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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조선KOR0228

이화학당 개교

1886년 5월 31일

언제
1886년 5월 31일
어디서
한양 정동
어느 나라
조선
누가
메리 스크랜턴
어느 기관
이화학당
무슨 사건
이화학당 개교

연도가 특정된 연대

그때 자리에 있던 임금

  • 조선 고종 (26 · 1863년~1897년)

한국사 왕 계보 전체 보기

이야기로 읽는 역사 — 그날 아이들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자체 이중 확인 · 사람 검수 전
언제 1886년 5월 31일어디서 한양 정동누가 메리 스크랜턴

1886년 5월, 한양 정동에서 여성을 가르치는 학교가 시작되었습니다. 메리 스크랜턴이 연 것입니다. 그때 조선에서는 여자아이를 집 밖으로 내보내 배우게 하는 일이 드물었고, 외국인이 가르친다니 부모들이 더 꺼렸습니다. 연표는 첫 학생이 한 명이었다고 적습니다.

두 해 뒤에 스크랜턴이 쓴 보고서가 남아 있습니다. 미국의 후원자들에게 보내는 글이었으니, 무엇이 잘되고 무엇이 어려운지를 적어야 하는 자리였습니다.

그해 한양에는 무서운 소문이 돌았습니다. 외국인이 조선 아이들을 훔쳐서 사 가거나, 죽여서 약을 만드는 데 쓴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소문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습니다.

스크랜턴은 자기들이 공격당할까 봐 겁이 나지는 않았다고 적었습니다. 그런데 집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무서워하며 떠나겠다는 말을 꺼내자, 그제야 정말 큰일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했습니다. 어느 날은 사람들이 대문 밖에 모여 하인들이 아이를 훔쳐 팔았다며 죽이겠다고 했습니다.

가장 불안했던 날 그가 한 일이 이 이야기의 핵심입니다. 그는 학생들의 어머니와 친척을 불러, 아이들을 그들 손에 돌려보냈습니다. 무슨 일이 생기면 그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고 적었습니다. 조선 정부도 움직였습니다. 왕이 그런 일이 없다는 포고를 내리고 군인들에게 거리를 지키게 했습니다.

소동이 지나간 뒤 그는 학교의 형편을 적습니다. 기숙하는 학생은 열세 명이었습니다. 생각만큼 늘지 않았다고 하면서도, 최근 두 주 사이에 두 명이 새로 왔다는 것을 큰 격려로 여겼습니다. 사람들이 우리를 아주 나쁘게만 보지는 않는다는 뜻이라면서요.

이 학교를 선교사가 베푼 것으로만 설명하면 놓치는 것이 있습니다. 같은 보고서에 조선 여성 두 사람이 스스로 나서서 다른 여성들을 찾아다녔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중 한 사람은 백 명과 이야기했다고 했고, 집이 넉넉하기만 하면 더 많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성들이 모이는 방식도 그들이 정했습니다. 남자 강사를 부르려 하자 여성들은 그가 자기들을 보지 않는다면 좋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병풍을 세워 목소리만 들리게 했습니다. 배우겠다고 온 사람들과 딸을 보내기로 한 가족들이 함께 만든 학교였습니다. 학교 이름은 나라에서 받았습니다. 한 해 앞선 보고서에 그 이야기가 있습니다. 외교를 맡은 관청이 이름을 보내왔고, 조선에서 여자를 곱게 이를 때 쓰는 말인 배꽃을 딴 이름이 큰 문 위에 걸렸습니다. 그 보고서에는 이런 말도 있습니다. 처음에는 다른 이름을 주려 했는데 온전히 믿는 학교라는 뜻이었고, 사람들은 지금 걸린 이름으로 바꾼 것을 더 잘한 일로 여기는 듯하다고요. 그리고 이름 자체가 대단할 것은 없으며 그것을 왕실이 주었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적었습니다.

