슈르에텔이라니Ashur-etel-ilani (신아시리아 14대 · 기원전 626~623)재위 연대에 이견이 있습니다
- 일본 진무 천황 (천황(天皇) 1대 · 기원전 660~585)재위 연대에 이견이 있습니다
같은 지역의 여러 나라를 함께 보였습니다. 이 사건이 일어난 곳의 임금만이 아닙니다. 나라별 왕조 연표 보기
이야기로 읽는 역사 — 점토에 적힌 세 이야기
기원전 6세기의 바빌론과 그 왕조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은 대부분 점토에 적힌 글에서 옵니다. 세 개를 나란히 놓아 봅니다.
첫째는 바빌로니아 연대기 가운데 한 장입니다. 네부카드네자르 2세의 일곱째 해에 그가 군대를 모아 서쪽으로 가서 유다의 도성을 에워쌌고 아다루월 이틀에 그 도성을 빼앗고 왕을 사로잡았다고 적혀 있습니다. 이어서 자기가 고른 왕을 그곳에 세우고 무거운 공물을 받아 바빌론으로 보냈다고 합니다.
빼앗은 쪽이 적은 글입니다. 사람들을 얼마나 데려갔는지는 여기에 없습니다.
그 수는 끌려간 쪽의 글에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로 적혀 있지 않습니다. 열왕기라는 책은 한 절에서 예루살렘에서 만 명을 데려갔다고 하고, 두 절 뒤에서는 군사 칠천 명과 장인과 대장장이 천 명이라고 적습니다. 예레미야라는 책은 아예 셈을 따로 합니다. 일곱째 해에 삼천이십삼 명, 열여덟째 해에 팔백삼십이 명, 스물셋째 해에 칠백사십오 명, 모두 사천육백 명이라고요.
같은 일을 두고 만 명과 사천육백 명이 함께 적혀 있는 것입니다. 어느 쪽이 맞는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세는 기준이 달랐을 수도 있고, 한쪽은 어림한 수일 수도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오래된 글에 적힌 수라고 해서 그대로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나보니두스 연대기입니다. 그로부터 예순 해쯤 뒤 바빌론이 어떻게 넘어갔는지 적습니다. 시파르가 싸움 없이 함락되고 왕은 달아났으며, 이틀 뒤 구티움의 총독과 키루스의 군대가 싸움 없이 바빌론에 들어갔다고. 같은 판은 신전에서 의례가 끊긴 일이 없었고 도시에 평온이 있었다고 덧붙입니다.
셋째는 키루스 원통입니다. 새 왕이 자기를 소개하는 글입니다. 앞의 왕이 신을 섬기는 일을 어지럽혔다고 적고, 자기는 신상들을 제자리로 돌려보냈으며 그 주민들을 모두 모아 그들의 집으로 돌려보냈다고 적습니다. 그런데 유다나 예루살렘이라는 이름은 이 원통에 나오지 않습니다.
이 글들은 이긴 쪽이, 열왕기와 예레미야는 진 쪽이 적었습니다. 어느 쪽도 그것만으로는 다 말해 주지 않습니다.
생각해 보기 이긴 쪽이 남긴 기록만 있을 때 우리는 무엇을 조심해야 할까요?
더 자세히 — 같은 일을 적은 세 문서
색이 다른 대목은 자료에 적힌 문장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이 시기를 다룰 때 좋은 점이 있습니다. 같은 일을 적은 문서가 여럿 남아 있어 서로 견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첫째는 예루살렘을 차지한 일입니다. 바빌로니아 연대기는 이렇게 적습니다. 일곱째 해 키슬리무 달에 아카드의 왕이 군대를 모아 하티 땅으로 진군하여 유다 성을 포위했고, 아다루 달 둘째 날에 그 성을 차지하고 그 왕을 사로잡았다.
그다음 처리도 적혀 있습니다. 그는 그곳에 자기가 고른 왕을 세우고, 무거운 조공을 받아 바빌론으로 보냈다.
여기서 견주어 볼 것이 생깁니다. 같은 일을 성경의 열왕기하 24장도 적는데, 그쪽은 여덟째 해라고 합니다. 연대기는 일곱째 해입니다. 두 기록의 해가 어긋납니다.
어느 쪽이 맞는지를 여기서 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같은 일을 적은 두 문서의 날짜가 다르다는 것은 그 자체로 알아 둘 값이 있습니다.
둘째는 이 왕국이 무너진 날입니다. 나보니두스 연대기가 날짜별로 적어 두었습니다. 열나흗날 시파르가 싸움 없이 함락되었다. 나보니두스는 달아났다. 그리고 이틀 뒤입니다. 열엿샛날, 구티움 총독 우그바루와 키루스의 군대가 싸움 없이 바빌론에 들어갔다.
