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지 헌법 공포
Promulgation of the Meiji Constitution · 1889년 2월 11일
- 언제
- 1889년 2월 11일
- 어디서
- 도쿄
- 어느 나라
- 일본
- 누가
- 메이지 천황, 이토 히로부미
- 무슨 사건
- 메이지 헌법 공포
연도가 특정된 연대
그때 자리에 있던 임금
- 오스만 제국 압뒬하미트 2세 (오스만 제국 술탄 34대 · 1876~1909)
- 이란(페르시아) 나세르 앗딘 샤 (카자르 왕조 4대 · 1848~1896)
- 이슬람권 타우피크Tawfiq (무함마드 알리 왕조(이집트) 6대 · 1879~1892)재위 연대에 이견이 있습니다
- 일본 메이지 천황 (천황(天皇) 122대 · 1867~1912)
- 태국 쭐랄롱꼰 (태국(시암) 국왕 30대 · 1868~1910)
같은 지역의 여러 나라를 함께 보였습니다. 이 사건이 일어난 곳의 임금만이 아닙니다. 나라별 왕조 연표 보기
이야기로 읽는 역사 — 주는 헌법과 만드는 헌법
메이지 유신 뒤 일본에서는 헌법과 의회를 요구하는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정부는 이를 억누르면서도 헌법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왜 만들려 했는지는 뒷날 일본 국회에 나온 한 역사학자의 설명에 정리되어 있습니다.
막부 말기의 불평등조약을 고치려고 1872년부터 교섭에 들어갔고 이와쿠라 사절단이 구미를 돌았는데, 미국을 빼면 모두 협조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때 가장 문제가 된 것이 헌법과 육법이었습니다. 근대적인 법이 없는 나라에는 대등한 조약 관계를 주지 않는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가장 급한 것은 관세를 스스로 정할 권리였습니다. 그것이 없으면 기계를 사 올 때마다 큰돈이 빠져나갔습니다. 근대적 입헌국가로 인정받지 못하면 무역조차 자유롭게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바탕에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서구식이라 하면 영국식을 떠올렸다고 합니다. 그 학자는 이노우에 고와시의 몫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유럽이라 해도 독일이 있다고 한 것이 그의 기여였다고요.
1889년 2월 11일 헌법이 공포되었습니다. 국민이 만든 것이 아니라 천황이 신민에게 내려 주는 형태였습니다. 제1장의 제목이 「천황」이고 열일곱 개 조항이 모두 천황으로 시작합니다. 제3조는 짧습니다. 천황은 신성하며 침범할 수 없다.
신민의 권리도 있습니다. 제29조는 언론과 출판과 집회와 결사의 자유를 누린다고 적었는데 앞에 단서가 붙어 있습니다. 법률이 정하는 범위 안에서. 그리고 제31조는 이 장의 규정들이 전쟁 때나 비상시에 천황의 권한 행사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조문이 실제로 어떻게 쓰였는지도 국회에서 이야기된 적이 있습니다. 2015년 한 의원의 발언입니다. 헌법 규정상 통수권은 처음부터 독립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대권은 내각의 보필에 따라 일한다고 같은 헌법이 정했고, 어느 시기까지는 군이 제멋대로 움직여도 된다는 해석이나 운용은 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같은 발언은 이렇게 잇습니다. 그런데 이 해석이 어느새 바뀌어 내각의 말을 듣지 않아도 된다고 되었고, 그 속에서 군부의 폭주로 이어졌다고요. 갈림길로 천황기관설 배격도 들었습니다. 전쟁 전 압도적인 통설이었는데 1935년 배격 운동이 타올라 그 학설을 편 교수의 책이 배포 금지되었다는 것입니다. 조문이 그대로여도 읽는 방식이 바뀌면 나라가 달라집니다. 다만 이것은 뒷날의 해석이지 그 시대의 사료는 아닙니다.
생각해 보기 헌법을 누가 만드느냐가 그 내용을 어떻게 바꿀까요?
