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석기 문화 전개
약 70만 년 전 이후
- 언제
- 약 70만 년 전 이후
- 어디서
- 한반도 전역
- 어느 나라
- 선사사회
- 무슨 사건
- 구석기 문화 전개
대략의 연대 — 정확한 해를 특정하기 어려워 대략의 시기로 표시합니다.
이야기로 읽는 역사 — 나아지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한반도에서 사람의 자취는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집니다. 연표는 약 70만 년 전 무렵의 흔적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적습니다. 이 긴 시간을 구석기 시대라 부릅니다. 돌을 깨뜨려 도구를 만들어 쓰던 때입니다.
돌을 깨면 날카로운 면이 생깁니다. 그 면으로 자르고 찍고 다듬었습니다. 이렇게 만든 도구를 뗀석기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동굴에서도 살고 강가에 자리를 잡기도 했습니다. 충남 공주 석장리에서는 후기 구석기층의 집자리에서 숯이 나왔는데, 그 숯으로 잰 연대가 이만오천 년에서 삼만 년 전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주먹도끼입니다. 경기도 연천 전곡리의 한탄강가에서 1978년에 유적이 발견되어 이듬해부터 여러 차례 발굴했습니다. 주먹도끼와 사냥돌, 긁개, 찌르개 같은 석기가 나왔는데, 그 가운데 유럽과 아프리카의 아슐리안 형태를 갖춘 주먹도끼가 동북아시아에서 처음 나와 주목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흔히 도구가 시간에 따라 점점 좋아졌다고 배웁니다. 처음에는 투박하게 깨뜨려 쓰다가, 나중에는 얇고 긴 돌날을 떼어 내는 식으로요. 그런데 한반도의 유적을 살펴본 연구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2013년에 나온 한 논문이 남한에서 새로 찾은 두 곳의 야외 유적을 다루었습니다. 여기서 나온 석기는 대부분 몸돌과 격지를 쓰는 단순한 것이었습니다. 그때그때 필요한 만큼만 떼어 쓰는 방식이었습니다.
연대를 재 보았더니 약 삼만 년 전이었습니다. 두 가지 방법으로 쟀고, 붙여 보면 서로 맞물리는 조각이 많아서 흙층이 뒤섞이지 않았다는 것도 확인했습니다. 얇은 돌날 기술이 이미 나온 시기인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단순한 방식으로 도구를 만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논문은 이렇게 정리합니다. 서로 시기도 다르고 관련도 없는 유적들에서 단순한 석기가 삼만 년 전 이후까지 계속 만들어졌다고요. 그러면서 기술의 단계가 곧 발전의 단계를 뜻한다는 오래된 생각은 다시 따져 보아야 한다고 적었습니다.
새 방법이 나왔다고 옛 방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쓰기 편하고 그 자리에서 충분하면 사람들은 그것을 씁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논문을 쓴 사람은 마지막에 한계도 적어 두었습니다. 더 정밀한 유적과 더 확실한 연대가 필요하다고요. 이 시대는 아직 밝혀지는 중입니다.
생각해 보기 한곳에 오래 머물지 못하면 살림살이는 어떻게 달라질까요?
더 자세히 — 숯이 두 가지 일을 한다
색이 다른 대목은 자료에 적힌 문장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이 시기를 아는 길은 글이 아니라 물건입니다. 무엇이 어디서 나왔는지를 하나씩 보겠습니다.
한탄강 가의 전곡리에서는 1978년에 처음 발견되어 1979년부터 여러 차례 발굴조사가 이루어졌습니다. 거기서 주먹도끼, 사냥돌, 주먹찌르개, 긁개, 찌르개 등 다양한 종류의 석기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 유적이 주목받은 까닭은 물건의 가짓수가 아닙니다. 유럽과 아프리카 지방의 아슐리안 석기 형태를 갖춘 주먹도끼와 박편도끼가 동북아시아에서 처음 발견되어 주목을 받았다고 적혀 있습니다.
멀리 떨어진 두 곳에서 같은 모양의 도구가 나온 것입니다.
사람이 살던 자리는 공주 석장리에서 나왔습니다. 설명은 이렇습니다. 후기 구석기층의 집자리에서는 숯이 발견되었는데, 이것으로 연대측정을 한 결과 약 이만 오천 년에서 삼만 년 전의 집터임이 확인되었다.
이 한 문장 안에서 숯이 두 가지 일을 합니다. 하나는 그곳에서 불을 썼다는 자취입니다. 다른 하나는 그 자리가 언제였는지를 재는 재료입니다. 불을 쓴 흔적이 곧 시계가 된 셈입니다.
같은 유적은 우리나라 구석기시대에 사람이 살았음을 처음으로 알게 해 준 중요한 유적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꽃가루를 조사해 그 무렵 소나무·전나무·목련·백합이 있었다는 것도 밝혀졌습니다. 도구와 집자리만이 아니라 둘레의 숲까지 읽어 낸 것입니다.
동굴에서 산 자취는 제천 점말동굴에 있습니다. 남한 지역에서 최초로 확인된 구석기시대의 동굴유적이며, 1973년부터 1980년까지 여덟 차례 발굴에서 전기·중기·후기 세 문화층이 확인되었습니다. 가운데 층이 육만 육천 년, 위층이 만 팔천육백육십 년입니다.
굴의 크기도 적혀 있습니다. 입구 너비 이삼 미터, 확인된 길이 열두세 미터, 입구는 동남향입니다. 아침 해가 드는 쪽입니다.
