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벽대전
Battle of Red Cliffs · 208~209년
- 언제
- 208~209년
- 어디서
- 장강 중류
- 어느 나라
- 후한
- 누가
- 조조, 손권, 유비, 주유
- 무슨 사건
- 적벽대전
대략의 연대 — 정확한 해를 특정하기 어려워 대략의 시기로 표시합니다.
그때 자리에 있던 임금
- 중국 헌제 (후한(後漢) 14대 · 189~220)
같은 지역의 여러 나라를 함께 보였습니다. 이 사건이 일어난 곳의 임금만이 아닙니다. 나라별 왕조 연표 보기
이야기로 읽는 역사 — 큰 군대가 진 까닭
후한 말, 조조가 북쪽을 거의 정리하고 남쪽으로 내려왔습니다. 형주가 싸우지 않고 항복하면서 그곳 수군까지 손에 넣었습니다. 208년 무렵의 일입니다.
손권의 신하들은 대부분 맞서지 말자고 했습니다. 장강이라는 방패를 조조와 나눠 갖게 되었으니 이길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주유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조조가 보낸 편지에는 수군과 보병이 팔십만이라 적혀 있었지만, 실제로 헤아려 보면 그 절반에도 못 미치고 그나마 오래 행군해 지쳐 있다고 손권에게 말했다고 전합니다.
손권은 싸우기로 했습니다. 유비도 제갈량을 사신으로 보내 손을 잡았습니다. 두 군대는 적벽에서 만났습니다. 사서는 이때 이미 조조의 군중에 병이 돌고 있었고, 첫 싸움에서 조조 쪽이 밀려 강 북쪽으로 물러났다고 적었습니다.
주유의 부하 황개가 말했습니다. 적의 배들이 앞뒤로 이어져 있으니 불을 놓으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황개는 항복하겠다는 편지를 미리 보내 놓고, 마른 풀과 기름을 실은 배를 몰고 다가갔습니다. 바람이 세게 불어 불은 강가의 진영까지 옮겨 붙었고 사람과 말이 많이 죽었습니다.
조조는 물러났습니다. 그런데 뒷날 조조가 손권에게 보낸 편지에는 다른 이야기가 적혀 있습니다. 적벽 싸움 때 마침 병이 돌아 자기가 스스로 배를 불사르고 물러난 것인데 주유가 공연히 이름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진 쪽과 이긴 쪽의 이야기는 이렇게 다릅니다.
이 싸움은 뒷날 소설 『삼국지연의』로 훨씬 유명해졌습니다. 제갈량이 바람을 불러오는 장면 같은 것은 소설의 각색입니다. 사서에 주를 단 학자조차, 처음 맞서 싸우자고 한 사람은 노숙인데 주유의 전기가 그 공을 가져갔다고 적어 두었습니다.
생각해 보기 소설로 널리 알려진 사건을 읽을 때 무엇을 구분해야 할까요?
한눈에 보기
무슨 일이 있었나
손권·유비 연합군이 조조의 남하군을 장강 중류에서 물리쳐 삼국 정립의 계기를 만들었다.
왜 중요할까
군사·질병·보급·지리 조건이 정치적 분열에 미친 영향을 분석할 수 있다.
핵심 키워드
- 적벽대전
- 삼국시대
같은 시기, 다른 나라에서는
208~209년 언저리연대가 겹치는 사건입니다. 같은 때에 일어났다는 뜻이지, 서로 원인과 결과라는 뜻은 아닙니다. 누르면 그 사건의 상세페이지로 갑니다.
그때 다른 나라의 임금
208~209년같은 해에 다른 나라에서 자리에 있던 사람입니다. 나라마다 한 사람씩만 실었습니다. 왕조가 여럿 겹치던 나라는 왕조 연표에 나머지가 있습니다.
- 이란(페르시아) 보로가세스 4세약 191~208
- 한국 산상왕197년~227년
- 로마 셉티미우스 세베루스193~211
확인 문제
이 문제는 이 사건의 기록에 적힌 값으로 만든 것입니다. 답을 고르면 바로 알려 줍니다.
1.「적벽대전」은 언제 일어난 일일까요?
2.「적벽대전」은 「제2차 왕자의 난·태종 즉위」보다 나중에 일어난 일이다.
3.「적벽대전」이 일어난 곳은 어디일까요?
4.「적벽대전」에 나오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5.「적벽대전」과 관련된 나라(정치체)는 어디일까요?
참고자료
이 사건이 속한 시기와 주제를 다루는 자료입니다. 본문의 개별 문장을 어디에서 확인했는지는 아직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료가 둘이어도 교차 검증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앞의 글자는 자료 등급으로, A는 당대 사료와 공식 문서, B는 학술 연구와 국가기관 해설, C는 백과사전과 개론 교재를 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