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경작제도 도입
Cultivation System · 1830년
- 언제
- 1830년
- 어디서
- 자바
- 어느 나라
- 네덜란드령 동인도
- 무슨 사건
- 강제경작제도 도입
연도가 특정된 연대
이야기로 읽는 역사 — 먹을 것 대신 팔 것을 심게 하다
1830년, 네덜란드 식민 당국이 자바에서 새 제도를 시작했습니다. 강제경작제도입니다. 이 제도를 만든 사람은 판 덴 보스로, 그 전해에 국왕에게서 임무를 받았습니다.
계획은 이랬습니다. 마을이 경작지의 일부, 보통 오분의 일을 떼어 정부가 정한 작물을 심고 가꾼다. 심으라고 한 것은 먹는 작물이 아니었습니다. 커피, 사탕수수, 쪽이었습니다. 유럽에 내다 팔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규모를 보면 어떤 일이었는지 짐작이 됩니다. 1840년대 자바에는 커피나무가 이억 그루 넘게 있었고, 사십만에서 오십만 가구가 그 일에 매였습니다. 해마다 이백만에서 천만 그루를 새로 심었습니다.
가장 싫어한 것은 쪽이었습니다. 이유가 셋이라고 합니다. 쪽은 땅을 못 쓰게 만들어 몇 해 지나면 다른 것도 자라지 않았고, 마을에서 더 먼 곳을 새로 열어야 했습니다. 물감을 내려면 통 속에 들어가 밟고 저어야 했는데 그러면 살갗에 물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삯이 적었습니다. 워낙 많은 사람이 매달리다 보니 한 사람 몫이 아주 작아졌습니다.
설탕 공장 일도 늘 자기 뜻으로 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삯을 더 주었지만, 마을 우두머리를 통해 사람을 대는 일이 잦았습니다. 밭일에 쓰던 강제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한 가지 조심할 점이 있습니다. 이 제도를 비판하는 쪽도 옹호하는 쪽도 그것을 짜임새 있는 하나의 제도로 여겼지만, 실제로는 시작할 때부터 그렇게 굴러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이 이야기를 읽을 때는 규정에 적힌 것과 자바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을 나누어 보아야 합니다.
생각해 보기 식량 대신 수출 작물을 기르게 하면 무슨 일이 생길까요?
더 자세히 — 규정과 실제가 달랐다
색이 다른 대목은 자료에 적힌 문장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제도의 뼈대는 한 문장으로 요약됩니다. 판 덴 보스의 계획은 간단히 말해, 자바의 마을이 자기 땅의 일부, 보통 오분의 일을 정부가 지정한 작물을 심고 가꾸는 데 떼어 놓는 것이었습니다.
땅의 오분의 일이라고 하면 크지 않아 보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어떤 규모였는지는 수를 보면 달라집니다.
1840년대에 자바에서 이억 그루가 넘는 커피나무를 심고 가꾸기 위해 사십만에서 오십만 가구가 노동자로 지정되었습니다. 그리고 해마다 이백만에서 천만 그루의 새 나무가 심어졌습니다.
한 가구가 아니라 수십만 가구가 그 일에 묶여 있었습니다.
작물 가운데 사람들이 가장 싫어한 것이 무엇이었는지도 적혀 있습니다. 모든 보고에 따르면 쪽을 기르고 가공하는 일이 자바 사람들에게 가장 혐오스러운 경작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까닭이 셋으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첫째, 쪽 식물은 땅을 고갈시켰습니다. 몇 해가 지나면 그 땅에서는 쪽도 다른 작물도 자라지 않아, 마을에서 더 먼 새 땅을 열어야 했습니다. 일터가 해마다 멀어졌다는 뜻입니다.
둘째, 가공 방식입니다. 작은 공장에서 하는 발효 과정은 통 속에 들어가 물을 첨벙거리며 밟는 일이었고, 그 결과 살갗이 물들었습니다.
셋째는 삯입니다. 밭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삯은 처음부터 적었는데, 경작에 쓰인 사람의 수가 워낙 많아 한 사람에게 돌아가는 몫은 극히 작아졌습니다.
전체로 보면 지급된 돈이 있지만, 나누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됩니다.
