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닌의 난과 전국시대
Onin War and the Sengoku period · 1467~1477년
- 언제
- 1467~1477년
- 어디서
- 교토
- 어느 나라
- 무로마치 막부
- 무슨 사건
- 오닌의 난과 전국시대
연도가 특정된 연대
그때 자리에 있던 임금
- 이슬람권 아부 사이드 (티무르 왕조 7대 · 1451~1469) / 알무스탄지드 (아바스 왕조(카이로) 17대 · 1455~1479) / 쿠시카담Khushqadam (맘루크 왕조(부르지) 17대 · 1461~1467) / 빌바이Bilbay (맘루크 왕조(부르지) 18대 · 1467~1468)재위 연대에 이견이 있습니다
- 인도 바흐룰 칸 로디بهلول لودی (델리 술탄국 19대 · 1451~1489)재위 연대에 이견이 있습니다
- 일본 아시카가 요시마사 (무로마치(아시카가) 막부 쇼군 8대 · 1449~1474) / 고쓰치미카도 천황 (천황(天皇) 103대 · 1464~1500)
- 캄보디아 폰히아 야트ស្រីសុរិយោពណ៌ទី២ (캄보디아 국왕 58대 · 1421~1467) / 노리아이 리아치아នរាយណ៍រាមា (캄보디아 국왕 59대 · 1462~1468)재위 연대에 이견이 있습니다
같은 지역의 여러 나라를 함께 보였습니다. 이 사건이 일어난 곳의 임금만이 아닙니다. 나라별 왕조 연표 보기
이야기로 읽는 역사 — 전에 없던 일이 생겼다
무로마치 막부는 교토에 있었습니다. 쇼군이 있었지만 실제 힘은 몇몇 유력 가문이 나눠 쥐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그랬는지는 땅으로 드러납니다. 쇼군의 직할 땅보다 넓은 땅을 가진 다이묘가 여덟이었고, 절반이 넘는 땅을 가진 집안이 스물둘이었습니다. 1467년, 쇼군의 후계를 두고 다툼이 벌어졌고 여기에 유력 가문의 집안 문제까지 얽혔습니다.
그때를 본 사람이 고향 집에 보낸 편지가 남아 있습니다. 난이 시작된 때부터 보고 들은 것을 간추려 적어 보낸 글입니다. 편지 끝에는 문명 십팔 년, 그러니까 1486년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편지는 도성 안도 밖도 어지럽고, 도시와 시골이 고르게 소란하다고 적었습니다. 그리고 양쪽이 갈라져 곳곳에 요새와 망루와 성문을 세우고 해자를 파고 흙담을 쌓았는데, 그 광경이 눈과 귀를 놀라게 한다고 했습니다. 도시가 통째로 성이 된 것입니다.
이 편지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새로 나타난 무리에 대한 대목입니다. 아시가루라 불린 사람들입니다. 무리를 지어 성을 급습해 단번에 승부를 걸고, 달아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고 적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일은 전에 없던 일이라고 했습니다.
피해도 적혀 있습니다. 귀족들의 집이 삼사 년 동안 불탔고 눈물이 백 번 천 번이라고 했습니다. 가지고 있던 땅은 무가에게 넘어갔습니다. 그리고 이 한 줄이 있습니다. 이번 싸움은 남과 남의 다툼이 아니라 몸과 몸의 활싸움이라고요. 그래서 부모와 자식이, 형제가 갈라졌다고 적었습니다.
시골도 조용하지 않았습니다. 농성할 준비를 하고 재물과 가재도구, 소와 말과 식구를 모두 산으로 옮겼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나라와 백성이 잃은 것은 몇천만인지 헤아려 말하기 어렵다고 적었습니다.