거기서 나온 것 가운데는 털코뿔이·동굴곰·짧은꼬리원숭이 등 동물화석 스무 종이 있습니다. 지금 이 땅에 없는 짐승들입니다. 뼈로 만든 연모와 예술품도 함께 나왔습니다.
단양 금굴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구석기 문화 유적으로 적혀 있고, 전기 구석기부터 청동기까지의 층이 차례로 나타납니다. 입구 높이 팔 미터, 길이 팔십오 미터입니다. 한 굴 안에 여러 시대가 층으로 쌓여 있는 것입니다.
도구 이야기에는 흔한 오해가 하나 있습니다. 시대가 지나면 도구가 차례로 「더 나은 것」으로 바뀐다는 생각입니다.
이 땅의 후기 구석기를 다룬 연구는 그 생각에 반대합니다. 확인된 유물 대부분은 간단한 몸돌과 격지 도구이고, 그런 도구가 시간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서로 독립된 유적들에서 삼만 년 전 이후까지 계속 만들어졌다고 적혀 있습니다. 논문은 그것이 한국 후기 구석기 유물군의 떼어 낼 수 없는 한 부분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저자는 이렇게 정리합니다. 기술의 단계가 진화적 진보를 나타낸다는 클라크의 함의는 도전받아야 한다.
새 방식이 나타났다고 해서 옛 방식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두 가지가 오래 함께 쓰였습니다.
다만 이 논문도 자기 한계를 적어 둡니다. 더 정밀한 유적과 더 확실한 연대값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확인하지 못한 것 「약 70만 년 전」이라는 시작 시점의 근거는 네 유적 설명문 어디에도 없습니다. 점말동굴은 66,000년, 금굴은 「가장 오래된」이라고만 적습니다. 이 값은 전곡리의 연대 논쟁과 얽혀 있어 유적 설명문이 아니라 연대측정 논문을 봐야 합니다.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정보 OpenAPI — 「연천 전곡리 유적」·「공주 석장리 유적」·「제천 점말동굴 유적」·「단양 금굴 유적」 · Hyeong Woo Lee, 「The Persistence of Mode 1 Technology in the Korean Late Paleolithic」, PLoS ONE 8(5): e64999(2013), CC BY
한눈에 보기
무슨 일이 있었나
뗀석기를 사용하며 사냥·채집 중심의 이동생활이 이어졌다.
왜 중요할까
환경과 기술 변화가 생활방식에 미친 장기 변화를 이해하는 출발점이다.
핵심 키워드
- 구석기 시대
- 뗀석기
같은 시기, 다른 나라에서는
약 70만 년 전 이후 언저리연대가 겹치는 사건입니다. 같은 때에 일어났다는 뜻이지, 서로 원인과 결과라는 뜻은 아닙니다. 누르면 그 사건의 상세페이지로 갑니다.
- 아프리카 · 약 30만 년 전Homo sapiens의 출현현재의 Homo sapiens는 아프리카에서 약 30만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화석 기록으로 확인된다.
- 오세아니아 · 약 5만~6만 5천 년 전사훌의 인류 정착해수면이 낮아 오스트레일리아·뉴기니·태즈메이니아가 연결된 사훌에 현생인류가 해상 구간을 건너 정착했다.
- 미주 · 약 2만 3천~1만 3천 년 전아메리카 대륙의 인류 정착아시아에서 이동한 사람들이 아메리카 대륙 전역에 자리를 잡았다.
- 세계 공통 · 기원전 약 10000년 이후농경과 가축 사육의 시작서로 다른 여러 지역에서 각각 작물 재배와 가축 사육이 시작되었다.
확인 문제
이 문제는 이 사건의 기록에 적힌 값으로 만든 것입니다. 답을 고르면 바로 알려 줍니다.
1.「구석기 문화 전개」가 일어난 곳은 어디일까요?
2.「구석기 문화 전개」와 관련된 나라(정치체)는 어디일까요?
3.「구석기 문화 전개」는 어느 지역의 역사일까요?
4.「구석기 문화 전개」와 관련된 말은 무엇일까요?
5.「구석기 문화 전개」는 「국제적십자위원회 창설」보다 나중에 일어난 일이다.
참고자료
이 사건이 속한 시기와 주제를 다루는 자료입니다. 본문의 개별 문장을 어디에서 확인했는지는 아직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료가 둘이어도 교차 검증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앞의 글자는 자료 등급으로, A는 당대 사료와 공식 문서, B는 학술 연구와 국가기관 해설, C는 백과사전과 개론 교재를 뜻합니다.
- B신편 한국사 52책 · 국사편찬위원회 · 1993~2002 · public web service링크
- A한국사데이터베이스 · 국사편찬위원회 · current · public web service링크
- C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한국학중앙연구원 · current · public web service링크
- AHyeong Woo Lee, 「The Persistence of Mode 1 Technology in the Korean Late Paleolithic」, PLoS ONE 8(5): e64999 (2013) · 전북대학교 고고문화인류학과 / PLOS ONE · 2013 · CC BY링크
- C연천 전곡리 유적 — 국가유산 정보(국가유산청 OpenAPI) · 국가유산청(구 문화재청) · 1979 · 공개링크
- C공주 석장리 유적·제천 점말동굴 유적·단양 금굴 유적 — 국가유산 정보 · 국가유산청 · 공개링크
이 항목은 한국사 학술자료기반 핵심연표에서 정리된 연표를 옮긴 것입니다. 위 참고자료와는 역할이 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