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산 왕조 페르시아
Sasanian Empire · 224~651년
- 언제
- 224~651년
- 어디서
- 크테시폰
- 어느 나라
- 사산
- 누가
- 프로코피우스, 호스로 1세
- 무슨 사건
- 사산 왕조 페르시아
연도가 특정된 연대
그때 자리에 있던 임금
- 이란(페르시아) 보로가세스 5세Vologases V (파르티아(아르사케스 왕조) 33대 · 약 208~228) / 아르타바누스 4세Artabanus IV (파르티아(아르사케스 왕조) 34대 · 약 216~224) / 아르다시르 1세 (사산 왕조 1대 · 224~241)재위 연대에 이견이 있습니다
- 캄보디아 프느 스흐므느ស្រីមារៈ (캄보디아 국왕 2대 · 220~228)재위 연대에 이견이 있습니다
같은 지역의 여러 나라를 함께 보였습니다. 이 사건이 일어난 곳의 임금만이 아닙니다. 나라별 왕조 연표 보기
이야기로 읽는 역사 — 무궁한 평화라 이름 붙였다
224년에 선 사산 왕조와 서쪽의 로마는 오래 다투었습니다. 그 가운데 6세기의 일은 프로코피우스라는 사람이 적어 두었습니다. 로마 쪽 장군의 비서였고 전쟁을 곁에서 본 사람입니다.
그의 책에는 싸움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국경에 성을 쌓는 일로 다투는 대목이 있습니다. 로마가 국경 가까운 다라에 아주 튼튼한 도시를 세우자 페르시아가 약속 위반이라고 따졌고, 로마 황제는 위협도 하고 우정도 말하고 "적지 않은 돈"까지 주어 그 말을 덮으려 했다고 적습니다.
506년에는 일곱 해짜리 조약을 맺었습니다. 페르시아가 훈족과의 전쟁을 오래 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532년에는 더 큰 조약을 맺습니다. 서로 빼앗은 곳을 돌려주기로 하고, 로마가 돈을 얹어 주었습니다. 프로코피우스는 그 조약의 이름을 적어 둡니다. 이른바 "무궁한 평화"입니다.
그 평화는 여덟 해를 갔습니다. 540년 봄, 프로코피우스는 이렇게 적습니다. 겨울이 끝나 갈 무렵 호스로가 큰 군대로 로마 땅에 들어와 "이른바 무궁한 평화를 드러내 놓고 깨뜨렸다."
군대가 다가오자 안티오키아 사람들이 모여 의논했습니다. 가장 낫다고 정한 것은 이것이었습니다. 돈을 주어 이 위험을 넘기자.
이 책에는 페르시아 사람들의 믿음에 관한 대목도 있습니다. 북쪽 아다르비가논이라는 곳에 큰 불의 성소가 있는데, 페르시아 사람들이 다른 어떤 신보다 받드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마기라 불린 사제들이 그 불이 꺼지지 않게 지키고, 아주 중요한 일은 거기서 신탁을 물어 정한다고 적었습니다. 날마다 떠오르는 해를 향해 절하는 관습이 있다는 것도 적혀 있습니다. 다만 이것은 밖에서 본 사람의 글입니다. 프로코피우스는 그 불을 두고 로마 사람들이 옛날 헤스티아라는 이름으로 섬기던 바로 그 불이라고 적었습니다. 남의 믿음을 자기 쪽 이름으로 옮겨 적은 것입니다.
그 뒤의 일은 이 책에 없습니다. 연표는 651년에 사산 왕조가 무너지고 로마 쪽도 시리아와 이집트를 잃었다고 적어 두었습니다. 두 나라가 서로를 지치게 하는 동안 바깥에서 판이 바뀐 것입니다.
생각해 보기 평화 조약에 이름을 붙이는 일과 그것을 지키는 일은 어떻게 다를까요?
더 자세히 — 끝없는 평화라 이름 붙인 조약
색이 다른 대목은 자료에 적힌 문장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이 이야기의 사료는 한쪽에서 쓴 것입니다. 프로코피우스는 로마 쪽 사람이고, 페르시아를 밖에서 봅니다. 그 점을 알고 읽으면 오히려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먼저 성 하나를 두고 벌어진 다툼입니다. 황제 아나스타시우스가 카바데스와 조약을 맺은 뒤 다라스라 불리는 곳에 도시를 세웠습니다. 페르시아 쪽은 그 건설을 막고 싶어 했으나 전혀 그럴 수 없었습니다.
뒤에 카바데스는 이를 문제 삼습니다. 협정에서 금지되어 있었는데도 페르시아 국경 바로 옆에 도시를 세웠다고 그들을 비난했다는 것입니다.
로마 쪽이 어떻게 넘겼는지도 적혀 있습니다. 황제는 한편으로는 위협하고, 한편으로는 그와의 우호를 강조하고, 또 적지 않은 돈으로 매수하여 그를 속이고 그 비난을 거두게 하려 했다고 했습니다.