편지의 마지막은 바람입니다. 모두가 화목해 아무 일 없이 지낼 수 있다면 살아 있는 동안의 가장 큰 기쁨이겠다고요. 싸움의 끝은 이렇게 전합니다. 1473년에 양쪽 우두머리가 한 달 사이로 잇따라 죽었는데도 싸움은 이어졌고, 1477년 십이월에 한쪽 군사가 자기들 진영을 불태우고 물러나면서 교토의 싸움이 끝났습니다. 한 역사책은 여기에 한 줄을 덧붙였습니다. 교토에는 마침내 평화가 왔지만 지방에는 아직 아니었다고요. 이름에 대해서도 한마디 붙어 있습니다. 오닌이라는 연호는 두 해뿐이었는데 싸움은 열한 해를 갔습니다. 이 편지는 그보다 아홉 해 뒤에 쓰였습니다.
생각해 보기 중앙의 권위가 무너지면 지방에서는 어떤 일이 생길까요?
더 자세히 — 끝났다는 말이 가리키는 것
색이 다른 대목은 자료에 적힌 문장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이 난을 겪은 사람이 고향 집안사람에게 보낸 편지가 남아 있습니다. 끝에 적힌 날짜는 문명 18년, 곧 1486년 팔월입니다. 난이 한창일 때 쓴 것이 아니라 한참 뒤에 보고 들은 것을 적어 보낸 글입니다.
편지는 도성 안팎이 온통 원망과 소란으로 뒤덮였다고 적습니다. 그리고 도시와 시골을 가릴 것 없이 온통 동란이고 큰 소동이라 했습니다.
도시가 어떻게 변했는지도 있습니다. 요새와 망루를 세우고 성문과 해자를 만들고 흙담을 쌓았는데, 그것이 귀와 눈을 놀라게 한다고 적었습니다. 사람이 살던 거리가 성채가 된 것입니다.
이 편지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대목은 아시가루 무리에 대한 것입니다. 그는 도망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일이 전대미문이라고 적었습니다. 무엇이 부끄러운 일인지에 대한 기준 자체가 흔들렸다는 뜻입니다.
귀족들 이야기도 나옵니다. 집이 불탄 뒤 서너 해 동안 눈물을 흘린 것이 백 번 천 번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이 편지에서 가장 무거운 문장은 따로 있습니다. 이번 싸움은 남과 남이 다투는 것이 아니라 제 몸과 제 몸의 활싸움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와 자식, 형과 아우가 갈라섰다고 적었습니다.
시골 사정도 적습니다. 재물과 가재도구를 챙기고 소와 말과 식구를 모두 이끌고 산으로 들어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국토와 인민이 몇천만이나 축났는지 이루 헤아리기 어렵다고 썼습니다.
편지의 맺음은 소원입니다. 모두가 화목하게 의논하여 아무 일 없이 지내게 된다면 그것이 살아생전의 가장 큰 기쁨이고 바라던 바라는 것입니다.
이 난에 왜 그렇게 많은 세력이 끼어들 수 있었는지는 땅의 셈이 말해 줍니다.
뒷날의 통사가 정리한 바로는, 쇼군이 가진 영지보다 더 많은 땅을 가진 다이묘가 여덟이나 있었습니다. 쇼군 영지의 절반 이상을 가진 집안은 스물둘이었습니다.
군대를 부를 힘이 애초에 쇼군에게만 있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이름에 대한 설명도 붙어 있습니다. 싸움이 그 연호의 해에 시작되었기 때문에 흔히 오닌의 난이라 불리는데, 오닌 연간은 두 해밖에 이어지지 않은 반면 오닌의 난은 열한 해 동안 계속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름은 시작한 해에서 왔고, 일은 그보다 훨씬 길었습니다.
그러면 그 난은 어떻게 끝났을까요. 끝을 적은 대목이 뜻밖입니다.
가쓰모토와 소젠 둘 다 1472년에는 칼을 거두고 싶어 했다는 증거가 있다고 적혀 있습니다. 그런데 오랜 다툼 사이에 평화를 어렵게 만드는 조건들이 이미 자라 있었습니다.
1473년 5월에 소젠이 죽었고, 한 달이 채 되기 전에 가쓰모토가 뒤따라 무덤으로 갔습니다. 시작한 두 사람이 다 죽은 것입니다.
그런데도 싸움은 산발적으로 이어지다가 1477년 12월에 야마나 쪽 군사가 자기 진영을 불태우고 물러났습니다.
