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유타야 왕국
Ayutthaya Kingdom · 1351~1767년
- 언제
- 1351~1767년
- 어디서
- 아유타야
- 어느 나라
- 아유타야
- 누가
- 장사도, 진언상, 배후, 이자영, 시몽 드 라 루베르
- 무슨 사건
- 아유타야 왕국
연도가 특정된 연대
그때 자리에 있던 임금
- 오스만 제국 오르한 1세 (오스만 제국 술탄 2대 · 1326~1362)
- 이슬람권 알하킴 2세al-Hakim II (아바스 왕조(카이로) 5대 · 1341~1352) / 알나시르 알하산al-Nasir al-Hasan (1st reign) (맘루크 왕조(바흐리) 22대 · 1347~1351) / 사리흐Salih (맘루크 왕조(바흐리) 23대 · 1351~1354)재위 연대에 이견이 있습니다
- 일본 아시카가 다카우지 (무로마치(아시카가) 막부 쇼군 1대 · 1338~1358) / 고무라카미 천황 (천황(天皇) 97대 · 1339~1368) / 스코 천황 (북조 천황(北朝) 3대 · 1348~1351)
- 캄보디아 롬퐁 리아치아លំពង្សរាជា (캄보디아 국왕 50대 · 1347~1353)재위 연대에 이견이 있습니다
- 태국 마하타마라차 1세พระมหาธรรมราชาที่ 1 (태국(시암) 국왕 6대 · 1347~1368) / 라마티보디 1세 (태국(시암) 국왕 7대 · 1351~1369)재위 연대에 이견이 있습니다
같은 지역의 여러 나라를 함께 보였습니다. 이 사건이 일어난 곳의 임금만이 아닙니다. 나라별 왕조 연표 보기
이야기로 읽는 역사 — 마흔 나라라 부르지만
아유타야는 오늘날 태국 중부에 있던 왕국입니다. 유네스코 등재 설명은 이 도시가 1350년에 세워졌고, 강 세 줄기에 둘러싸인 섬에 자리 잡았다고 적습니다.
그 자리를 고른 까닭도 적혀 있습니다. 그때의 바닷물이 밀려 올라오는 경계보다 위쪽이어서, 바다를 건너온 다른 나라의 군함이 도시까지 올라올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계절마다 오는 홍수를 피하는 데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조선의 기록에는 이 나라가 섬라곡국이라는 이름으로 나옵니다. 『태조실록』 1393년 6월 16일자에 섬라곡국이 신하 장사도 등 스무 명을 보내 소목과 속향, 그리고 사람 두 명을 바쳤다고 적혀 있습니다. 사람을 물건과 나란히 적은 기록입니다. 그때의 기록이 그렇게 적었다는 사실을 밝혀 둡니다.
이듬해에는 섬라곡 사람 장사도가 예빈경, 진언상이 서운부정으로 임명됩니다. 그런데 1396년, 회례사로 갔다 돌아오던 일행이 전라도 나주 앞바다에서 왜구에게 붙잡혀 모두 죽고 통사 이자영만 살아 돌아왔습니다.
삼백 년 가까이 지난 1687년, 프랑스에서 온 사절 시몽 드 라 루베르가 이 나라에 머물며 본 것을 적었습니다. 그는 자유롭게 장사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둘레 나라들의 전쟁을 피해 온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외국 사람이 많다고 적었습니다. 그들은 도시와 그 바깥에 저마다 구역을 이루어 살았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말을 전합니다. 사람들이 이 도시에 마흔 나라 사람이 있다고 말한다고요. 그런데 그는 곧바로 의심합니다. 다른 도시에 대해서도 똑같이 마흔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그저 부풀린 수 같다고요.
그래서 세어 보았습니다. 왕의 사절단에게 인사하러 온 외국 사람들의 대표를 헤아려 보니 스물한 나라였다고 적었습니다. 같은 책은 이 왕에게 외국인 근위대 말고는 상비군이 없고, 그 기병 근위대가 백서른 명이라고도 적습니다.
1767년, 버마 군대가 쳐들어와 도시를 불태웠고 사람들은 도시를 떠나야 했습니다. 그 자리에는 다시 세우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넓은 유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생각해 보기 멀리 떨어진 두 곳이 오갈 수 있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더 자세히 — 조선의 실록과 프랑스 사절이 본 시암
색이 다른 대목은 자료에 적힌 문장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이 나라가 조선과 사신을 주고받았다는 기록이 『태조실록』에 남아 있습니다. 조선이 세워진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의 일입니다.
태조 2년 기사입니다. 섬라곡국이 신하 장사도(張思道) 등 스무 사람을 보내 소목 천 근과 속향 천 근, 그리고 사람 두 명을 바쳤다. 임금은 그 두 사람에게 대궐 문을 지키게 했습니다.
이 대목은 그냥 지나칠 수 없습니다. 사람이 소목과 속향 옆에 나란히 적혀 있습니다. 그때의 기록이 사람을 어떻게 다루었는지가 문장의 배열에 그대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이듬해에는 이런 기사가 나옵니다. 섬라곡 사람 장사도를 예빈경으로 삼고, 진언상(陳彦祥)을 서운부정으로 삼았다. 사신으로 온 사람이 조선의 관직을 받은 것입니다.