자기 쪽 역사가가 자기 황제에 대해 쓴 문장입니다. 위협과 우호와 돈이 한 문장 안에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
조약에는 기한이 붙기도 했습니다. 훈족과의 전쟁이 길어지자 페르시아는 로마와 일곱 해로 정해진 조약을 맺었다고 했습니다. 평화가 몇 해짜리 물건처럼 다루어졌다는 뜻입니다.
그러다 유스티니아누스 재위 여섯째 해에 다른 조약이 나옵니다. 조건은 양쪽이 그 전쟁에서 서로에게서 빼앗은 모든 곳을 돌려주는 것, 그리고 다라스에 더는 군대를 두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로마는 파랑기움과 볼룸 요새를 돈과 함께 페르시아에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 조약에 붙은 이름이 이렇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른바 「끝없는 평화」를 맺었다.
여덟 해 뒤의 문장이 그 이름 옆에 나란히 놓입니다. 겨울이 이미 끝나 갈 무렵, 카바데스의 아들 호스로에스가 봄이 열리자 큰 군대를 이끌고 로마 땅을 침입하여 이른바 끝없는 평화를 공공연히 깨뜨렸다.
이름을 그렇게 붙였다고 해서 그렇게 되지는 않았습니다.
침입을 받은 안티오키아 사람들이 무엇을 했는지도 남아 있습니다. 그들은 모여 의논했고, 호스로에스에게 돈을 주어 눈앞의 위험을 벗어나는 것이 가장 나아 보였다고 했습니다.
이 책에는 페르시아 사람들의 믿음도 나옵니다. 다만 밖에서 본 것입니다. 프로코피우스는 아다르비가논이라는 곳에 페르시아 사람들이 다른 모든 신보다 받드는 큰 불의 성소가 있고, 그곳에서 마기가 그 불이 꺼지지 않도록 지킨다고 적었습니다. 중요한 일이 있으면 그곳에서 신탁을 묻는다고도 했습니다. 페르시아 사람들에게는 날마다 떠오르는 해에 절하는 관습이 있다는 대목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그 불을 설명하는 방식이 이 사료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 줍니다. 그는 그것을 로마 사람들이 옛날에 헤스티아라는 이름으로 섬기던 그 불이라고 적었습니다.
남의 믿음을 자기 쪽 신의 이름으로 옮겨 놓은 것입니다. 무엇을 보았는지와 함께, 어떤 눈으로 보았는지가 남아 있습니다.
확인하지 못한 것 사산 왕조의 224년 성립, 602~628년의 전쟁, 651년의 끝은 이 책 밖입니다. 프로코피우스는 6세기 사람이라 앞뒤를 볼 수 없습니다. 페르시아 쪽에서 남긴 기록도 아닙니다.
프로코피우스 『전쟁사』 제1·2권(페르시아 전쟁), H. B. Dewing 영역(Loeb, 1914), Project Gutenberg #16764 전문
한눈에 보기
무슨 일이 있었나
조로아스터교를 국교로 삼고 로마·비잔티움과 오래 겨루었다.
왜 중요할까
두 제국이 서로를 소모시킨 뒤 이슬람 세력이 빠르게 확장했다.
핵심 키워드
- 사산 왕조
- 조로아스터교
같은 시기, 다른 나라에서는
224~651년 언저리연대가 겹치는 사건입니다. 같은 때에 일어났다는 뜻이지, 서로 원인과 결과라는 뜻은 아닙니다. 누르면 그 사건의 상세페이지로 갑니다.
그때 다른 나라의 임금
224~651년같은 해에 다른 나라에서 자리에 있던 사람입니다. 나라마다 한 사람씩만 실었습니다. 왕조가 여럿 겹치던 나라는 왕조 연표에 나머지가 있습니다.
- 중국 문제(조비)220~226
- 한국 산상왕197년~227년
- 로마 알렉산데르 세베루스222~235
확인 문제
이 문제는 이 사건의 기록에 적힌 값으로 만든 것입니다. 답을 고르면 바로 알려 줍니다.
1.「사산 왕조 페르시아」는 언제 일어난 일일까요?
2.「사산 왕조 페르시아」가 일어난 곳은 어디일까요?
3.「사산 왕조 페르시아」는 「전국시대」보다 먼저 일어난 일이다.
4.「사산 왕조 페르시아」에 나오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5.「사산 왕조 페르시아」와 관련된 나라(정치체)는 어디일까요?
참고자료
이 사건이 속한 시기와 주제를 다루는 자료입니다. 본문의 개별 문장을 어디에서 확인했는지는 아직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료가 둘이어도 교차 검증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앞의 글자는 자료 등급으로, A는 당대 사료와 공식 문서, B는 학술 연구와 국가기관 해설, C는 백과사전과 개론 교재를 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