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차 영국·버마 전쟁과 병합
Third Anglo-Burmese War · 1885~1886년
- 언제
- 1885~1886년
- 어디서
- 만달레이
- 어느 나라
- 영국·버마
- 누가
- 띠버 왕, 수파얄랏 왕비
- 어느 기관
- 영국 인도군
- 무슨 사건
- 제3차 영국·버마 전쟁과 병합
연도가 특정된 연대
그때 자리에 있던 임금
- 미얀마 띠뻐왕 (미얀마(버마) 국왕 28대 · 1878~1885)
- 오스만 제국 압뒬하미트 2세 (오스만 제국 술탄 34대 · 1876~1909)
- 이란(페르시아) 나세르 앗딘 샤 (카자르 왕조 4대 · 1848~1896)
- 이슬람권 타우피크Tawfiq (무함마드 알리 왕조(이집트) 6대 · 1879~1892)재위 연대에 이견이 있습니다
- 일본 메이지 천황 (천황(天皇) 122대 · 1867~1912)
- 태국 쭐랄롱꼰 (태국(시암) 국왕 30대 · 1868~1910)
같은 지역의 여러 나라를 함께 보였습니다. 이 사건이 일어난 곳의 임금만이 아닙니다. 나라별 왕조 연표 보기
이야기로 읽는 역사 —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따라
19세기에 영국은 버마와 두 차례 전쟁을 벌여 남부와 중부를 차지했습니다. 북쪽의 상버마만 왕국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연표는 1885년에 티크 목재를 다루던 영국 회사와의 분쟁이 구실이 되었고, 영국군이 만달레이를 차지했으며, 띠버 왕과 수파얄랏 왕비가 붙잡혀 인도로 보내졌다고 적습니다.
그 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진압을 지휘한 사람 본인이 책으로 남겼습니다. 크로스웨이트라는 사람인데, 병합 이듬해부터 몇 해 동안 버마를 다스린 최고 관리였습니다. 그러니 이 책은 이긴 쪽, 다스린 쪽의 기록입니다.
그는 왕의 통치가 1885년 11월 29일에 끝났고 1886년 1월 1일 부왕의 포고로 상버마가 영국 영토에 들어갔다고 적습니다. 처음에는 왕국의 국가 평의회를 그대로 두고, 관리들에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하던 일을 계속하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는 이런 문장도 씁니다. 우리는 그 나라를 어떻게 할지 정하지도 않고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이 갈지 헤아리지도 않은 채, 나라를 빼앗고 그 정부를 무너뜨렸다.
수도를 차지했는데도 왜 끝나지 않았을까요. 그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부대는 어디든 갈 수 있었지만, 부대가 지나가면 영국의 힘도 함께 지나가 버렸다는 것입니다. 한 장군이 보낸 편지도 실려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우리가 너무 멀리 있어 자기들을 지켜 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자 우리 힘에 대한 믿음을 잃고 저항하는 쪽에 가담했다고요.
숫자로도 남아 있습니다. 1886년 초 그가 쓸 수 있던 경찰 병력은 삼천삼백 명쯤이었습니다. 그해 11월에는 만 육천 명을 보내 달라고 요청합니다. 현지에서 사람을 뽑으려던 계획은 곧 포기되어, 그 병력은 카렌족 몇 개 중대를 빼면 전부 인도에서 온 사람들로 채워졌습니다.
이 책에서 가장 눈에 띄는 문장은 따로 있습니다. 어느 지역 서부 전체가 넘어간 상황을 적으면서 그는 이렇게 씁니다. 그곳은 반란자들, 반역자들, 또는 애국자들의 손에 있었다.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빼앗은 쪽의 의회 기록에도 그 대목이 있습니다. 1886년 2월, 병합한 땅의 경계를 묻자 인도 담당 차관은 점령 초기라 정확한 경계를 말할 수 없다고 답했습니다. 진압을 지휘한 사람이 스스로 그렇게 적어 둔 것입니다. 다만 그는 책의 나머지 대부분에서 이들을 도적이라고 부릅니다. 이름을 어떻게 붙일지 알면서도 한쪽을 골라 쓴 셈입니다.
생각해 보기 수도를 차지하면 그 나라를 지배하게 되는 걸까요?
더 자세히 — 경계를 말할 수 없다
색이 다른 대목은 자료에 적힌 문장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이 책은 진압한 쪽의 사람이 썼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사람이 적은 문장 가운데 이런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 나라를 어떻게 할지 정하기도 전에, 또 그것이 그곳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해 보기도 전에, 나라는 점령되었고 그 정부는 파괴되었다.
빼앗은 쪽의 지휘관이 자기 손으로 적은 말입니다.
같은 말이 병합 두 달 뒤 영국 의회에도 나옵니다. 새로 편입한 영토의 경계를 묻는 질문에 인도 담당 차관이 이렇게 답합니다.
점령이 이처럼 이른 단계에 있으므로, 지금 폐하의 영토에 편입된 지역의 정확한 경계를 말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어디까지가 자기 땅이 되었는지를 말할 수 없는 상태에서 병합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같은 답변에는 병력에 관한 것도 있습니다. 나라가 평정될 때까지는 그곳에 항구적으로 유지해야 할 병력이 얼마인지 말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곧 제출하겠다고 한 문서 목록에 이런 것이 들어 있습니다. 헌병사령관의 행위에 관한 것, 그리고 처형에 관한 것.
날짜는 이렇게 정리됩니다. 왕의 통치는 1885년 11월 29일에 끝났습니다. 그리고 1886년 1월 1일에 총독의 포고가 상부 버마를 폐하의 영토에 포함시켰습니다.