싸움 없이라는 말이 두 번 나옵니다. 그리고 이런 대목이 이어집니다. 에사길이나 그 밖의 신전에서 의례가 중단되는 일은 없었고, 어떤 날짜도 놓치지 않았다. 왕이 바뀌는 동안에도 신전의 일정은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며칠 뒤 키루스가 들어옵니다. 아라흐삼나 달 사흗날 키루스가 바빌론에 들어갔다. 그리고 한 줄이 붙습니다. 도시에는 평화가 있었다.
셋째 문서가 그 장면을 다르게 적습니다. 키루스 원통입니다. 이 문서는 앞선 왕 나보니두스가 마르둑 숭배를 어지럽혔다고 하고, 그가 주민에게 부역을 가차없이 지워 그들을 모두 파멸시켰다고 적습니다.
같은 사건을 두고 연대기는 날짜와 사실을 적고, 원통은 앞선 왕이 왜 물러나야 했는지를 적습니다. 원통은 새 왕이 낸 문서입니다. 누가 어떤 자리에서 쓴 글인지에 따라 같은 날이 이렇게 다르게 적힙니다.
확인하지 못한 것 이 왕국의 판도와 행정, 그리고 신바빌로니아가 어떻게 성립했는지는 이 세 문서의 범위 밖입니다.
「바빌로니아 연대기 ABC 5」(이른바 예루살렘 연대기)와 「나보니두스 연대기 ABC 7」, A. K. Grayson 판을 옮긴 Livius.org · 「키루스 원통」 번역(Mordechai Cogan 역)
한눈에 보기
무슨 일이 있었나
바빌론을 크게 다시 짓고 레반트 지역을 지배했다.
왜 중요할까
유다 왕국 주민의 강제 이주가 이 시기에 있었다.
핵심 키워드
- 신바빌로니아
- 바빌론
같은 시기, 다른 나라에서는
기원전 626~539년 언저리연대가 겹치는 사건입니다. 같은 때에 일어났다는 뜻이지, 서로 원인과 결과라는 뜻은 아닙니다. 누르면 그 사건의 상세페이지로 갑니다.
그때 다른 나라의 임금
기원전 626~539년같은 해에 다른 나라에서 자리에 있던 사람입니다. 나라마다 한 사람씩만 실었습니다. 왕조가 여럿 겹치던 나라는 왕조 연표에 나머지가 있습니다.
- 로마 안쿠스 마르키우스기원전 642~617
- 이집트 팜틱 1세 크기원전 664~610
확인 문제
이 문제는 이 사건의 기록에 적힌 값으로 만든 것입니다. 답을 고르면 바로 알려 줍니다.
1.「신바빌로니아 왕국」은 「미국·멕시코 전쟁과 과달루페 이달고 조약」보다 먼저 일어난 일이다.
2.「신바빌로니아 왕국」은 언제 일어난 일일까요?
3.「신바빌로니아 왕국」이 일어난 곳은 어디일까요?
4.「신바빌로니아 왕국」에 나오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5.「신바빌로니아 왕국」과 관련된 나라(정치체)는 어디일까요?
참고자료
이 사건이 속한 시기와 주제를 다루는 자료입니다. 본문의 개별 문장을 어디에서 확인했는지는 아직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료가 둘이어도 교차 검증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앞의 글자는 자료 등급으로, A는 당대 사료와 공식 문서, B는 학술 연구와 국가기관 해설, C는 백과사전과 개론 교재를 뜻합니다.
- CWorld History, Volume 1: to 1500 · OpenStax / Rice University · 2023 · CC BY-NC-SA 4.0링크
- BHeilbrunn Timeline of Art History ·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 current · site terms링크
- A「바빌로니아 연대기 ABC 5」(이른바 예루살렘 연대기) — 네부카드네자르 2세의 초기 연대 · Livius.org (A. K. Grayson 판에서 옮김) · 기원전 6세기 · 열람링크
- A「나보니두스 연대기 ABC 7」 — 바빌론이 페르시아에 넘어간 날들 · Livius.org (A. K. Grayson 판에서 옮김) · 기원전 6세기 · 열람링크
- A「키루스 원통」 번역 — 새 지배자가 스스로를 소개하는 글 · Livius.org (Mordechai Cogan 역, Schaudig 판 대조) · 기원전 539년 무렵 · 열람링크
- B히브리 성서(KJV) 열왕기하 24장·예레미야 52장 — 유수 규모의 두 셈 · en.wikisource.org · 17세기 영역(원 기원전 6세기 전승) · 퍼블릭 도메인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