생각해 보기 처음에 사람이 모이지 않는 일을 계속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더 자세히 — 받은 쪽이 적어 둔 이름

색이 다른 대목은 자료에 적힌 문장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이 학교의 이름이 어디서 왔는지는 이름을 준 쪽이 아니라 받은 쪽의 기록에 남아 있습니다. 1887년 보고서에 스크랜턴이 직접 적었습니다.

외무를 맡은 관리가 학교 이름을 보내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은 모든 관청 고시가 그렇듯 액자에 넣어 걸도록 되어 있었다고 적었습니다.

이름의 뜻도 풀어 놓았습니다. 조선 사람들은 여자를 두고 특별히 곱고 시적으로 말하고 싶을 때 배꽃이라 부르는데, 그래서 우리 학교가 배꽃 학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그가 덧붙인 두 문장이 눈에 띕니다. 하나는 처음에 다른 이름이 올 뻔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처음에 그들은 나에게 꼭 맞았을 이름을 주었다. 곧 「온전히 믿는 학교」였다. 그리고 그쪽에서는 지금 큰 문 위에 걸린 이름으로 바꾼 것이 더 나은 일을 한 것이라고 여기는 듯하다고 적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이름 자체에 대한 평입니다. 이 학교 이름은 조금도 놀라운 것이 아니다. 그것을 중요하게 만드는 것은 오직 왕실이라는 자리다.

받은 사람이 스스로, 대단한 것은 글자가 아니라 그것을 준 자리라고 적어 둔 것입니다.

이듬해 보고서에는 다른 종류의 일이 적혀 있습니다. 소문이 돌았습니다. 조선 아이들이 유괴되어 외국인에게 팔렸다거나, 죽임을 당해 먹혔다거나, 약을 짓는 데 쓰였다는 이야기가 퍼졌다는 것입니다.

군중이 우리 문밖에 모여 우리 하인들을 지목하며 죽이겠다고 위협했다고 했습니다. 제물포에서 군인 일흔다섯 명이 도착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왕은 외국인이 그런 일을 저질렀다는 것을 부인하는 포고를 내리고 백성에게 조용히 하라고 명했다고 했습니다.

가장 불안했던 날 스크랜턴이 한 일도 적어 두었습니다. 우리가 가장 걱정하던 날 나는 우리 여학생들의 어머니와 친척들을 불러, 아이들을 그들의 손에 돌려주었다.

학교가 아이들을 지키겠다고 붙잡은 것이 아니라 집으로 돌려보낸 것입니다.

그리고 그해의 셈이 이어집니다. 결국 홈에 열세 명의 여학생이 있다는 것이 그리 작은 일이겠는가라고 썼고, 지난 두 주 사이에 새 여학생 두 명의 이름이 우리 학교에 더해졌다면서 이는 사람들이 우리를 아주 나쁘게만 여기지는 않는다는 것을 보여 준다고 적었습니다.

그 무렵 시작된 다른 일도 있습니다. 자기 자매들 사이로 나가는 것을 자기 일로 삼겠다는 조선 여자 둘이 있었고, 그중 한 사람은 백 명을 만났으며 집만 충분히 컸다면 훨씬 더 많았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자들이 어떤 자리에 있었는지는 병풍 이야기에 남아 있습니다. 진료를 받을 때 여자들은 그가 자기들을 보지 않는다는 조건이라면 하겠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스크랜턴은 그것을 두고 여자들이 지키는 격리의 관념은 신성하게 여겨진다고 적었습니다.

확인하지 못한 것 개교일과 첫 학생이 한 명이었다는 이야기는 이 두 보고서에 없습니다. 제17차 연례보고서(1886)를 봐야 합니다. 그리고 이 자료는 선교 단체가 후원자에게 보내는 보고서라 한쪽에서 본 기록입니다.