더 자세히 — 권리와 그 권리를 멈추는 법이 같은 장에
색이 다른 대목은 자료에 적힌 문장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이 헌법이 왜 만들어졌는지에 대해, 한 학자가 국회에서 한 증언이 사정을 잘 정리해 줍니다.
먼저 문제는 조약이었습니다. 불평등조약을 고치려고 협상에 나섰는데, 사절단이 구미를 돌아보니 미국을 빼고는 모두 비협조적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때 무엇이 걸림돌이었는지가 이어집니다. 결국 그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헌법과 육법입니다. 근대적인 법이 없는 나라에게는 대등한 조약 관계를 주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무엇이 가장 급했는지도 적혀 있습니다. 처음에 곤란했던 것은 관세자주권입니다. 그것이 없으면 기계를 사 올 때마다 막대한 금은이 흘러나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결론이 이렇게 됩니다. 구미 사회로부터 근대적인 입헌국가라고 인정받지 않으면 무역도 자유롭게 할 수 없다.
왜 하필 프로이센이었는지도 나옵니다. 처음에는 구미식이라 하면 영국식을 떠올렸는데, 유럽이라 해도 독일이 있고 그것도 구미식이라 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맺습니다. 어쨌든 구미식 헌법, 프로이센식이라도 좋으니 구미식 헌법을 만들지 않으면 어엿한 나라로 대접받지 못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헌법의 조문을 봅니다. 제1장의 제목부터가 이 헌법의 짜임을 말합니다. 제1장 천황입니다.
제1조는 만세일계의 천황이 다스린다고 했고, 제3조는 천황은 신성하여 침범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제4조는 주권을 총람한다고 했습니다. 제11조는 군의 통수권이 천황에게 있다고 정했고, 제13조는 선전과 강화를, 제14조는 계엄을 정했습니다.
권리에 관한 조항도 있습니다. 제29조입니다. 일본 신민은 법률의 범위 안에서 언론·저작·출판·집회 및 결사의 자유를 누린다.
그런데 같은 장에 다른 조항이 하나 더 있습니다. 제31조입니다.
본 장에 실린 규정들은 전시 또는 국가 비상시에 천황에게 속하는 권한의 행사에 영향을 미치지 아니한다.
권리를 적은 그 장 안에, 그 권리가 멈추는 경우가 함께 적혀 있습니다. 무엇을 보장하는지와 언제 보장하지 않는지가 한 장에 들어 있는 것입니다.
통수권에 관해서는 뒷날 국회에서 한 의원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헌법 규정상 처음부터 통수권은 독립되어 있었지만, 동시에 통수권을 가진 천황의 대권은 내각의 보필에 근거해 일한다고 메이지 헌법은 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 시기까지는 그렇게 운용되었다고 하면서, 결코 내각과 무관하게 군이 마음대로 통수권에 근거해 행동해도 된다는 해석이나 운용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다 이 해석이 어느새 멋대로 바뀌어, 내각이 하는 말을 듣지 않아도 된다고 해석이 바뀌고 운용이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조문이 바뀐 것이 아니라 읽는 방식이 바뀌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같은 사람은 그 무렵의 다른 일도 언급합니다. 1935년에 그때까지 압도적 통설이던 천황기관설에 대한 배격 운동이 국회 안팎에서 타올라, 한 학자의 책이 반포 금지 처분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다만 이것들은 뒷날 사람들의 해석이지 그 시대의 사료는 아닙니다. 조문이 무엇을 적었는가와, 그것이 뒤에 어떻게 읽혔는가는 갈라서 보아야 합니다.
확인하지 못한 것 자유민권운동의 경과와 이토 히로부미의 유럽 시찰 자체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뒤에 인용한 국회 발언은 학자의 증언과 현직 정치인의 해석이고, 그 시대의 사료가 아닙니다.
「대일본제국헌법」(1889) 영역, Alfred Stead 편 *Japan by the Japanese*(1904) 부록 B, en.wikisource · 일본 국회 회의록(국립국회도서관)의 헌법조사회 참고인 증언과 의원 발언
한눈에 보기
무슨 일이 있었나
천황이 대일본제국헌법을 공포했다. 의회와 내각을 두었으나 주권이 천황에게 있고 신민의 권리는 법률 범위 안에서 규정되었다.