그리고 이 문장이 이어집니다. 마침내 교토에 평화가 밝았다. 그러나 지방에는 아직 아니었다.
에치젠과 오와리와 도토미에서, 가가에서, 규슈에서 싸움은 계속되었습니다.
「난이 끝났다」는 말이 어디까지를 가리키는지가 여기 있습니다. 교토에서 군사가 물러난 것과 싸움이 그친 것은 같은 일이 아니었습니다.
확인하지 못한 것 양쪽이 군사를 교토로 불러들인 경위는 이 두 자료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応仁記』 계통의 자료가 필요합니다. 브링클리의 책은 1915년에 나온 통사라 연·월과 수치만 옮기고 저자의 평가는 쓰지 않았습니다.
「応仁乱消息」(近藤瓶城 편 『史籍集覽』 제13책), ja.wikisource 전사 · F. Brinkley, *A History of the Japanese People*(1915), Project Gutenberg 전문
한눈에 보기
무슨 일이 있었나
쇼군 후계를 둘러싼 다툼이 십 년 넘는 전란으로 번져 교토가 불탔다.
왜 중요할까
막부의 통제가 무너지고 백 년 넘는 분열기가 시작되었다.
핵심 키워드
- 오닌의 난
- 전국시대
같은 시기, 다른 나라에서는
1467~1477년 언저리연대가 겹치는 사건입니다. 같은 때에 일어났다는 뜻이지, 서로 원인과 결과라는 뜻은 아닙니다. 누르면 그 사건의 상세페이지로 갑니다.
그때 다른 나라의 임금
1467~1477년같은 해에 다른 나라에서 자리에 있던 사람입니다. 나라마다 한 사람씩만 실었습니다. 왕조가 여럿 겹치던 나라는 왕조 연표에 나머지가 있습니다.
- 중국 성화제1464~1487
- 한국 세조1455년~1468년
- 러시아 이반 3세1452~1505
- 신성로마제국 프리드리히 3세1452~1493
- 영국 제임스 3세1460~1488
- 포르투갈 아폰수 5세1438~1481
- 프랑스 루이 11세1461~1483
- 모로코 모하메드 이브느 아리 암라니주테이1465~1471
- 베냉 왕국 에우레1440~1473
- 에티오피아 자라 야코브1434~1468
- 아스테카 몬테수마 1세1440~1469
- 잉카 파차쿠티1438~1471
확인 문제
이 문제는 이 사건의 기록에 적힌 값으로 만든 것입니다. 답을 고르면 바로 알려 줍니다.
1.「오닌의 난과 전국시대」는 언제 일어난 일일까요?
2.「오닌의 난과 전국시대」가 일어난 곳은 어디일까요?
3.「오닌의 난과 전국시대」는 「최씨 무신정권 종식」보다 나중에 일어난 일이다.
4.「오닌의 난과 전국시대」와 관련된 나라(정치체)는 어디일까요?
5.「오닌의 난과 전국시대」는 어느 지역의 역사일까요?
참고자료
이 사건이 속한 시기와 주제를 다루는 자료입니다. 본문의 개별 문장을 어디에서 확인했는지는 아직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료가 둘이어도 교차 검증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앞의 글자는 자료 등급으로, A는 당대 사료와 공식 문서, B는 학술 연구와 국가기관 해설, C는 백과사전과 개론 교재를 뜻합니다.
- CWorld History, Volume 1: to 1500 · OpenStax / Rice University · 2023 · CC BY-NC-SA 4.0링크
- CWorld History, Volume 2: from 1400 · OpenStax / Rice University · 2022 · CC BY-NC-SA 4.0링크
- A「応仁乱消息」 — 오닌의 난을 보고 들은 대로 적어 고향 집에 보낸 편지 (끝에 文明 18년〈1486〉 8월) · ja.wikisource 전사 (近藤瓶城 編 『史籍集覽』 제13책) · 1486 (난은 1467~1477) · public domain링크
- CA History of the Japanese People from the Earliest Times to the End of the Meiji Era · Frank Brinkley (with Baron Kikuchi Dairoku) · 1915 · 공개(퍼블릭 도메인)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