『Eighteenth Annual Report of the Woman's Foreign Missionary Society of the Methodist Episcopal Church』(1887)와 『Nineteenth Annual Report』(1888)의 「KOREA — SEOUL」 항목, 메리 스크랜턴의 보고, archive.org 전문

한눈에 보기

무슨 일이 있었나

메리 스크랜턴이 서울 정동에서 여성 교육 기관을 시작했다. 초기에는 학생 모집이 어려웠으나 근대 여성 교육의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왜 중요할까

선교·교육·젠더 변화가 결합된 근대 여성 교육사를 이해할 수 있다.

핵심 키워드

  • 여성 교육
  • 이화학당

같은 시기, 다른 나라에서는

1886년 5월 31일 언저리

연대가 겹치는 사건입니다. 같은 때에 일어났다는 뜻이지, 서로 원인과 결과라는 뜻은 아닙니다. 누르면 그 사건의 상세페이지로 갑니다.

그때 다른 나라의 임금

1886년 5월 31일

같은 해에 다른 나라에서 자리에 있던 사람입니다. 나라마다 한 사람씩만 실었습니다. 왕조가 여럿 겹치던 나라는 왕조 연표에 나머지가 있습니다.

  • 오스만 제국 압뒬하미트 2세1876~1909
  • 이란(페르시아) 나세르 앗딘 샤1848~1896
  • 이슬람권 타우피크1879~1892
  • 인도네시아 하멩쿠부워노 7세1877~1921
  • 일본 메이지 천황1867~1912
  • 중국 광서제1875~1908
  • 태국 쭐랄롱꼰1868~1910
  • 러시아 알렉산드르 3세1881~1894
  • 에스파냐 알폰소 13세1886~1931
  • 영국 빅토리아1837~1901
  • 오스트리아 프란츠 요제프 1세1848~1916
  • 포르투갈 루이스 1세1861~1889
  • 모로코 모로크코의 하산 1세1873~1894
  • 에티오피아 요하네스 4세1871~1889
  • 브라질 제국 페드루 2세1831~1889
  • 통가 조지 투포우 1세1845~1893

확인 문제

이 문제는 이 사건의 기록에 적힌 값으로 만든 것입니다. 답을 고르면 바로 알려 줍니다.

  1. 1.「이화학당 개교」는 언제 일어난 일일까요?

  2. 2.「이화학당 개교」가 일어난 곳은 어디일까요?

  3. 3.「이화학당 개교」에 나오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4. 4.「이화학당 개교」와 관련된 나라(정치체)는 어디일까요?

  5. 5.「이화학당 개교」는 「마야 고전기」보다 먼저 일어난 일이다.

참고자료

이 사건이 속한 시기와 주제를 다루는 자료입니다. 본문의 개별 문장을 어디에서 확인했는지는 아직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료가 둘이어도 교차 검증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앞의 글자는 자료 등급으로, A는 당대 사료와 공식 문서, B는 학술 연구와 국가기관 해설, C는 백과사전과 개론 교재를 뜻합니다.

  • B신편 한국사 52책 · 국사편찬위원회 · 1993~2002 · public web service링크
  • A한국사데이터베이스 · 국사편찬위원회 · current · public web service링크
  • C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한국학중앙연구원 · current · public web service링크
  • A『Nineteenth Annual Report of the Woman's Foreign Missionary Society of the Methodist Episcopal Church』 (1888) 중 「KOREA — SEOUL」 항목 — 메리 스크랜턴 본인의 보고 · Woman's Foreign Missionary Society, Methodist Episcopal Church / archive.org 전문 (nineteenthannual01woma) · 1888 · public domain링크
  • A『Eighteenth Annual Report of the Woman's Foreign Missionary Society of the Methodist Episcopal Church』(1887) 한국 항목 · archive.org 스캔 (identifier: eighteenthannual01woma) · 1887 · 퍼블릭 도메인링크

이 항목은 한국사 학술자료기반 핵심연표에서 정리된 연표를 옮긴 것입니다. 위 참고자료와는 역할이 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