돌아가는 길은 험했습니다. 태조 5년 기사에는 조선이 답례로 보낸 사절의 일이 적혀 있습니다. 통사 이자영이 예빈소경 배후와 함께 섬라곡국에 회례사로 갔다가, 그 나라 사신 임득장 등과 함께 돌아오던 중 나주 바다에서 왜구에게 붙잡혀 모두 죽고, 이자영만 사로잡혀 갔다가 이제야 돌아왔다.
바다를 사이에 둔 두 나라가 오갔고, 그 길목에 왜구가 있었습니다.
이 나라에 사람이 얼마나 모여 살았는지는 삼백 년 뒤 프랑스 사절의 기록이 전합니다. 그는 사람들이 온 까닭부터 적습니다. 자유로운 교역 때문에, 그리고 인도와 중국과 일본과 통킹과 코친차이나를 비롯한 아시아 남부 여러 나라의 전쟁 때문에 많은 이방인이 시암으로 흘러들었다.
그런데 그는 들은 말을 그대로 옮기지 않았습니다. 시암 시에는 마흔 나라가 있다고들 한다는 말을 적은 뒤 이렇게 덧붙입니다. 같은 표현이 다른 도시에 대해서도 쓰이는 것을 보고 이 꾸며 낸 듯한 마흔이라는 수는 내게 아시아적 허영으로 보인다고요.
그리고 직접 세어 봅니다. 왕의 사절들에게 인사하러 온 이방인 대표들을 헤아렸더니, 시암 사람들이 세는 방식대로 세어도 스물한 나라뿐이었습니다.
들은 수를 적고, 의심하고, 직접 세어 본 것을 함께 적은 기록입니다.
확인하지 못한 것 1351년 건국과 1767년 함락, 강 세 줄기가 만나는 지형에 관한 서술은 이 자료들에 없습니다.
『태조실록』의 섬라곡국(暹羅斛國) 기사 세 건(태조 2년·3년·5년),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 Simon de la Loubère, *A New Historical Relation of the Kingdom of Siam*(1693년 영역), archive.org 전문 — 지은이는 1687~88년 시암에 간 프랑스 사절입니다
한눈에 보기
무슨 일이 있었나
교역 도시로 자라 여러 나라의 상인이 드나들었다.
왜 중요할까
1767년 버마의 침공으로 도읍이 함락되었다.
핵심 키워드
- 아유타야
- 무역
같은 시기, 다른 나라에서는
1351~1767년 언저리연대가 겹치는 사건입니다. 같은 때에 일어났다는 뜻이지, 서로 원인과 결과라는 뜻은 아닙니다. 누르면 그 사건의 상세페이지로 갑니다.
그때 다른 나라의 임금
1351~1767년같은 해에 다른 나라에서 자리에 있던 사람입니다. 나라마다 한 사람씩만 실었습니다. 왕조가 여럿 겹치던 나라는 왕조 연표에 나머지가 있습니다.
- 중국 혜종(순제)1333~1368
- 한국 충정왕1348년~1351년
- 러시아 시메온 이바노비치1340~1353
- 비잔티움 제국 요안니스 5세 팔레올로고스1341~1391
- 영국 에드워드 3세1327~1377
- 포르투갈 아폰수 4세1325~1357
- 프랑스 장 2세1350~1364
- 말리 제국 수레이만1341~1360
- 베냉 왕국 오헨1334~1370
- 에티오피아 네와야 크레스토스1344~1372
- 잉카 잉카 로카1350~1380
확인 문제
이 문제는 이 사건의 기록에 적힌 값으로 만든 것입니다. 답을 고르면 바로 알려 줍니다.
1.「아유타야 왕국」은 언제 일어난 일일까요?
2.「아유타야 왕국」이 일어난 곳은 어디일까요?
3.「아유타야 왕국」은 「파스퇴르의 광견병 백신 접종」보다 나중에 일어난 일이다.
4.「아유타야 왕국」에 나오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5.「아유타야 왕국」과 관련된 나라(정치체)는 어디일까요?
참고자료
이 사건이 속한 시기와 주제를 다루는 자료입니다. 본문의 개별 문장을 어디에서 확인했는지는 아직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료가 둘이어도 교차 검증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앞의 글자는 자료 등급으로, A는 당대 사료와 공식 문서, B는 학술 연구와 국가기관 해설, C는 백과사전과 개론 교재를 뜻합니다.
- CWorld History, Volume 1: to 1500 · OpenStax / Rice University · 2023 · CC BY-NC-SA 4.0링크
- BUNESCO World Heritage Centre · UNESCO · current · site terms링크
- A『태조실록』의 섬라곡국(暹羅斛國, 아유타야) 관련 기사 — 1393~1396년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 1393~1396 · 공공링크
- ASimon de la Loubère, 『A New Historical Relation of the Kingdom of Siam』(1693년 영역본) · archive.org (Google 스캔본 bub_gb_RvpBAQAAMAAJ) · 1687~88년 방문 / 1693년 영역 · public domain링크
- B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설명 — 석굴암과 불국사(736), 함피 기념물군(241), 아유타야 역사도시(576) · UNESCO World Heritage Centre (Wayback Machine 경유) · 등재 설명(현행) · 공개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