한 달 남짓입니다. 관리들에게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직무를 계속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저항은 예상 밖이었습니다. 이 책은 저항이 누구도 예견하지 못한 만큼 널리 퍼지고 완강했다고 적습니다.
병력의 변화가 그것을 보여 줍니다. 처음에는 약 삼천삼백 명이었는데, 1886년 11월에는 일만 육천 명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증원은 전부 인도인으로 이루어졌다고 적혀 있습니다.
무엇이 문제였는지는 한 장교가 1886년 7월에 보낸 편지에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우리가 너무 멀리 있어 자기들을 지켜 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우리 힘에 대한 믿음을 잃고 봉기한 쪽에 자기 운명을 건다.
그리고 같은 책의 다른 문장이 그 사정을 한 줄로 요약합니다. 병사들이 지나가 버리면 영국 정부의 힘도 그들과 함께 갔다.
낮에 군대가 들어와 깃발을 세워도, 그들이 떠난 밤에는 다른 쪽이 그 마을에 있었다는 뜻입니다.
이 책에는 부르는 이름에 대한 대목도 있습니다. 지은이는 그들을 보는 쪽에 따라 폭도이거나 반란자이거나 애국자라고 적었습니다.
한 문장 안에 세 이름을 나란히 놓은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그는 자기 판단을 덧붙입니다. 처음에는 어렴풋한 애국의 빛깔이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아주 곧 그들은 한낱 도적이 되었다.
세 이름을 나란히 적어 놓고, 결국 하나를 고른 셈입니다. 이 책을 읽을 때는 그 고르는 자리가 어디인지를 함께 보아야 합니다.
이 책에는 그곳 사람들과 다른 민족을 낮추어 보는 표현이 여러 군데 있습니다. 여기 옮기지 않았습니다.
1887년 9월의 무장해제 건의는 이 진압이 어떤 방식으로 마무리되었는지를 보여 줍니다. 사람들에게서 무기를 거두는 일이 「평정」의 마지막 절차였습니다.
확인하지 못한 것 티크 목재 회사 분쟁이 구실이 된 경위, 만달레이 진격, 왕과 왕비의 인도 유배는 이 두 자료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버마 쪽에서 남긴 기록도 아직입니다.
C. H. T. Crosthwaite, 『The Pacification of Burma』(1912), archive.org 전문 — 지은이는 1887~1890년 버마 판무관으로 진압을 지휘한 당사자입니다 · 영국 하원 회의록(HC Deb 22 February 1886), Historic Hansard
한눈에 보기
무슨 일이 있었나
영국이 만달레이를 점령하고 띠버 왕을 폐위한 뒤 상버마를 인도 제국에 병합했다. 이후 여러 지역에서 장기적인 무장 저항이 이어졌다.
왜 중요할까
제국주의 침략이 왕조 붕괴와 지방 저항, 식민 행정 재편으로 이어진 과정을 볼 수 있다.
핵심 키워드
- 영국·버마 전쟁
- 병합
같은 시기, 다른 나라에서는
1885~1886년 언저리연대가 겹치는 사건입니다. 같은 때에 일어났다는 뜻이지, 서로 원인과 결과라는 뜻은 아닙니다. 누르면 그 사건의 상세페이지로 갑니다.
그때 다른 나라의 임금
1885~1886년같은 해에 다른 나라에서 자리에 있던 사람입니다. 나라마다 한 사람씩만 실었습니다. 왕조가 여럿 겹치던 나라는 왕조 연표에 나머지가 있습니다.
- 인도네시아 하멩쿠부워노 7세1877~1921
- 중국 광서제1875~1908
- 한국 고종1863년~1897년
- 러시아 알렉산드르 3세1881~1894
- 에스파냐 알폰소 12세1874~1885
- 영국 빅토리아1837~1901
- 오스트리아 프란츠 요제프 1세1848~1916
- 포르투갈 루이스 1세1861~1889
- 모로코 모로크코의 하산 1세1873~1894
- 에티오피아 요하네스 4세1871~1889
- 브라질 제국 페드루 2세1831~1889
- 통가 조지 투포우 1세1845~1893
확인 문제
이 문제는 이 사건의 기록에 적힌 값으로 만든 것입니다. 답을 고르면 바로 알려 줍니다.
1.「제3차 영국·버마 전쟁과 병합」은 「주의 동천과 춘추시대 시작」보다 먼저 일어난 일이다.
2.「제3차 영국·버마 전쟁과 병합」은 언제 일어난 일일까요?
3.「제3차 영국·버마 전쟁과 병합」이 일어난 곳은 어디일까요?
4.「제3차 영국·버마 전쟁과 병합」에 나오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5.「제3차 영국·버마 전쟁과 병합」과 관련된 나라(정치체)는 어디일까요?
참고자료
이 사건이 속한 시기와 주제를 다루는 자료입니다. 본문의 개별 문장을 어디에서 확인했는지는 아직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료가 둘이어도 교차 검증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앞의 글자는 자료 등급으로, A는 당대 사료와 공식 문서, B는 학술 연구와 국가기관 해설, C는 백과사전과 개론 교재를 뜻합니다.
- CWorld History, Volume 2: from 1400 · OpenStax / Rice University · 2022 · CC BY-NC-SA 4.0링크
- CWorld History Since 1500: An Open and Free Textbook · East Tennessee State University · 2022 · CC BY 4.0; images separate링크
- ACharles Haukes Todd Crosthwaite, 『The Pacification of Burma』 (London: Edward Arnold, 1912) — 병합 뒤 상버마를 다스린 판무관 본인의 기록 · archive.org 전문 (pacificationofbu00crosrich) · 1912 · public domain링크
- A영국 하원 회의록 1886년 2월 22일 「BURMAH—THE ANNEXED TERRITORY」 · UK Parliament, Historic Hansard · 1886 · 공개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