공장 일에 대해서도 한 줄이 있습니다. 공장 노동은 추가 삯이 주어졌는데도 늘 자발적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떻게 사람을 데려왔는가 하면 자주 마을 촌장과의 약정을 통해 공장 노동이 공급되었고, 그것은 밭일에 쓰인 강제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삯을 준다고 해서 스스로 간 것이 아니었다는 뜻입니다. 강제인지 아닌지를 삯의 유무로 가릴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논문이 마지막에 하는 말이 이 제도를 이해하는 열쇠입니다.
이 제도를 이해하는 데 가장 큰 문제 가운데 하나는, 비판자와 옹호자가 모두 그것을 문자 그대로 하나의 제도로 받아들여 온 데서 나온다.
정해진 규정이 있었고 그것이 그대로 시행되었으리라 여기면,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놓칩니다. 땅의 오분의 일이라는 규정이 어디서는 그보다 많았고, 삯을 준다는 규정이 어디서는 이름뿐이었습니다.
무엇이 정해져 있었는가와 무엇이 일어났는가는 따로 물어야 합니다.
확인하지 못한 것 이 제도가 네덜란드 재정에 얼마나 기여했는지, 1840~50년대의 기근, 제도가 축소되고 폐지된 경위, 그리고 도입의 배경은 이 논문이 다루지 않습니다.
Robert Van Niel, 「Measurement of Change under the Cultivation System in Java, 1837–1851」, *Indonesia* 14(Cornell SEAP, 1972)
한눈에 보기
무슨 일이 있었나
농민에게 수출 작물을 의무적으로 재배하게 하는 제도가 시행되었다.
왜 중요할까
식민지 농업정책이 본국 재정과 현지 생활에 미친 영향을 본다.
핵심 키워드
- 강제경작제도
- 식민지 경제
같은 시기, 다른 나라에서는
1830년 언저리연대가 겹치는 사건입니다. 같은 때에 일어났다는 뜻이지, 서로 원인과 결과라는 뜻은 아닙니다. 누르면 그 사건의 상세페이지로 갑니다.
그때 다른 나라의 임금
1830년같은 해에 다른 나라에서 자리에 있던 사람입니다. 나라마다 한 사람씩만 실었습니다. 왕조가 여럿 겹치던 나라는 왕조 연표에 나머지가 있습니다.
- 미얀마 자가잉왕1819~1837
- 오스만 제국 마흐무트 2세1808~1839
- 이란(페르시아) 파트흐 알리 샤1797~1834
- 이슬람권 무함마드 알리1805~1848
- 인도 악바르 샤흐 2세1806~1837
- 일본 도쿠가와 이에나리1787~1837
- 중국 도광제1820~1850
- 태국 라마 3세1824~1851
- 한국 순조1800년~1834년
- 러시아 니콜라이 1세1825~1855
- 에스파냐 페르난도 7세1808, 1814~1833
- 영국 조지 4세1820~1830
- 오스트리아 프란츠 2세1804~1835
- 포르투갈 미겔1828~1834
- 프랑스 샤를 10세1824~1830
- 모로코 모로크코의 아브드 알라흐만1822~1859
- 에티오피아 이야수 4세1830~1832
- 브라질 제국 페드루 1세1822~1831
- 통가 라우피리토아1827~1865
확인 문제
이 문제는 이 사건의 기록에 적힌 값으로 만든 것입니다. 답을 고르면 바로 알려 줍니다.
1.「강제경작제도 도입」은 「냉전」보다 나중에 일어난 일이다.
2.「강제경작제도 도입」은 언제 일어난 일일까요?
3.「강제경작제도 도입」이 일어난 곳은 어디일까요?
4.「강제경작제도 도입」과 관련된 나라(정치체)는 어디일까요?
5.「강제경작제도 도입」은 어느 지역의 역사일까요?
참고자료
이 사건이 속한 시기와 주제를 다루는 자료입니다. 본문의 개별 문장을 어디에서 확인했는지는 아직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료가 둘이어도 교차 검증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앞의 글자는 자료 등급으로, A는 당대 사료와 공식 문서, B는 학술 연구와 국가기관 해설, C는 백과사전과 개론 교재를 뜻합니다.
- CWorld History, Volume 2: from 1400 · OpenStax / Rice University · 2022 · CC BY-NC-SA 4.0링크
- CWorld History Since 1500: An Open and Free Textbook · East Tennessee State University · 2022 · CC BY 4.0; images separate링크
- BRobert Van Niel, "Measurement of Change under the Cultivation System in Java, 1837–1851", Indonesia 14 · Cornell University Southeast Asia Program / eCommons · 1972 · © Cornell SEAP, 공개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