왜 중요할까
입헌제·천황주권·관료제·군 통수권이 결합된 메이지 국가 구조를 이해할 수 있다.
핵심 키워드
- 메이지 헌법
- 황제권
같은 시기, 다른 나라에서는
1889년 2월 11일 언저리연대가 겹치는 사건입니다. 같은 때에 일어났다는 뜻이지, 서로 원인과 결과라는 뜻은 아닙니다. 누르면 그 사건의 상세페이지로 갑니다.
- 미주 · 1888년브라질 노예제 폐지아메리카에서 마지막으로 노예제를 법으로 없앴다.
- 한국 · 1886년 5월 31일이화학당 개교메리 스크랜턴이 서울 정동에서 여성 교육 기관을 시작했다. 초기에는 학생 모집이 어려웠으나 근대 여성 교육의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 아프리카 · 1885~1908년콩고 자유국 통치레오폴드 2세가 개인적으로 지배한 콩고 자유국에서 고무 채취 강제와 인질·폭력, 질병과 기근이 대규모 인명 피해를 낳았다. 국제 비판 뒤 벨기에가 식민지로 인수했다.
- 유럽 · 1885년파스퇴르의 광견병 백신 접종약하게 만든 병원체로 발병을 막는 방법을 사람에게 적용했다.
그때 다른 나라의 임금
1889년 2월 11일같은 해에 다른 나라에서 자리에 있던 사람입니다. 나라마다 한 사람씩만 실었습니다. 왕조가 여럿 겹치던 나라는 왕조 연표에 나머지가 있습니다.
- 인도네시아 하멩쿠부워노 7세1877~1921
- 중국 광서제1875~1908
- 한국 고종1863년~1897년
- 러시아 알렉산드르 3세1881~1894
- 에스파냐 알폰소 13세1886~1931
- 영국 빅토리아1837~1901
- 오스트리아 프란츠 요제프 1세1848~1916
- 포르투갈 루이스 1세1861~1889
- 모로코 모로크코의 하산 1세1873~1894
- 베냉 왕국 오본람웬1888~1897
- 아샨티 왕국 프렘페흐 1세1888~1931
- 에티오피아 요하네스 4세1871~1889
- 브라질 제국 페드루 2세1831~1889
- 통가 조지 투포우 1세1845~1893
확인 문제
이 문제는 이 사건의 기록에 적힌 값으로 만든 것입니다. 답을 고르면 바로 알려 줍니다.
1.「메이지 헌법 공포」는 언제 일어난 일일까요?
2.「메이지 헌법 공포」가 일어난 곳은 어디일까요?
3.「메이지 헌법 공포」에 나오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4.「메이지 헌법 공포」와 관련된 나라(정치체)는 어디일까요?
5.「메이지 헌법 공포」는 「첫 평화적 정권교체」보다 나중에 일어난 일이다.
참고자료
이 사건이 속한 시기와 주제를 다루는 자료입니다. 본문의 개별 문장을 어디에서 확인했는지는 아직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료가 둘이어도 교차 검증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앞의 글자는 자료 등급으로, A는 당대 사료와 공식 문서, B는 학술 연구와 국가기관 해설, C는 백과사전과 개론 교재를 뜻합니다.
- CWorld History, Volume 2: from 1400 · OpenStax / Rice University · 2022 · CC BY-NC-SA 4.0링크
- CWorld History Since 1500: An Open and Free Textbook · East Tennessee State University · 2022 · CC BY 4.0; images separate링크
- B「대일본제국헌법」(1889년 2월 11일) 영역 · en.wikisource 전사 (Alfred Stead ed., *Japan by the Japanese*, 1904, Appendix B) · 1889 / 1904(영역) · public domain링크
- B일본 국회 회의록 — 메이지 헌법을 만든 까닭과 통수권 독립의 운용 · 国立国会図書館 国会会議録検索システム · 2003·2015 · 공개링크